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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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깨끗한 행위, 산뜻한 행위, 멋있는 행위, 진리적 행위...불자로서의 정행이란 이런 것이다. ◈우학스님 정행론(淨行論)◈

보현화 2010. 2. 5. 18:52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서는 2009, 섣달 초하루를 맞아  신중기도를 봉행하고 큰절과 

분원도량의 신도들이  다함께 각 도량의 법회에 참석한 가운데 감포도량 무문관에 동안거 중이신

회주큰스님을 감포도량 대법당 법상에 모시고 스크린으로 큰스님을 친견,  큰스님께서 심사숙고를

거쳐 탄생시킨 특별법문, [우학스님 정행론]을 경청하며 불기 2553년 마지막 초하루 법회를 가름

하였습니다.

 

다음은 회주큰스님의 특별 대법문, [우학스님의 정행론(而不 五淨行論)] 입니다.

마음으로 새기며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받으신 초하루법문 유인물, [화엄경 제11 정행품]을 보시겠습니다.

대구큰절을 비롯해서 모든 도량에서는 이 정행품을 큰소리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지수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보살이 어떻게 허물이 없는 몸과 말과 업을 얻으며,

어떻게 해롭히지 않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훼방할 수 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깨뜨리지 못할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물러가지 않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수승한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청정한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물들지 않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지혜가 앞잡이가 되는 몸과 말과 뜻의 얻나이까?

나무아미타불()

 

한글이 시시해서 그런지 따라하지 않으니까 그 밑에 한문을 읽어보겠습니다.

한글이 약했으니까 한문은 좀 크게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제목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정행! 이 정행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깨끗한 행위입니다.

조금 의역을 하면 산뜻한 행위, 멋있는 행위 또는 진리적 행위 이것을 정행이라고 말해요.

읽어보겠습니다. 산뜻한 행위, 멋있는 행위, 진리적 행위

 

부처님 당시에 사성제 계급이 있었습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물론 지금도 있어요.  

(당시) 누가 우리 부처님께서 여쭈었어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귀하고 천한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사정제 계급에 대해 묻는  한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귀하고 천한 것은 출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라는 출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현재  행위에 있다.' 고 하셨습니다.

 

오늘 (배울) 정행품에는 행위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불자로서의 행위는 당연히 정행이 되어야합니다.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정행!

정행이란 깨끗한 행위, 산뜻한 행위, 멋있는 행위, 진리적 행위입니다.

 

(볼펜 꺼내서 다 좀 적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얘기하는 게 다 기억이 안돼요.

칭다오도량을 포함해서 모든 도량에서는 다 적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정행이될 것인가?

바로 그 내용이 아까 읽었던 유인물 맨 끝줄에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지혜가 앞잡이가 되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나이까?

이것을 한 마디로 하면, 어떻게 하면 정행을 얻나이까? 이 말입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이 아래쪽에 나오고 있습니다.

한글부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때 문수사리보살이 지수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여, 당신이 지금 많이 이익케 하고 많이 안락케하고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천인을

이익케하고 즐겁게 하려고 이러한 이치를 묻나니, 불자여 만일 보살이  마음을 잘 쓰면

온갖 성하고 묘한 공덕을 얻어서 모든 부처님의 법에 마음이 걸리지 않으며 과거 현재 미래의

여러 부처님의 도에 머물며 중생을 따라 머물러 항상 여의지 아니하며 모든 법의 모양과 같이

다 통달하며 온갖 나쁜 것을 끊고 모든 선한 것을 구족하며 당연히 보현과 같이 색상이 제일이며

온갖 행과 소원을 모두 구족하며 일체법에 자재하지 못함이 없어서중생의 둘째도사가 되느니라.

 

여기서 둘째도사라고 하는 것은 석가모니부처님 다음가는 큰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눈 여겨 볼 대목은 한글 첫째줄에 "보살이 마음을 잘 쓰면"이라는 말이 있어요.

찾았습니까?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보살이 마음을 잘 쓰면... 마음을 잘 써라는 말입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한문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입을 좀 크게 벌리시고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셋째줄에 善用其心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찾았습니까? 거기 밑줄그어 보시기 바랍니다.

읽어보겠습니다. 善用其心, 그 마음을 잘 써라.

 

위에 문장과 함께 보시면, 어떻게 정행을 얻습니까 라는 물음에 대답이그 아래 문장에

나와 있긴 하지만 이 정행에 대해서 아주 두리뭉실하게 그냥 넘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불자로서의 정행이 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사색을 하며

정리를 했어요.

 

 ◈우학스님 而不 五淨行論

 

유인물 뒷면에 보면, 불자로서의 정서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바른행, 정행이 될 것인지에 대해

정리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은 화엄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나름대로 정리한 것

이기 때문에 [우학스님 而不  五淨行論]이라 했어요. 

 

[우학스님의 정행론]입니다.

 

첫째. 受而不留(수이불류)

둘째. 生而不持(생이부지)

셋째. 開而不偏(개이불편)

넷째. 統而不拘(통이불구)

다섯째. 樂而不着(락이불착)   

 

한글 뜻을 좀 불러 드리겠습니다.

첫번째, 受而不留(수이불류)라.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두번째. 生而不持(생이부지)라.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세번째. 開而不偏(개이불편)이라. 

           열어놓되 치우치지 않는다.

네번째. 統而不拘(통이불구)라.     

           다스리되 구속하지 않는다.

다섯번째. 樂而不着(락이불착)이라.

            즐기되 집착하지 않는다.

 

 

엘리트 불자들이니까 다 적었겠지요?

알듯말듯한 말이지요.

재미있는 내용들입니다.

제 설명을 들어보며 공감이 갈 겁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아주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오늘 시간이 나는 데까지 설명을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 수이불류와 생이부지까지 하면 대충 끝나지 싶습니다.

점심시간 전까지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오정행론 1. [受而不留,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受而不留,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현실을 받아들이되 현실에 머물지 말라는 뜻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조차 않는 수가 많아요.

현실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하근기입니다.

엄연히 닥쳐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조차 않으면 하근기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긴 하되 현실에 머무르는 사람은 중근기입니다.

그 다음, 현실을 받아들이되 현실에 머무르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은 상근기입니다.

그러니까 수이불류는 상근기에 맞추어 놓은 말이지요.

 

그렇다면 '받아들임'에는 어떤 종류가 있느냐?

네 가지 '받아들임'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상황을 받아 들여라. 어떤 상황이든지 받아들여라.

두번째, 부족함을 받아들여라.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여라.

세번째, 사람을 받아 들여라.

네번째, 자기잘못을 스스로 받아 들여라.

 

●첫번째, 상황을 받아 들여라.

첫번째, 상황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하근기 중생은 숫제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했어요.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에 외동아들이 죽게 되었어요. 그 어머니는 외동아들을

안고 묫등까지 갔다가 차자 묻지 못하고  "아가야 젖먹어라, 왜 먹지 않느냐?"면서 일주일이나

죽은 아이를 껴안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거의 실성을 했지요.  반미치광이가 된 겁니다. 외동

아들이 죽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 모습을 보고  동네사람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 이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부처님 밖에 없다. 부처님께 가 보라."

그래서 부처님을 찾아가서 애기가 죽었다는 말도 않고 우리 애기가 이런데

어떻게 좀 해 달라고 부처님께 울고불고 보채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래, 네 애기를 말도 하고 걸어다닐 수 있게 하려면 내 조건을 들어주어야 한다.

마을에 내려가서 한 번도 상여가 나간적이 없는 집을 찾아서 겨자씨를 구해오너라.

그러면 내가 네 아들을 일주일 전의 모습으로 돌려주겠다"고  했어요

 

어떤 책에서는 불씨를 구해 오라고 했다는데 옛날에는 불씨 구하기도 힘들었지요

어느 표현이나 똑같습니다. 인도에서는  음식에 겨자맛이 꼭 나니까 집집마다

겨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인도의 전통적인 가문은 거의 열촌이내 사람이 같이 모여 살아요.

그 집집마다 다녔지만 상여가 한번도 나가지 않은 집이 어디있겠습니까?

사람이 죽지 않는 집이 어디있겠느냐 말입니다.

누가 죽어도 다 죽었지요.

그러니 백방으로 쫓아 다녔지만 겨자씨를 구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다니던 중에 깨닫게 됩니다.

'아,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언제죽어도 반드시 죽는구나!

우리 애가 조금 일찍 죽었을 뿐이지 죽는다는 것은 똑 같구나!!'

 

그래서 부처님전에 찾아가서 엎드려 절하면서

"부처님, 큰 뜻을 깨닫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불제자가 되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그 아이는 부처님께서 천도를 잘 하셔서 좋은 세상에

태어나도록 했지요.

 

 

어떤 상황이 닥치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근기는 상황은 받아들이되 현실에 머루르고 있어요.

요즘은 고아라는 말을 잘 안쓰지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절에서 어릴 적부터 절에서 살았던 6.25

전쟁 고아가 있어요. 그런데 이사람은 자기가 전쟁고아라서 어쩔 수 없이 절에 살게 됐다고 말끝

마다 고아라고 스스로 인정을 해요. 그러면서하는 얘기가 "내가 만약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우리

집이 잘 살았다면 출가를 하지 않았을 거다. 고아였기 때문에 절에 살았다."고 해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냥현실에 머무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짓도 꼭 고아짓을 해요. 신도들이 오면 이것도 사내라 저것도 사내라하고

심지어 돈도 내놔라하고 자꾸 보채는 겁니다. 자끄 그런 짓을 하다가 은사스님에게 들켜서

죽도록 얻어맞았어요. 맞아도 싸지요.

이게 바로 중근기 중생입니다.

인정은 하되 한 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체념하고 그냥 사는 거지요.

 

그 다음, 상근기사람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에 관련된  얘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아주 유명한 흑인 스포츠맨.  윌마 로돌프라는 미국사람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1940년생인데 아주 어릴 때부터 병약했어요. 태어날때 몸무게가 1.8Kg

게다가 소아마비에 걸렸어요.  장애인이 되는 거지요.

1955년 당시 미국내 소아마비 환자가 35만 명이나 되었어요.

2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사람이 5만명 정도 되는데 35만 명이면 전쟁보다도 더

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윌마로돌프는 자기가 소아마비라는 것에 굴하지 않았어요.

나는 소아마비라는 것을 인정하고 강철보조기를 달고 자나깨나 운동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그 어려운 상황을 다 이겨내게 됐어요.

이 사람이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스무 살 때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100m, 200m, 400m계주에 참가하여 일등을 했어요. 그래서 미국 역사상 올림픽 최초 3관왕이

탄생됩니다. 3관왕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만약에 나는 소아마비라고 체념했거나 소아마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보나마나 뻔한 일이지요. 그래서 윌마 로돌프가 우리에게 본을 보인 것처럼

현실을 받읻르이면서 절대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나쁜 상황에만 해당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좋은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상황이라도 받아들이되 잘대

거기에 머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 큰 발전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병치레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큰 병에 걸리면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하나 나는 그런 병에 안걸렸다하고 병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오히려 병을 키우게 됩니다. 그때는 병을 받아들이고

굳건한 마음만 내면 이겨낼 수가 있어요. 암도 충분히 이길 수가 있어요. 암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업병이라. 마음의 기도로써 현실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면 업장이 녹아지게 됩니다.

업장이 녹을 만큼 기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병이 낫게 됩니다.

암도 그럴진대 세상의 자잘한 일이야, 말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수이불류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현실을 받아들이되 현실에 머무르지 마라.

 

●두번째, 부족함을 받아 들여라.

두번째는 무엇을 받아들이되 현실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느냐?  부족함을 받아 들여라.

사람은 누구나 부족함을 가지고 있어요. 중생으로서 부족함 또 자기 결과에 대한 부족함 등

많은 부족함이 있는데 먼저 중생으로서의 부족함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①중생으로서의 부족함

부처님은 복과 지혜가 출중하신 분인데 부처님 앞에서 잘난 척하는 분도 아주 많아요, 자기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부처님보다는 못난 사람입니다. 그러니 법당에 오면 무조건 몸을 바짝

낮추고 앞드려야 합니다. 거드름 피울 만한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도 "부처나 내나 똑같다.

나도 부처될낀대... 나도 부천데..."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특히 참선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러면 아상만 가득 차고 건방만 늘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중생이라.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돼요.

부처님께 절하고 기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무조건 해야 돼요,

자기가 중생인지 부처인지 생각을 해보라니까요. 자기자신을 억지로 과대포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생노름을 하면서 내가 부처다하고 과대포장할 필요가 뭐있느냐 말입니다.

중생으로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겁니다.부처님을 모델로 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면 조금씩 접근해가는 것이지 현재는 부족하지 않느냐.  그러니 그것을 받아

들이라는 말입니다.

 

②자기실적, 자기성적에 대한 부족함

그 다음 두번째로 부족함 중에 자기실적, 자기성적에 대한 부족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아이는 본래 잘 하는데.... 본래 우등생인데 선생님을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됐다.

시험에 실수를 해서 그렇지 원래 공부 잘하는 아이다.'고  부모 스스로 위안을 해요.

아이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으나 터무니없이 아이를 높이 평가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병폐가 생깁니다.

우리 아이는 시험운이 없어서 떨어졌다는  말 많이 하지요?

그런 말로 변명할 것 없이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겁니다.

어쨌든 우리는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③키나 나이, 용모의 부족함

그리고 또 ㅅㅔ번째로 키나 용모나 나이 등에서 오는 부족함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요즘은 시집을 일부러 안가는 사람도 많지요. 그런 경우는 제외하고

못가는 사람중에 가만히 보면 시집은 가고 싶은데 못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가 마흔쯤 되는 아가씨한테 중매가 들어왓는데 남자 나이가 마흔 다섯이라.

그러니까 아, 남자 나이가 너무 많아서 못가겠다 이거라.

자기 나이는 적습니까? ㅎㅎ별로 잘생긴 것도 아니면서 배용주이 정도는 돼야 결혼한다 그래요

이래 가지고는 늙어 죽을 때까지 결혼 못하는 거지.

키도 그렇잖아요. 자기 키가 150이면 남자 키가 160이라도 적은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아이고 나는 남자 키작아서 결혼 못하겠다 그러지요. 그런 사람 많아요.

자기 용모, 키 나이 같은 것을 솔직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④자기성질의 부족함

네번째로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것 중에 자기 성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자기) 성질 드르븐 (더러운) 거 있지요?

성질 드르븐 사람은 자기 성질 드르븐(더러운) 것은 말안하고 자꾸 주위 사람만 뭐라 그러거든요.

포용력 없고...... 

 

부족함을 받아들여라.

이 모든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세번째, 사람을 받아 들여라.

사람과의 인연에 천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필연 속의 인연을 말합니다.

부부는 살다가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천륜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속으로 말

하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절로 말하면 상좌와 스승의 관계입니다.

 

"저 가스나 저거 내 딸아니다. "

"저 넘 자슥 저거 내 아들 아니다."

한다고 해서 내 아들, 내 딸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새는 애들이 더 난리라. 

자기가 그 속에 들어왔으면서도 " 나는 저런

아버지 둔 적 없다' 내 아버지 안한다."그래요.

그렇게 거부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닌 걸로

인정되느냐? 그렇지 않잖아요.

 

그럴 때는 받아들여야 해요. 특히, 천륜으로 맺어진 인연은 더욱 그러합니다. 형제지간에도 서로

형제로 인정하지 않는다해도 다른사람이 봤을 때는 어쩔수 없는 형제관계인 겁니다. 만일에 그런

인연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원결을 맺게 돼요. 원수의 매듭을 짓고 마는거지요.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큰 원수가 되어 나중에는 원결이 되어 언젠가는 과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 마음도 지 마음대로 안되는데 가족들 마음인들 어찌 자기 마음만큼 되겠느냐 이거지요.

무조건 절에 와서 정법도량의 불자답게 부처님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절하면서 제 잘났나는

마음부터 조복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잘났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가족들과도 원수가 되는 거지요.

우리의 생이 한 생으로 끝나는게 아닌데  그 다음생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이겁니다.

 

엘리트 불자가 먼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스스로도 편하고 주위 사람도 편해지게 됩니다.

그러니 일단은 사람을 받아들여라는 이야기입니다.

 

●네번째, 자기 잘못을 받아 들여라.

자기잘못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보면 한마디로 답답하죠.

아이들도 자기 잘못을 받아들이고 "잘못 했습니다. 더 잘 하겠습니다." 이러면 모든 게

용서가 되잖아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가지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쩌냐 이겁니다.

살다보면 잘못 할 수 있어요. 그 잘못을 누가 지적하거나 짚어주면 받아들여야 하는데 꼴진(잘난)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이질 않아요.  그래서 그 잘못을 받아들이는 기도에 동참할 필요가 있는 것

입니다.  자비도량참법같은 기도, 아주 좋아요.

참회기도라는 것이 일단 자기 잘못을 솔직히 수긍하고 들어가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자기 잘못함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출발하는 것, 그게 바로 수이불류입니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수이불류! 받아들이되 머무르지 마라.

 상황을 받아들이고,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사람을 받아들이고, 자기잘못을 받아들여라

일단 받아들인 뒤에는 거기에 머물지 말고 나아가라.

 

열심히 기도하면서 부처님 빽믿고 밀어붙이면 다 됩니다.

뒤에서 부처님이 받쳐주고 있는데 안될 리가 있겠습니까?

머물지 말고 추진해 나아감에 있어서 원동력을 부처님께 얻으면 돼요.

그것이 정행입니다. 바로 깨끗한 행위, 산뜻한 행위, 멋있는 행위, 진리적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정행을 하게 되면 가피가 비오듯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오정행론 2. [生而不持,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정행론 두번째가 뭐라 했지요? 生而不持(생이부지)라.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만들되 가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持(지)'는 가지다, 소유하다, 간섭하다는 말입니다.

 

①사람을 만들되 소유하지 않는다.

'生'은 만든다 탄생시킨다는 것 아닙니까? 만드는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뭡니까?

애 만드는 거잖아요. 그러니 애를 만들되 가지지 말라 이겁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아예 애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데 결혼을 한 이상, 애를 만들어야 해요.

그렇지만 절대 가질 생각을 하면 안돼요. 애가 이만큼 성장을 했으면 독립적인 인격체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완전히 소유할 생각을 합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 해서 로봇처럼 조종하여

움직이려고 해요. 그건 큰 오산입니다.

 

부모들이 너무 개입하여 자식의 삶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개성, 자기 철학에 맞게 하도록 전공을 택해서 살면 되는 일입니다.

도둑질하는 것 외에는  나쁜 게 없어요. 그런데 보면 부모들이 자기 욕심 때문에 자기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한 나머지 자식이 부모의 생각대로 가야만 돼요. 그것은 소유하는 것입니다.

소유하지 마라

혼사문제에 있어서도 자기들끼리 좋으면 결혼 시키면 되는 거에요. 

그런데 자기가 데리고 살 것도 아니면서  "절대 안된다"그래요.

그래서 혼사는 혼사대로 깨지고 자시에게 원망듣고... 그렇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로 좋다면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거에요. 

어떤 부모들은 자식의 신혼여행지까지 따라 갔다와서 자랑을 하고 다녀요.

그건 좀 오줄없는 사람이지요. 그럴 바에 차라리  자기가 아들을 데리고 살 일이지....

아이를 낳긴 낳되 소유하지 마라. 가지려 하지 마라는 이야기입니다.

생이부지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생이부지입니다.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보면 누구를 도와줘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도와준 것으로 끝내야 하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잘 됐다고해서 어디까지 따라

다니면서 내가 뒷바라지를 했는데 내 은덕을 잊으면 안된다고 그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안돼요. 도와주는 그 순간, 잊어버려야 돼요. ' 저 사람이 잘 되면 혜택을 받겠다.

대접을 받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려야 해요. 그것을 다 버려야 생이부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절집에서는 상좌가 다 자식인데 저는 은사로서 상좌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강원갈 사람은 강원가고, 선방 갈 사람은 선방 가고, 학교갈 사람은 학교가고,

기도할 사람은 기도하고... 가람수호할 사람은 수호하고 뭐든 개성과 적성대로 하게 둡니다.

그렇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걸 제가 간섭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생이부지이지요.

절 집안에 사는 방식도 아주 여러가지입니다. 그러니 강제적으로 이거 하라 저거하라 간섭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다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래요.

불사문중에 불사일법이라. 부처님 문중에 한 법도 버릴게 없어요.

그러니 꼭 한 가지만 강조할 없어요. 그런데 어떤 은사들은, "꼭 강원가야 된다 꼭 참선해야

된다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것은 자식에게 "너는 꼭 판검사가 되어야 한다, 꼭 의사가

되어야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 생각을 버려야 해요. 그게 생이부지라.

저는  스님을 만들되 절대로 제 식대로 가두지 않습니다.

혹시 주위에 스님될 사람 있으면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로 보내주세요.

적성대로 공부를 시켜 드릴테니까.....

 

 

 

②도량을 세우되 가지지 않는다.

우리 한국불교 대관음사가 도량을 몇 개 세운다고 원력을 세웠습니까?천 개입니다.

" 스님, 천 개나 되는데 그거 언제 다 세웁니까?" 하는데 아마 [33년 수행정진]중에 모두

세우게 될 겁니다. 현재 33년 중에 2년차 기도에 들어왔어요. 그러니 여기 앉은 사람은

앞으로 32년을 필히 더 살아야 돼요. 자기 나이에 32를 더해봐요. 그때 분명히 천 개 도량이

설 겁니다.

 

도량을 왜 세워야 하느냐?
우리 부처님께서 죽림정사를 세우시고, 기원정사를 세우시고, 그외 믾은 절을 세웠는데 그 당시

절을 짓지 않았다면 불교는 소멸했을 겁니다. 부처님 당시 신흥종교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도량을 세우지 않았어요. 물론 부처님께서 수승한 법력을 가지고 계시기도 했지만

이러한 도량을 세워야 한다는 큰 안목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 자체도 법력이지요.

도량을 세우셨기 때문에 불교가 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량이 있어야 부처님도 뵙고 법문도 듣고 그럴 수 있지 도량이 없다면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람사는 곳, 특히 도심에 도량을 세우는 일이 이 시대에 아주 필요합니다. 감포도량을

비롯해서 경산 구미 칠곡 칭다오 뉴욕, 서울도량까지 세웠지만 이걸로는 부족해요. 계속 더 세워

나가야 해요. 단, 도량을 세우되 그것을 자기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절은  공공의 재산이고,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낯선 사람이 오면 텃세부리는 사람들 더러 있지요?  엘리트 불자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도량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면 안돼요.

 

감포도량 기둥에도 보면 시주한 보살의 이름을 붙어 있어요.   

어느 때 어느 보살님이 찾아와서 기둥을 만지면서 " 이 기둥 내가 만들었는데..." 하기에

"언제 했습니까?"했더니 30년 전에 했다 그래요.  30년 동안 그걸 안고 다닌거요.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도량 세우는 일에 불자로서 동참은 하되 가지지는 않아야 합니다.

저의 경우, 제가 주최해서 도량을 세우고 있지만 제 개인으로 절을 소유하지 얺습니다.

전체가 조계종, 법인 소속입니다. 종교단체는 세금을 내지 않아서 다행이지 이 전체에 대해

세금을 내야한다면 아주 엄청날 겁니다. 종교단체가 세금을 안내는 이유가 뭐냐? 

바로 공공의 복리. 공공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국가에서 인정을 하기 때에 그래요.

그런데 개인으로 절을 지어 사유재산화하고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 많아요. 그게 다 업장이

되는 줄을 모르고 그래요.  모든 신도들이 도량을 세우는데 동참은  하되 가질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울 동대문도량을 세웠는데...서울 불교가 지금 엉망진창이거든요.

서울에는 구(區)가 전부 29개라. 우리가 서울로 가서 도량을 세워야 서울불교가 일어나지 않겠나

생각하고 서울에서 첫번째 세운 도량이 동대문구에 세운 도량이라. 그래서 서울 동대문도량이라

했어요. 앞으로 송파구 노원구 등등  계속해서 세워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도량이 세워지더라도

"내가 1기인데.... 2기인데.' 하는 생각을 싹 버려야 해요. 가질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나중에 들어

오더라도 다 한 가족인거지요.

 

자인에 가면 한국불교대학 자인도량이 있는데, 그 도량은 어떤 거사님이 자신이 살던 집을 절로

개조해서 한국불교대학에 완전히 기증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도 계시는데 도량 세우는데  동참 좀

했다고 해서 그걸 가질 생각을 해서도 안되고 텃세를 부려서도 안되는 것이지요.

생이부지해야 합니다.

 

③법회나 단체를 세우되 가지지 않는다.

법회나 단체를 세우되 가질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법회나 단체가 생겼다면 그것 역시

부처님과 인연이 되어서 만들어 진 것이고 우리 한국불교대학과 인연이 되었기 때문에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그 단체와 함께 할 수 없을 경우에는 그대로 놔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속해 있던 법회나 단체를 안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다 업이

되는 것입니다.

 

법회와 단체는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게 기정 사실입니다.

대구큰절 경우 100개에 가까운 신행 문화 봉사단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탄탄한 겁니다.

모든 도량은 지금부터 시작해서 적어도 한 도량에 적어도 스무 개 정도의 단체가 있어야해요.

그래야 나무뿌리처럼 얽혀서 튼튼하게 서 있을 수 있게 됩니다. 

 

뿌리가 없는데 어떻게 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5명이든 열 명이든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라든지 꽃꽂이라든지 노래라든지 어떤 팀이든 만들면 됩니다.

그렇게  법회나 단체를 결성하되 절대 개인 사유물화 하면 안됩니다. 자기가 주최해서 만들었을

뿐이지 다른 곳에 있는 신도님들을 데려 와서 한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게 해서 만들었다해도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심술이 나서 잘 되어가는 단체를 깨는 경우도 있지요?

단체를 더 만들지는 못할망정 잘 되고 있는 단체를 왜 깨부수려 하느냐 말입니다. 

기장이나 기총무, 단체장이나 단체 총무로 열심히 활동하다가 자기가 손 놓으면 아무도 안 나와요.

자신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다가 놓고 나면 섭섭하니까 안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법회나 단체를 만들고 동참을 하되 그것을 자기 개인의 것으로 가질 생각을 하면 안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모두 업이 됩니다.

법회나 단체를 세우되 가질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④아이디어를 창조하되 가지지 않는다

다음은  생이부지, 네 번째입니다. 적으십시오.

아이디어를 창조하되 가지지 마라.

아이디어를 창조한다는 이 말, 참 재밌죠? 저술, 법문, 건의 이런 게 다 아이디어입니다.

아이디어를 창조하되 가지지 말라는 이 말은 자기가 생각을 내되 자기 생각을 강요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절에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면 그것으로 자기가 할  몫은 끝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낸 아이디어를 왜 실행하지 않느냐고 스님에게 따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까지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책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많은 책을 내지만 책을 낸 후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까지 간섭할 수도 없지만 그럴 이유도 없어요. 책을 낸 것으로 끝이지 그 이상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고 월권이지요. 그래서 생이부지라. 만들되 창조하되 간섭하지 말라는 겁니다.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 그것이 생이부지입니다.

 

법문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법문하는 사람은 법문을 하는 것으로 그만이에요. 나머지는 법문을 듣는 청중들이 알아서 할

일인데 종종 법문을 듣다보면 어떤 스님들은  "이때는 박수를 쳐야 되는데 왜 안치느냐'고

하면서 박수를 강요해요.  생각해 보면 좀 웃기는 일이잖아요. 법문하는 사람은 법문만하고

법문에 대한 감동은 청중에게 맡기면 될 일입니다. 법문을 듣는 청중이 이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자기 욕심이고 집착이거든요.  법문을 창조하되 간섭하지 않고 그냥 놔두어야

합니다. 그게 생이부지라.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게 건의도 많이 합니다.

대구큰절의 경우, 편지를 써서 건의하기도 하고  복도에 서서 건의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의견을 제시한 신도님들은 자기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본인만 괴롭고 힘들게 됩니다.

자기가 안건을 내었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뒷일까지 붙들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게 생이부지라.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생이부지!

 

⑤재산을 만들되 혼자 가지지 않는다.

생이부지의 다섯 번째 이야기는 재산을 만들되 혼자 가지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돈, 다들 좋아하지요? 그런데 돈에 너무 집착하면 안돼요. 저는 돈에 별로 집착하지 않습니다.

제 개인으로 된 통장이 솔직히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죽더라도 재산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는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부동산과 통장이  대관음사 앞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된 게 하나도 없어도 저는 잘 살고 있으니 대관음사로 되어잇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

입니다.

가정살림을 살면서 저처럼 이렇게 살기는 어렵겠지만 돈에 어느 정도는 마음을 놓아야 돼요.

회향을 하면서 살아야 해요.  이런 얘기가 있어요. 이제 거의 막바지인데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부처님께서 사유국에 계실때 도재라는 아버지와 앵무라는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죽고

앵무가 그 집주인이 되어 살 때 부처님께서 그곳으로 탁발을 가셨어요.  그런데 주인인 앵무는

없고 큰 개 한 마리가 부처님을 보고 막 짖어댔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그 개의 전생을 가만히

관해서 보니까  그 개는 바로 앵무의 아버지였던 도재라.

부처님이 그 개를 보고 " 네가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갞ㅂ데기만 덮어쓰고 다시 왔구나"했더니

개가 그 말을 알아듣고는 그 후로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겁니다.

 

앵무가 며칠만에 돌아와 보니 개의 행동이 이상한 겁니다.

그래서 왜 그런지 가족들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는 부처님에게 뛰어가서

 "부처님, 왜 그런 말씀을 하셔서 우리 개가 밥도 먹지 않도록 저렇게 만드셨습니까?" 하고

따져 물었어요.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 그 개는 너의 아버지, 도재이다. 그러니 돌아가서 숨겨

놓은 재물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물어보라. 그런 다음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고

하시는 겁니다.

 

앵무가 집으로 돌아와 개에게 말했어요.

"네가 전생의 내 아버지라면 재물이 잇는 곳을 가르쳐 다오."

그랬더니 마루밑에 앉아있던 개가 일어나더니 발과 입으로 땅을 막 긁어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앵무가 여기 뭐가 있는 모양이라 생각하고 그 자리를 파보니까 아버지가 천년만년

가지고 살겠다고 몰래 숨겨놨던 금덩어리가 가득 묻혀있는 거라. 재물을 좋은 데 쓸 생각을

하지 않고 집착만 하고 있다가 죽게되면 그것 지키려고 다음생에 그 집 개로 태어나게 됩니다.

개로 태어나서 멀리도 못가고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자나깨나 지키고 있게 됩니다.

 

자기가 만든 것이라 해도 그 돈에 대해서 영원히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돈, 재산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다 만든 것 같아도  사실은 빈 몸으로 태어나서 원래 있던 것을 

잘 끌어모아서 자기가 임시로 보관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쓸 때는 좀 써야 되는 거라.

그런데 그게 다 끝까지 자기것이라고 고집하다보면 , 결국   그것을 지키기 위해 축생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요.

생이부지 이렇게 중요합니다.

 

⑥기도하는 마음을 내되 결과를 탐닉하지 않는다.

생이부지, 여서번쟤 이야기는 기도하는 마음, 수행하는 마음을 내되 결과를 탐닉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중생이 답답해서 하는 것이고  가피를 내리는 것은 부처님이 하시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중생의 입장에서 부처님의 영역까지 기웃거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부처님을 생각하며 기도할 뿐 부처님께서 하실 일까지 관여하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정진할 뿐, 미리 어떻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말고 예감하지

마라는 이야기입니다.

기도의 결과는 부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상응해 주실 일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생이부지에 대해 다섯 가지 말씀을 드렸어요.

그 첫 번째가 뭐라 했지요? 사람을 만들되 소유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도량을 세우되 가지지 않는다. 텃세부리지 않고.....

세 번째는 뭐지요? 법회나 단체를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사유물화 하지 않는다.

그 다음 네 번째는 뭐였지요? 아이디어를 창조하되 가지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재산을 만들되 혼자 가지지 않는다.

여섯 번째는? 기도수행하는 마음을 내되 결과를 탐닉하지 않는다.

이게 생이부지입니다.

 

오늘, 오정행론 중 두 가지에 대해 말씀 드렸어요.

다섯 가지를 다 말씀 드리려면 오늘 오후 다섯시까지 해야 할 겁니다.^^

나머지 세 가지는 후일, 정초산림기도 입재에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유인물 꼭 가져 오시기 바랍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우학스님 정행론, 그 첫 번째가 뭐라 했지요? 

.... .... (신도님 일동, 묵묵부답ㅋ~).... ....

 

그 새 다 잊어버리고 어떻게 해요.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受而不留(수이불류)   받아들이되 머물지 마라

生而不持(생이부지)  만들되 가지지 마라

오늘은 두 가지(1, 2번)를 했어요. 나머지 세 가지(3, 4, 5번)는 다음에 반드시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을 많이해서 내놓은 거니까 간수 좀 잘 하시기 바라고요

섣닫 초하룻날 와서 기도하시고 법문 들으신 공덕으로 모두 마음 편안하시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들 다 잘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섣달 지나며 음력으로 새해가 됩니다.

새해 맞이하면서 입춘삼재 소멸기도 해야 되고정초산림기도 해야 되고

일년 에 한 번 있는 방생법회 꼭 참석해야 됩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하게 되는 큰기도에 모두 동참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법회는 이것으로 모두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출처 : 불교인드라망
글쓴이 : 부루나/원더우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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