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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 더봄] 늙으니까 참 좋다

보현화 2023. 4. 1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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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 더봄] 늙으니까 참 좋다

  •  입력 2023.02.09 10:00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나이 들면 왜 시간이 빨리 갈까
여기저기 아프지만 좋은 점도 있다
적은 돈으로도 즐겁게 살 수 있다

해가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1주일도 길게 느껴지더니만 지금은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생각될까? 심리학자의 전언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기억에 남을 만한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10대는 지난 시간이 흥미로운 기억으로 가득한 데 반해 나이를 먹을수록 일상이 반복돼 시간이 빈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긴 젊었을 땐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일이 많았는데 나이가 드니 그런 일이 별로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여기저기 아프고 기능도 떨어져서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점도 있다. 우선 뭔가 이루고자 하는 야망이 없어진다. 그 헛된 야망 때문에 젊은 시절 몸이 얼마나 수고를 했는가. 나이 65세가 되면 이미 해야 할 성공은 다 했을 것이고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면 앞으로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자신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무리한 도전을 하지 않는다. 못했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도 없다.

시간이 많아 무엇이든 염가로 즐길 수가 있다. 친구들과 가끔 예술영화를 보러 가는데 보통은 조조할인을 간다. 예약할 필요도 없다. 사람도 많지 않아 좋은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영화를 감상한다. 직장에 다닐 때라면 영화를 감상하려 해도 예약해야 하고 원하는 시간에 보기도 어려웠다.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성수기에는 요금이 두 배나 뛴다. 직장인들이야 주말이나 휴가를 끼고 가야 하지만 시니어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비수기에 가면 요금도 쌀뿐 아니라 오히려 더 환영받는다.

 

해외여행도 비수기에는 요금이 저렴하다. /백만기
 

손자가 생긴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자식들은 성인이 되어 모두 일을 하느라 바쁘다. 집에 있을 때 가끔 컴퓨터에 관해 물어보면 가르쳐주긴 하지만 그것도 모르냐는 투의 표정이 역력하다. 어느 때는 가르쳐주기보다는 본인들이 직접 해버리고 만다. 그게 더 빠르기 때문이다. 내 말을 잘 듣지도 않는다.

하지만 손자는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나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마 가족 중에 나를 제일 잘 따르는 식구가 아닌가 싶다. 하는 짓은 또 얼마나 귀여운가. 솔직히 자식들을 키울 때는 이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것도 나이 들어 얻는 장점이다.

젊었을 적에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전보다 눈이 침침해졌으나 불평하기보다는 이만하기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받아들인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이 칠십이 되면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돈의 많고 적음이 비교의 대상이 아니고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한다는 얘기도 있다.

 

월요일 출근길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과거 직장에 다닐 때 월요일만 되면 마지못해 일어나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평소보다 좀 일찍 나왔는데도 차가 막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월요일에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늦게까지 잘 수 있는데도 일찍 잠에서 깨는 것이다.

나이가 드니 전에는 큰일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도 그냥 무심코 지나가게 된다. 돌이켜보면 과거 몹시 걱정했던 일들도 지나고 보니 하나의 점일 뿐이다. 인생이란 이렇게 무수히 많은 점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일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다고 노인 취급하는 것은 좀 거북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젊은이보다 나이가 좀 더 먹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는 것은 괜찮다. 그렇지 않아도 무릎이 아파 좀 앉아갔으면 했는데 자리를 양보해준 학생이 고맙다. 그땐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선 좋은 점이 많다. /게티이미지뱅크
 

젊어서는 어쩔 수 없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만났지만 나이 들어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 특히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부정적인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면 오히려 상처를 얻기 쉽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피하든가, 피할 수 없으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 권력이나 지위에는 관심이 없고 돈 걱정도 하지 않는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 들어서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하겠는가.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가급적 사람들의 장점을 많이 보게 된다는 것이다. 젊었을 땐 왜 그렇게 상대의 단점만 보였는지. 하지만 지금은 눈이 어두워 단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도 상대의 장점은 잘 보인다. 젊었을 땐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꽤 많았는데 나이 들어선 조그만 방과 음악, 그리고 책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창밖의 나무만 봐도 행복하다. 아침에 새 소리만 들어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