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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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한국/88분/개봉 2013.9.5

보현화 2013. 9. 7. 19:28

 

뫼비우스 (2013

 

뫼비우스 포토 보기  

 

요약정보
드라마 | 한국 | 88 분 | 개봉 2013-09-05 |
감독
김기덕
출연
조재현 (아버지 역), 서영주 (아들 역), 이은우 (엄마 역)

 

김기덕 감독, <뫼비우스> 줄거리

 

남편의 외도에 증오심에 차 있던 아내는
남편에 대한 복수로 아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집을 나간다
남편은 자신 때문에 불행해진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하지만
결코 회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모든 원인이 된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고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그 결과 잠시 어느 정도 상처가 회복되지만
완벽하지 못하고 아들과 슬프게 살아가는데
어느 날 집을 나갔던
아내가 돌아오면서
가족은 더 무서운 파멸로 향해 간다

김기덕 감독, <뫼비우스> 작의(作意)
‘가족은 무엇인가
욕망은 무엇인가
성기는 무엇인가
가족 욕망 성기는 애초에 하나일 것이다
내가 아버지고 어머니가 나고 어머니가 아버지다
애초 인간은 욕망으로 태어나고
욕망으로 나를 복제한다
그렇게 우린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로 연결된 것이고
결국 내가 나를 질투하고 증오하며 사랑한다.’

이영화의 키워드 : 가족, 불륜

[ HOT ISSUE ]

#1. 2012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피에타> 이후
2년 연속 베니스 국제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전 세계 60여 개국 선 판매 기록하며 세계적 화제작 입증!
국내 최초 해외영화제 최고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피에타> 이후 <뫼비우스>를 통해 2년 연속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찾는 김기덕 감독. 2000년 <섬> 이후 <수취인불명>, <빈 집>, <피에타> 그리고 신작 <뫼비우스>까지 총 5편을 초청받으며 어느덧 5번째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김기덕 감독은 이로써 국내에서 역대 최다 진출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더불어 2004년 <빈 집>으로 은사자상(감독상), 젊은비평가상 등 총 4개 상을 수상한 이후 2012년 <피에타>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어 <뫼비우스>의 초청소식은 더욱 의미가 크다. 특히,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중 단독으로 초청된 <뫼비우스>는 해외 유력지인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151편의 작품 중 꼭 봐야 할 영화 TOP 10”으로 꼽히기도 해 화제를 모았다.
더불어 <뫼비우스>는 북미 최대 규모의 영화제인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마스터즈’ 부문에 초청되었다. 김기덕 감독은 지난 2000년 영화 <섬>(컨템포러리 월드시네마)으로 처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래, 2001년 <수취인 불명>(컨템포러리 월드시네마), 2002년 <나쁜 남자>(한국영화 포커스)를 비롯하여 2003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컨템포러리 월드시네마), 2004년 <빈 집>(컨템포러리 월드시네마), 2006년 <시간>(비젼), 2011년 <아리랑>(릴 투 릴) 등 거의 매 작품이 초청되었으며, 2012년 <피에타>가 마스터즈 부문에 초청된 이후 ‘마스터즈’ 부문에는 두 번째이자 토론토 국제영화제에는 9번째로 초청되는 성과를 냈다.

이러한 해외의 뜨거운 관심은 선 판매로 이어지며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뫼비우스>는 올해 제66회 칸 국제영화제 필름마켓에서 미완성 편집본 단 1회 상영만으로도 뜨거운 화제 속에 이탈리아, 독일 등 전 세계 60여 개국에 선 판매되는 쾌거를 낳았다. 더불어 상영 이후 ‘<뫼비우스>는 진지하고 용감하고 독창적인 김기덕 감독의 최고작 중 하나’, ‘<뫼비우스>는 김기덕 감독의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며 가장 멋지게 관습에 도전하는 순수한 영화’ 등 호평이 쏟아지고 있어 전 세계가 주목한 화제작임을 입증하고 있다.


#2. “가족은 무엇인가? 욕망은 무엇인가? 성기는 무엇인가?”
개봉 전부터 수많은 화제를 몰고 왔던 바로 그 영화!
이제는 당신이 확인할 차례!

두 번의 제한상영가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뫼비우스>.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개봉을 앞두고 김기덕 감독이 직접 연출의도를 밝혀 영화 팬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독일의 한 수학자의 이름이자, 선을 긋다 보면 결국 양면이 모두 만나게 되는 끊기지 않는 연결고리인 ‘뫼비우스 띠’를 의미하는 <뫼비우스>는 제목이자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가족의 초상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에 대해 김기덕 감독은 “모든 인간은 결국 욕망으로 인해 태어났기 때문에 결국은 가족이 모두 하나이며, 모든 인물들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움직이는 ‘뫼비우스’처럼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뫼비우스>로 제목을 정했다.”며 제목에 대한 의도를 밝혔다. 더불어 김기덕 감독은 “<뫼비우스>는 한 가족을 통해 가족은 무엇인가, 욕망은 무엇인가, 성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영화다. 한국사회의 윤리 안에서 성, 욕망이 음란하고 타락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지금, 그보다는 조금은 가깝고, 폭넓게 이해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 <뫼비우스>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18편의 걸작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드러내왔던 김기덕 감독. 그의 19번째 영화 <뫼비우스>는 그 동안의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논란을 가져온 작품임과 동시에 가장 거장 김기덕 감독만의 영화 색깔이 그대로 녹아있는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3. 김기덕 감독의 원조 페르소나 조재현부터
세계가 주목한 신예 서영주,
1인 2역으로 열연한 기대주 이은우까지!
무언(無言)의 연기로 완성된 완벽한 앙상블!
눈빛, 몸짓, 표정만으로 폭발적 에너지 발산하며 스크린 압도

2002년 <나쁜 남자> 이후 11년 만에 조우한 김기덕 감독의 원조 페르소나 조재현과 2012년 도쿄 국제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신예 서영주, 그리고 1인 2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길 기대주 이은우가 <뫼비우스>에서 호흡을 맞췄다. 특히, <뫼비우스>에서 오직 눈빛과 표정연기, 몸짓만으로도 세밀한 심리묘사와 완벽한 연기호흡을 선보인 배우들의 탁월한 무언(無言) 연기력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악어>(1996)를 시작으로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 <섬>(2000), <수취인불명>(2001), <나쁜 남자>(2002), 올해 <뫼비우스>까지 총 6편의 작품에서 김기덕 감독과 호흡을 맞춘 조재현은 <뫼비우스>에서 ‘아버지’로 분해 한 남자의 복합적인 감정과 절절한 부성애를 선보일 예정으로 원조 페르소나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조재현은 김기덕 감독에 대해 “오랜만에 뵈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점이 없으셔서 좋았는데 대신에 작업속도는 더 빨라지셨다. 하지만 완성본을 보고나니 감독님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만드셨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소감에 대해 밝혔다.
조재현의 ‘아들’ 역인 서영주는 첫 주연작 <범죄소년>을 통해 작년 도쿄 국제영화제, 씨네마닐라 국제영화제에서 해외영화제 국내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신예로 두 번째 주연작인 <뫼비우스>를 통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진출하는 영예를 안았다. <뫼비우스>에서 아버지의 과오로 인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한 서영주는 “<뫼비우스>는 힘든 작업이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연기력에 대한 한계를 확인하고 싶었다.”며 성인 연기자 못지 않은 열정을 드러내 차세대 연기파 배우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은우 역시, <뫼비우스>에서 ‘어머니’와 ‘또 다른 여자’ 1인 2역을 맡아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했다. 극 중에서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이 많았던 이은우는 “눈빛, 몸짓 등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부딪히면서 연기하는 경험이 재미있었다.”며 신인 연기자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 촬영현장에서 박수를 받기도 했다. 상반된 모습의 2명의 캐릭터지만 ‘욕망’ 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마치 한 덩어리의 여성으로 보이는 이은우의 열연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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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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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글

 

 http://bbs.movie.daum.net/gaia/do/movie/detail/read?articleId=239723&viewKey=detail&bbsId=review1&searchKey=meta&t__nil_TotalReview=tabName&searchValue=1%3A79070&pageIndex=1&t__nil_TotalReview_total=text

 

짤린다는 공포, 거세와 필름 [2]

  • 양진석 
  • 추천 1 | 조회 4205 | 2013.09.0

 

 

 

영화를 만들었다하면 영화제 수상 소식 아니면, 영화 내용이 제한상영가에 준하다며 모진 이슈를 만들어낸 김기덕 감독의 열아홉 번째 영화 뫼비우스가 두 가지 측면에서 관객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이번에도 베니스 영화제에 공식초대를 받았다는 사실과 영등위와의 갈등으로 하마터면 한국에선 구경조차 하지 못할 뻔 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당연하고 알음알음 외부로 공개된 내용을 짜 맞추며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 영화가 드디어 공개되었다.

남편의 외도에 아내는 칼을 들어 남성의 상징인 남근을 자르려 했고 미수에 그치자 이번엔 자고 있는 아들의 그것을 싹둑 잘라버렸다. 아내는 집을 나가고 남겨진 아버지와 아들은 황망하게 빈자리를 채워보려고 한다. 그러나 없어진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한 노력은 세상의 눈에 의해 수포로 돌아간다.

 

 

영화 뫼비우스는 성욕만큼 성기에 집착을 한다. 물론 여성의 그것이 아닌 남성의 성기다. 일부 성인영화에서도 남성의 성기는 금기다. 당연히 이 영화에서 성기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잘려진 성기가 형체가 불분명한 상태로 돌아다니긴 하지만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의 남성 성기에 대한 집착은 성기가 주는 남성성에 달려있다. 설사 성생활을 하지 않아도 성기의 존재는 바로 그 남자의 사는 이유라고까지 말하며, 중국 역사가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기부여도 궁형으로 소실된 남근때문이라고 까지 하지 않던가. 더불어 남성 성기에 대한 집착은 1인 2역으로 나오는 여자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남편의 외도에 대한 분노를 성기 절단으로 앙갚음하겠다는 의도와 나중에 아버지의 성기를 아들에게 이식했다는 사실을 알고 갑자기 돌변하는 엄마의 행동도 남근주의에 대한 추종에 다름 아니다.


 

이 영화는 화면상으로는 여성의 상반신 노출 정도가 가장 야한 장면이라면 그 과정에 이르기 까지 캐릭터들의 관계와 설정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 전부터 걱정의 눈초리를 보냈던 근친에 대한 묘사는 직접적이라기보다 몽환적이다. 꿈을 만들어 꾸는 경우는 없다. 무의식 속에서 보이는 것들에 대한 필터링이라고 보면 그만이다.

김기덕 감독이 아쉬워 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더 큰 논란거리가 될 부분은 따로 있는데 본인들의 개인적 가치관만 놓고 화면의 그것들이 직접적인지, 아니면 비유적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영화도 이른바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예술을 의미하는 아르 브뤼 사조에서 맴을 돈다. 일견 거칠고, 야수적이고 격리되어 존재해야 할 것 같은, 그러면서도 대중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컨텐츠들. 김기덕 감독 작품들의 연속적인 이런 작업들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반복되고 있다. 그에게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를 요구하느니, 차라리 우리의 윤리적 사고의 테두리안에서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영상으로 옮겨달라고 읍소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자신을 윤간한 남성들에게 복수하는 방법으로 역시 성기절단을 선택한 구멍가게집 여자의 행동이나 성기가 잘린 뒤 대체 방법으로 성욕을 느끼고자 하는 남자들의 엽기행각들 역시 성기 부재로 오는 심리적 병인(病因)으로 보인다.

이렇게 성욕과 성기에 집착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80여분을 채운 영화 뫼비우스가 그럼 결정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가족의 해체와 결합? 남근을 가진 종족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사회의 통념에 대한 일갈? 그것도 아니면 남성성의 결핍이 심화되면서 야기되는 無性性의 사회분위기?

 



 

 


 

http://bbs.movie.daum.net/gaia/do/movie/detail/read?articleId=239809&viewKey=detail&bbsId=review1&searchKey=meta&t__nil_TotalReview=tabName&searchValue=1%3A79070&pageIndex=1&t__nil_TotalReview_total=text

 

고통의 사슬을 끊고 구원을 찾다 스포일러

  • Tramper 
  • 추천 3 | 조회 352 | 2013.09.06

 

 

 

 

※ 스포일러 있습니다.

 

1. 끝없이 반복되는 성기 학대 서사

  <뫼비우스>는 한국 관객에게 그 모습을 보이기 전에 인터넷 기사로 먼저 찾아왔다. 기사들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였다. 하나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제한 상영가 심의를 받아 가위질을 하지 않는 이상 국내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는 것. 사실상의 사형 선고였다. 영화가 어디까지 나가게 될지는 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뫼비우스>는 끝까지 나아간다. 이 영화에서 남자들의 성기는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 칼로, 총으로. 위협만 가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실제로 잘리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아예 분쇄되어 지상에서 사라지기까지 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위협 받고 잘리고 붙고 다시 잘리고. 이 성기 학대극은 끝 모르고 계속 반복되는 까닭에 마지막에 가서는 아랫도리에다가 총구를 갖다 대도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심드렁해진다.

 

  <뫼비우스>는 과연 문제작임에 틀림없다. 거세의 위협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것은 태곳적부터 그러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소위 사람의 본능 같은 것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거세의 위협까지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영화는 아마도 이 영화 밖에 없을 거다. 이 영화가 만약 삭제되지 않고 관객들 앞에 섰을 때 관객들이 가장 오싹해 해야 마땅한 지점은 성기가 잘리고 근친상간을 하는 장면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공포조차 무화시켜 버리는 성기 학대 서사의 무한 반복에 있다. 물론 이 영화가 이토록 성기 학대에 집착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통 속에서 살면서도 죽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생을 이어가는 슬픔. 존재를 지우고 싶지만 목숨을 끊을 수는 없어서, 엄마(이은우 분)는 돌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후려치는 대신에 거울에 집어 던지고 아들(서영주 분)은 권총을 들어 머리를 겨누는 대신 성기를 쏜다. <뫼비우스> 읽기는 이들의 슬픔을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 남근을 넘겨주는 남자, 남근을 따라가는 여자

  영화의 처음. 아버지는 여자친구(이은우 분)를 만나 섹스를 하고 이 장면을 엄마와 아들이 목격한다. 그날 밤에 엄마는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려다가 실패하고, 대신에 아들의 성기를 자른다. 아무 관련도 없는 아들의 성기를 자르다니 좀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이후 아들의 행적을 쫓다 보면 이러한 전개는 뜬금없지 않고 자연스럽다. 아들은 아버지의 여자친구를 만나 섹스를 하고 엄마가 돌아왔을 때 엄마에게 성욕을 느낀다. 아버지가 몇 번은 거쳐갔을 코스를 그대로 거쳐가고 있는 아들의 모습. 아들은 아버지의 인생까지 복사하듯 살아가고 있다. 엄마에게 아들은 아버지의 분신이자 다음 비극을 만들어 낼 사람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는 데에 실패하고 엄마는 아들의 성기를 자른다. 모든 비극이 남자의 성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들의 성기를 자른 반면, 아버지는 성기를 잃은 아들에게 성기를 이식시켜 줄 방법을 궁리한다. 그것이 자신이 사는 유일한 목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버지는 아들에게 성기를 이식시켜 주는 방법을 찾는 데에 집착하고, 여기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댄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는 방법을 찾고 자신의 성기를 아들에게 이식해 주는 데에까지 성공한다. 그러나 아들의 몸에 가서 붙은 아버지의 성기는 제때 발기하지 않다가 돌아온 엄마를 보고 발기하고, 엄마는 그 뒤로 매일 밤 아들의 방을 찾는다. 아들에게 남근을 심어주려던 아버지는 막상 아들이 자신의 남근을 달고 아내를 빼앗자 눈이 뒤집힌다. 밤마다 엄마가 아들의 방으로 들어갈 때 아버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젊은 남자에게 아내를 빼앗긴 늙은 남편처럼 보인다. 하지만 억울해도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남근을 물려주기 위해 존재했는데, 때마침 그 일이 끝났으니 아버지는 죽어야 한다.

 

 

3. 자식에게 생의 고통을 전가하다

  아버지와 엄마, 아들 사이에서 성기와 애정이 오가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이 영화는 갑자기 어느 순간 다른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기를 이식시켜주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던 중에 뜬금없이 찾은 정보. 성기 없는 쾌감. 쾌감이 번식에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성기가 없는 이상 번식은 불가능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하는 것은 번식이 가능한 성기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번식 없는 쾌감을 알려주는 장면은 맥락상 좀 뜬금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 장면만큼 중요한 장면이 또 없다. 사람이 섹스를 하고 자식을 낳고 남근을 물려주는 것이 왜 비극인지를 이 장면에서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인터넷에서 찾은 성기 없는 쾌감의 내용은 이렇다. 거친 돌로 문질러 피부를 망가뜨리고 찾아오는 고통을 참으면 잠시 뒤에 황홀경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단, 쾌감이 끝나면 다시 어마어마한 고통이 다시 찾아온다. 오랜 고통을 참으면 잠깐의 희열이 찾아오고 그것이 지나가면 다시 오랜 고통의 늪으로 빠져버린다는 것은 이 영화가 생(生)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이라는 것. 사람은 섹스할 때에 쾌감을 느끼지만 이것은 영원한 고통으로부터의 일시적 도피다. 그런데 이 도피 과정 중에 자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자식도 결국에는 부모와 같은 생의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니 섹스를 통해 자식을 낳는 행위는 생의 고통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도피하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사고의 전개는 영화 안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교도소 독방 신. 이 장면에서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대로 피부를 벗겨내고 고통 속에서 찰나의 쾌감을 느낀다. 이때 그가 머물던 교도소 독방은 흡사 자궁처럼 보인다. 이곳으로부터 벗어날 때 아들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교도소에 갇히기 전에 아들은 아버지의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지 못했다 (건달들이 여자친구를 강간할 때 아들은 시늉만 했다). 하지만 출소한 뒤에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는 섹스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아들의 어깨에 칼을 꽂고 손잡이를 흔든다. 이때 아들은 고통 속에서 쾌감을 맛본다. 이 행위는 그야말로 '섹스'다. 아버지로부터 쾌감을 얻는 방법을 배우고 자궁 같은 교도소 독방을 벗어났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낳았고, 이제 아들은 섹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섹스의 쾌락 뒤에 훨씬 더 크고 긴 고통이 이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4. 고통의 사슬을 끊는 방법

  아들의 성기를 자른 엄마는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맨다. 이때 그녀가 발견하는 장면. 한 스님이 불상에 랜턴 불빛을 비추고 그 앞에서 절을 하고 있다. 엄마는 지금 생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구원의 손길을 찾고 있다. 영화의 맨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들의 성기를 자르기 위해 엄마가 칼을 집는 곳. 부처의 두상 아래. 엄마는 지금 칼로 아들의 성기를 자르는 것이 모든 비극을 정리하고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의 성기를 자름으로써 그의 성기를 통해 다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막는 것. 번식의 사슬을 끊는 것이 태어날 아이들을 구원하는 방법이라고 보는 것 같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기를 잘라서 피가 잔뜩 묻은 그 칼을 다시 부처의 두상 아래에 둔다. 아들의 성기를 자른 엄마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칼을 묻어 두었던 부처의 두상이 영화 마지막에 바닥에 뒹구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영화는 이 가족을 구원하기를 포기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권총으로 성기가 아닌 머리를 쏘아 자살한다. 엄마의 자궁 밖에서 사는 것은 때로 쾌감을 선사하지만 대개는 고통을 준다. 아들은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싶지만 죽을 수는 없어서, 자신의 머리를 쏘는 대신 성기를 쏜다. 이제 그의 성기를 통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아이들은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고통의 사슬을 끊었고, 그는 남은 생을 부처의 두상을 바라보며 구원을 찾는 데에 바친다. 아들은 엄마가 거리에서 만났던 그 스님처럼 불상을 앞에 두고 절을 한다. 결과적으로 아들이 바라보고 절을 하던 가게의 진열장에는 불상이 하나 더 늘어난 셈. 결국 불상들로 빼곡한 이 진열장은 다 이처럼 불상들이 하나하나 모여 만들어진 것일 터이다. 진열장을 가득 채운 이 불상들이 다 생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처럼 보여 마음이 아프다.

 

 

5. 놓을 수 없는 구원의 끈

  왕가위 감독의 모든 영화가 고독을 말하는 것처럼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기덕 감독의 모든 영화는 구원을 말한다. <피에타>가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의 옷을 입고 그 안에서의 구원을 갈구하는 영화였던 것처럼 <뫼비우스> 또한 같다. 현실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한 곳이고 그 고통이 반복되는 곳이다. 이 안에서 우리는 목숨을 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잘 살아볼 만한 용기도 쉽게 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구원받고 싶다는 것. 부모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다시 부모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고통의 사슬을 끊고 구원을 찾는 것이 <뫼비우스>를 관통하는 서사다.

 

  <악어>가 만들어진 것이 1996년이니 김기덕 감독은 그 후로 17년이나 영화를 만들었다. 17년이나 구원을 찾고도 <뫼비우스>에서 또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이 정도면 애초에 구원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해 볼 법도 한데 참 끈질기기도 하지. 언젠가 구원받고 편안해 질 수 있을 거라는, 그가 여태껏 놓지 못한 기대의 끈을 나도 속는 셈 치고 다시 한 번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