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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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승호 목사 일대기

보현화 2014. 8. 9. 18:36

생몰 : 1922.6.9(음)~2013.6.27(양)

 


 

 

                                              1974年

                                                                                      

 

 


한승호 목사의 결단

한승호 목사는 도쿄의 상지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학병으로 끌려가서 군 복무를 하다가 해방이 되어 무사히 귀국한 분이다. 그 당시 일본군에 들어갔다 하면 한국인들은 으레 죽어 돌아오는 것으로 알고 되도록 안 가려고 애를 썼다. 한승호 목사의 아버지는 어느 정도 생활의 여유가 있었는데, 외아들을 학병으로 보내고는 늘 실의에 차서 흐트러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들 한승호 목사가 살아 돌아오게 되니 굉장한 축제 분위기에 들뜨게 되었다. 얼마 지난 후 한승호 목사는 가족들로부터 아버지가 교회에도 나가지 않고 주초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에게 그럴 수 없지 않느냐, 교회도 나가시고 주초도 끊으시라고 간곡하게 권면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승호 목사는 어떤 날 아버지에게 “아버님, 저를 좀 만나 주세요.”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를 앉게 하고 준비해 온 도마와 식칼을 꺼냈다. 아버지 앞에서 도마에 자기 손가락을 내놓고 칼을 들어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절단해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기겁을 했다. 아들의 피 흐르는 손가락을 붙들고 울면서 “내가 잘못했다. 이 순간부터 술 담배 끊고 교회에 나가겠다.”고 약속하고 그때부터 술 담배를 가까이 하지 않았고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였다.

-박대선 감독 <하늘에선 정의가 땅에선 진실이>에서-

 


대한민국 종교심리학의 선구자 한승호

 

학력 : 일본 상지대학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보스턴 대학교 신학대학원 종교심리학과 졸업)
경력 : 1969. 국제대학교수, 교학처장 및 교목실장(정년퇴임)
1972. 기독교 방송 상담프로 “같이 생각해 봅시다”
“안녕하십니까 한승호입니다” 담당
1991. 현재 서울 시온감리교회 원로목사
수상 :
공적 : 대한민국 종교심리학의 선구자.


(본문 : 광성100년사 발췌)

우리나라 종교심리학의 선구자이신 한승호 목사는 1922년 6월9일 부(父) 한정훈 권사와 모(母) 김창순 권사의 독자로 태어났다. 1934년 광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동년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입학하여 1939년 3월에 졸업하고 1943년 일본 상지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 이듬해 학도지원병으로 징병되어 태평양 전쟁에 참가하였다.
해방 후 평양선와신학교에서 조교수로 있다가 6.25사변 대 월남하였다.
월남한 이후의 한승호 목사의 경력과 활동상은 다음과 같다.
1934 광성보통학교 졸업
1939.3 광성고등보통학교 졸업
1951.10-1953.9 부산시온감리교회 설립 및 감리교 신학교 강사
1953.10-1955.8 서울시온감리교회 초대 담임목사
1955.9-1957.6 미국보스턴 대학교 신학대학원 종교심리학과 졸업
1957.8-1958.8 서울시온감리교회 복직 및 정회원 영입
1958.4-1969.8 이화여자대학교 및 숭실대학교 강사
1969.4-1985.8 국제대학교수, 교학처장 및 교목실장(정년퇴임)
1972.-1988 기독교 방송 상담프로 “같이 생각해 봅시다” 안녕하십니까 한승호입니다 담당
1985.9-1991.4 서울 시온감리교회 8대 담임목사 은퇴
1991.4-현재 서울 시온감리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