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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장을 지진다' - 여기서 장은 무슨 장일까
잡다구리 2016.12.10 11:43
일상에서 흔히 "뭐뭐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과 어떤 분 때문에 핫한 키워드가 된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제 약속대로 장을 지지라고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 여기서 '장'이 무슨 장인지 사람마다 의견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장이면 좋을까하고 가볍게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고구마 줄기였을 줄이야.
(장은 소중하다)
무슨 장인지 모르는 국립국어원
일단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대략 이렇게 나온다.
* 손에 장을 지지다 (관용구)
어떤 사실이나 사건 따위를 전혀 믿을 수가 없다.
*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 (속담)
1. 상대편이 어떤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때 하는 말.
2.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장담하는 말.
(비슷한 말)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 손톱에 장을 지지겠다, 손가락에 불을 지르고 하늘에 오른다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딱히 장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단지 이 말들이 관용구나 속담으로 쓰이므로, 말 전체의 뜻한 풀이해놓았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에서는 이 사전을 거의 그대로 갖다 쓰므로, 포털 사이트의 사전도 똑같다.
어쨌든 이번에 화제가 된 '손에 장을 지진다'라는 표현은 '자신의 주장이 틀림없다고 장담하는 말'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겨우 이것만을 알아내고자 검색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는 '장'을 알고싶다!
이런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었다. 국립국어원 사이트를 뒤져보니 '장'이 무엇인지 질문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 측의 대답은 명쾌하지 못하다.
Q. '손에 장을 지지다'라는 말에서 장은 무슨 뜻인가요?
A. ‘손에/손톱에/손가락에 장을 지지다.’는 ‘손톱에 불을 달아 장을 지지게 되면 그 고통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인데, 그런 모진 일을 담보로 하여 자기가 옳다는 것을 장담할 때 하는 말.’의 의미를 갖고 ‘손가락에 불을 지르고 하늘에 오른다’ 등과 비슷한 뜻을 가지므로 ‘불을 붙이다’ 정도의 의미로 보는 설(說)이 있습니다. 그러나 속담의 어원에 관한 내용은 객관적인 근거를 들기 어려우므로 명확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국립국어원 묻고 답하기, 온라인가나다)
아무래도 국립국어원은 공식적으로 알릴 수 있는 것만을 알려야 하므로 확실치 않은 것들은 말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단 공식적으로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하고, 야매로라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설들을 한 번 수집해봤다.
(어쨌든 장은 소중하다)
여러가지 설 - 손바닥 장
그런데 자료를 찾다보니 옛날에 한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장을 지지다'의 '장'이 '손바닥 장(掌)'이라고 방송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언제 방송했는지는 정확히 찾지 못했는데, 'MBC 우리말 나들이'에서 방송된 적이 있다 한다.
'장'이 '손바닥 장'이므로, '장을 지지겠다'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라 했다하고, 뜻은 말 그대로 손바닥을 지진다라는 뜻이라 했다 한다. 즉, 어디다 지지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손바닥을 지지겠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사실 "내 장을 지지겠다"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도 본 적 있으므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 사실은 "내 장을 지지겠다"는 "내장을 지지겠다"라는 말로, 장이 아니라 '내장'을 뜻한다는 극소수의 의견도 있으나, 이건 너무 하드코어하고 그러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라는 표현은 설명할 수 없으므로 그것까지 나가는 건 옳지 않겠다.
뜸 장
장이 '뜸'이라는 주장도 있다. 뜸을 뜰 때 단위가 장(壯)이라고 하여, "뜸 한 장을 뜬다"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그리고 뜸을 뜨기 위해 약초를 고깔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뜸장'이라 한다. 그래서 장을 지진다의 장의 뜸장이거나 그냥 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손톱에 장을 지지겠다'라는 표현에는 어울리는 듯 하다. 그런데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에는 좀 안 어울리지 않나 싶다. 물론 안 어울리지만 거기다 지지겠다라고 말 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소지공양(燒指供養)
불교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설도 있다. 불교에는 '소지공양'이라는 것이 있는데, 손가락을 태우는 수행 방법이다.
그만큼 뭔가 절실하거나 크게 결심했을 때 행하는 것인데, 손가락을 그냥 불에 태우는 방법도 있고, 잘 타도록(?) 기름 천을 감거나 하는 등의 방법들도 있다. 어쨌든 맨 손가락을 불에 태운다. 이건 비교적 최근에도 행해진 수행 방법인 듯 하다. 검색해보면 의외로 많은 스님들이 소지공양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손가락을 태운다는 점과, 실제로 많이 행해진 것이라는 점에서 연관을 지을 수는 있겠지만,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와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손가락에 불을 지르고 하늘에 오른다'라는 속담에는 이 소지공양이 어울리는 듯 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내 경우에는, 실생활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간장
아무래도 간장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인정되고 있는 듯 하다. '장'은 주로 '간장, 된장, 고추장'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장을 지진다'라고 하면 대체로 '간장'을 뜻한다고 한다.
(국립국어원 전자책 소식지 ‘쉼표, 마침표.’ 29호, 200803 - ‘간장’과 ‘된장’과 ‘고추장’의 어원)
참고로 위 문헌은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장을 지진다'라는 것에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다.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이 가지고 들어온 것이라는 속설이 잘못 된 것이라는 것도 짚어주고 있다. 고추의 이전 형태인 '고쵸'가 15세기 문헌에도 흔히 나타나는 것을 증거로 대면서 말이다 (이 글 아래에 자세한 링크를 걸어두겠다).
그리고 국립국어원의 '새국어생활 - 어원탐구' 코너에서는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장을 지지다'라는 표현의 장이 간장일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물론 춘장일 수도 있다)
결론
이쯤되면 '간장'이 거의 대세려니 생각해도 될 듯 하다. 물론, '장'이 먹는 장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된장이나 고추장일 수도 있다고 갑론을박 하고 있고, 심지어는 젓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한자에 '젓갈 장(醬)'이 있다).
대세라고 해서 무조건 맞으라는 법은 없다. 더군다나 어원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싸우는 것 또한 피곤한 일이다.
따라서 호언장담하고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좋지 않나 싶다.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중에 고르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설을 믿지 않는다면 불교식도 좋고, 뜸도 괜찮겠고. 어떻게든 지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어떤 종류로든 손가락이나 손바닥을 지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 테다. 물론 여기서 '지진다'라는 표현은 찜질방에서 허리를 지진다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높은 온도의 아주 고통스러움 지짐을 뜻하는 것임이 틀림 없다.
이건 참 당하는 사람도 고통스럽겠지만, 요구하는 측에서도 할 짓이 못 된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런 표현은 가급적 쓰지 말았으면 싶다. 사실 '손에 장을 지지겠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 치고 믿을만 한 사람 없더라. 정 호언장담 하고 싶다면 '오백 원 걸겠다'를 쓰는 건 어떨까. 그게 너무 가벼워 보이겠다 싶다면 '내 스마트폰을 주겠다'라고 하든지. 그러면 약간 신빙성이 생길 수도 있겠다.
아무튼 입에 붙은 말이라고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내뱉어서 후에 난감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평소에 언행을 조심하는 것이 제일 좋을 듯 싶다.
p.s. 참고자료
* 국립국어원 새국어생활, 어원탐구 - 잘못 알고 있는 어원 몇 가지(6)
* 국립국어원 전자책 소식지 ‘쉼표, 마침표.’ 29호, 200803 (hwp 파일)
p.s. 영어 표현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 eat one's hat (I will eat my hat)
- pigs might 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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