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욕망’… 비행기·택시·자판기들의 무덤을 아시나요

미국 사막엔 네온사인, 아프리카 가나엔 유독성 전자제품 더미
이라크·아프간·크로아티아 등엔 전쟁의 상흔으로 남아
   경향신문 | 구정은 기자 | 입력 2013.04.12 21:18 | 수정 2013.04.12 23:03

 

오늘 아침에도 칫솔로 이를 닦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회사에 왔습니다. 랩톱 컴퓨터로 기사를 씁니다. 오늘은 야근입니다. 택시를 타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겠지요.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던데, 우리가 쓰는 이런 물건들이 죽으면 무엇이 남을까요.

중국의 충칭은 인구가 2800만명입니다. 이 커다란 도시 외곽에 '노란 택시의 무덤'이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이 발전해 자가용 승용차를 모는 사람들이 늘고 자동차 총 등록대수가 1억대가 넘습니다만, 대중교통이 완전히 확충되지 않은 이 도시 주변 권역에서는 택시가 주요 교통수단이랍니다. 시민들의 발이 돼주던 택시가 수명을 다하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폐차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빈터에 버려집니다. 그렇게 한 대, 두 대 방치된 택시들이 자동차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미국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의 도시로 유명하지요. 그곳 구시가지인 올드베이거스 북쪽에는 네온 본야드(Neon Boneyard)가 있습니다. 본야드는 자동차나 기계류 폐기장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영화 촬영장이나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나온 네온사인들의 무덤입니다. 이 폐기장은 비영리기구가 운영하는데, 이 단체는 폐기장 옆에 네온 박물관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흘러간 할리우드 영화의 추억을 좇는 팬들, 지금은 문 닫은 라스베이거스 유명 카지노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중국 충칭의 공터에 버려진 노란 택시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멕시코엔 익사한 소녀의 영혼 달래는 '인형의 섬'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를 흐르는 솟시밀코 운하에는 무네카스 섬(La Isla de la Munecas)이 있습니다. '인형의 섬'이란 뜻인데 세계의 관광객들이 꼽는 '괴기스러운 관광지' 순위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오래전 이 부근에서 어린 소녀가 물에 빠져 숨졌답니다. 돈 훌리안 산타나라는 남성은 이 섬에서 홀로 살고 있었는데, 숨진 소녀의 영혼이 자신을 찾아온다며 어느 날부터 혼령을 달래기 위한 인형들을 주렁주렁 매달기 시작했습니다. 산타나는 섬에 거주한 지 50년 만인 2001년 의문의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남긴 인형들은 지금도 섬을 지키고 있어 '인형의 무덤'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뉴질랜드의 테파후에는 칫솔로 장식된 울타리가 있습니다. 흔한 시골길 철조망 울타리였는데, 레어드 맥길커디 케언스라는 사람이 이곳에 자기가 모아둔 칫솔들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에 현지 언론들에 이 소식이 보도되면서 이 울타리는 테파후의 관광명소가 됐고, 헬렌 클라크 전 총리와 유명 배우 겸 음악가 브렛 매켄지 같은 이들도 사용했던 칫솔을 보냈습니다. 뉴질랜드를 여행하지는 못하더라도, 못쓰게 된 칫솔에 이름을 적어놓고 'Toothbrush Bucket/294 Limeworks Loop Road, Te Pahu, R D 5/Hamilton/New Zealand'라는 주소로 보내면 울타리에 걸어준다는군요.

변기 이야기도 해보죠. 중국 광둥성 푸샨에는 '변기 폭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엉덩이를 받쳐주다 버려진 변기 1만개를 모아 중국의 미술가 쉬용이 폭 100m, 높이 5m 크기의 설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푸샨의 명물이 된 이 작품 '폭포'는 마르셀 뒤샹의 '샘' 이후로 가장 유명한 변기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영국의 거리를 장식하는 빨간 공중전화부스에도 그들만의 묘지가 있답니다. 노팅엄셔의 뉴어크가 그곳입니다. 85년이 넘은 오래된 것에서부터 최근의 것들까지, 황량한 들판에 빨간 부스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지난해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낡은 전화부스들이 무더기로 폐기되면서 이곳 식구들이 크게 늘었답니다.

'자판기의 천국'인 일본 군마현 다마무라에는 자판기의 무덤이 있고, 미국 앨라배마주 군터스빌에는 오래된 코카콜라 자판기들이 버려져 있는 무덤이 있습니다. 몇 해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부실 구호활동으로 비난받았던 미 연방재난청(FEMA)은 미시시피주 퍼비스에 '트레일러의 무덤'을 만들어 폐차된 트레일러들을 쌓아둡니다.

미국의 사막은 비행기들의 무덤입니다. 킹먼 공항, 굿이어 공항, 파이널 공항 등 애리조나주의 사막지대에만 비행기 폐기장 여러 곳이 있지요. 하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애리조나주 투산에 있는 데이비스-몬탠 공군기지에 딸린 '309 항공우주 유지보수 그룹(AMRG)' 사막 기지입니다. 거대한 항공기에서부터 전투기, 우주선 부품들이 이곳에 버려집니다. 캘리포니아주 모하브 사막에 있는 에어 & 스페이스 포트, 뉴멕시코주 로스웰 항공센터, 텍사스주 애빌린 공항 등에도 비행기 폐기장이 딸려 있습니다.

미국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 북쪽에는 카지노들이나 영화 세트장에 있던 네온사인들을 모아놓은 '네온사인 본야드(폐기장)'가 있다. 이 폐기장을 소유한 비영리기구는 네온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 | 사진 www.lifed.com

■ 대형 선박들은 인도 알랑·방글라 치타공서 '최후'

배들은 어디로 갈까요. 인도와 방글라데시로 갑니다. 인도 구자라트주에 있는 알랑이라는 항구도시에서 전 세계 배들의 절반이 해체됩니다. 이곳은 무덤이 아닌 '환생의 장'인 셈입니다. '슈퍼탱커'라 불리는 초대형 유조선, 컨테이너선, 대양을 오가는 여객선이 여기서 최후를 맞습니다. 알랑의 경쟁 상대는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이죠. 1971년 방글라데시(옛 동파키스탄)가 파키스탄과 독립전쟁을 치를 때 파키스탄 선박 알 압바스 호가 치타공 해안에서 폭격을 받고 좌초되자, 옛소련 팀이 와서 해체를 했습니다. 카르나풀리 제철소라는 지역 기업이 여기서 착안해 선박 해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한때 세계 최대 규모로까지 성장했습니다만 2009년부터 알랑에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안타깝게도 치타공의 선박 해체는 아이들까지 동원되는 열악한 저임금 노동으로 악명 높답니다.

대서양에 면한 아프리카 북서부 모리타니의 누아디부에는 배들이 버려지는 무덤이 있습니다. 바닷가에 쓸쓸히 버려진 채 해체조차 되지 않는 배는 흉물스럽고 거대한 쓰레기일 뿐입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이곳에는 포르트 에티엥이라는 항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쇠락했습니다. 포르투갈의 타비라 섬은 바닷가 모래밭에 녹슨 닻 수백 개가 꽂혀 있어 '닻들의 묘지(Cemiterio das Ancoras)'라 불립니다. 이 배들과 닻들 모두 저마다의 역사를 지니고 있겠지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랄 해가 물 남용과 사막화로 줄어들면서 사막에 배들이 떠 있는 기묘한 풍경이 생겨났습니다. 염분이 허옇게 말라붙은 모랫바닥, 한때는 내륙 속 바다였던 그곳에 배들이 방치된 것이죠.

■ 볼리비아 우유니엔 멈춘 기차들… 철도박물관 준비

'소금사막'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볼리비아의 우유니 외곽에는 오래된 기차들의 묘지가 있답니다. 19세기 말 영국 회사가 여기서 철도를 운영하면서 영국인 기술자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는데 그 시절 기차들은 이제는 낡은 유물이 돼버렸습니다. 우유니 시 당국은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철도박물관을 짓기 위해 논의하고 있답니다.

전쟁은 수많은 무덤들을 남깁니다. 병사들의 무덤, 아이들의 무덤,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들을. 그중엔 무기의 무덤도 있습니다. 지난 세기와 이번 세기의 전쟁들이 남긴 흔적은 이라크 주변과 아프가니스탄에 많습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이듬해 미국은 '걸프전'이라는 보복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라크군이 진격해 내려왔던 쿠웨이트시티 북쪽 사막 도로는 퇴각하던 이라크군이 버리고 간 탱크들의 무덤이 돼 '죽음의 고속도로'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에는 1980년대 소련 점령군이 버리고 간 탱크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1990년대 동유럽은 참혹한 내전에 휩싸였습니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옛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연방을 구성하던 여러 민족과 격전을 벌였는데, 그중 한 곳이 불코바르라는 도시였습니다. 이곳도 한때 탱크의 무덤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개발 바람에 거의 사라졌답니다. 하지만 시가지 골목골목엔 총탄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는군요. 인도의 켐카란과 파키스탄의 차윈다에도 무기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낳은 쌍생아들입니다.

이 모두 지구인들이 쓰고 버린 것들입니다. 우리가 남긴 무덤들입니다. 어떤 곳은 수명을 다한 물건들을 잊지 않는 이들이 기념을 하기 위해 만들었고, 어떤 곳은 그저 아무렇게나 물건들이 방치돼 무덤이 됐습니다. 아프리카의 가나나 니제르에는 잘사는 나라에서 넘어온 유독성 전자제품들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부자 나라들이 쓰레기를 떠넘겨 생겨난 무덤인 셈이죠. 어쩌면 지금 우리는 지구 전체를 쓰레기로 메우며 무덤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건들의 무덤에, 그리고 지구에 애도와 경의를 보냅니다.

<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