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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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유/손경태

보현화 2016. 11. 3. 18:20

행복한 이유

 

손경태(소설가)

 


모처첨 밤을 샌 이른 아침, 옥상에 올라 세상을 본다.

푸르게 열리는 하늘과 소란스런 참새들의 날갯짓, 삐죽삐죽 솟은 감나무며 향나무, 향기로운 바람..., 상쾌한 아침이다.

 

온갖 쓰레기가 다 널려 있는 누추한 지붕들, 골목 어디선가 어제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주정뱅이의 코 고는 소리. 조금 울적해진다.

 

기분이 안 좋을 땐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래서 불행한가?

아니. 그러면 지금의 감정을 즐겨라. 울적함이든. 서글픔이든. 눈물이든 느낄수 있는 그 모두가 행복이니까.

 

나의 행복 구하는 공식은 간단하다.

불행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면 행복으로 간주한다.

불행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지만 행복은 이유 없어도 가능하니까.

그러므로 불행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거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지

불행을 더 깊이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 행복이란 여러모로 손쉽고 경제적인 감정이다.

어째서인가.

많은 경우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양쪽을 같이 놓고 이유를 나열하다보면

대체로 행복보다 불행 쪽의 숫자가 많고,

거기에 매달려 손가락 꼽는 일은 머리 아프고 피곤하며 시간만 낭비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할수록 얻는 것은 허망함과 비관뿐일텐데, 노력의 대가치고 그만큼 억울하고 손해보는 일이 어딨겠는가.

그것이 바로 불행이다.

그러니 까다롭게 따지지 말자. 좋은 것을 좋은 대로 즐기자. 이렇게도 아름다운 아침이 있고.

내 한몸 편안히 누울 방 한칸이 있고 누추한 지붕들 아래 함께 헐떡이며 살아갈 고단한 이웃들이 있고.

나를 편안케 하는 약간의 피로가 있는대, 뭐가 더 필요한가.

지금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