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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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 & 전생, 내생 & 수행의 관계

보현화 2021. 4. 2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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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도 죄를 사하는 방법이 있나요?" - 스님의하루

2021.3.26 정토대전 회의, 금요 정기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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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단회의를 마치고 잠시 휴식했다가 10시부터는 정토대전 편찬 회의를 했습니다. 오늘은 경전 모음집을 만드는 법사님들이 각자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전 속에서 발췌해 왔습니다.

프라세나짓 왕, 목갈리나, 마하가섭, 아난다 등 평소 스님의 법문 속에서 자주 등장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경전 속에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함께 읽어본 후 각각의 이야기를 어떻게 정토 대전 속에 넣을지 스님이 관점을 잡아 주었습니다.

“경전의 내용이 게송도 좋고 모두 좋은데 정토대전 속에 그대로 싣기는 무리가 있어요. 가난해서 보시하기 어려운 여인이 보시하겠다는 마음을 냈다는 구절은 교훈적으로는 참 좋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어요. 부처님의 인격에 비추어보면 자기 옷도 없는 가난한 여인이 옷을 보시했더라도 받지 않으시고 ‘네가 입어라’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보시를 더 일찍 했으면 공덕이 더 많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거든요. 이런 표현은 적절치 못한 것 같아요.

수행적 관점에서 경전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수행적 관점에서는 망설이지 않고 마음이 났을 때 바로 보시하는 것이 올바른 공부의 자세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재물과 관계된 것에는 항상 신중할 필요가 있어요. 부처님이 아닌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했다고 하면 반론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보시했다고 하니까 대중들은 ‘네가 먹을 양식이 없더라도 절에 보시를 많이 해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거든요.

사실 수행적 관점에서는 뺄 것도 고칠 것도 없는 바른 자세를 이야기한 거예요. 그러나 종교적 관점에서는 악용될 위험이 매우 농후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정토대전에 수록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 가난해진다’, ‘나쁜 짓을 하면 신체장애가 생긴다’ 이런 구절은 극빈자나 장애우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오류를 논리적으로 합리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어요.

‘네가 나쁜 짓을 하면 다음 생애에 고통을 받으니 나쁜 짓을 하지 마라’ 이렇게 교훈을 주기 위해 이런 구절을 인용할 때는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진실을 규명하는 명제로 다루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명제가 성립하려면 ‘A면 B이다’라고 할 때 ‘B면 A이다’ 하는 것도 역으로 성립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가난하고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을 합리화시키는 결과를 빚습니다. 즉 세상의 부조리를 용인하는 것에 악용이 될 소지가 있어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제대로 해석한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이런 표현은 굉장히 위험한 요소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밝음에서 밝음으로 가는 자이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자는 어떤 자인가? 현재의 삶이 괴롭다는 이유로 막말을 하고 함부로 행동해서 더 큰 괴로움으로 나아가는 자이다.’

이런 식으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잘 살려서 편집을 해야 합니다. ‘지옥에 간다’, ‘천당에 간다’ 하는 표현은 수행의 관점과 맞지 않아요. 이런 표현은 부처님의 말씀을 후대 사람들이 인과응보의 개념으로 해석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는 어제도 생각하지 말고, 내일도 생각하지 말고, 지금에 깨어있어라’

그렇기 때문에 과거 전생을 이야기하거나 내생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처님 말씀과 맞지 않습니다. 수타니파타를 읽어보면 ‘수행자는 미래의 희망도 갖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미래의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현재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거잖아요. 어떤 조건이든 항상 지금이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 수행자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어떤 행위를 하면 다음 생에 조건이 좋아진다’ 이런 내용은 수행적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요. 해탈을 향한 법문이 될 수 없고, ‘나쁜 일 하지 말고 좋은 일 해라’ 하는 교훈을 주는 법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