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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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물결 : 인도순례를 다녀와서....

보현화 2007. 4. 11. 10:44
 
번호 : 4767 I 조회 : 6481 I 대륙: 아시아 I 국가: 인디아 I 여행성격: 패키지 I 날짜 : 2007-04-08 12:12:28 I 스크랩: 0

***꿈~~~같았던 인도 성지순례!!!***

'경전연구회'라고 스님들만 모여서 큰스님을 모시고 경전공부를 하는 모임에서 어느날 신문에 인도성지순례에 약간의 동참자를 모은다는 기사를 불교신문에서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벌써 오래전부터 도반스님들이 1년, 6개월, 3개월씩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가고싶은 마음이 물밀듯 밀려왔기에... 베낭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낯선 나라에 말도 통하지 않고, 또한 영어도 못하는 처지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던터라 패키지를 통해서 갈 수 밖에 없었다. 고우큰스님을 모시고 간다하여 더 없이 좋아하였는데 큰스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함께 떠나질 못했다. 하지만 스님들만의 순례라 더 없이 감명깊은 순례가 되었다. 초등학교시절 소풍간다하면 전날 밤 잠을 설쳤었는데, 지금은 그 어떠한 것도 어린시절만큼 설레게 하지는 못하지만 날마다 인도성지순례갈 날을 손꼽기는 하였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스님들이 모여 아제 여행사 법장거사가 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아~~~드디어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가는구나!!!'
인도는 우리나라보다 3시간 30분이 늦으니 그 시간만큼 과거로 간 셈이었다. 홍콩경유-델리경유-뭄바이에 도착하니 늦은 시간이라 호텔에 도착해 잠을 청했다. 다음날의 일정과 모닝콜시간을 알려주었는데 긴장을 해서인지 늘~~모닝콜 하기전에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공양시간에 식당에 가면 우리보다 더 빠른 스님들이 기다리고 있어 스님들의 시간지키기의 정확성과 한국사람 특유의 그 '빨리 빨리'를 보는 듯 하여 미소하였다. 원래의 일정에는 엘로라석굴과 아잔타 석굴은 빠졌었는데 큰스님께서 어렵게 가는 인도인데 일정에 넣으라고 조언을 하셔 일정이 하루 길어지긴 했지만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을 참배할 수 있는 복을 누렸다. 인도는 늘 여름이지만 그 여름속엔 가을도 있었고, 봄도 있었다. 보리수를 보니 이제 낙엽지는 것도 있고, 잎이 다 지고 새로 뾰족히 새잎이 나오는 것도 있었다. 드넓어 끝이 보이지 않는 땅에 누렇게 익은 밀이 황금벌판을 이루고 있어 보기에 참 평화로워 보였으며, 어린시절에 참 많이도 뽑아 먹었던 삐비(제주:삥이, 뻬비)가 꽃을 피우고 있기도 하였다. 인도에 한국사원을 운영하는 어느스님 말씀에 의하면 인도의 더위는 4월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는데, 인도 가이드는 아직 본격적인 더위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가장 낮은 기온은 4도 정도인데 노숙하는 많은 사람들이 얼어죽는 다고 하였다. 그만큼 낮기온과 차이가 심하다는 말.
인도로의 순례시즌은 10월정도부터 시작되어 2월정도면 끝난다고 하였다. 우리가 인도를 찾은 것은 3월 하고도 하순이었으니 그 순례의 시즌은 지난것이었다. 법장거사님도 3월에 인도를 찾은 것은 아주 오랜만이라고 하였다. 순례 시즌이 지나기도 하였고, 더위가 시작되기도 한 인도의 도로는 시즌에 비해 소통이 아주 원활하다고 하였다. 스님들이 시간을 철저히 엄수하기도 하였지만 교통이 원활하여 예정시간보다 목적지에 늘 빨리 도착하여 순례 일정에 없던 곳도 더 들러 볼 수 있는 영광도 주어졌다. '박시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적선, 보시, 자선'등등의 뜻이 있다고 한다. 성지마다 그 보시하라고 달려드는 불쌍한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았다. 순례 시즌이 지나서인지 더위가 시작되어서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손으로 입에 먹는 시늉을 하면서 '원달러'를 외치며 따라붙는 아이가 눈을 마주치면 아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을 하다시피 한다. 그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면 그 아이는 포기하고 다른 스님에게 옮겨간다. 부다가야 주변엔 불구로 '박시시'를 외치는 아이들이 많은데 천민으로 태어난 그 아이는 부모에 의해 어려서 불구가 되어 그렇게 '박시시'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불구로 '원달러'를 하는 아이들은 별로 눈에 띄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히려 불교용품을 파는 상인들이 끈질지게 따라붙어 괴롭게 했다. 불교용품의 가격은 우리나라에 비해 많이 & #49931;지만 품질면에 있어서 인도것은 좋지 않아 스님들이 살려는 마음이 별로 없는데 마음 약한 스님은 끈질지게 따라붙어 팔아 달라 애원하는 것을 뿌리치지 못해 사주기도 하였다. 한국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깍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던가... 그것이 오히려 물건값을 터무니 없이 높게 부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작은 코끼리 석조상을 처음엔 35달러를 부르더니 점점 다운되어 나중엔 1달러가 되었다. 좀 어처구니 없었다.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끝내 사주지 못했지만...
인도는 한국의 33배정도 되는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라고 하던가? 성지에서 또 다른 성지로 이동하는데는 꽤 긴 시간을 이동해야만 했다. 하여 밤기차를 몇 번 타게 되었는데, 이동거리가 짧은 우리나라의 기차는 기차의 3가지 종류와 특실, 일반실이 있는 반면 인도의 기차는 아주 여러 종류인듯 했다. 장시간 이동하는 거리엔 야간 침대열차를 이용했는데, 침대칸도 상단 하단이 있는 칸과, 상 중 하단이 있는 베낭여행하는 이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칸, 그리고 인도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좌석으로 되어 있는 칸 등등 다양했다. 어디라고 방송을 해 준다해도 잘 알아듣지 못할 판에 방송도 해 주지 않아 몇시쯤 도착할 것이라고 일러주며 가이드가 일일이 깨우러 다녔다. 부지런한 스님들은 가이드가 깨우기 전에 다 일어나서 내릴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베낭여행하는 사람들은 역을 지나칠까 염려되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하였다. 한 번은 낮에 특급열차라는 것을 탔는데 서비스가 얼마나 좋은지 연신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나라 KTX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데.... 기차로의 이동보다 짧은 거리는 버스로 이동했는데 7시간 정도는 가까운 거리였다. 짧은 시간 성지를 참배하고 긴~시간 차로 이동하니 지친 피로는 그차에서 졸면서 풀어야만 했다. 도로도 별로 좋지않으니 이리 흔들 저리흔들 잠을 재우기에도 좋았고... 장거리를 버스로 이동하다보면 화장실이 문제였다.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휴게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곳곳에 주유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인도화장실 문화체험을 해야만 했다. 야외화장실!!! 대신 야외화장실을 이용할 땐 발밑을 잘 살펴야한다. 잘못하면 황금덩이를 밟을 수 있으니... 인도의 음식은 대개 커리(우리나라 카레)가 모든 음식에 들어있다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그 향이 우리나라 카페보다 독특하고 진해서 쉬이 먹어지질 않는다. 그 커리로 만든 음식이 '달'이라고 하던데 그 달에 짜파티를 찍어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짜파티는 산골에서 자란 나로선 입에 익은 음식이다. 집에 수확한 밀로 만든 밀가루로 칼국수를 해 먹을 때면 어머니는 으례 반죽해서 밀어 돌돌말아 썰다가 끝부분을 떼어 주셨다. 간식거리가 흔치 않은 그 시절 그것은 아주 좋은 간식거리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궁이 불에 구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 인도의 짜파티맛이 꼭 그 맛이었다. 그래서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맛있게 먹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 오래 머물고 싶은 성지는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부다가야,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설해진 기원정사, 최초로 법을 설하신 초전법륜지 녹야원,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 열반당, 그리고 산치대탑이었다. 순례하기 좋은 시즌이면 부처님의 정각지 부다가야엔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각 나라에서 순례온 순례객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수행하러 온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 또 기회가 된다면 그 땐 많은 성지를 돌아보는 것보다 마음이 가는 성지에서 머물며 기도정진하다 돌아오고 싶다.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시대를 잘 읽으면 성공한다고 하였던가~~~ 인도 현지 가이드 나라연사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인도의 비하르주는 아주 촌으로 인도에서 가장 오지라고 한다. 도심에 나가면 '촌출신'이라고 비하할 정도로... 그곳엔 부처님의 성지가 가장 많은 곳인데... 그 촌 출신의 나라연 사장은 어려운 농촌살림에 어머니를 졸라 땅을 나라에 맡기고 학자금을 빌려 델리대학에 진학해 아르바이트로 졸업을 했다고 한다. 일본어를 배울려고 하니 어떤 사람이 '한국어'를 하라고 조언을 해 한국에 머물다 간 인도교수로부터 최초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한국어를 조금 하게 되면서 한국기업의 통역사로 일하며 인도에서는 꽤 엄청나게 큰 보수를 받았다고... 자신이 한국말을 배우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해주는데 얼마나 우습던지 버스안이 박장대소로 가득하기도 했었다. 조계종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설하신 기원정사에서 법장거사님의 설명중 기억에 남는 한 마디! "스님들은 지금 금싸라기땅에 앉으셨습니다." 기원정사에서 설명을 듣기위해 스님들이 동그랗게 둘러 앉았을때 첫 마디로 한 말이다. 금을 깔아 땅을 사서 부처님께 가장 아름다운 땅에 기거하실 정사를 지어드린 수잣타 장자의 신심!!! 11박 12일이 여정으로 다녀온 부처님의 나라 인도!!! 뭄바이의 타는 듯한 더위와 석굴의 웅장함! 더러운 물에 빨았지만 새하얀 옷들이 걸려있던 도비가트(세탁회사)의 나부끼던 빨래들... 자이나교 사원의 알 수 없는 언어로 기도하던 여인들의 눈빛. 야간열차의 흔들림. 산치대탑 파란 잔듸위에서 여유로움을 가졌던 그 시간. 세계 7대 불가사의 타지마할의 사랑이야기와 사쟈한이 비운을 맞은 아그라성. 부처님의 초전 법륜지 다메크 스투파를 돌며 기도한 모습. 인도 모든 사람들이 찾고 싶은 갠지스강에서 본 일출.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부다가야 대탑에서의 예불. 법화경을 설하신 영축산의 뜨거운 햇살. 불교 최초의 사원 죽림정사의 대나무 숲. 깨어진 주춧돌은 옛 영화를 잊지 않았을 나란다 대학. 쿠시나가라를 향해 바라본다는 아쇼카 석주. 지친몸을 이끌고 사라수하에서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 열반당. 만삭의 몸을 이끌고 친정으로 가시다 룸비니에서 몸을 푸신 마야데비당. 조계종의 소의경전 금강경을 설하신 기원정사(기수급고독원)의 금싸라기땅. 그 기원정사를 세우는데 큰 공헌을 한 수잣타장자. 그 어떤 제자보다 빨리 성불한 앙굴리마라. 부처님께서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하시러 도리천에 오르신 천불화현지. 다녀온지 벌써 5일이 지났것만 어제인 듯 성지가 눈앞에 있다. 여러가지 어려움을 감수하며 성지순례를 마치도록 애써 주신 아제투어(법장거사)의 무궁한 발전도 기원하며...
The Way Of Pilgrimage (순례의 길)/성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