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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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詩/'상냥한 지옥' '민달팽이를 보는 한 방식'

보현화 2020. 7. 18. 23:05

상냥한 지옥

너와 너와 너가 모여 나를 만든다

못과 나무와 입김이 모여 책상을 만든다

햇살과 고양이 등뼈가 낮잠의 폭포를 만든다

이슬과 우렁이가 별의 밥을 만든다

공포와 갈망이 할 일 많은 신을 만든다

너와 너와 너가 만나면 너와 다른 너가 된다

별 하나에 너와 별 하나에 너처럼 끊임없이 다른 너가 된다

너와 너는 나를 합성하고

나와 나는 너를 합성한다

너는 나에 의존해 너가 되고 나는 너에 의존해 내가 된다

어제는 죽음에 의존해 오늘의 붉고 투명한 꽃술이 된다

마그마는 중력에 의존해 지구의 심장이 된다

눈물은 웃음에 의존해 낡았으나 해맑은 아침이 되고

즐거운 함성의 고요한 훌쩍임

반짝이는 새들의 웃음

모든 것이 영원한 천국은 얼마나 지루하겠니

불변이 없으므로

붙들릴 게 없다

소유할 게 없으므로

자유다 안녕!

마지막이란 없다는 것

심지어 나의 죽음 앞에서도

고마워 내 상냥한 지옥, 오늘도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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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를 보는 한 방식 

가출이 아닌 출가이길 바란다

떠나온 집이 어딘가 있고 언제든 거기로 돌아갈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돌아갈 집 없이
돌아갈 어디도 없이
돌아간다는 말을 생의 사전에서 지워버린
집을 버린 자가 되길 바란다
매일의 온몸만이 집이며 길인,

그런 자유를……

바란다, 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