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1989) Dead Poets Society
- 요약정보
- 드라마 미국 128 분 개봉 1990-05-19 전체관람가
- 감독
- 피터 위어
- 출연
- 로빈 윌리엄스 (존 키팅 역), 로버트 숀 레오나드 (닐 페리 역), 에단 호크 (토드 앤더슨 역), 조쉬 찰스 (녹스 오버스트리트 역)
- 줄거리
그는 첫시간부터 파격적인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오늘을 살라'고 역설하며 참다운 인생의 눈을 뜨게 한다. 닐(Neil Perry:로버트 숀 레오나드 분), 녹스(Knox Overstreet: 조쉬 찰스 분), 토드 등 7명은, 키팅으로부터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서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그 서클을 이어가기로 한다. 학교 뒷산 동굴에서 모임을 갖고, 짓눌렸던 젊은 패기를 누린다. 그러면서 닐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연극에의 동경을 실행하고, 녹스는 크리스(Chris Noel: 엘렉산드라 파워스 분)라는 소녀와의 사랑을 이루어 간다.
그러나 닐의 아버지(Mr. Perry: 커트우드 스미스 분)는 의사의 꿈을 이루어 주리라 믿었던 닐의 연극을 보자 군사학교로의 전학을 선언한다. 꿈이 꺾인 닐은 그날밤 권총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사건의 원인 규명에 나선 학교 측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서클을 권유한 키팅 선생에게 책임을 돌리고 웰튼에서 그를 추방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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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죽은' 시인의 사회인가?....토깽이
‘카르페디엠’의 진정한 의미
카르페디엠- 영화에서 거의 주로 다루다시피하는 하나의 ‘명제’ 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현재를 즐겨라’ 라는 키팅 선생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오늘을 즐겨라. 이 말은 왜곡되기도 쉽고 그 뜻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도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미래에 대한 준비까지 현실의 의미를 확장시키란 뜻은 분명히 아니라고 보여진다(가령 ‘지금과 미래를 위해 이 시간을 소중히 써라’ 라든지). 영화 속 키팅 선생의 유일한 가르침이었던 이 ‘카르페디엠’의 진정한 의미는 아무래도 지금 처한 이 상황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말 그대로의 뜻으로 해석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의 ‘캡틴’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교육을 받고 있는 입장이므로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 속 키팅 선생은 철저하게 기성세대의 교육의 과정을 거친 성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생들이 기득권에 의해 발생한 부당한 현상들에 대해 무심코 지나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러한 부당한 현상들에 대해 너무나 무심한 학창시절을 보냈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교육 현장의 실태이다. 부조리함과 부당함,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대해서 학생들은 별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 체제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기성세대에 이미 너무 물들어버린 그들에게 키팅 선생 같은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현재 ‘캡틴’ 이란 단순히 대학을 잘 보내주는 선생님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나오지만 ‘명문’ 이라는 이름을 내건 웰튼 고등학교는 그 사회가 요구하며 강압하는 것에 대해 철저히 복종하고 그 복종을 다시 되물림하는 사회적 장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다시 사회의 주축을 이루는 기득권이 되고 과거의 위대함을 이용하며 어떠한 발전도 없이 현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캡틴의 ‘현재를 즐겨라’ 라는 말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캡틴의 학생들은 그 강압적인 사회와 제도를 뒤엎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개인 스스로의 선택의 소중함을 깨닫고 능동적으로 주체성을 확립할 수는 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이러한 ‘캡틴’ 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캡틴들은 이 사회에서 이상을 펼치기 위해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참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설령 이 영화가 억압된 교육의 틀 안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자유롭게 꿈꾸게 해주려는 선생님과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더욱 성숙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을 겪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 하더라도 말이다. 마지막에 학생들이 키팅 선생을 가슴 따뜻하게 배웅해주는 장면은 관객이 눈시울을 붉히도록 하기는 하지만 결국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닐은 자살했고, 키팅 선생 역시 그냥 쫓겨났을 뿐이다. 하지만 닐의 죽음을 슬퍼하며 하얀 눈밭을 달려가는 토드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토드는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아름답다’ 고 표현하지만 드넓은 눈밭 위에 슬픔을 발산하며 달려가는 토드의 모습은 너무나 작아 보이지 않는다. 토드를 덮고 있는 세상 속의 눈은 관념적 이미지로서만 아름답고 순수하며 깨끗할 뿐, 실제로는 그의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덤하다. 이토록 가슴 먹먹할 정도의 무심한 시선의 연출을 통해서 감독은 결국 씁쓸한 결말임에도 문제의식만은 역설적으로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인 ‘죽은 시인의 사회’ 는 왜 ‘죽은’ 시인의 사회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속해있던 사회에서 ‘살아있는 시인’ 은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어서’ 동굴로 들어가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카르페디엠’ 부터가 ‘죽음’ 을 전제에 두고 있는데(나는 개인적으로 카르페디엠이 ‘메멘토모리’ 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키팅 선생의 대사 중 ‘현재를 즐겨라.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어라. 왜 시인이 이런 말을 썼을까? 왜냐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지’ 라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는 더욱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어쨌든 메멘토모리의 ‘죽음을 기억하라’ 는 메시지 때문에 나는 영화가 처음에 카르페디엠을 외칠 때부터 ‘누군가’ 의 죽음을 예감했다.)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닐의 자살 결정이 조금 우발적으로 보였더라도 인정해주어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죽은 시인의 사회’ 에서 ‘시인’ 은 단순히 시를 짓는 예술적 의미의 시인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속박된 구속의 끈을 주체적으로 풀고 성숙한 의미의 불복종을 실행하는 모든 청춘들이 시인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무런 계획도 꿈도 없이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에 온 나에게 내가 원하는 삶과 존재의 참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하도록 만든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살아있는 시인의 사회’ 를 기다리기 전에 나 스스로가 변화를 꾀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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