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음악감상실♬/불교3(찬불가外)

[스크랩] 정목스님 ` 바람부는 산사 `

보현화 2006. 11. 22. 22:11








아무것도 없는 종이위에 산은 그려도
바람은 바람은 그릴 수 없어
벽을 향하여 참선하는 님의 모습 그려도
마음은 마음은 그릴 수 없네
솔바람이 우우~ 우 잠을 깨우는
산사에 바람소리가 들릴 뿐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어라
내 영혼 깊은 곳을 적시는
산사에 바람소리
산사에 바람소리


해 저물고 달이 뜬 산사에 가냘픈 촛불이
바람에 바람에 꺼질듯이 흔들리고
달빛이 창문에 베이니 소나무 그림자
파도처럼 파도처럼 출렁이네
솔바람이 우우~ 우 잠을 깨우는
산사에 바람소리가 들릴 뿐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어라
내 영혼 깊은 곳을 적시는
산사에 바람소리
산사에 바람소리




자기의 한 쪽 팔을 잘라 바치고 초조 달마의 제자가 된
2조 혜가신광(慧可神光)이 어느날 달마에게 간절히 청했다.

"스승님 오늘 제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바라옵건대 제 마음을 편안케 하여 주십시오."
"그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져오느라. 내가 편하게 해주리라."
"아무리 찾아도 그 마음을 찾을 길 없습니다."
"나는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我與汝安心竟(아여여안심경)>"

'我與汝安心竟(아여여안심경)'

불안(不安)은 단지 심리적 상황일 뿐,
본디 그 실체는 없다는 점을
달마는 날카로운 당기일구(堂機一句)로 혜가를 깨우쳐준 것이다.


혜가에게 한 이 안심법문(安心法門)은
초조 달마, 2조 혜가에 이어 면면히 계승되어진다.


3조 승찬(僧燦)이 자신이 지은 죄를 깨끗하게 해달라고
2조 혜가에게 간청하자 혜가는,

"참회할 죄를 어디 한번 내놓아보라"
"제자는 오랫동안 죄를 찾아왔으나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미 그대의 죄를 사(赦)했노라" 라고 했다.


어느날 도신이 3조 승찬을 찾아와 예를 올리며,

"큰 스님, 청컨대 자비를 내리시어 해탈법문으로 이끌어주십시오"
"누가 너를 묶어 놓았더냐"
"저를 묶어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전히 해탈을 구하려 하는가" 라고 했다.


5조 흥인의 의발을 받아 남종(南宗)의 종조(宗祖)가 된 혜능은 어느날
두 승려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승려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라 하고
다른 승려는 바람이 아니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라 했다.
이들의 언쟁에 잠자코 듣기만 하던 혜능이 마침내 나섰다.

"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다.
단지 그대들의 마음일 뿐이다."


이와 비스드리무리한 이바구가 제법 많이 있지만,
너무 길어짐면 읽는 재미가 감하기에 다음 기회에 더 쓰기로 하고,
달마의 이 <안심법 (安心法)>을 요약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사행(四行)으로 축약된다. 즉,

여시안심(如是安心)--그대로 마음이 평화로운 것,
여시발행(如是發行)--그대로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
여시순물(如是順物)--그대로 세간의 일에 따르는 것,
여시방편(如是方便)--그대로 유연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이 <사여시(四如是)>에 대해 부언하여

여시안심은 벽관,
여시발행은 사행,
여시순물은 방호기혐(防護譏嫌),
여시방편은 유기불착(遺其不着)이다.

다시말하면,
안심은 벽관(마음을 장벽과 같이 하여 관하는 것)이며
순물은 세간의 인연을 따른다는 것,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미리 막는 것이며
방편은 물질이나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발행이나 순물 방편의 실천은 전부 벽관(壁觀)의 행으로 실천에 포함되는 것이며
벽관의 좌선법으로 '안심'을 영득(領得)하는 것이 달마선의 요체다.

이러한 달마의 '안심'은
동산법문에 이르러 '수심(守心)'으로서
또한 북종신수선에서는 '관심(觀心)'으로
남종혜능의 선에서는 '무심(無心)'으로 표시되어
<정법안장>을 계승함을 볼 수 있으며,
또한 대승반야의 실천을 선의 입장에 두고 일체개공을 응주하는
달마벽관에 대해 후기 선종에서는 좌선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으며,
그것은 묵조선과 간화선의 선법에 그 기초가 된다.

'현실이 무엇인가'라는 그 존재성에 대한 물음에
초기불교에서는 '공(空)' '여여(如如)' '진여(眞如)'라고 했지만
달마는 반야의 공을 '일심(一心)'에 두어 이를 '무심' 이라 했다.

출처 : 불교 인드라망
글쓴이 : 한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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