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宿命)
정희돈(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이른 아침 뜰에 나가 간단한 체조를 하고 모퉁이에 있는 채소밭에 물을 주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집 뒤를 한번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돌아서다가 그만 미끄러져 다리 얼굴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아내로부터 그만한 것도 다행이란 위로의 말과 조심하지 않았다는 핀잔을 듣고는 거실에서 우선 치료를 하며 가만히 생각하니 부주의로 발을 헛디딘 것이 원인이지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났을까? 만일 얼굴이 부딪친 장독 뚜껑이 아크릴재질이 아니고 사기그릇이였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이 조그만 일에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불의의 일이나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그 끝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불안하고 또 억울해 한다. 모진 병에 걸린 환자는 대부분 하필이면 내가 왜? 한다고 하지 않은가. 이럴 때 드물게 자기의지로 극복하려고 하지만 대부분 아예 포기하든가 아니면 어떤 절대자에게 한번 구원을 바라기도 한다. 이것이 종교의 출발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젊었을 한때 미래가 불투명하고 삶이 어려울 때 앞으로 10년 후에 내가 어떤 존재로 있을까 하는 생각을 더러 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일어난 일들과 만난 사람들 가운데 지금 와서 생각해도 정말 우연이었던 것들이 오히려 훗날 내가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을 생각하면 정말 모를 것이 인생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모두 숙명이였을까?
만일 나의 운명이 어떤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인생이란 마치 기차가 레일을 따라 가는 것과 다름 없다. 나는 그저 기관사처럼 내 몸뚱이인 기차를 운전은 하지만 레일을 벗어날 수는 없다.
나는 여기서 우리는 전생의 업에 의해서 정해진 그 과보대로 살아간다는 말과 이 세상에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 는 말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면 묘한 괴리가 있음을 느낀다. 즉 만일 숙명이 있다면 이 숙명도 변할 수 있는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숙명이 아니지 않은가. 더 이상 사고의 진전이 없는데 다행히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는 다윈의 진화론이 떠오른다. 진화한다는 것은 결국 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윈은 금년이 출판 150주년을 맞는 종의 기원에서 모든 생물은 살아남기 위하여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해 가며 변화해 간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여 그 증거를 발표하였다. 즉 자연에 선택을 받은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선택을 받기 위하여 부단히 변화하는 즉 진화를 해야 한다. 그러면 그 진화를 일으키는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유전자이다. 생물의 운명은 암수에 의해서 유래되는 유전자조합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 유전자는 너무나 이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R.도킨스의 말이다. 그런데 이들 유전자는 조합될 때의 환경의 차이에 의해서 모두 다른 조합을 갖게 되므로 각기 다른 숙명을 타고 태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은 모두 변한다는 말은 거짓인가? 이 말이 맞다고 하면 변하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런데 이 변화는 당사자 또는 어떤 개체가 당장 그 당대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대를 거쳐 수많은 시공을 지나면서 서서히 변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당장 나의 경우를 봐도 급하고 욱하는 성격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이 들어 조심하고 억제하며 얼마간 숨기고 있을 뿐이지 그 성격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숙명이지만 대를 거치면서 변할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 숙명과 관련이 있는 것이 윤회다. 우리의 업식(業識)이 지문처럼 절대로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이건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다. 사실 생물의 한 종(種)은 그 생물이 살아있는 한 면면히 대를 이어 그 유전자가 이어져 내리는 것이다. 이것이 윤회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어떤 시점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당사자가 봤을 때 자기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난 것이니 이건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선조로부터 이어져 온 유전자를 생각 못하고 말이다. 가까이는 유전병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종교고 기도고 뭐 다 필요 없는 것 아닌가? 그저 숙명대로 살면 된단 말인가. 모두가 그렇게 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너나없이 숙명을 바꾸어 보려고 그렇게 살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것도 유전자의 명령이고 숙명이다. 우리의 가치관이 모두 다른 것은 유전자의 차이 때문이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관이 자꾸 변하는 것은 유전자와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말하는 근기(根機)란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타고난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유전자다. 이 유전자의 변화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교배(유전자 조작도 포함)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요인은 이 유전자의 능력발휘는 물리 화학적 자극에 의해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선이나 간절한 기도들이 체내에 화학적 자극을 유발한 어떤 물질을 생성시키든가 또는 방해되는 물질을 제거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한 가능성은 이미 질병의 치료나 유발에 대해서는 증명되었지만 종교적 깨달음이나 지혜의 밝아짐과 같은 것은 아직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자료가 부족하다.
끝으로 한가지 숙명과 관계 있는 것이 인연 즉 만남이다. 인연은 어떤 일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연히 만난 사람 사건 사고 시간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만남은 나 혼자 즉 나의 유전자만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없고 반드시 상대가 있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그 상대와 나의 유전자는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이 모든 만남이 알지 못하는 소위 숙연(宿緣)에서 비롯되었단 말인가! 인연에 우연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없는가? 아니면 모두가 필연이란 말인가! 숙명은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을 말하는 것이다. 한 생명체의 숙명은 그 주체가 사라진 후에야 짐작할 수 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 앞에 앉은 나이든 여인 둘의 대화. 아이고! 그래 어쩌지. 위로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내가 박복해서 그렇지’. 모두가 다 내 팔자지 뭐! 옆의 여인. 팔자도 내 하기 달렸다고 하지 않나. 열심히 살다보면 다 지나간다. 팔자가 무슨 소용 있는데.
그래! 팔자라! 숙명? 그 본체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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