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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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에서 ‘상(相)을 짓는다’란 무슨 의미인가요?

보현화 2020. 11. 2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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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금강경에 자주 등장하는 ‘상을 짓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먼저 상을 짓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주며 설명했습니다.

금강경에서 ‘상(相)을 짓는다’란 무슨 의미인가요?

“금강경에서 일체의 상(相)을 버리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상(相)이란 주관을 객관화시킨 것을 뜻합니다. 여기 컵과 뚜껑이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큽니까?”

“컵이요”

“그럼 뚜껑은 컵보다 커요? 작아요?”

“작습니다”

“그럼, 지금 질문자에게 뚜껑은 컵보다 작다고 인식이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 시계와 뚜껑은 어느 게 더 커요?”

“뚜껑이 더 큽니다”

“그럼, 여기서는 질문자에게 뚜껑은 시계보다 크다고 인식이 된 겁니다. 첫 번째 조건에서는 뚜껑이 작다고 인식이 되었고, 두 번째 조건에서는 뚜껑이 크다고 인식이 된 거예요. 그렇다면 이 뚜껑은 큰 것입니까? 작은 것입니까?”

“크다고도 할 수 없고, 작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예. 뚜껑의 크기는 인연 따라 크다, 작다라고 불릴 뿐이지 뚜껑 자체가 크다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컵 뚜껑은 작은 것도 아니고 큰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컵과 뚜껑을 오랫동안 인식하다 보면 비교 대상이 없어도 컵은 큰 것이 되고 뚜껑은 작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이때 크다 작다는 표현은 객관적 존재를 표현한 겁니까? 내가 인식한 것을 표현한 겁니까?”

“내가 인식한 것을 표현한 겁니다”

“인식한 것을 표현한 것을 ‘주관’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뚜껑은 크다고도 할 수 없고, 작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뚜껑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객관적으로 인식했다고 착각하고 뚜껑이라는 존재 자체가 작다고 주장합니다. 이럴 때 ‘상(相)을 지었다’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보기에 저 남자가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때는 나의 주관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지만 ‘저 남자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는 ‘그 남자 자체가 나쁜 사람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주관을 객관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일러 상(相)을 지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相)을 짓는다는 것은 인식의 오류를 범할 때를 말하는 것이네요.”

“네.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인식이 다르게 되는 것인데, 동일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존재 자체가 크거나 작다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절대화시키고 객관화시킨 겁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그건 상(相)을 지은 겁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내가 본 한 가지 행동만으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 자체가 나쁘다고 객관화시켰기 때문에 ‘저 남자는 나쁜 사람이다’라고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라고 표현하는 것은 주관을 주관인 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相)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주관을 주관인 줄 알면 다른 사람이 ‘나는 그 남자 좋아 보이던데’라고 하면 ‘그래, 너와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다르구나!’라고 금방 수긍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와도 갈등이 생기지 않아요.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스님이 된 건 상을 여의고 괴로움 없는 삶을 살려고 출가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스님이다’ 하는 상(相)을 짓게 되면 괴로움이 오히려 더 많아집니다. 왜냐하면 상을 짓게 되면 ‘감히 스님한테’ 하면서 합리적이지 못하고 비민주적인 잣대를 들이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감히 엄마한테’라고 하고, 남편이 부인에게 ‘감히 남편한테’라고 하고, 선생님이 학생에게 ‘감히 선생님한테’ 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님이라는, 엄마라는, 남편이라는, 선생님이라는 상을 지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항상 상(相)을 짓고 삽니다. 그래서 괴롭지 않는 삶을 살려면 내가 상(相)을 짓는 순간 ‘아, 내가 상을 지었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바로 상을 여의는 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