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안락사' 떠나는 사람들.. 우리도 필요하다
김광민 입력 2017.03.12 15:32
[오마이뉴스 글:김광민, 편집:김대홍]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요즘만큼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헌법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근본임에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헌법, 그 헌법을 국민들과 함께 읽어 보고자 한다. - 기자 말
▲ 2008년 한 가족은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병원은 거부했다. 할머니가 누워있는 기간이 길어지자 자녀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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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2008년 76세였던 김할머니는 폐종양 검사를 위해 내시경시술을 받았다. 시술 중 급작스러운 과다출혈이 발생하였고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의사들의 신속한 심장마사지 덕에 다행히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장마사지에 소요된 몇 분의 시간이 뇌에게는 결코 짧지 않았다.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했고 결국 김할머니는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병원은 인공호흡기를 통해 김할머니가 숨을 쉬도록 하였고 튜브로 영양분을 공급했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연명치료가 시작된 것이다. 김할머니의 자녀들은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했다. 연명치료는 단순히 생명만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여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고 김할머니가 평소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병원은 자녀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법은 사망시점을 심장과 폐가 정지하는 순간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김할머니의 심장과 폐는 약물과 인공호흡기에 의지는 했으나 분명 살아 있었다. 법적으로 김할머니는 분명히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이었다. 병원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의사의 생명보호의무에 위반되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더해 연명치료를 중단한다면 김할머니의 심장과 폐는 정지될 것이었고 이는 병원의 행위(연명치료 중단)에 의해 김할머니가 사망하는 형태가 되어 병원 측에 살인죄가 적용될 부담도 있었다.
국회에 입법부작위 책임을 물은 김할머니 가족
김할머니가 의식 없이 약물과 기계에 의존한 채 병상에 누워 있는 기간이 길어지자 자녀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연명치료에 대해 "원인이 되는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호전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치료에 불과"하다며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한다며 자녀들의 연명치료 중단 요구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법원의 판결을 받고 나서야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나 튜브 없이 편히 잠들 수 있었다.
김할머니의 자녀들은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연명치료 중단 사유를 규정한 법률이 없어 소송에 오랜 기간을 허비해야 했고 그 만큼 김할머니의 식물인간 상태가 지속되어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는 주장이었다. 국회에게 '연명치료의 중단에 관한 기준, 절차 및 방법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지 않은(입법부작위)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하여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국회가 특정 법을 제정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한다면 이는 국회에게 그 법을 제정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되어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헌재 2009. 11. 26. 2008헌마385).
3권이 분리된 통치체제에서 법은 입법부인 국회에서 만든다. 입법부작위에 대한 위헌이 결정되면 입법부에게는 해당 법률을 만들 의무가 발생한다. 이 지점에서 입법권이 침해된다는 해석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헌법에 따른 기본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법률의 제정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면 해당 법률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더 이상 입법부 고유영역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법률의 내용에 대한 판단이 아닌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 입법부의 절대적 권한이라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입법부작위가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아니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현존하는 기본권 침해 상황을 방치하겠다는 것으로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였다.
헌법재판소의 소극적 태도는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접어든 환자들이 인공호흡기나 영양공급 튜브 등에 의지한 채 침상에 누워 있도록 강제하여 그들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야기했다. 연명치료의 중단은 2016년 2월에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의 제정으로 가능해졌다. 연명의료결정법은 2017년 8월 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헌법재판소가 입법부작위에 대한 판단을 하였다면 8년 가까운 시간을 아낄 수 있었던 것이다.
존엄성 있는 죽음, 연명치료 중단만으로 해결되지 않아
연명의료결정법은 의사가 연명치료 거부에 대해 환자의 사전의사를 확인하였거나, 의료기관에서 작성된 연명의료계획서에 의해 확인할 수 있을 경우 또는 가족들의 일관된 진술로 확인할 수 있다면 연명치료의 중단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라도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법정대리인이 그 외의 경우 환자가족 전원이 합의하여 결정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인 동시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의식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서 각종 의료장비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평소 이와 같은 상황을 거부해왔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존엄성 있는 죽음은 연명치료의 중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아직 환자의 의식이 남아있는 경우가 문제될 수 있다. 연명치료법에 따른다 하더라도 의식이 남아있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말기암환자와 같이 회복가능성이 없고 나날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임종에 다가서고 있는 환자에게 임종의 시기를 앞당겨 주는 것 또한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환자의 임종을 앞당기는 것, 즉 적극적 안락사는 그간 많은 논란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미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브르크, 스위스, 캐나다 등 다수의 국가에서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하고 있다. 심지어 많은 이들이 안락사가 금지된 자국을 피해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으로 원정 안락사를 떠나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의 생명은 가장 존엄한 것으로 자살은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생명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경우까지 생명의 연장을 강제하는 것에 대하여는 근본적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연명치료중단의 필요성이 존재함에도 도입에 대해 꺼려했고 헌법재판소의 소극적 대응과 입법부의 책임회피로 오랫동안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는 상황이 계속되어왔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락사의 도입과 금지 중 과연 어떤 것이 헌법 제10조가 선언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서 연명의료결정법의 도입을 지연시킨 과오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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