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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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천장(天葬)

보현화 2016. 11. 3. 17:38

        

                                                          

                                     티베트-천장(天葬) 


                                                                              

                                                                                 전태흥(자유기고가/ 2004. 10.11 매일신문

 


새벽 3, 내리던 비가 잠시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가랑비를 뿌리고 있다. 드리궁 틸(Drigung Til)사원에서 이루어지는 천장(天葬)을 보러 가는 길이다. 천장 또는 조장(鳥葬)은 티베트의 자연 환경과 독실한 불심이 낳은 독특한 장례의식이다.

.풀 한 포기 제대로 나지 않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화장(火葬)을 하기 위한 나무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수장(水葬)은 귀한 물을 오염시키게 되고, 토장(土葬)은 메마른 땅에 시체가 쉽게 썩지 않는 문제가 있다. 더구나 티베트 사람들은 선행을 베풀면 다시 부귀한 집안에 태어난다고 믿는 까닭에 죽은 후 자기의 시신(屍身)을 신성(神聖)한 독수리에게 보시함으로써 영혼이 하늘로 보내어 진다고 믿는다.

 

.따라서 보는 이에 따라 비록 잔혹해보이긴 하지만 자신의 마지막 육신마저 보시로 바치는 천장이야말로 티베트의 가장 합리적인 장례문화인 것이다. 하지만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기 위해 망자의 육신을 토막내어 새들에게 주는 의식, 이름도 모르는 이의 낯선 주검을 보러 가는 길은 깊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낡은 승합차가 라사를 막 벗어날 무렵 붉은 등을 환하게 밝힌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깊은 밤 팔고 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행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듯이 운전기사는 홍등가라며 눈을 찡긋거린다. 티베트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만들려는 중국의 서북공정(西北工程)이 낳은 산물이다. 티베트를 개발하기 위해 사람들을 그들의 땅에서 내쫓고 한족(漢族)을 이주시키면서 그 노동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만든 홍등가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장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黑猫白描)"라는 논리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경제적 우위가 도덕적 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결국 흰 고양이보다는 검은 고양이가 쥐를 잘 잡을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들 때, 그들은 또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공안이 졸고 있는 감시 초소를 지나자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리어카에 채소를 가득 실은 농민들이 라사로 줄지어 들어오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지친 육신을 이끌고 삶의 고단한 무게를 내려놓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약 없는 환생이 이승의 삶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불안하기 그지없던 차는 결국 언덕을 오르다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미끄러운 빗길에 기온마저 급격히 내려가 있었지만 차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삼십분 쯤 걸어 올랐을까? 높고 가파른 산등성이에 자리한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타시텔레.” 몸을 녹이려 들어간 부엌에서 만난 노승은 티베트어로 인사를 하자 검은 이를 환하게 드러내 웃으며 티베트의 소 젖으로 만든 야크차를 내온다.

 

.'타시텔레'는 머리에 뿔이 나있고 혀가 검은 폭군을 몰아낸 티베트인들이 자신의 생김새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모자를 벗고 입을 벌려 인사를 하게 되었다는 전통설화와 관련된 '친구'라는 의미의 인사다. 그렇다 나이, 혹은 만난 세월이 무슨 상관있으랴! 친구란 서로를 해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위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 아닐까?

 

.경운기와 트럭에 실려 온 시신들이 내려지고 있다. 사원 왼편 길을 따라 이십 여분을 걸어 오르자 천장대에는 망자의 영혼을 달래기라도 하듯 수많은 룽다와 탈초가 바람에 나부끼고 깊은 계곡을 둘러싼 해발 4800m 산은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다 둥근 돌로 원을 만든 천장대 위쪽에는 어린 송아지만한 수십 마리의 대머리 독수리들(Vulture)이 마치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줄지어 서 있고 한쪽에는 커다란 나무 밑둥을 잘라 만든 도마가 놓여져 있다. '돔덴(Domden)'이라 부르는 5명의 천장사(天葬師)가 칼을 갈고 있다.

 

.이미 해가 뜨기 전에 가족이 없는 시신을 처리한 탓인지 그들의 옷에는 피가 묻어 있다. 가족들이 시신을 넣은 포대와 들것을 메고 올라오고 있다. 망자의 육신이 천장대 위에 올려지자 냄새를 맡은 독수리들이 울음을 터트린다. 천장사들은 갈고리와 칼을 들고 대 위로 올라서고 가족들은 긴 나뭇가지를 들고 독수리들을 막아선다. 5구의 시신이 힘든 이승의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토막내어 지고 노승은 주문을 외운다.

 

.그 주문은 죽음에서 환생에 이르는 동안 영혼을 깨어 있게 한다는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주문이다. 피비린내를 맡은 독수리들이 견디지 못해할 즈음 천장사들은 칼질을 멈추고 가족들은 나뭇가지를 치운다.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5구의 시신은 앙상한 뼈로 남는다.

 

.천장사들은 다시 뼈를 추슬러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잘게 부순 뒤, 참파라는 보리가루에 섞어 독수리들에게 던진다. 한 줌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육신이 이승의 고된 삶을 잊는 과정은 너무나 모질어 보인다. 의식을 마친 천장사들의 굳은 얼굴은 하층민이라는 신분 때문에 정작 본인은 죽어 천장을 못하고, 수장(水葬)을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이 보낸 영혼의 하늘 길이 너무 외롭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벌써 자리를 뜨고 없다. 유족들은 천장사들에게 술을 권하고 독수리들은 주변을 맴돌다 바람에 날개를 맡긴다. ! 하늘을 나는 저 독수리들은 과연 망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중일까? 진정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삶이란 죽음의 집을 위한 여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친 삶의 육신(肉身)을 영혼의 하늘에 묻는 산을 내려온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네덜란드에서 온 세리는 천장사들이 시신을 너무 함부로 다룬다며 잔뜩 화가 나있다. 그녀가 뼈를 곱게 빻아달라며 돈을 집어주는 한국의 화장터의 풍경을 보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그들의 슬픈 눈이 주검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면.

 

.사원 아래 공터에는 한족 운전기사가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잠들어 있다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이주해 온 타향에서 부자가 되는 꿈,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어차피 모두 한낱 먼지 같은 이승의 삶이라면 부질없는 집착이고 욕심처럼 느껴져 깨우지 않았다. 그의 단잠은 비록 잠시라 할지라도 삶과 죽음 모두를 잊을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에.

 

.라사로 돌아오는 길에 행사를 준비하는 초등학교를 본다. 오성기(五星旗)와 악대를 앞세운 행사 연습은 줄을 맞추려는 교사들이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지만 아이들의 맞지 않는 발걸음으로 금방 엉망이 된다. 우리네 어린 시절에도 강요된 질서가 있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혹은 추운 겨울 아침, 소위 높은 사람들의 방문은 훈시라는 명목으로 강행됐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런 날의 기억들이 고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무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임에 분명하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생활을 보살피고 격려하는 것에 미래가 있다는 안타까움은 여기서도 적용되기는 마찬가지다. 회초리를 든 교사와 안타까이 바라다보는 마을 사람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이미 낯선 여행자에게 가 있다.

 

.아이들의 그 호기심 가득한 눈을 뒤로 하고 라사로 돌아온다. 늦은 오후, 그리운 이들에게 엽서를 쓴다. 우체국에서 부치는 편지는 비록 South KOREA라는 낙인을 써야 하는 아픔이 있긴 하지만 이메일이 가지지 못한 따뜻함이 있다.

 

.티베트의 삶처럼 엽서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비록 더딜지라도 마음의 거리를 좁힐 것이다. 새벽부터 비를 맞은 탓일까? 아니면 초대받지 않은 장례에 참석한 탓일까? 조장(鳥葬)을 다녀온 오후부터 몸이 떨리고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틀을 꼬박 앓아누웠다. 꿈결처럼 여전히 이른 아침이면 옆집의 아이는 노래를 부르고 격자무늬 창살 너머로 만삭의 보름달은 낮게 드리웠지만 손가락하나 조차도 움직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