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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영국 할머니, 왜 스스로 죽음 택했나
주간경향입력2015.08.12. 09:35
그는 죽기 전 언론을 통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평생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면서 항상 ‘난 늙지 않겠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해 왔다. (늙는다는 것은) 암울하고 슬프다.”
이달 초 스위스에서는 70대 건강한 영국 할머니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은 간호사 출신인 75세 질 패러우다. 패러우는 지난 2일 바젤에 있는 라이프서클이라는 안락사 병원에서 자기 요구대로 주사요법을 받고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된 나라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이 안락사를 받는 경우는 적지 않았지만 패러우처럼 치명적인 병에 걸리지도 않은, 비교적 건강한 사람이 죽음을 택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병환은 보통 수준의 약물치료, 간헐적인 허리 통증, 약간의 이명 정도가 전부였다. 마음만 먹으면 상당 기간 더 살 수 있는 그는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질 패러우(오른쪽)와 남편 존 사우스홀이 밝은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이 사진은 패러우의 사망과 함께 영국과 스위스 언론에 일제히 게재됐다. 사진을 찍은 시점은 올해 초로 보인다. / 텔레그래프 웹사이트 캡처 |
호스피스 완화 의료전문 간호사 출신패러우는 한마디로 늙은 게 싫었다. 그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전문 간호사 출신이다. 오랫동안 병든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을 돌보면서 관련된 책도 두 권을 써냈다. 노인들을 돌보는 방법과 함께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는 치료를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근본적인 치료가 안 되는 상태에서 일시적인 처방으로 연명하는 노인들의 처참한 모습, 갑작스런 발작을 겪은 뒤 안쓰러운 상태로 10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괴로웠다. 그는 죽기 전 언론을 통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평생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면서 항상 ‘난 늙지 않겠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해 왔다. (늙는다는 것은) 암울하고 슬프다. 끔찍하다. 나는 이제 막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 앞으로 내려가기만 할 뿐 더는 좋아지지 않는다. 보행기로 앞길을 막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다. 70살까지 난 매우 건강하다고 느꼈고, 원하는 어떤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여전히 바쁘고 쓸모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고 난 후에 모든 게 바뀌었다. 비록 지금 건강해도 내 삶이 다했고 죽을 준비가 돼 있다.”
2년 전 신문 기고를 통해서는 병든 노인 문제를 현실적으로 지적했다.
“노인들이 사회에 짐이 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도 병든 노인들을 돌보다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병든 노인들은 정신적으로 이상하고, 신체도 무기력해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며, 심지어 찾아오는 방문객도 없다. 나는 너무 늦기 전에 이들에게 평화를 주기 위한 처방전을 써주고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대소변이 나오고, 욕설을 서슴지 않고, 주는 밥을 먹고 방 안만 돌아다니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쓴 ‘내 마지막 말’이라는 글에서도 비슷한 심정을 토로했다.
“매일매일 나는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마지막 무대에 이르는 자연적인 노화를 따르고 싶지 않다. 내 자녀들의 도움에 의존한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걸 상상하면 너무 괴롭다. 자녀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사는 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인 발상이다. 미래에는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 조치를 취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미리 행동에 옮기려고 한다.”
그는 스위스로 가기 전에 아들과 딸에게 자기 결심을 알렸다. 자녀들은 고민 끝에 엄마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딸은 “이성적으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25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남편 존 사우스홀(70)도 처음에는 거부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내의 뜻을 존중해 함께 죽음을 준비했다.
WP “안락사에 대한 토론에 불 지폈다”
장례식 준비까지 마친 패러우는 남편과 스위스로 갔다. 죽기 전날 라인강변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남편은 “아내는 몇 년 동안 이를 준비했다”며 “분위기를 너무 감정적이거나 무겁게 만들어 마지막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마지막 순간 모든 게 고요했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런던타임스에 따르면 패러우는 죽기 바로 직전 의사와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심리적으로도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안락사를 도운 마이클 어윈 박사는 “사람들은 패러우가 좋지 않게 늙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게 잘못됐다고 말할지도 모른다”면서 “그러나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면서 고통스러운 경험을 너무 많이 한 그는 이성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선수를 치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안락사가 금지된 영국에서는 최근 패러우처럼 안락사와 안락사 지원이 허용된 스위스로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2008∼2012년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611명 중 5분의 1은 영국인이다. 남편 존은 “만일 아내가 미래에 자신을 불구자로 만드는 발작을 겪을 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사전 의료지침서를 영국에서 쓸 수 있었다면 아내는 발작에 대한 공포에 떨지 않고 조금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렀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페러우의 죽음은 영국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돼온 안락사에 대한 토론에 불을 지폈다”고 전했다.
영국에서 논란이 이어지자 스위스 검찰과 안락사 관련 단체들은 패러우의 선택을 옹호하고 나섰다. 에리카 프레지크 라이프서클 회장은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만 살아온 그녀는 몇 년 전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았고, 청력과 거동에도 문제가 있었다”면서 “그녀는 자신이 원한 것보다 더 오래 살면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성격의 재단인 엑시트 제네바 역시 “패러우의 결정과 라이프서클의 안락사 지원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바젤 검찰청의 피터 질 검사는 “사심 없이 타인의 안락사를 돕는 것은 스위스 법률상 처벌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
스위스는 1942년 이래로 안락사가 법적으로 보장됐다. 환자가 처방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전제다. 자국 국민이 아니어도 안락사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자살여행’과 같은 게 생기는 이유다.
뉴헬스가이드(newhealthguide.org)에 따르면 벨기에는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을 2002년 9월에 만들었다. 의사 2명이 개입해야 하며, 환자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땐 심리학자도 포함돼야 한다. 약물과 주사요법이 모두 가능하다.
콜롬비아 대법원은 2010년 말기 불치병 환자로 안락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그의 생명을 끊는 데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법원은 에이즈, 신장·간 기능 마비, 암,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상황 등을 허용범위로 규정했다. 루게릭, 알츠하이머, 파킨슨병은 제외된다.
인도는 수동적인 안락사만 합법화됐다. 영구적인 식물인간 상태에 처한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식이다. 아일랜드도 능동적인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원할 경우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아이리시타임스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57%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합법화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멕시코도 수동적인 안락사만 허용돼 있다. 말기에 의식이 없는 환자 또는 그의 가까운 인척이 치료를 거부하면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와 의사의 도움을 받는 자살 모두 합법화됐다. 법률은 2002년 통과됐지만 법원은 1980년대부터 이 같은 관행을 허용했다. 의사도 죽음을 원하는 환자를 살려야 할 의무가 없다. 네덜란드 법원은 20년 넘게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를 기소한 적이 없다.
<김세훈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hkim@kyunghyang.com>
댓글들
배현철 | 그 사람의 인생이다,그 사람의 결정이고,,난,찬성한다,2015.08.12 10:08 |
가시나무 | 저도 70에 스위스 여행을 꿈꾸는 일인입니다. 할머니로 인해 결심이 더욱 굳어집니다. 조금이라도 건강할때 순전히 나의 의지로 인생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미소 지으며 작별 인사하고 편안히 가고 싶네요. 존엄사할 귄리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안락사를 허용하면 멀리까지 가서 굳이 생을 마감하지 않아도 되는데 ~2015.08.12 11:15 |
mmmm | 안락사 하려면 스위스까지 가야 하나. 약물과 방법만 좀 알려주라.2015.08.12 10:11 |
쎈다이김 | 요양병원 가면 죽을 날만 기다리고 누워 있는 노인들을 보게 된다. 처참하다. 그녀의 선택에 천배 만배 찬성한다2015.08.12 10:15 |
나도 이 할머니의 결정을 절대적으로 존중함.어디로 가야하는 건지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 하루 이틀 더 늦게 가려고 아둥바둥하느니 차라리 이 양반처럼 자기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함.2015.08.12 10:16 | |
찬성입니다. 태어날 선택은 없었는데 죽음만이라도 선택하고 싶네요.2015.08.12 10:15 | |
너무 슬퍼하지 말라....삶도 죽음도 자연의 일부이다....2015.08.12 10:14 | |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할수 있을만큼의 이성적 판단이 있을때 결정하는게 좋다고 본다. 치매 걸리면 그게 뭔지도 모른다.온전한 정신기능이 없어서 왜 사는지, 왜 죽는지 조차 모르고 고통스러운 삶만 끊임없이 연명하는건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라고 본다.2015.08.12 10:18 | |
들어 늙어 고통받으며 병실에누워 가족들에게 짐이되어 요양병원에 돈만갖다바치는 삶이 아닌 아름답게 선택할 수 있도록 안락사법 허용해주세요2015.08.12 10:25 |
듁십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88세에 임종하신 어머니를 극진히 돌본 언니에겐 너무힘든 삶이 였다 나또한 자식을 힘들게 할까봐 걱정된다 내 삶의 결정권을 내가 마무리 할수 있게 안락사를 찬성한다2015.08.12 11:21 | |
평생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라 교육받는다.하지만 정작 내삶의 마침표를 찍을 권리는 나에게 없다.이건 모순이다.2015.08.12 10:43 | |
안락사는 참 바람직하다.더 이상 살고싶지 않은 사람들이 고통과 두려움 없이 편하게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안락사.의사와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떠날 수 있다는 게 참 인간적으로 느껴진다.나도 더 이상 살고싶어지지 않을 때....자살여행을 가고프다.2015.08.12 11:47 | |
벽에 똥칠하는 장수만세 자식 짐 될까봐 보험이니 연금이니 부담감 없이 적당한 시기에 스위스 갈 노잣돈만 마련해 놓으면 되겠네.. 미래가 훨씬 더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건 왤까?2015.08.12 12:53 | |
배현철 | 내 나이 64,,치매환자,중증환자,,많이 봤다,병시중 드는 사람도 엄청 고통에 시달린다,자살?..나쁘다,글치만 사람의 인생에 있어 쌈박한 초이스도,,도움이 되면 되었지 마이너스는 되지 않는다는 것도,,이젠 알거 같다,2015.08.13 06:17 |
새봄 | 거의 끝난 상황인데도 어찌할 바 몰라 하는 보호자에게 벼라 별 연명 시술을 권하는 병원도 문제... 그 시점에 하는 시술은 고가를 지불해야 하는 내용이 대부분......돈되는 환자 줄어드는 정책.... 병원에서 쌍수로 안락사 반대하겠지.의료사고도 환자가 입증을 해야 하는 마당에...환자 입장에 서 줄 리가 만무하지.2015.08.12 13:03 |
가시나무 | 저도 70에 스위스 여행을 꿈꾸는 일인입니다. 할머니로 인해 결심이 더욱 굳어집니다. 조금이라도 건강할때 순전히 나의 의지로 인생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미소 지으며 작별 인사하고 편안히 가고 싶네요. 존엄사할 귄리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안락사를 허용하면 멀리까지 가서 굳이 생을 마감하지 않아도 되는데 ~2015.08.12 11:15 |
스스로 안락사 하는것 찬성한다.빌딩에서 떨어지고 목욕탕에서 목메어 죽음까지 추접하게 마감하는것보다 훨 낫다.스스로 장례준비도 하고 이별할 시간을 갖는것에 찬성한다.2015.08.12 21:06 | |
떠나야할 때 떠날 줄 아는 이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라고 저는 말하고 싶네요. 안락사,존엄사에 대해 부정적인 분들은 영화 '청원'과 '씨 인사이드'를 꼭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조금 다른 각도지만 그 역시 생명과 삶의 의미를 사유하게 하는 영화 '인타임'도 챙겨 보시길 바랍니다()()2015.08.13 23:282015.08.13 2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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