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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할머니의 마지막 후회 "제명까지 살걸, 아파, 아파"
입력 2018.01.31. 02:01 수정 2018.01.31. 16:19
━ 응급의 남궁인이 겪은 자살 시도자 나는 무수한 죽음을 목격했다. 그만큼의 죽음을 앞둔 눈빛도 보았다. 대체로 그것들은 힘없이 감겨 있거나 초점 없이 풀려 있다. 어떤 감정도 전하지 못 하는 눈빛을 남기고 사람들은 그리 허무하게 죽는다. 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를 도려내는 눈빛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 있다. 날카롭고 서늘하고 섬뜩한 기분에 빠트리는 검은 동자다. 그것은 목격한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저주를 남긴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전문적으로 본다. 흐린 날은 많고, 맑은 날은 적다. 그 흔한 충수돌기염보다는 확실히 많다. 시내에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날, 하루에 열 명을 만난 적도 있다. 내가 지금도 잊지 못 하는 그녀는, 그날 일곱 번째 자살 시도자였다. 아무렇게나 뜯어진 약봉지와 도저히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독극물과 정성스럽게 쓰인 유서와 같이 온 사람들 사이로 그녀는 왔다.
"나, 나는 언제 죽나요."
"안돼요.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해요. 살 수 있어요."
"아파. 아파.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아…."
"할머니. 기운을 내요."
"나는 죽고 싶었어요. 살 만큼 다 살았으니 이제 죽고 싶었어요. 사는 게 지겨웠어요. 그런데 너무 안 죽길래. 내가 직접, 그런데…. 너무 아파."
그녀는 이를 다시 악물었다. 눈알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아파. 후회스러워.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안 먹을걸, 얼마 안 남았을 텐데. 제 명까지 살걸…. 나는 후회해요. 선생님. 미안…."
그렇게 고통스러운 눈동자를 별로 본 적이 없다. 노쇠한 안구가 죽음의 고통으로 날카롭게 덜덜 떨었다. 이윽고 그 눈동자는 한쪽으로 확 기울었다. 동시에 그녀는 혀를 빼물고 입가에 피를 뿌리며 사지를 떨었다. 두 번째 경기였다. 대사성 산증, 생체 신호가 어긋나는 인체의 비정상적인 움직임,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는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목격하는 것이 죽음과 비견되는 고통이라는 것을 안다. 마치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떨리는 고개를 왼쪽으로 잡아 돌리고 피를 뿜는 혀를 원래 위치로 집어넣었다. 항경련제가 다시 들어갔다. 경기는 지속되다가 멈춰갔고, 대신 그녀의 심전도도 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맥이 없는 심실 빈맥, 심정지였다. 심장이 멈춰 경기가 같이 멈춘 것이었다.
의료진은 그녀에게 올라타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강력한 전류가 그녀의 몸을 2분마다 관통했다. 그때마다 축 늘어진 몸은 벌떡거리며 요동쳤다. 가차 없는 손길을 받아내는 축 처진 육신을 보고, 나는 방금 들었던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의식이 없는 육신이지만 끔찍하게 고통스러워 보였다. 조금만 더 안락하게 살았다면, 기적처럼 우울해 하지 않았다면, 별안간 지금까지 잊지 못했던 한 눈빛이 떠올랐다. 기억 먼 곳에 치워두었던 두려움이 엄습했다.
몇 년 전 보았던 젊은 사내였다. 그는 빙초산 한 병을 다 마시고 몸부림치다가 발견되어 실려 왔다. 받아든 병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냄새는 역겨울 정도로 시큼했다. 죽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라면 입도 대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나는 그를 흔들어 대화를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식도와 위와 창자가 불타는 극도의 고통 탓이었다. 그 통증은 직접 겪지 않은 나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속이 쓰리다고 말하는 느낌이 실제 목숨을 잃을 정도라면 설명이 가능할까. 누군가가 당신의 장을 불로 녹이고 있다면 설명이 가능할까.
그는 집중치료실에 혼자 누워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대신 기괴한 표정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자신의 가슴팍을 마구 긁고 두들기기 시작했다. 광인의 눈동자였다. 타고 있는 식도는 너무 깊어 만질 수 없었으나, 대신 무엇이라도 뜯어내 고통을 줄이려는 것 같았다. 손톱이 가슴의 살을 실제로 파내자, 우리는 그의 손아귀를 붙들었다. 대신 몸통이 들썩거렸고, 할퀸 자리에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것도 창자가 타는 고통에 비하면 보잘것없을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 선물처럼, 혈관으로 전신 마취제를 투여했다. "잠들어요. 고통이 끝날 겁니다."
적어도 이 육체를 축복할 수 없었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소명 때문이 아니라, 끔찍한 눈빛과 인간을 말살하는 고통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후회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편안한 결과로 여긴다. 그리고 그를 얻기 위해 정신 나간 시도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인 고통을 목격하고 온전히 받아내는 사람이다. 그것은 인간의 육신을 철저히 파괴하고, 마지막 남은 정신도 짓밟아 버린다. 살육의 과정이다. 이것들이 여기 만연해 있다. 그 실체를 모른 채, 사람들은 기어코 그것을 지나가려 한다. 왜 내 앞에서 사람들은, 학살과도 같은 이 과정을 지나려 뛰어드는가. 죽고자 하는 열망은 이것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이던가.
나는 이제 막 끝나버린 고통을 두고 고개를 돌렸다. 치료실을 나오자 무엇인가를 도려낼 것 같은 동자가 어른거렸다. 당분간 또 편히 잠들 수 없을 것이었다. 또 그 눈빛, 눈빛과 같이 잠들어야 했다. 이것도 사방을 떠돌던 그 광인의 눈동자와 같이 나를 따라다닐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세 명의 자살자가 더 왔다. 그녀는 그날 일곱 번째였다.
■ 의사 남궁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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