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불교&자료&관심사●/법륜스님·법문 外

2020.6.12/금요 수행법회 생방송 법문 중에서

보현화 2020. 6. 1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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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문제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짜증을 안 내려고 해도 또 짜증이 올라옵니다. 그러다가 화가

법륜스님의 행복 톡톡 : BAND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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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법문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수행을 해서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불교는 하나의 종교로 변했고, 기독교, 무슬림과 더불어 세계 3대 종교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부처님은 가난한 자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지위 낮은 사람을 높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신 게 아니에요. 부처님은 괴로운 사람이 괴로움이 없어질 수 있도록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

부처님이 대신 살아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지하면 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지하면, 눈으로 보고 인지하든, 귀로 듣고 인지하든, 코로 냄새 맡고 인지하든, 맛을 보고 인지하든, 생각으로 인지하든, 감촉으로 인지하든, 마음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반면 뭔가 잘못 인지하거나, 사실을 모를 때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낯익은 사람과 낯선 사람 중 누구를 만났을 때 마음이 불안합니까?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불안합니다. 상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약간 겁이 나는 겁니다. 맨날 가던 곳이 아닌 낯선 곳에 갔을 때, 맨날 하는 일이 아닌 처음 하는 일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모를 때 심리가 불안해지고 두려움이 생깁니다. 반면에 상대를 잘 알고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모를 때는 ‘왜 저렇지’ 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알게 되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답답함이 사라져 버립니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무지(無知)입니다. 이 무지(無知)를 딱 깨우치면, 어두운 밤에 불을 켜면 어둠이 싹 사라지는 것처럼 괴로움도 사라지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런 관점을 갖고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 법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들은 삶이 행복해지는 변화를 가져왔어요. 이것은 복을 비는 종교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수행(修行)’이라고 부릅니다.

 

-수행의 목표

부자가 되고, 출세하고, 건강해지고, 다음 생에 극락과 천당에 가는 것이 종교의 목표라면, 수행의 목표는 지금 여기 불안하고 화나는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기뻤다가 슬펐다가 이렇게 윤회를 하고 있는가’

이렇게 살면서 고요함과 잔잔함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흔들흔들했다가도 오뚝이처럼 딱 제자리로 돌아와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상태를 괴로움과 속박이 없는 자유라고 합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는 해탈과 열반이라고 해요. 이것이 불교의 목표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장사 잘되게 해 주세요’, ‘우리 아들 시험에 붙게 해 주세요’, ‘아픈 몸 낫게 해 주세요’ 이런 바람을 갖고 있다면, 정토회가 아닌 다른 절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그건 종교로서의 불교입니다. 그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면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든, 종교가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나 다 이 법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공이 무슨 뜻이고, 연기가 무슨 뜻인지 잘 설명하는 걸 보고 ‘저 사람은 불교에 대해서 많이 안다’라고 하는데, 그건 불교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아는 거예요.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은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도 괴로울 수 있고, 지식이 적은 사람도 괴로울 수 있어요. 반대로 지식이 많은 사람도 괴롭지 않을 수 있고, 지식이 없어도 괴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식이 많고 적고는 생각의 문제라면, 괴롭고 안 괴롭고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괴롭지 않으려면 생각의 차원을 떠나야 해요. 수행은 생각을 갖고 논하는 게 아닙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려면 불교 책을 많이 읽으면 되지만, 괴로움이 없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 내가 괴롭지 않은 것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지식을 쌓고 지위가 높아지려고 애쓰지만, 그 돈과 지위, 지식이 도리어 괴로움이 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수행의 목표는 돈, 지위,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는 것이 수행의 목표입니다. 수행은 지금, 여기, 내가 괴롭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 잘 안되더라도 그렇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살아가는 자를 수행자라고 합니다. 제가 하는 법문은 다 수행자를 위한 법문이에요. 괴로운 사람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 이 법회를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