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s://namu.wiki/w/%EC%A0%84%EC%9C%A0%EC%84%B1
이름 | 전유성 (全裕成) |
출생 | |
신체 | 182cm, 75kg, O형 |
데뷔 | 1969년 - MBC 방송작가 |
학력 | |
소속 | 랄랄라온 |
취미 | 독서, 스키 |
종교 |
1. 소개[편집]
개그계 각본가의 전설.[1]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창시한 최초의 개그맨.#
서라벌예대[2] 졸업 후 정극 배우를 지망했다가 여러 번 실패하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MC 겸 코미디언인 후라이보이곽규석의 방송이나 공연용 원고를 써주는 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유성은 연예계와 그 외 분야에서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연예인의 인기 지표라고 할 수 있는 텔레비전에서의 활약은 별로 없다. 즉 TV에 주연급으로 나온 적이 없다는 이야기.(2009년 여름 ~ 가을엔 후루룩국수 광고 덕분에 그래도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본인이 TV에 나오는 걸 꺼려하기도 했고, 또한 말보다는 글로 웃기는 데 더욱 재주가 있기 때문... 이지만, 그래도 라디오에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1980년대 개그맨 전성시절 김형곤, 심형래, 이경규, 이봉원, 임하룡, 최양락, 김미화 등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때라 상대적으로 안 웃긴 것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있기도 하고...[3]
한편 1991년 내일은 챔피언을 통해 영화감독에 데뷔했다가, 흥행에 실패하자 비디오용 어린이영화로 발길을 돌렸다.[4]
가장 최근 TV에 등장한 것은 개그콘서트 초창기 때 '전유성의 개그클리닉'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던 것이었지만 이것 역시 얼마 못 가서 끝났다.
그 이유는 전유성이 '슬로우 개그'를 구사하기 때문에 한번쯤은 더 생각해 봐야 이해되고 웃긴데, TV방송이라면 진행이 워낙 빠르니 그런 생각을 할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전유성이 한 일 중 유명한 것을 말하자면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최양락이 TV프로에 나와서 "전유성씨가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라고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 배운 연극용어 '개그'에서 차용해 자신을 개그맨이라고 자칭하면서부터 알려졌다. PC통신 시절에도 아이디가 gagman1이었다. 이것 때문에, 코미디와 코미디언이라는 정확한 단어 대신에 개그와 개그맨이라는 잘못된 콩글리쉬가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을 받는다.
그리고 지금 보면 굉장히 선구자적인 사업들을 많이 고안해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심야 볼링장과 심야 극장이 있다. 1999년 나온 책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만 봐도 "신선한 공기를 캔에 담아 팔기", "생일 신문", "읽던 책 산골 아이들에게 기증하기", "가로수 분양", "요리 시설/재료를 제공하는 가게" 등 지금은 일상이 된 아이디어들이 많다. 광고 카피라이터로도 약간 이름을 날려서 '하늘에서 콜라병 하나가 떨어지며 영화가 시작됩니다'라는 영화 '부시맨'의 카피를 쓰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연예계에서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수만의 "컴퓨터를 모르면 안되는 세상이 온다"라는 조언을 계기로 컴퓨터에 심취해 쓴 저서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는 정보통신부에서 상까지 받았다.[5] 책의 서술에 따르면 '초보자용이랍시고 나온 책들 중에 정말 쉬운게 하나도 없어서' 직접 썼다고. 이렇듯 일반에는 개그보다 다른 업적으로 더 유명한 인물.
그렇지만 실제로는 개그 쪽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많은 아이디어로 후배 개그맨들의 개그에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고. 말하자면 개그계의 아이디어 뱅크. '아이디어가 막히면 전유성 선배를 찾아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나 뭐라나. 1980년대 후반 KBS 개그 전성기에 그가 배후에서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코미디 시장이라는 코미디 극단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발굴된 희극인들이 박휘순, 신봉선,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김민경 등으로 이 멤버들을 선착순으로 뽑아서 키웠다고 한다. "오디션을 봐서 뽑으면 어차피 될 놈을 뽑는거지, 내가 키우는게 아니지 않느냐?" 라고.
시카고에서 살다가 대한민국에 놀러와서 인사동에서 운영하던 자신의 가게에 손님으로 왔던 한채영을 알아보고 (전화번호를 받아) 데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중 예능에 뜻이 있는 사람은 전유성에게 보내서 개그 특훈을 시킨다고 한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희철, 이특, 신동이 있다.
그 실력은 지금도 건재하다. 실제로 KBS의 간판 개그프로그램 개그 콘서트를 고안해 낸 사람. 대학로에서 간간히 이루어지던 소극장 개그를 방송으로 끌고 들어온 장본인으로 지금의 방송3사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창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그콘서트에서는 초창기 멤버로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다만 개그 콘서트라는 '타이틀'은 컬트삼총사의 개그콘서트에서 따온 것으로, 개콘을 방송으로 올릴 때 이들의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컬투는 나중에 웃찾사에서 활동할 때 "개콘 따라하는 놈들" 이라는 말이 제일 어이 없었다고. 단, 컬투가 제공한 것은 '이름 뿐'으로 포맷은 현재 KBS의 개그 콘서트 측이 오리지널인 것이 맞다.[6]
소설가 이외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 이외수만큼은 아니지만 개그맨들 중에선 '기인' 소리를 듣는 인물이라 서로 죽이 잘 맞는지도. 카페 이름이나 책 이름을 보면 확실히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이를테면 전유성 씨 딸 이름에 제비'燕(연)'자가 들어가는데 이 이유가 딸이 만들어진 곳 이름이 '제비 여관'이라서...
배우자는 가수 진미령인데, 결혼 생활이 15년을 넘겼고 둘 사이에 자녀도 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한 마디로 사실혼) 현재는 헤어져서 독신생활 중이라고 한다.
또한 예전에 SBS '좋은 친구들'이란 쇼 프로그램에서 "전유성을 웃겨라"라는 코너를 맡았었는데(일반 시민들이 참가해 개인기나 개그를 선보이며 전유성을 웃기는데 성공하면 상품을 받는 코너) 어지간해선 결코 웃지 않는 초강 내공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감탄하게 했었던 적도 있으나 본인 말에 의하면 원래 잘 웃지 않는 성격이 아니라 코너의 성격상, 신선한 개그가 아니면 일부러 웃음을 참았다고 한다.[7] 전유성을 웃겨라에서 우승했던 갈갈이 박준형도 여기서 처음으로 나왔다. 사실 이 코너는 전유성이 밤무대 공연시 주로 했던 레퍼토리였다.
이 때는 전유성을 웃기면 상금으로 5만원을 주게 되어 있었는데, 그 5만원이 당시 그의 밤무대 출연료와 같은 금액이라, 상금을 주는 경우가 생기면 자기 출연료를 받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생계 개그 억지로라도 웃음을 참아야만 했던 것이었다. 당연히 이때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가, 나중에 엘리베이터 같은 한데서 빵터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김학래에 의하면 밤무대에 전유성이 출연했을 때 뒷 출연자가 안 와서 시간을 끌어야 했었는데, 워낙 애드립이 생각이 안 나다 보니까 "저...계속해서, 제 옆모습을 보시겠습니다"라고 하다가 계속 안 오자 "이번에는 제 뒷모습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에피소드는 여기를 참고.
2. 현재[편집]
2009년경부터는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양원리에서 '니가 쏘다쩨'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곳 메뉴가 피자와 짬뽕, 둘 밖에 없다는 거다.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메뉴 선정. 또한 명함에 '사장'이라는 말은 뺐다. 대신에 배후세력(...) 전유성이라고 적었다. 전유성 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전유성이 제공하고 지인을 통해 운영하는 곳이라 그렇다고...
참고로 자동차 없이 여기를 찾아가겠다는 용자짓은 하지 말 것. 그나마 가장 가까운 철도역으로 경부선 남성현역이 있는데, 일단 열차가 대구발 무궁화호 1회밖에 정차하지 않는다. 그 근처 도로를 따라가면 무려 고개를 넘어 8km, 즉 3시간을 걸어야 나온다. 직선거리라 쳐도 대략 30분 이상. 굳이 여기를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겠다면 청도역에서 내려 2번 시내버스를 타고 칠곡리에 내리면 된다. 버스 시간이 드물기 때문에 시간을 꼭 알아둘 것. 자동차로 가면 그나마 나은데, 대구광역시나 청도군에서 30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된다.
또한 초복날 반려동물들을 위한 개나소나 콘서트를 청도에서 열었다. 초복에 콘서트를 연 이유도 복날을 무사히 넘기라는 의미라고 한다. 개나 소를 데려오면 공짜로 볼 수 있다. 이후에도 종종 했는데 2016년 4월 29일 개밥 주는 남자에 출연한 이성미의 말에 따르자면 공연 끝나면 사람들이 그렇게 버리고 간다고(...).좋은 의도로 열었는데 일븐 몰상식한 관객들 인성 보소 설마 소까지도?
2011년부터는 카페를 처남에게 넘기고 대신 풍각면 성곡리에 코미디철가방극장을 운영 중이다. 특이하게도 건물 외벽이 철가방 모양으로 되어있는(...) 독특한 모양새다. 음식점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콩트 형식의 코미디 단막극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공연하는 소극장이다. 전유성이 직접 운영하는 '코미디시장' 극단 단원들이 4~5분씩 돌아가면서 90분 간 공연한다. 기사. 2014년, 입소문이 났는지 평일에 오려면 2, 3주 전에, 주말에 오려면 한 달 전에는 예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터뷰. 니가 쏘다쩨와 코미디철가방극장은 제법 떨어져 있는 편이며, 대중교통편이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다.
과연 전유성(...). 컬투의 정찬우의 말로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면 전유성 선배를 따라가라."
2012년 7월 1일 개그 콘서트의 감수성 코너에서 깜짝 출연해서 후배인 감수성 팀에게 따끔한 충고를 했다.그러나 그 뒤에 자신이 주최하는 콘서트를 홍보했지만 넘어가자.
2013년에는 제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명예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집행위원장은 개그맨 김준호.
2014년 6월 15일자 MBC 코미디의 길 6회에 출연했는데, 이홍렬과 김용재가 청도에 찾아가 전유성을 만났다. 이홍렬의 환갑 때 축하 전화를 걸어 "환갑선물로 친구가 되줄게. 이제 말 놔."라고 했다고... 둘의 나이차이는 5살이다. 하지만 여전히 선배 앞에서는 쩔쩔매는 이홍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16년 7월 2일, 홍대 윤형빈 소극장에서 열린 이경규 콘서트에 참석해서 관객석에 앉아 쇼를 구경했고, 후에 쇼가 끝날 때 쯤 이경규의 소개로 관객들도 알게 되었다.
3. 출연 작품[편집]
3.1. 방송[편집]
3.2. 영화[편집]
3.3. 광고[편집]
오천콜 대리운전 라디오CF
돈텔마마 나이트클럽 지면광고
4. 어록[편집]
전국의 꼴찌에게 한 마디.
"1등도 한 명, 꼴찌도 한 명이다. 세상에는 공부 잘 하는 자보다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꼴찌는 공부에선 밀리지만 다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학교도 이제 꼴찌 경쟁력을 다시 음미해봐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
예쁜 여자에게 들려줄 말은?
"예쁜 여자보다 잘 난 여자·멋진 여자가 더 낫지 않는가."
경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쟁 안하고 살려면 세상, 좀 비딱하게 봐야 된다. 나는 경쟁 안 한다. 나만의 길을 가면 남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자기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일의 본질은?
"우린 노는 것과 쉬는 것을 잘 구분 못한다. 노는 것은 관광, 쉬는 것은 여행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우린 관광지에서 잘 쉬지 못한다. 예전에는 일 시키기 위해 쉬게 했다. 그런데 쉬지 않고 일하면 능률이 떨어진다는 걸 안 것이다. 예전에는 노는 걸 불순하게 봤다. 놀던 놈, 놀던 여자 등과 같이 논다는 말이 들어가면 다 부정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제 잘 놀고 돈버는 세상이 왔다. 한비야는 놀러다니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개미와 베짱이 얘기가 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개미처럼 살 수 있는가. IMF 외환위기 때 개미군단 많이 잘렸잖아. 개미의 수난시대였다."
자살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한 마디.
"너무 높은 데서 떨어지지마라, 그럼 아프잖아."
실연한 자에게 덕담 한 마디.
"말이 소용없다. 세월이 명약이다. 술깨는 약이 없잖아. 토하고 해장국 먹고, 사우나 가고 그렇게 진 빼다보면 술이 다 깨잖아."[8]
"내가 세상 살며 별의별 고개를 다 넘어봤지만 이 고개를 넘는 게 가장 힘들었어. 무슨 고갠 줄 아니? 바로 진미령이야."
한 라디오 방송의 청취자와의 대화 시간.
한 아줌마가 전화를 걸어 자기 딸에게 시집 좀 가라고 말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딸이 방송 듣고 있나요?"
"안 들어요."
"안 듣고 있는데 내가 얘기해봤자죠."
"그래도 해주세요."
"난 그렇게 못해요. 시집가라고 하는 엄마 말도 안 듣는 딸이 개그맨 말 듣고 시집가겠다고 결심한다면 그 여자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저서 "구라 삼국지" 중에서
(전략) 기자가 똑같은 것만 계속해서 물어보는 거다. 새로운 것 좀 물어보면 안 되냐? "언제 데뷔하셨어요?" 이런 거 물어보면 짜증난다. 나중엔 건성건성 대답을 해줬는데 마지막으로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취미는 지독한 수음이라고 말해줬다. 한마디로 자위행위라고 말한 거다.
"어머, 전유성 씨는 정말 취미도 남다르시네요? 그런데 수음이 뭐예요?"
"상사한테 가서 물어봐요, 무슨 뜻인지!"
이 처자가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잡지에 그대로 실었다. "전유성의 취미는 지독한 수음!"
저서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중에서
"전유성 선배는 개그도 하고 아이디어맨이기도 하고 영화배우에 감독도 하고 그러시는데 원래 뭘로 시작했습니까?"
"정자로부터 시작했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니미 뽕이다. 새X들아!"
"남자랑 여자 그게 똑같이 생겨서 참 다행이예요. 만약 모양이 서로 달랐으면...
남: 저기요.. 전 세몬데요..
여: 전 별이에요.. 우린 인연이 아니군요... [9]
박통 시절 전유성은 윤형주의 '0시의 다이얼'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싸움을 하면 육박전이다"라는 개그를 했다.[10] 근데 윤형주가 알던 누나인 최은자 씨가 대통령 전용기의 스튜어디스여서 그걸 박통에게 말해줬더니 박장대소했다고... 하지만 측근이셨던 높으신 분이 그걸 듣고 해당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던 PD를 개발살내고 전유성도 3달동안 출연금지 조치를 때려 버렸다. 전유성 본인은 그 사건이 자신에게 "세상은 참으로 치열한 육박전이구나!"라는 걸 알게 해줬다고 자신의 저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에서 밝혔다. 흠좀무. 당시 윤형주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방송사엔 중앙정보부에서 파견한 조정관이 있어서 방송 멘트까지 일일히 검열했는데,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하다가 "제비가 박씨를 물고갔다"는 멘트가 나오자 "왜 박씨냐? 무슨 저의가 있는 것 아니냐?"라며 지적을 했다고. 그런 시절이었으니 전유성도 당연히 출연금지를 먹을 수 밖에.
청도군에 코미디 극장을 짓고
거기까지 누가 오겠느냐 하는 생각을 거의 다 했죠. 저만 된다라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그 공연장을 지을 적에도 숱한 반대하시는 분들에 의해서한 석달이면 지어질 공연장이 한 1년 씩이나 걸렸어요. 그래서 전 거기다 무슨 정부 종합 청사를 짓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뭐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해요. 안 해 보셨으니까. 여기 손님이 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그러는 분도 사실 계셨어요. 제가 바빠서 확인을 못하고 있는데 한가할 때 그걸 실천하셨나 꼭 한번 찾아가서 손을 한번 조사해 보고 싶어요.[11]
전유성의 제자론.[12]
나는 내가 (나서서)제자 라는 표현 쓰기 싫어. 스승은 배운 사람이 (스스로)스승으로 정하는 거지
"내가 데리고 있었어. 내 밑에 있었어. 내가 키웠어." (이런 말들 의미 없다.) 어떻게 키워?
나도 (뜨고 나니까)키웠다는 사람 있었어. 그래가지고 굉장히 섭섭했어.. 더 키우지, 조금만 더..(웃음)
"아깝다! 총독 집무실 자리에 화장실을 만들어서 전 국민이 시원하게 볼일을 볼 수 있도록 하면 좋았을텐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온천에 가면 이상한 게 있다. 대부분의 온천들이 "고혈압과 성인병 예방에 좋고, 특히 피부병에 효험이 있으며..." 이런 광고문안들을 주욱 써놇고 한쪽에는 '피부병 환자 출입 금지' 이렇게 붙여놓는단 말이지. 너무 웃기잖아.
얼마 전 미령이와 종합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전유성 씨?" 그러길래 내가 그랬다. "안녕한가 보러 왔어요"
고가가 꼭 일직선이어야만 되냐, 이 짜슥들아? 반원형으로 돌아가면 안되냐? 관광상품이란 것은 '굴만 파면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길을 한국 사람들은 바로 저 독립문 때문에 멀리 돌아가기로 했단다.' 하는 안내문이 만드는 거다. 이 인간들아! 누가 독립문을 옮기냐!
고등학교 때 연극부에서 만약 우리가 북한에 간첩을 보낸다면 비쩍 마른 사람이 가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야 북한 주민처럼 보인다는 거다. 나는 즉각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뚱뚱한 사람이 가야 된다고.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왜 그러냐고, 나는 대답했다. "야 임마, 뚱뚱해야지 당 간부인 줄 알고 검문을 안 할 거 아냐?"
과거 택시의 합승이 빈번하던 시절, 광화문까지 가는 동안 수도 없이 합승을 시키자 내리며 버스요금 210원을 기사에게 주며
"야, 18번이나 멈췄다가면 그게 버스지 택시냐!"
5. 저서[편집]
나이먹은 전유성도 하는 일본어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진미령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쓴 기행문이다. 제목부터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패러디한 책이다. 그리고 전유성답게 틀린 제목도 아니다. 왜냐면, 남의 나라 갔다 온 이야기니까. 참고로 유홍준과 전유성은 청운초등학교 동창으로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이며, 이 패러디 센스에 유홍준도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아이디어로 돈 벌 궁리 절대로 하지 마라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송센세 이건 일본말로 뭐요?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PC통신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인터넷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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