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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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의 자전거 이야기

보현화 2016. 12. 26. 18:21

[이탈리아에서 온 편지] 1. 이탈리아의 자전거 이야기


  baqui | 우석호 | 입력 2016.02.02 15:07 | 수정 2016.02.24 16:06



이탈리아에서의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당신, 아니 ‘여행’이라는 거창한 계획까지는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거리를 가로질러 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 정도면 충분합니다. 정해진 목적지나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굳은 결심 따위는 없어도 좋습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당신, 머리칼을 날리며 자전거를 탈 때의 상쾌한 기분을 즐길 줄 아는 당신 그리고 걸음보다는 빠르지만 자동차보다는 여유로운 자전거의 속도를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10년 전 이탈리아와 인연을 맺은 후 본격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생활하게 된지는 3년 반 정도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탈리아를 유럽의 한국이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반도국가라는 지역적 특성에서부터 인간미 넘치지만 다혈질인 국민성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이탈리아는 많이 닮아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저 역시 이곳에서의 생활이 제법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진짜 이탈리아를 알기에는 짧기만 한 시간이었기에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겠습니다. 이런 제가 이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도 될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려하진 않더라도 제가 직접 피부 로 느껴 온 이탈리아와 이 곳의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이 지역의 물은 알프스에서부터 이곳을 지나 밀라노까지 전달된다. 강변 자전거도로도 밀라노까지 연결된다. 필자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 길을 따라 밀라노에 있는 스튜디오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이탈리아 안에서 보고 듣고 부대끼면서 몸소 느낀 일상의 이야기부터 제가 살고 있는 롬바르디아(Lombardia)의 주도인 밀라노를 시작으로 한 자전거와 함께하면 좋은 도시들의 이야기까지, 모짜렐라 치즈 같이 촉촉하고 고소한 이야기를 담아 첫 번째 편지를 보내고자 합니다. 이탈리아의 풍광은 정말 다양하게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물론이고 같은 지역 내에서도 늘 다채로운 모습의 이탈리아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동에서 서로, 아니면 북부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서로 다른 나라를 오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이탈리아의 이런 다양성은 외형적인 풍광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이곳 역시 지역마다 다양한 방언이 존재하는데, 다만 이 방언 간의 차이가 너무 심한 나머지 서남쪽 시칠리아 사람들은 북서쪽 피에몬테(Piemonte) 사람들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비단 언어뿐만 아니라 각 지역 사람들의 기질, 풍기는 이미지, 음식문화 등 생활 전반에서 나름의 다양성들이 공존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탈리아 전체로 보면 북쪽에 위치하며 제가 머물고 있는 곳이기도 한 롬바르디아 지역은 북쪽으로는 스위스 국경과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 피에몬테 주, 남쪽으로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 주, 동쪽으로 베네토(Veneto) 주와 트렌티노(Trentino) 지역에 접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지역과 접해 있어서인지 롬바르디아는 다양한 문화와 생활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롬바르디아의 주도인 밀라노(Milano)는 '패션의 도시', '디자인의 도시' 등 다양한 대명사로 불리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명성은 이곳 사람들의 부지런함과 검소함 덕분에 얻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예로 롬바르디아 사람들의 요리법만 보더라도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이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 방식에 있어서 토스카나 지역에서는 고깃덩어리를 불 위에서 통째로 굽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피렌체 식 비프스테이크)를 요리하는 반면, 밀라노에서는고기를 잘라서 요리합니다. 처음에는 고기를 빨리 익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된 요리법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체가 밀라노 전통의 음식으로 발전되고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지정학적인 특징에서 보자면 밀라노는 레오나르오 다 빈치 시대부터 무솔리니 시대에 이르기까지 티치노 강과 포 강에 연결된 효율적인 수로 ‘나빌리오(naviglio)’ 시스템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교통체증 등의 이유로 무솔리니 시대부터 일부 닫혀있는 곳이 있긴 합니다만, 최근 들어 이를 다시 열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밀라노는 평야 한가운데에 자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운하를 가진 덕에 다섯 바다를 거느린 항구나 다름없었습니다. 6세기 이상이 소요된 두오모(Duomo) 공사 기간 동안에도 여러 지역의 붉은 대리석과 화강암 덩어리들은 이 긴 운하를 통해 곧장 두오모까지 실려오는 방법으로 오늘날의 세계적인 관광명소이자,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를 완성시켰습니다. 또한 이 물은 알프스의 만년설에서 공급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공급된 엄청난 물의 양은 도시곳곳의 지하수로 연결되어 광장과 거리에 있는 식물들은 물론 시민들에게까지 마르지 않는 싱싱한 기운을 전해 줍니다. 밀라노의 여름이 싱그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기 넘치는 길 위를 자전거로 달리노라면 그야말로 ‘감동’이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몇 마디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은 그야말로 이 곳에서 바퀴를 굴려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체험입니다.

자전거의 역사로 보면 최초의 자전거는 프랑스의 어느 귀족에 의해 발명되었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자전거 대회가 열리고 수백만 명의 인파가 모여 이를 응원하는 문화가 생겨나게 되면서 그에 힘입어 지금의 생활 속 자전거가 자리잡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탈리아는 자전거의 역사에 있어 제법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현재 전 유럽에서는 시민이든 관광객이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벨리브(Velib)', 독일에서는 '콜바이크(Call Bike)', 이태리 밀라노에서는 '바이크미(Bike Mi)'라는 정책이 있어 일정의 비용을 지불하면 원하는 곳에서 자전거를 픽업하고 반납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탈리아지만 오랜만에 사진기를 들고, 자전거로 시내를 돌아다니며 여행자의 눈으로 돌아가 그들의 생활 그리고 그 속의 생각들을 엿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서양이나 동양이나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가 봅니다.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 보자니 평소에는 몰랐던 이상하고 재미있는 모습들이 눈에 띕니다. 자전거 보다 더 비싸 보이는 자물쇠를 달고 달리는 아주머니, ‘저런 자전거를 누가 가져갈까’라고 할 만한 자전거의 안장을 뽑아 들고서 카페로 들어가는 청년의 모습, 말끔한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맨이 오늘 내일 하는 낡은 자전거를 타는 모습, 짧은 치마의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 잠깐 가방을 내려놓고 돌아보니 자전거를 누가 훔쳐갔다는 하소연을 하는 아저씨 등. 특히 잠깐 사이에 자전거를 도둑맞았다는 아저씨의 모습은 저에게는 꽤 낯선 모습이었기에 놀랍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요즘 시대에 누가 자전거를 훔쳐간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근 밀라노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는 새벽녘에 자전거가 단체로 없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고도 하니, 저 역시 앞으로 자전거 간수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브레라 국립미술원의 캠퍼스내 학생들

자전거를 타고 대화를 나누는 이웃의 모습이 근사하고 정겹다.

만약 당신이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얼마나 슬프고 화가 날까요. 자전거를 사랑하는 저로서는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곳은 자전거보다 더 비싸 보이는 자물쇠가 필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보는 이탈리아에서의 자전거는 ‘유희적인 매개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면 더욱 관대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되며 자연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라고 말한 영국의 한 기자의 말처럼 자전거는 자연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또 새로운 환경을 만나게 해주는 정말 유희적인 매개체임에 틀림없습니다. 걸음마를 처음 시작할 때의 기쁨은 기억하지 못해도, 처음 자전거 타기를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누구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흔들흔들 인생의 첫 바퀴를 굴리며 뒤에서 지탱해 주고 있는 아빠의 손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하던 그 때의 떨림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추억일 것입니다. 어쩌면 자전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 존재를 단순한 도구로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찡그리며 울상 짓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곳에서도 자전거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즐거워 보입니다. 자전거로 거리를 가로지를 때 귓가에 들리는 바람소리와 은은하게 풍겨오는 나무의 향기, 그리고 빠르게 스쳐가는 주변의 풍경들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그들의 얼굴에서 묻어 나옵니다.

자전거를 탐으로서 건강해졌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단순히 근육을 사용하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대상과 교감하면서 얻는 정신적인 편안함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자전거와 함께 하는 풍경 속에서는 할머니와 손녀, 아빠와 딸 그리고 엄마와 아들이 교감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자전거와 함께 하는 공간에는 연인과 친구 같이 늘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합니다. 한 자전거를 나눠 타면 세상에 둘만의 친밀한 공간이 생긴 듯한 안락함이 느껴지고, 서로 다른 자전거로 나란히 달리고 있자면 든든한 동지가 생긴 듯한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지금 제 앞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는 연인은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 집니다.

또 하나, 이탈리아에서의 자전거는 패션입니다. 참고로 한국에서의 패션이라고 하면 트렌드를 먼저 떠올리는데 반해 이탈리아에서의 패션이라고 하면 그냥 그 생활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늘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의 패션이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자전거가 준비되어 있는 점에서 패션이기도 합니다. 등산을 하려면 등산화가 필요하듯 이 곳 사람들의 자전거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준비되어 있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제 주변 분들의 경우만 봐도, 차고에 산에 갈 때 타는 산악자전거, 시장 갈 때 타는 바구니 달린 자전거, 사이클 동호회용 자전거 등 가족 수와는 상관 없이 필요상황에 따른 자전거들이 준비되어 있는 모습들을 종종 봤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자전거 중에도 70년대 자전거가 있습니다. 가끔 그 시대의 컬러와 디자인 그리고 기술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제가 달리고 있는 거리와 그 위의 제 모습까지 '70년대스러워(?)'지는 색다른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자전거는 바로 이런 일상적인 즐거움에 있습니다.

유행에 따라 좋고 비싼 새 자전거를 사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어울리고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이탈리아식 자전거 타기인 것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상품이 생겨나는 이 시대에 털털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강렬한 태양을 가로 질러가는 노신사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노라면 자전거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누군가 디지털 카메라를 새로 샀다고 하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렌즈의 등급과 본체의 기능 등에 대한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자전거로 말하자면 얼마나 가벼운지, 몇 단 기어에 휠은 어떤 걸 사용했으며 핸들 바는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들이겠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보다 자신만의 자전거의 특별한 의미나 이름(브랜드명 이 아닌, 처음 강아지를 분양 받을 때 '매리', '해피', '쫑 이라는 이름들을 지어 주듯이) 등 좀더 가치 있는 질문들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타고 있는 자전거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나 즐거운 경험을 나눠도 좋습니다. 단지 자전거를 낡고 녹슬면 갈아치우는 도구로서만이 아닌 같은 길을 달리는동반자로 인식해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봅니다.

그럼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자전거와 함께하는 즐거운 삶을 계획해 보시길 기대하면서, 또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자전거에 이름을 부르게 되는 그 날을 기대해 보면서, 다음 편지에서는 관광책자에는 없는 숨겨진 밀라노 이야기를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사진: 신동락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