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히 아름다운 북위 67.8 레비Levi ②꿈엔들 잊힐리야 오로라Aurora
트래비 트래비 입력 2016.03.24 09:58
●차갑고 고요한 밤의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 오로라Aurora
태양이 발산하는 플라스마 중 극소량이 지구의 보호막을 뚫는다. 그리고는 지구 자기장의 영향으로 극지방으로 끌려들어와 대기권의 가장 바깥쪽 열권에서 방전되며 빛을 발하는 현상, 오로라다. 북극에서 발생한 오로라의 이름은 오로라 보리앨리스Aurora borealis 혹은 노던 라이츠Northern lights, 우리말로는 북극광, 그리고 이곳 핀란드에서는 여우불이라는 뜻의 레번툴레Revontulet다.
나에게 오로라는 평생을 꿈꿔 온 소망의 이름이다. 여기까지 왔지만 본다는 확신은 없었고 기대만 가득했다. 운이 따라야 볼 수 있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다. 오로라를 예보하고 시간대별로 지수를 표기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해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이드는 날씨가 너무 추우면 오히려 보기 어렵다고 말했고, 오로라 지수를 너무 믿지 말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별이 수천개는 보이는 밤하늘이라야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행운을 빌어 주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명제를 마음에 품었다.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도착 이틀째부터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서너 시간씩 사흘을 버텼다. 일명 ‘뻗치기’를 감행했다.
#first night
첫날밤, 가이드가 알려준 숲으로 향했다. 숙소인 레비 툰투리 호텔Spa Hotel Levi Tunturi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작은 호수를 둘러싼 겨울 숲, 그 건너편에는 아담한 평원도 있었다. 가이드는 이곳이 인공광이 거의 없어 인근에서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고 했다.
출발 전부터 꼼꼼하게 장비를 챙겼고, 어둠 속에서 촬영 방법을 연습했다. 준비한 것을 차근차근 재현할 차례였으나 혹한에 몸과 마음은 따로 놀았다. 장갑 속에 감춰둔 둔한 손의 감각으로는 어둠 속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부터 노출을 조절하는 일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허둥거리며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한 시간쯤 지나자 하늘빛이 미세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일단 셔터를 눌렀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사진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명민한 카메라는 하늘에서 색색의 빛줄기 수십 개가 쏟아져 내리는 순간을 잡아냈다. 오로라처럼 움직이진 않았지만 빛줄기는 계속 색을 바꾸고 있었다. 오로라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오로라를 본 경험이 있는 동행인은 명백한 오로라라고 했다.
촬영은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이것이 오로라만큼 드문, 상층의 구름에서 떨어진 공기 중의 얼음 알갱이들이 달빛 혹은 주변의 인공광을 반사하며 일어나는 빛기둥light pole 현상이라는 사실은 서울에 와서야 알게 됐다.
#second night
전날 촬영한 빛기둥을 오로라라고 믿었기에 둘째 날엔 더 대담해질 수 있었다.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인다는 숲을 버리고 조금 더 드라마틱한 장소를 찾아 도착한 곳은 레비 툰투리Levi Tunturi다. 산이라고 하기엔 낮고 동산이라 부르기엔 높은 해발 531m, 우리말로 ‘재’라고 표현하면 알맞은 이곳을 레비 사람들은 ‘레비 펠Levi Fell’이라고 부른다.
해질녘의 레비 펠은 겨울 왕국의 모습 그대로다. 핀란드 최고의 캐릭터인 무민을 쏙 빼닮은 스노 몬스터Snow Monster 수천 개가 핑크빛으로 물든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무민 마을에 잔치라도 벌어진 듯한 동화 같은 풍경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엄숙하고 장엄한 정취를 덧입었다. 우주 깊은 곳에 떠다니는 외계행성에 발을 디딘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이곳에 오로라가 나타난다면 지상 최고의 오로라 사진을 얻을 수 있겠다며 기대했지만 하늘이 흐렸고, 날이 습했고, 재 마루에 멈춰 선 구름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철수했다.
#third night
마지막 밤까지 오로라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조바심이 요동쳤다. 마음을 가다듬고 저녁 식사 자리로 향했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생일을 맞은 저녁상에는 초를 밝힌 작은 컵케이크와 서울에서 준비한 3분 미역국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생일상에 마음이 울컥해졌다. 오로라를 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며 초를 불었다. 십분쯤 지났을까. 이미 퇴근한 가이드가 되돌아와 말했다. “지금 밖에 오로라가 있어.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볼 수 있을 거야.”
이런 걸 ‘기적’이라고 말하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늘을 보며 달려가다 뒷걸음치기를 반복했다. 오로라를 보는 순간, 인생 최고의 생일선물을 받았다는 감동에 가슴이 벅찼다. 수직으로 서서히 솟구쳐 창공으로 올라간 초록빛은 일렁이고 움직이고 너울너울 넘실대며 제 길을 갔다. 빛기둥을 보았던 숲으로 향했다. 멀리서 시작된 올챙이 형상의 초록빛은 별이 총총히 빛나는 검은 하늘을 가르고 번져 나가며 춤을 췄다.
설산을 넘는 북극의 요술 여우의 꼬리가 산꼭대기를 스칠 때 일어나는 스파크라는 핀란드 신화도, 어린 영가들이 춤을 출 때 일어나는 불빛이라는 그린란드의 신화도, 죽은 영혼들이 해골로 축구시합을 벌이는 광경이라는 이누이트족의 신화도, 모두 오롯이 믿어질 만큼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영하 40도의 혹한에도 춥지 않았다. 오로라는 땅 위의 사람들을 제대로 홀렸다. 확신했다. 언젠가 인생이 끝날 때 스쳐갈 나의 주마등에, 이 순간 눈앞에 펼쳐진 오로라의 춤이 선명히 새겨질 게다.
▶Tip 오로라 촬영 팁
어두운 곳에서 초점을 맞출 땐 랜턴이 있으면 유용하다. 오로라만 촬영할 경우 초점거리를 무한대로 두면 되지만, 앞부분에 나무나 집이 있는 경우는 초점을 앞에 맞춰야 한다. 암흑 속에서 초점 맞추는 일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랜턴을 챙겨 가자. 발밑에 폭신한 눈밭이 있다면 트라이포드는 최대한 땅에 닿도록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촬영하는 동안 서서히 눈을 파고 들어가 완전히 흔들린 사진을 찍게 된다. 셔터 릴리스보다는 무선 동조기를 챙겨가는 게 편하다. 앞서 언급했듯, 전선이 끊어질 정도의 혹한을 견뎌야 한다. 오로라는 한번 생겨나면 두 시간 가량 지속된다. 적정 노출에 한해 다양한 셔터스피드로 촬영해 볼 것. 다른 느낌의 오로라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취재협조 핀에어 www.finna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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