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명(유덕화)과 진영인(양조위)은 경찰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길은 다르다. 진영인은 황 국장(황추생)에 의해 삼합회의 조직원으로 신분을 바꾼다. 유건명은 삼합회 보스 한침(증지위)의 명령으로 아예 스파이가 되기 위해 경찰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은 10여 년 동안 각자 경찰에서, 삼합회에서 자리를 잡는다. 경찰과 삼합회는 각자 자신의 조직에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조용히 ‘그’를 찾는다. 결국 유건명과 진영인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총을 겨누고 마주 선 두 사람. 두 사람은 같은 덫에 걸린 짐승의 끝없는 고통을 교감하며 묘한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선택은 달랐다. 유건명은 방아쇠를 당긴다.
2002년, <무간도>의 등장은 1980~90년대를 풍미한 홍콩 느와르의 재림이었다.
서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닮은꼴의 두 사람을 통해 영화는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현재의 자신’에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진영인, ‘현재의 자신’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래의 자신’을 지우려는 유건명. 그러면서도 ‘현재의 자신’이 끌어당기는 강한 자성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도는 두 사람의 지독한 방황이다.
진영인의 뜨거운 번민과 유건명의 차가운 감성은 부딪친다. 진영인은 가끔씩 찾는 정신과에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유건명은 ‘원래의 모습’을 하나씩 지워가며 현재의 자신을 붙들어 맨다. 유건명은 한침과 황 국장 그리고 경찰에 숨겨진 또 다른 스파이를 제거한다. 진영인은 자신이 경찰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사람들을 하나씩 잃어간다. 이렇게, 한 사람의 채움은 또 한 사람의 ‘자기증명’을 지워간다. 결국 유건명은 뜻을 이룬다. 모두 다 죽고 난 뒤, 경찰 신분증을 앞세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유건명의 표정은 그가 그토록 원하던 ‘현재의 삶’을 성취했다는 믿음이다. 죽은 진영인보다 살아 있는 유건명이 ‘무간지옥’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두 사람의 어긋난 운명에 깊은 한숨과 연민이 동시에 나온다.
[글 블랙뤼미에르(필름스토커) 사진 영화 <무간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21호 (16.03.29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