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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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왜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하시나

보현화 2017. 12. 2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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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75) 노인들은 왜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하시나

입력 2017.12.27. 10:12 

노년기는 진정으로 자유스러워지기 위해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기이다. 지나간 삶을 돌이켜보면서  “비록 아쉬운 점이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고 자부심을 느끼며 과거를 수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노인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노인들은 왜 하신 말씀을 자꾸 되풀이하시느냐?”고 노인들과 가까이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궁금하면서도 때로는 짜증 섞인 질문을 하곤 한다. 그리고는 “현재 하실 일이 없으셔서 그런 것인가요?”라고 스스로 답을 찾아내곤 한다. 또는 “혹시 치매의 초기 증상은 아니지요?” 하고 염려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곤 한다. 큰맘 먹고 “이제는 사실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을 자주 찾아봬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지만 “항상 똑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시는 바람에 같이 있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자신이 힘들게 한 사람에게 용서 구해

하지만 노인들이 과거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진짜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노인들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시간이 남아서도 아니고, 또 딱히 할 일이 없어서도 아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지나간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노인들에게는 중요한 ‘할 일’이다.

노년기는 삶의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증(愛憎)에서 한 발짝 물러나 지나간 삶을 관조하고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에 쌓아두었던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시기이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즐겁고 자랑스럽고 행복했던 일만 겪으면서 살아온 사람은 없다. 겉으로는 행복하고 어려움 없이 팔자 좋게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누구에게도 말 못할 괴로움과 후회와 회한의 감정을 마음 깊이 품고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므로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겨를이 없고, 또 직면하고 싶지 않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외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가슴속에 묻어두고 돌아보지 않는다고 이 감정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애써 피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의식화되지 않은 채 묻혀 있었을 뿐이었다.

노년기에는 많은 것을 잃는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했던 배우자를 잃는다. 배우자를 잃는 것은 우리 삶에서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건 중 하나이다. 또한 오랫동안 해오던 일에서 물러나게 된다.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단지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경제력과 사회적 관계망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만나야 할 사람도 없어지고 만날 일도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건강을 잃는다. 젊었을 때는 체력과 활력이 넘치던 사람들도 노인이 되면 건강을 잃고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진다. 일반적으로 노년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중요한 것들을 잃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잃는 것은 동시에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몸이 쇠약해지고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분명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죽는다는 것은 더구나 슬픈 일이다. 그러나 죽음은 한편으로는 ‘고해(苦海)’와 같은 세상살이에서 아둥바둥 살아왔던 고단했던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을 통해 자유를 찾는 과정일 뿐이다. 일에서 물러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별로 즐겁지 않은 일이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면서 살아왔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해방되고 자유스러워지기 위해서는 단지 물리적으로 해방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즉 심리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마음을 붙들고 불편하게 했던 사람이나 사건과 화해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더 이상 매달리지 말고 놓아 보내야 한다. ‘놓아 보내는 것’은 잊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우리에게 큰 감정적 흔적을 남긴 사건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잊을 필요도 없다. 기쁘건 슬프건 모두 우리 삶의 일부이고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놓아 보내는 것은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즉 마음속에서 부정적 감정을 풀고 단지 긍정적인 사람이나 사건으로 간직해야 한다.

노년기는 진정으로 자유스러워지기 위해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기이다. 지나간 삶을 돌이켜보면서 “비록 아쉬운 점이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심을 느끼며 과거를 수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노인들은 과거를 돌아보고 부끄럽고 자괴감을 느끼거나 또는 분노를 느끼게 되는 부정적 사건을 떠올리고 그 감정을 표현하면서 화해를 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힘들게 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수도 용서해야 한다. 결과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옳고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후회되지만 그때는 옳았던” 과거에 대해 화해하고 용서할수록 그만큼 더 노년기가 편안해지고 두려움 없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지금은 후회되지만 그때는 옳았던”

과거와 화해하고 용서하기 위해 노인들은 주로 ‘회상’을 많이 한다. 노인들이 자주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할 일이 없는데 시간은 남아돌아가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다. 노인들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과거와 화해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지금 중요한 ‘심리적 과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홀로 사는 한 할머니가 우연히 종교단체에서 실시한 집단상담 형식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할머니는 오랫동안 여러 여성과 바람을 피운 남편과 살면서 이미 속이 썩을 대로 썩었다. 비록 남편이 몇 년 전에 죽었지만 남편 생각이 나기만 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이 할머니는 비록 물리적으로는 남편에게서 해방되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완전히 자유스럽지 못한 채 실질적으로는 계속 부정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모임에 참석한 할머니들이 돌아가면서 살아오면서 속상했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한 맺힌 사연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속이 후련해하는 모습을 본 이 할머니도 자신의 속이야기를 할 용기를 갖게 되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이 할머니는 사별한 남편 때문에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남편에 대한 울분을 속 시원히 털어놓자 생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남편과의 즐거운 추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잊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남편과는 불행했던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고 긍정적인 감정이 살아나자 이제야 남편을 용서하고 편하게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남편에게서 진정 해방되었다. 만약 ‘여한’을 풀지 못하면 노인들은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절망감은 “회한과 미련이 많은 삶인데 더 이상 개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느끼는 부정적 감정이다. 노인들이 평안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게 도와드리기 위해서는 과거를 편안히 회상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많이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간에는 과거의 부정적 사건과 감정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충고나 비난을 금하여야 한다. 대신에 그동안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마음을 헤아려드려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