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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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18기)거사님. 저도 그 책 사 보았습니다.*^^*

보현화 2008. 3. 13. 10:00

 

18기 혜정거사님. 혜성같이 나타난 반가운 분...

보리수찻집에 올라오는 좋은 글들 읽다가 누구실까 늘 궁금하여 2월 17일 방생 갔을때

처음 뵈었지요.

저보다 딸랑? 한살 적은 나이인데도 어쩜 그리 동안이고 맑으시던지..

반가움과 함께 놀라움도 두배였던 첫 만남..

 

이후 절에 수업하러 가는 길에 거사님의 가게에 들러 맛있는 차와 함께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듣고..

모두 부처님 이야기 불교이야기로 할 이야기는 정말 많았었지요? *^^*

 

언젠가 7기 법안 거사님이 말씀하신 명언(절에 오면 남자와 여자는 없고 거사와 보살만 있다)처럼

도반이라는게 얼마나 좋은 관계의 인연인지 다시금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얼마전 글 올리신 '또 한분의 부처님' 에서 또 한분의 부처님이신 옆지기보살님도 함께 뵈니

일거양득였고요~ (보살님. 키도 크시고 미인이던데요? ㅎㅎ)

                                  *                                   *                                  *     

인터넷에서도 많은 불교공부를 하고, 그래서 인터넷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은 저와 퍽 공감대형성!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거사님이 우리절에 오시게 된 연유와 우리절을 엄청 사랑하는 이유까지 다 눈치?채게 되었으니 저혼자만 알고 있기엔 좀 아까운 감이 없지 않고 도반들께 도움될까 하여 올려 봅니다...

 

.....집안에는 모두 기독교를 신앙한다. 저도 청소년시절에는 기독교를 신앙하면서 성경공부를 했다. 그러나 늘 공부하는 성경에서 유일신이라고 하는 하나님에게 인간은 구할 수밖에 없는 종교적 대의에 대한 회의와 앞뒤의 구절이 논리상 맞지 않는 것에 대한 의구심만 점점 깊어갔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다고 울며불며 땅을 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누나의 싸늘하게 식어진 시체에 어린 나이로 눈을 감기면서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가끔 아내를 따라 사리암에 자주 올라갔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습성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법당 안도 들여다 보지 않고 늘 공양간에서 밥만 축내었다. 삼년전 그날도 다름없이 밥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마루에 걸터앉아 아내의 기도가 마치기를 기다리며 졸고 있는데 “나반존자~~~”하는 스님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고 마음을 뒤흔들었다. 기도를 마치고 와서 옆에 앉는 아내에게 “라반추자가 뭐꼬?” 불쑥 물었고 “나반존자”라는 아내의 대답을 두고 어정쩡한 청력으로 잘못 들은 ‘라반추자’로 실랑이를 했다. ‘나반존자란 무슨 말일까?’

이렇게 해서 봇물처럼 밀려오는 궁금증에 불교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불자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더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인터넷의 검색창에 어렴풋이 기억나는 ‘영남불교대학’을 검색하게 되고 회주스님의 금강경을 접하게 되었다. 일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금강경 공부부터 시작하였다.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을 어른이 읽으면 흥미를 잃고 지루함을 느끼는 것처럼 열성이 생기지 않던 성경과는 경전은 시작부터 달랐다. 이렇게 해서 불교를 신행하기 시작했다. 사리암의 원주 스님께서 공부할 책도 주시고 늘 가르침을 주셨다. 기도 도량은 기도만 하는 곳이지 법의 가르침이 없다.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재적 절을 갖고 함께 수습할 도반이 있어야만 불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 현실을 떠나 불교는 생각할 수 없다. 기도도 중요하지만 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며 일상생활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즈음 사리암에서 고등학교 후배인 반용석(9기)거사를 만났다. 그의 권유에 따라 주지스님의 육조단경 경전수업법회에 참석했다. 그 날 ‘신통은 해장국 끓이는 것’과 ‘한 몸통에 머리가 둘인 새’ 스님의 두 가지 법문에 큰 감명을 받아 입학하였다. 알아도 함께 알아야 하고 깨달아도 함께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고 있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스님이 알고 계신 것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티끌이라도 글로 올려 자타가 한 번 더 익힐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함께 사유하는 계기를 가져 수행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보리수찻집에 글을 쓰고 있다....


이 부분에서 더욱 혜정거사님을 격려하게 된 나의 얘기인즉슨-.

(*9기 혜정거사님께서 같은 법명이라고 좋아하시며 나와 같은 의견을 18기 혜정거사에게 한적이 있다..)

 

... 18기 혜정거사처럼 글 잘쓰고 공부 많이 하는 신입 신도들을 많이 발굴해야 한다. 그래서 불교인드라망도 활성화시키고 불교도 알리는 인재발굴을 많이 해야 하는데 18기 혜정거사가 많은 역할을 할것으로 기대된다. 인터넷에서 배우는 공부도 상당하니 사이버법당의 역할도 무시할수가 없다. 인터넷활동 몇년한 우리같은 늙다리들은 이제 슬슬 뒤로 빠지고 새로운 신입들이 새 바람을 일으켜 주길 바란다.. 

 

하며 앞으로의 역할과 활동을 기대한다 하였더니 들려주는 비유에 또 탄성이 터진다.

 

...'원각경(圓覺經)'에 여기중굉(如器中鍠)이라는 말이 있다..단지속에 종을 넣고 종을 두드리면 안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배어 나온다. 오래 공부하고 활동한게 바로 그 종소리이지 않는가..머리로보다 마음으로 말하는 게 오래 가는 것처럼 오래오래 한다는건 중요하다..

 

아이고~관세음보살. 부양가족들만 아니라면 당장 머리깍으라고 하고싶다.~*^^*

 

불교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 하면서 반짝이는 눈빛, 그리고 귀가 잘 안들려 혼자만 이야기하는거 아닌가 몰라요~

하면서 얼굴까지 붉혀 가며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막내친정동생? 보듯 정겹다.

만약에 만약에 말인데 우리 절에서 유급법사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혜정거사를 적극추천하고 싶다.

그의 달변과 비유, 순수함, 맑음...하나 나무랄데가 없어 나도 모르게 합장하게 만드는 멋쟁이 도반이다.

 

회주스님의 책 '불교혁신론&포교론' 책을 보고 불교혁신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한다며

우리절에 인연되었음을 부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거듭하는 거사님 말씀을 듣곤

절에 가자마자 당장 책을 사서 읽어 보았다.

 

우리절의 방대한 복지.포교.공부.수행.기도에 대한 어록이고 도록이며 역사가 거기 다 있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우리절 사정과 불교의 현주소를 확실히 갈파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글 중 모든 내용이 다 혁신적이고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 밑줄쳐 놓은 곳중 일부분을 여기 옮겨보고자 한다.

 

 

...불교포교란 불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포교는 곧 수행이다.

...재능이 있는 것보다 부지런한 것이 더 낫다. 그 부지런함은 즐거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부처님 법을 전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기쁘지 아니한가.

...장애인에게 스님되는 길을 열어야 한다.

...6부중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종단에서는 도심사찰 건립을 의무화해야 한다.

...인터넷및 통신포교(카페포함)를 해야 한다.

...아무튼, 숱한 우여곡절 끝에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가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재정관리에 있었다고 본다.

첫째는 당사찰의 주지이며 학장인 필자가 직접 강의를 함으로써 강의료를 아꼈다. 둘째는 종무원들로 하여금 장부정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였다. 셋째는 재정을 합리적으로 공개하여 신도들로부터 신뢰성을 확보하였다.

...최근 수십년동안 시골 인구의 90%가 도시로 유입됐다. 사람이 가는 곳에 사찰이 따라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람은 가고 절만 덩그렇게 남아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중생 있는 곳에 부처 있다'는 말씀을 따라 부처님을 이고지고 그 중생들을 따라붙어야 옳았다. 석가모니부처님 당시, 모든 절은 도시에 있었다.

 

부처님을 이고지고 그 중생들을 따라붙어야 옳았다...

회주스님의 표현이 너무 재미있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나온다.

부처님을 이고지고 나서보자. 포교는 수행이라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