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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반까지 대구스타디움으로 가니 늘 수고하시는 임원진들은 물론 많은 소명회님들이 와 계셨다.
날씨는 참으로 청명하고 햇살도 넉넉한 일요일이다.
소명회 부스엔 떡, 음료수, 과일상자들이 쌓여 있는데 그 중 포도는 꽃찌님이 찬조했다고 하네~
경산의 꽃찌님은 포도를 5박스나 사서 간밤에 그 많은 걸 다 씻어서 종이에 다시 싼후 아침 일찍 아저씨 차로 배달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경산역에 내리신 밀양마님 총무님을 먼저 태우고 옥산동쪽에서 소나무님까지 함께 모셔 왔으니 얼마나 바빴으랴.
작년에 이어 두해나 포도를 실어주신 꽃찌님 옆지기님께 표창장 드리고 싶네요~ㅎㅎ
작년엔 경산에 산다고 심부름 했는데 올해는 그냥 찬조하고 싶어서 용성까지 가서 직접 사 왔다니 그 마음이 참 대단하고
고맙기만 하다. 마지막 여름햇빛까지 보태어진 포도과즙에 온 입안이 달디단 미각의 즐거움과 함께 감동이고 감사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절에 다니는 자비성보살님이 본인도 참석하지만 우리 소명회를 격려한다고 또 포도한박스와 떡까지
들고 왔으니 풍성한 과일잔치로 그저 마음이 넉넉하고 잔치날다워서 더욱 좋았다.^^
(중략)
소명회 님들은 5㎞코스를 40분 미만에 거의 완주하고-신영일아나운서 진행으로
유방암 환우 가족의 수기낭독과 선물, 꽃다발 시상후-경품추첨 등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작년 나니맘 부회장님의 감동어린 수기에 이어 올해는 의성 뿡뿡이엄마님의 수기인데 글과 낭독은
꽃처럼 아름다운 꽃미남 아드님이 절절한 어머니의 투병과정과 사모곡으로 시종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에 모정과 사모곡으로 가슴 울리는 수기를 함께 첨부해 보았습니다.()()
나의 우상 어머니
박 찬 국
한일월드컵이 끝난 2002년 초겨울 아버지의 다급한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할머니 쓰러 지셨다…”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도착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거동도 못하시고 누워 계신 할머니 였습니다.
효심이 지극하신 어머님인지라 당신 곁에 모시며 간병을 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대소변도 받아내고 온갖 정성을 다해 간병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끄럽지만 저는 냄새 나고 더럽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도와드리지 못하고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당시 몸이 많이 허약해진 상태였는데 간병하시면서 힘든 것을 이것저것
도와 달라고 말씀 하실 때마다 이일 저일 핑계만 대고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당신 혼자서 할머니를 간병하던 어느 날 … 2003년 1월경이 였습니다.
어머니께서 당신 가슴이 뭔가 만져진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나중에 병원에 가보라고, 난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두어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머니가 제 방에 들어 오시더니, 아프시다고, 검사결과가 나와봐야 알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그냥 울고 계신 어머님을 멍하니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 말씀하셨을 때 다른 일 제쳐두고 병원부터 가시라고 했어야 했는데 아니 내가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리고 누워계신 할머니까지 원망 스러웠습니다.
할머니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였을 텐데 하고 말이죠
3월 28일 수술날짜가 결정되고 입원을 하는 와중에도 어머니께서는 아파서 거동 못하는 할머니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모님께 할머니를 부탁하고 모셔드리고 나서야 입원을 하셨습니다.
수술 당일 불안해하는 가족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시며 걱정 마라고 수술 잘 받고 나오겠다고
당신 몸 보다도 가족들을 더 걱정하시던 당신이셨습니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어머니 이름이 전광판에 표시되면서 수술중이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장순희님 수술 중”
그저 눈물만 흘렀습니다. 지금까지 자식들 잘 되기만을 바라시며 온갖 고생 마다 않으시고 이제 자식들 장성해서 편안하게 효도 받으며 그렇게 사셔야 하는데 왜 그런 힘든 병이 걸리셨는지 안타깝고 죄스런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나서야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보호자를 찾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수술 잘되었다고 말씀해주셨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걱정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항암치료를 계속 하셨습니다.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모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할머니 간병을 못하시겠다고 큰며느리인 언니가 모시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다시 할머니 간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항암 주사를 맞으시고 냄새가 역겨워 밥도 못 드시고 계속 구토를 하시면서도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시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말입니다.
자기 자식도 싫다고 버린 어머니를 딸도 아닌 며느리가 끝까지 보살피셨습니다.
그렇게 항암 치료하시면서 자신도 죽을 만큼 힘드시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까지 말입니다.
지금도 계속 치료 중이시지만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저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상황이였다면 할머니를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 어머니는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셨고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 하시는
헌신적인 모습은 아마도 보통사람은 해내기 힘든 일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건강이 회복되시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두를 다할 것입니다.
효도는 마음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실행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부터 말입니다.
지금까지 쑥스러워 한번도 제대로 말씀 드리지 못했는데 …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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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사랑은 가슴을 뛰게 합니다.' 2009핑크리본 슬로건이다.
가족사랑은 역경 속에서 더욱 애틋하고 빛나는 법..
항암중의 힘든 상황에서도 시모를 병간호, 걱정하셨던 장순희 뿡뿡이엄마님의 한량없는 자비심...
항상 말없이 고요한 성정의 인품은 수기에서 밝혀진 내용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그냥 가슴이 먹먹하니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고추, 마늘 등의 농사도 짓는등 바삐 힘겹게 사시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시라 더 할말이 없다..
사랑하는 아드님이 아직 미혼이라고 들었습니다.
뿡뿡이엄마님. 가족과 함께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 지소서.
사랑합니다. 소명회 님들 모두의 마음을 모아 '건배(健盃)'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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