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샵, 성형, 하이힐, 브래지어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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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행 2009/07/10 08:00 꺄르르
지난 프라다 쇼에서 무려 17cm의 하이힐을 신은 모델 2명이 넘어지고, 무릎수술까지 받아야 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야말로 ‘킬힐’이죠. 하이힐이란 말이 어느새 고전음악처럼 들리는 시대에요. 킬힐, 스틸레토힐 같이 더 높게, 더 날카롭게 만들어지는 구두를 여성들이 신고 있습니다. 올 여름 대세라 하는 킬힐은 굽이 10~15cm나 되지만 머스트해브 아이템이라며 잘 팔리고 있죠.
뾰족 구두를 신으면 당연히 달리거나 오래 걸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발이 무척 고통스럽지요. 따라서 뾰족구두를 현대판 ‘전족’이라는 비판도 있지요. 그런데도 여성들은 불편을 무릅쓰고 하이힐을 신습니다. 여성 속옷 브래지어도 한 때 논쟁이 붙었던 화제지요.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김영옥 전 연구교수를 만나 뵙고 여성 외모와 상업자본, 뾰족구두와 브래지어에 대해 이야기 들어보았습니다.
-외모 가꾸기가 여성 자존감을 높인다는 주장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 하시는 분들 중에 외모 가꾸기가 자아 강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죠.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다, 가치 있다, 자기를 사랑하십시오, 이렇게 장기간을 상담을 받고 자신감이 생겨도 밖으로 나가면 다시 외모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무너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이 만들어낸 사랑받는 여성 이미지에 자기를 맞춰가면서 외모도 어느 정도 가꾸고 관리하는 게 자존감 강화에 좋다는 거예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건 여성이 자기를 자기 방식대로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거죠.
“사랑받는 방식이 한 가지로 정해져 있어 문제, 성형을 왜 할 수밖에 없는지 사회 구조를 봐야”
여성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타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문제는 사랑받는 방식이 한 가지로 정해져있다는 거죠. ‘사랑받는다’는 문장 하나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다양한 갈래가 얽혀있고, 사랑받는다는 이미지 또한 사실은 무궁무진해요. 자기 사랑으로서의 나르시즘, 타자와의 왜곡되지 않은 소통, 존중받고 싶다는 소망, 섹스 등등 어떤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데, 현대 의료기술과 뷰티산업이 모든 담론을 일원화해버리고 있죠. 상상력을 억압하면서 사람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고 옹졸하게 가두고 있어요. 여기에 대항하여 우리가 대안논리를 개발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은 거예요.
그래서 성형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이 어떤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그것을 드러내는 데 머무르지 말고 성형을 왜 할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를 봐야 된다는 거죠.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외모이데올로기를 어느 정도는 안다고 봐요. 웬만한 여자들은 그 정도는 다 간파하고 있죠. 여성들에게 물어보면 이래요.
“그래, 여성이 외모 중심으로 상품화된 거 나도 안다. 미디어 전략과 뷰티산업의 재현 정치학이 맞물려서 여성들이 외모 이데올로기에 희생되는 거 안다. 하지만 희생물 차원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 뼈 빠지게 일해 봐야 연봉 3000도 안 되는 내가 갑자기 외모산업에 주인공이 되어 몇 억 벌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런 가능성을 보고 내가 투자하겠다는데 가타부타 어쭙잖은 훈수를 두면서 비난하는 거 싫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존중해야죠. 20~30대 여성들이 성형하고 외모에 투자해서 자존감 높아지고 자신감 생겼다는데 거기에 대고, 너의 자신감은 허위자신감이고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실제로 허위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외모 관리하는 여성들에게 질문하는 건 한계가 있고, 뷰티산업의 음모에 대해 추적을 해야죠.
-구조를 보는 게 중요한데, 행위자라 할 수 있는 여성들을 너무 가볍게 보는 건 아닐까요?
성형하는 여성들 얘기만 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여성을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위치시키는지, 소위 공적영역으로 여성이 진입할 때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제한되어있는지 살펴야 하죠. 여성들이 옛날부터 이런 현실에 대한 감이 있었기 때문에 성형도 하고 쌍꺼풀 수술도 했던 거예요. 여성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성에게서 답을 다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사고방식은 어쩌면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집단 무의식이 아닌가 싶어요.
초점을 여성에게만 두지 말고, 외모산업과 젠더화된 경제논리에 쪽에 둬야 해요. 산업문제이고, 신자유주의문제고, 노동문제에요. 지금같이 외모지상주의 상황으로 오기까지 경제논리가 엄청나게 관여했죠. 돈이면 모든 걸 살 수 있다는 논리, 화폐 중심의 사회, 노동현장에서 요구하는 노동력의 성별화, 지나친 노동으로 희생한 삶의 보상을 돈이 해줄 거라는 믿음, 그렇게 이뤄지는 삶의 방식들, 모두 외모 지상주의와 관련된 사회구조거든요.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죠. 경제구조, 화폐중심 경제, 젠더화된 경제, 일터에서 노동력을 평가하는 방식, 미디어 분석, 수많은 잡지들에서 나오는 인공적인 이미지들과 그 잡지들의 판매유통과정을 다함께 논의해야 돼요.
포토샵 흔적이 드러나는 사진들. 포토샵은 이미지 사회에 두루 퍼져 있지요. @원더걸스
“모든 사람이 하나의 이미지를 상정하고 거기에 자기를 맞추려고 포토샵으로 이미지 조작”
-외모 산업이라는 것이 이미지 산업이고, 많은 조작이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게 포토샵이잖아요. 인생의 의미가 혹은 진리가 포토샵에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유행관련 잡지에 나오는 모든 사진 이미지는 디지털로 손 본 것이죠.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순 있겠지만 이제는 일반상식처럼 되었잖아요. 전지구적으로 배포되는 수많은 잡지의 모델들과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여성들의 최종이미지는 사람 손을 거쳐요. 하나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상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허리를 조금 더 들여보내고 얼굴에 모든 잡티를 없애고, 광대뼈를 깎죠. 포토샵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많이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포토샵으로 조작을 해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현실을 살고 있는 나의 이미지가 될 수는 없거든요.
사람들 눈을 홀리는 저 이미지들이 다 만들어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환상을 갖죠. 의료기술에 의해서 또는 내가 조금 더 노력한다면 저 이미지에 더욱 근접한 몸을 실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망에 시달리죠. 일종의 편집증 증상이에요. 거기다 자아실현, 자기이미지개선, 자기 관리, 자기개발논리까지 가세하게 돼죠. 아름답고 타인의 우러름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이 관리해야 된다고 하면서, 그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논리인 거죠. 신자유시대 자기개발논리로 수렴되는 거죠.
여기에 발달된 의료기술을 기반으로 한 성형산업과 건강산업이 건강이데올로기로 바뀌고 있는 측면이 있어요. 웰빙, 즉 건강한 몸의 좋은 삶, 참살이가 외모 담론과 얽혀가고 있어요. 성형, 외모 가꾸기는 왠지 도덕적으로 여전히 조금은 질이 떨어져보여도 경쟁력 있는 외모, 건강한 몸이라고 하면 좋아 보이고 유리하게 보이죠. 거기다 삶의 질, 생명윤리문제까지 얽히고요. 인간의 삶이 미디어에 얽매이고, 인간의 몸을 철저하게 이미지화시킨 거대한 담론이 거미줄처럼 사람들을 옭아매죠. 갈수록 여기서 자유로운 게 힘들어지죠.
따라서 내공을 쌓아야 해요. 자신을 개발하여 인생을 책임지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왜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밖에 하지 않느냐를 생각하자는 거예요. 사회에서 어떻게 웰빙 담론이 웰빙 산업으로 변질되고 있는가, 의료지식 생산체계가 얼마나 상업화되었는가도 같이 보고 함께 얘기해야 돼요. 여성 개개인에게 책임지는 문제로 환원이 되면, 거대한 산업이 사람에게 침투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가치판단을 만들어 내거나 저항하기가 힘들어지죠.
-킬힐이 유행하는데, 여성들이 신는 뾰족 구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생각으로는 하이힐이라는 것이야말로 안 신으면 좋은 거 중에 하나죠. 저는 하이힐을 신어본 적도 없고 그래서 경험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이 없어요. 저는 항상 운동화랑 단화만 신고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달리기 좋아하고요. 제가 확실히 아는 것은 하이힐을 신고서는 마음 편히 뛰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이힐 신는 느낌이나 이유를 잘 모르겠고,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의학 차원이에요. 하이힐을 신으면 불편하고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오니까. 통굽도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발바닥이 땅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땅과 몸의 교감도 그만큼 사라진다는 거 아닐까요.
물론, 키 작은 사람이 통굽 높은 구두나 하이힐을 신어서 키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겠다는 건 이해하지만 키 작으면 작은 대로 아름다움의 승인을 받는 사회구조가 되면 하이힐 신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요? 하이힐이 필수적으로 되는 그런 방식으로 미의 문화가 발달해온 것이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하이힐은 섹시이미지와 연결, 하이힐이 의무가 되거나 강제된 관습이 되면 문제”
하이힐은 섹시이미지와 연결이 되어 있어요. 하이힐, 트인 옷, 성적 욕망을 일으키는 표정, 이런 것들이 1920년대 할리우드 때부터 섹시 코드로 만들어지고, 관음증이 발달한 사진작가들이 끝없이 만들어 유포시키고, 또 다양한 이미지 매체들이 이것을 모방하고, 그러면서 바이러스처럼 퍼진 거예요. 하이힐 신어서 스스로 섹시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가능하면 하이힐 신지 않고,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다리가 짧으면 짧은 대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문화풍토가 마련된다면 하이힐 신는 풍토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끔씩 하이힐을 신을 수도 있겠지만 의무나 강제된 관습이 되지는 않을 수 있겠죠.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고 사람들은 지갑을 열어 이미지를 맞추려 한다 @오마이뉴스 조정숙
-브래지어도 짚어볼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브래지어는 어떻게 보시나요?
브래지어도 마찬가지에요. 운동선수처럼 엄청나게 많이 뛰고 움직이면 특수한 브래지어가 필요하겠죠. 출렁일 때 진짜 아플 테니까요. 운동하려면 가슴 때문에 고생하거든요. 가슴을 받쳐주는 특수화된 브래지어가 중요한데, 그런 쓰임새 말고는 별로 필요 없죠. 특히 브래지어 가운데 철사 힐이 들어간 브래지어는 몸에 되게 나쁘거든요. 그걸 잘 때 까지 해야 된다면 악몽이죠. 브래지어 없이 편하게 살면 좋겠죠.
브래지어가 여성의 섹슈얼리티, 성적욕망과 관련해서 문제가 되었던 시기가 있어요. 여성해방이라든가 여성 섹슈얼리티 해방 관점에서 상징적인 위치성을 가질 때가 있었죠. 미국 페미니스트들이 거리에 나와 브래지어를 태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나요? 브래지어 정도는 개인이 알아서 결정 내릴 단계라고 봐요. 여성 몸이나 섹슈얼리티 억압에 있어서 브래지어가 더 이상 그렇게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다고 봐요.
그러나 브래지어가 뷰티산업에 포섭되어 이상한 상업주의에 빠지는 건 진짜 문제죠. 놀란 게 브래지어 하나가 8만원, 20만원, 30만원 하는 거예요. 명품 이너웨어라고 해서 엄청나게 비싸요. 여기서 계급 문제가 생기죠. 저는 브래지어자체보다는 오히려 브래지어 뒤에 있는 상업주의가 더 문제라고 봐요. 브래지어가 기형적인 소비문화가 된 이유가 결국 뭡니까? 속옷들이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죠. 소위 ‘침대’에서 여성이 자신을 섹시하게 연출해야 하는 거죠. 그것 자체를 두고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에로틱이 왜 꼭 명품과 연결되어야 하느냐는 거죠.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섹스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유혹을 하는가, 유혹을 당하는가는 중요해요. 유혹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요. 유혹이 없는 섹스는 없어요. 문제는 소비문화와 겹쳐진다는 거죠. 몇 십 만 원짜리 속옷을 입어야 유혹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광고는 비싼 속옷을 입으라고 하는데, 사실 자기가 직접 만든 브래지어를 입어도 얼마든지 유혹할 수 있거든요. 결국은 성이 상업화되는 게 문제죠. 특히 명품소비와 연결이 되고, 그러면서 이상하게 계급감각을 유포시키는 거예요. 아름다운 여자는 섹시하고 섹시한 여자는 비싼 속옷을 입고, 비싼 속옷을 입은 여자는 자기관리를 잘 하는 여자고 그건 바로 능력 있는 여자다, 뭐 이런 식의 동어반복적인 순환논리가 작동하는 거예요. 여기서 해방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브래지어를 왜 입어야 하는지 여전히 논쟁할 수 있지만, 브래지어가 란제리룩이라고 해서 패션도 되고, 유행도 되는 상황이니까. 브래지어 자체보다는 오히려 유혹의 시나리오, 신자유주의시대 계급 가르기, 쓸데없는 방식으로 소비를 부추기는 방식에 대해 더 치밀하게 담론을 만들어야 될 거 같아요.
-외모지상주의가 날로 드세지는 한국에서 같이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웰빙이 계급화되고 있어요. 끊임없이 소비주의와 맞물리고 있고요. 외모 하나만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돼요. 건강하게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타인과 소통 잘하는 법은 무엇인지,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은 욕망 등 여러 구성요인을 종합해서 얘기해야 되는 거죠. 진짜 의미 있는 일 하면서 타인과 만나고 소통하면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겠죠.
돈에서 해방될 수 있으면 외모에 대한 집착이 적어질 거예요. 외모에 대한 집착은 결국 돈과 관련된 거거든요. 외모를 가꿔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고, 타인에게 호감을 삼으로써 사회승인을 더 받고 싶고, 이득을 보고 싶은 거죠. 더 넓은 의미에서 사회권 보장이 되면, 복지사회가 되면, 외모지상주의도 적어집니다. 문제 틀을 바꿔야 해요. 질문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했으면 해요.
어디서든 이미지들이 도사리고 있고 사람들은 거기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죠
상업자본이 움직이는 대중매체에서 쏟아내는 이미지 폭주, 날로 흐리멍덩해지는 삶의 질과 주체의식
속설에 이르길, 불황기에 스커트는 짧아지고, 굽은 높아진다고 하죠. 그래서 그런지 요즘 여성들의 구두 굽은 아찔한 지경이죠. “하이힐은 제 자존심이에요. 굽이 낮은 신발을 신으면 자꾸만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하이힐만 찾게 돼요. 매사에 자신감도 생기고 하이힐 덕분에 키가 커지는 기분이고, 또 날씬해 보인다”는 20대 여성의 예찬론처럼 많은 여성들이 뾰족구두를 반드시 신으려 하죠.
문제는 몸에, 그리고 여성들 이미지에 무척 안 좋다는 거죠. 남성과 키는 엇비슷해질 수 있으나 활동력은 더 처지게 됩니다. 일할 때 아무래도 움직임이 더디게 되죠. 또한 쫙 빠진 높은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걸을 때 당당함을 느낄 수 있는지 모르나 발과 발목, 거기다 허리에 엄청난 압력을 줍니다. 건강에 안 좋다는 거죠. 조금 더 섹시하게 남성에게 보이고, 여성으로서 자부심을 갖을지 모르나 잃는 게 많아 보이죠.
이런 불편에도 뾰족구두를 신는 이유를 사회생물학에서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남성에게 선택받고 다른 여성들에 견주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함이라는 사회생물학의 설명이 꼭 틀렸다고 할 수도 없죠. 뾰족 구두를 신으면 어쩔 수 없이 상체가 앞으로 나오고, 엉덩이는 뒤로 나오게 됩니다.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는 자세가 되죠. 남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뾰족구두를 신는다는 여성은 없겠지만 ‘강제된 선택’을 하게 하는 구조가 있지요.
외모가 자본이 되고 자본이 외모를 만드는 현대사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상업자본이 이미지 그물망을 던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갇혀 있지요. 상업자본이 좌지우지하는 대중매체에서 이미지들이 폭주하고 어마어마한 권력이 되었습니다. 그 영향력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죠. 사회가 정해진 외모만을 바라기에 사람들은 성형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죠. 사람들 지갑이 열리면서 외모산업은 더욱 커졌고, 보통 사람들 한 숨 쉬게 하는 이미지와 광고들로 사회가 도배되고 있지요. ‘외모계급사회’가 탄생한 거죠.
대중매체를 비판의식 갖고 바라봐야 한다고 해봤자 한계가 있지요. 사회 구조가 굳건한데 홀로 저항해도 ‘나’란 존재는 사람들 관계에서 구성되기에 개인은 취약할 수밖에 없지요. 포토샵을 통해서라도 자기 이미지를 조작하고자 하는 그 욕망과 그 배경을 읽어낼 필요가 있지요. 이렇게 해서라도 행복하다면 큰 문제가 없겠죠. 그러나 사진 속 이목구비는 또렷해졌지만 삶의 질이나 주체의식은 날로 흐리멍덩해지고 있습니다. 상업자본이 부추기는 이미지에 너무 사로잡힌 건 아닌지 돌아봤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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