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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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 더봄] 우리도 안락사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

보현화 2023. 4. 11. 22:49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306

 

[백만기 더봄] 우리도 안락사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태어날 때처럼 죽을 때도 도움 필요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는 죽음 선호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눈 대화를 기억하겠지. 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가 오면 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잖아. 이제 고통밖에 남은 게 없네. 아무런 감각이 없어."​

프로이트의 유언을 들은 주치의 슈르는 모르핀을 그에게 주사했고 프로이트는 침대에서 조용히 잠든다. 사람은 출생할 때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죽을 때도 역시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도 주치의의 도움을 받아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프로이트처럼 유명한 인물도 역시 사람인지라 죽고 사는 것은 보통 사람과 다름이 없다.​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았다가 서가에서 좋은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 후두암을 앓고 있는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딸들의 감정을 그린 책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존엄사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었지만 아직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게 현실이다.​

책의 마지막은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는 주인공과 의사인 친구의 애틋한 감정을 그렸다. 임종 환자의 부탁으로 모르핀을 주사하는 친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러나 이런 친구를 곁에 둘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인생 2막에선 이렇게 결정적 순간에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을 돌보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의 사귐도 거기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중환자실 병동/게티이미지뱅크
 

몇 년 전 75세의 영국 전직 호스피스 간호사가 큰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안락사를 택한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다. 이름이 질 패로우인 여성은 늙으면 흔히 보조 수단으로 이용하는 유모차로 다른 사람의 길을 막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잘 알고 있다며 가족을 설득한 후 스위스로 건너가 생을 마감했다.

왜 좀 더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유명한 영국의 비평가 월터 페이터는 죽음에 임하는 마음 자세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누가 내일 너는 죽을 것이라고, 아니, 늦어도 모레는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내일 죽는 것보다 모레 죽는 것이 너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되겠는가? 따라서 내일 죽지 않고 일 년 후 또는 이 년 후, 아니면 십 년 후에 죽는 것이 더 귀한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불식하도록 힘써라."​

지난 1월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A)주에서 자발적 안락사법이 시행됨에 따라 호주는 모든 주에서 안락사가 합법이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 법이 발효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32명이 신청했고 이 중 11명에게 승인이 내려졌다. 승인받은 11명 중 6명이 약물을 투여받거나 스스로 투약하는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과거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스위스로 건너가 안락사를 택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내용과 상관없는 이미지임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현실은 어떨까. 몇 년 전 부산 금정구의 한 빌라에서 80대의 노부부는 작은 잔치를 열었다. 할머니의 82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할머니는 85세의 할아버지 입에 고기를 넣어주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삼킬 수 있는 건 단 두 점이었지만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위암 4기였다. 할아버지는 64년간 해로한 할머니에게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함께 가요. 당신 없이 혼자 남겨지기 싫어요.”

잔칫상을 물리고 아들마저 돌아간 밤 10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둘 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마지막 잠에 들었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싶었던 노부부 바람과 달리 아들은 곤욕을 치렀다. 부모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번개탄을 사다 드린 게 문제가 됐다. 검찰은 아들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적 공방에 지친 아들은 항소하지 않았고, 검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많은 사람이 재택임종을 원하지만 그러하기가 쉽지 않다. 위의 사례처럼 자식들이 피해를 볼까 걱정이 되어 마지못해 병원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2019년 서울대 고령사회연구단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임종 장소는 자택(37.7%), 병원(19.3%), 호스피스(17.4%) 순인데 실제 자택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은 비율은 15.6%에 그쳤다.

 

가족과 함께 있는 임종 /게티이미지뱅크
 

서울대학교 윤영호 교수팀이 2016년 말기 환자와 가족을 상대로 좋은 죽음에 관해 설문 조사한 일이 있다. 1위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2위는 가족이나 의미 있는 사람이 함께 있는 죽음이었다. 두 항목을 보면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주변 정리가 잘 마무리된 죽음, 통증에서 해방된 죽음이 뒤를 이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란 말도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의 바램처럼 죽음의 질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안규백 의원이 조력 존엄사 법안을 발의했다. 과거에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사장된 사례가 있어​ 과연 법안이 상정될지 궁금하다. 최근 죽음 문화를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어느 의사는 자신의 말년에도 우리나라에 안락사가 도입되지 않으면 스위스로 가겠다고 한다.

그는 경제적 여유도 있고 의학 지식도 많은 편이지만 스위스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우리나라 말기 환자는 어찌할 것인가. 과거에는 가족의 곁에서 임종할 수 있었는데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났음에도 죽음의 질은 오히려 낮아진 느낌이다. 우리 사회도 안락사를 공론화하여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나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없도록 정책을 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