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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보현화 2014. 8. 17. 04:26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5525.html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한국이 언제부터 잘살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부터라고 대답한다. “1988년부터 한국의 중산층이 자기 자동차를 갖게 되었고, 외국 나들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이 열린 1964년부터,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2008년부터 잘살았다고 봅니다.” 이어서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부터 한국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1990년대의 경제 위기를 이겨낸 한국은 2002년부터 망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고, 한국의 대기업이 세계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간추려서 한국은 올림픽이 열린 1988년까지 후진국이었고, 월드컵이 열린 2002년부터 선진국이 되었다. 그사이의 1990년대에는 중진국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국의 해부학 실습은 1990년대에 중진국 병을 앓았다. 후진국에서는 무연고 시신을 해부하고, 선진국에서는 기증 시신을 해부한다. 1990년대에 한국은 무연고 시신도 기증 시신도 없었기에 중진국 병을 앓았다고 본 것이다. 1구의 시신을 4명 내지 8명의 학생이 해부하면 바람직한데, 1990년대에는 1구의 시신을 20명 내지 50명의 학생이 해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생이 직접 해부할 수 없었고, 해부한 시신을 볼 수만 있었다.

1990년대 전에는 무연고 시신이 많았다. 무연고 시신은 가족이 없는 시신을 뜻하며, 가족 대신에 공무원이 시신을 처리하였다. 처리하는 방법의 하나는 시신을 의과대학으로 보내서 해부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가족이 나타나서 공무원한테 거칠게 따지는 일이 생겼고, 따라서 시신을 의과대학으로 보내지 않게 되었다.

의과대학 학생은 시신을 해부하면서 해부학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의학을 눈과 손으로 익히는 방법, 말을 짜임새 있게 하는 요령, 동료를 아끼는 우정,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성도 배운다. 모두 의사한테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해부 시신이 없으면 좋은 의사를 만들 수 없고, 이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사회문제이다.

그래서 1990년대에 해부학 선생은 중진국 병을 치료하려고 애썼다. 시신 기증이 왜 필요한지 말과 글로 부지런히 알렸다. 애쓴 덕분에 이름난 분이 돌아가시면서 시신 기증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언론으로 알려졌다. 장기 기증뿐 아니라 시신 기증도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한편 1990년대에는 돌아가신 분을 그대로 땅에 묻지 않고 화장하는 집안이 부쩍 늘었다. 화장할 것이라면 기증한 다음에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의과대학에서 해부한 시신을 화장하고, 원하는 유가족한테 유골을 드린다는 것도 알려졌다.

한국은 뭐든지 빨리 바뀌는 나라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선진국이 된 덕분인지, 각 의과대학에 시신 기증이 갑자기 많아졌다. 바람직하게도 1구의 시신을 4명 내지 8명의 학생이 해부하게 되었다. 내가 속한 의과대학은 시신 기증이 많아서 고민이다. 시신을 보관하는 냉장고보다 많은 시신을 기증받을 수 없어서, 살아 있을 때 의과대학에 와서 유언하고 등록한 분만 기증받고 있다. 시신 기증도 무턱대고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그렇다면 해부학 선생도 죽은 다음에 자기 몸을 기증하는가? 옛날에 나는 기증해야 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기증을 권하는 해부학 선생이 기증하지 않으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대머리를 치료하는 의사가 대머리인 것과 뭐가 다릅니까? 또는 자동차를 파는 사람이 다른 회사의 자동차를 사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러나 요즘 나는 꼭 기증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해부학 선생이 기증하면, 잘 아는 동료가 1년 동안 고정, 보관, 해부, 화장을 하면서 잇달아 보고 만져야 합니다. 굳이 동료를 괴롭혀야 되겠습니까? 다른 의과대학에 기증해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 누구한테나 시신 기증을 억지로 시키면 안 된다. 가족, 동료와 상의한 다음에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시신 기증에 관해서는 이제 한국도 선진국이 되었으니까, 느긋하게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궁금한 것이 있다. “평창 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부터 한국의 경제와 해부학 실습은 또 어떻게 바뀔까? 더 좋은 선진국으로 바뀌겠지? 아니면 그때부터 진짜 선진국이 되겠지?”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