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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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가 되고 싶은 의사,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 임재영

보현화 2017. 4. 26. 22:45
"꾸뻬가 되고 싶은 의사",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 임재영                                                         

2016.11.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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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는 둥근 뿔테 안경에 콧수염을 기르고 의사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행복을  전해주는 전도사 역할을 하는 정신과 의사.

하지만 꾸뻬 씨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음의 병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떤 치료로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꾸뻬 씨는 진료실 문을 닫고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 씨의 행복 여행에 나오는 구절이다. 꾸뻬씨는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이다'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온 것도, 세계여행을 떠난 것도 모두 행복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박차고 나오는 데는 그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는 더 그렇다. 여기 안정적인 의사 생활을 박차고 나와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를 연 한 의사가 있다.

찾아가는 정신과 임재영 의사의 결심은 마치 소설 속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꾸뻬 씨와 닮아 있다.


임씨는 물론 의대를 나왔고, 국가고시도 치고 안정적인 의사 생활도 하고 있었다. 그는 남들에게는 선망의 직업으로 인정받는 의사였지만, 결국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치료했다. 문득 정신병원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정신병원의 인식이 좋지 않다. 주변에서 보는 눈을 의식해서 그런지 정신병원을 바로 찾는 이들이 적었다. 이들은 다른 병원을 맴돌다가 치료를 할 시기를 종종 놓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공간을 조금 더 밝고, 활기차게 만들 수는 없을까?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정신치료를 받을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정신병원을 박차고 나와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를 운영하게 됐다.


그는 "우리 사회가 때로는 각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을 펼치며, 주변 이들을 밟고자 했다. 더 일찍,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 혈안이 됐다. 이러한 부작용은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니 그 외로움은 더 커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 길은 지금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는 "높은 임금에 모두가 우러러보는 의사. 병원 안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다. 의사의 손이 환자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한 환경에서 지냈지만 차디찬 길바닥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만만하게 봤지만 그렇지 않았고 명함을 내미는데 누구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작은 힘이지만 이러한 고민 상담이 그들에게 작은 위로, 아니 점진적인 발전으로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나는 메모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현재까지 148명을 진료했고 그 기록은 고스란히 메모에 적혀있다. 메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의미 있는 한 번의 만남을 더 의미있게 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는 148번의 만남 중 하나지만, 그들에게는 한 번의 만남이다. 만남 이후 그들은 다시 힘들어 질 수 있고, 정신적으로 힘들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메일이나 전화로 상담을 받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작은 만남이 그들에게는 큰 전환점이 되어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를 거쳐 간 148명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는 "마음의 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환자 중에 노인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자식에게 버림받은 노인도 있었다”며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남들에게 피해 안 가게 죽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먹먹해짐을 느끼곤 했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해 "주부 또한 고민 상담을 많이 요청했다. 인생이 허무하다, 무의미하다고 찾아온 이들. 이들은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자신은 키워놨더니 이제는 나를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그러면서 인생무상을 이야기하곤 했다. 이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이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했다. 살기 좋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누군가는 이들 모두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험난하지만 나는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연애상담이나 가족상담도 진행한다고 했다.

그는 "'넌 내 마음을 몰라. 내가 언제 이런 거 달라고 했어?' 라던가, '내 자식이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느냐?' 라는 이야기도 자주 듣곤 한다. 서로가 중요시하는 가치가 달라서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타고 올라가 보면 가장 꼭대기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을 몰라주는 서로 다른 일을 주고받는 것 또한 근본에는 사랑이 깔려있기에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고민 상담을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그들 또한 뭔가를 깨닫는다고 말했다. 행동을 넘어 더 큰마음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온라인으로는 상담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오직 일대일로 만나서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가 고민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싶다. 온라인으로는 만날 수 없는 미묘한 감정, 눈동자의 변화, 온라인으로는 느낄 수 없는 그의 향 이 모두가 그를 나타내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조금은 수고스럽지만,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으로 상담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마음속 고민이 많은 주변 이들에게 내가 전해줄 말은 없을까?

그는 "나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혹은 나 자신과의 경쟁에 나를 던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내 마음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내 마음을 챙기는 것 또한 내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대해 "고민 상담소를 단체로 운영하고 싶다. 혼자서는 한계를 많이 느낀다. 나와 뜻이 같은 이들과 함께 고민 상담소 일을 이어가고 싶다. 얼마 전 방송에서 이 이야기를 한 뒤 약 20명의 사람으로부터 함께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중에는 나와 같은 정신과 의사도 있었다. 꽤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상담 일이지만, 이 일로 인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꾸뻐 씨의 가벼운 발걸음처럼, 임 씨의 고민 상담도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