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2011.9.13) 추석 연휴 때 친정을 갔다가 여동생의 제안으로 골목 투어를 하게 됐다.
언니, 동생, 형부, 남편, 엄마까지 옛추억을 떠올리며 청라 언덕을 지나 90계단을 내려와 상화 고택까지..
갑자기 투어를 하다 보니 사진은 남편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을 대신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구청에서 개발한 여러 코스의 골목 투어 중 우리가 간 코스가 "근대 문화의 발자취" 이며, 문화
해설사를 동반한 투어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중구 서야동으로 대구 토박이 아니면 잘 모르는 소위 성내에 살았다.
사실 아직도 친정은 시내지만, 옛 집은 아랫채가 뜯겨 건물로 바뀌었고, 유년의 행복했던 추억은 이제는 기억 저 너머
아득하기만 한데..
중구에 대한 향수가 남다른 우리 가족이기에 연휴 끝의 피곤을 무릅쓰고 다들 선뜻 옛 정취를 떠올리게 하는 골목
투어를 나섰지 싶다.
.
엘디스 리젠트호텔(구 동산 호텔)에서 동산 의료원 남문 출입구로 가는 길부터 골목 투어가 시작된다.
벽화를 따라 올라 가면 남문 우측으로 옛날 선교사들의 붉은 벽돌집이 고색창연한 옛모습을 간직한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의료 박물관, 선교 박물관으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담쟁이로 덮인 캘리포니아풍 전원주택의 멋진 외관이
주변의 조경과 잘 어우러져 이국적이고 고저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 푸른 담쟁이로 덮인 선교사들의 집을 보노라면 왜 청라 언덕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문을 지나 좌측 낮은 곳은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의 묘지로 쓰이는 공간이다.
100년도 더 전, 그들은 무엇을 위해 안락한 생활을 등지고 머나먼 이국에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려 했을까..
덧없는 삶에서 의미를 찾아 그 모든 가치의 위에 있는 더 높은사랑을 실천하느라 기꺼이 여기 묻혔을까..
우리 가족은 산책도 하고 여기 저기 둘러 보기도 하면서 선교사 집들 사이의 청라언덕에 올랐다.
봄에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필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맘에
백합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적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은상 작사, 박 태준곡 "동무 생각"에 나오는 청라 언덕은 바로 이 곳이고, 백합화는 계성고등을 다녔던 박태준이
등굣길에 만나 짝사랑했던 당시 신명여고 학생을 가리킨다나.
청라 언덕 위에는 청라 언덕비와 담장 없애기 운동으로 허문 동산 병원의 담장으로 세운 종각, 대구 능금의 효시로
보호수로 지정된 능금 나무도 있어 제법 볼거리가 되었다.
언덕 위에는 또한 제일 교회가 화강암 석재의 멋진 위용을 드러내며 서 있었는데..
약전 골목의 옛 제일 교회는 그 자리 그대로 한의학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단다.
우리는 청라 언덕을 넘어 3.1만세 운동의 역사가 서린 90계단을 내려 와 횡단 보도를 건너 계산 성당 쪽으로 갔다.
계산 성당 안에는 일제 때 대구의 유명 화가 이 인성 나무가 있다는데, 그 날은 미처 몰라 패스하고 말았다.
계산 성당 옆 건물의 벽면의 타일로 모자이크한 태극기와 이상화, 서상돈 두 인물상을 지나, 바닥에 새겨진 이상화의
시를 밟으며(?) 이동하면 어느새 옛 골목이다.
골목 입구의 벽에도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와 시인의 서 있는 모습이 실물 크기로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는 내 기억에 수성못에도 있고, 두류공원에도 있다.
또, 달성 공원에는 또 다른 이상화의 시 "마돈나 나의 침실로" 시비가 있다.
어떤 도시가 떠 오를 때 어떤 시인이 함께 떠오른다면 그 도시의 이미지는 참으로 싯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좁은 듯 옛 정취가 느껴지는 구부러진 골목, 바닥의 돌이며 선이 아파트에서 살아 직선에 익숙한 이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상화 고택(미소시티 (구 고려예식장)뒷편)은 추석 연휴라 관람이 불가라서 좀 아쉬웠다.
대구하면 또 국채보상 운동 아닌가. 근현대사 시험에 자주 나왔던..
그 유명한 국채 보상운동을 주도한 인물이 서상돈으로 가까이 그의 고택도 있었다.
플랭카드를 보니 매주 토요일 11시에 골목 음악회가 열린다니 시간내서 가보면 좋을 듯 했다.
생각보다 투어가 길어져 친정 엄마는 지쳐서 먼저 집으로 가시고, 우리 일행은 약전 골목의 옛 제일 교회를 지나 내친
김에 중앙통으로 향했다.
간만에 시내 나왔더니 인파가 대단했다. 특히 젊은 아이들이 연휴를 맞아 삼삼오오, 혹은 아베크족으로 웃고 떠들고..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사이 중앙통은 차 없는 거리로 바뀌어 길의 양 사이드에 물이 흐르도록 조경도 하고 벤치도 새로 생겨 옛날과는
확연한 변화가 있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나락까지 심어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한편 감탄했지만, 또 한편은 이 풍요의 시대에는 우리의 주식마저도 도시 조경과 그린 시티 운운하는 정치의 한 수단
으로 동원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야아, 우리가 좀 못 나와 본 사이 많이도 바뀌었네..
우리도 인파 속에서 시끌벅적 떠들면서, 피곤한 다리도 쉴 겸 봉산 문화 거리로 향했다.
커피샵에 자리를 잡고 어릴 때의 추억과 중구에의 향수를 얘기하며 즐겁게 골목 투어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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