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불교&자료&관심사●/법륜스님·법문 外

불교의 핵심 사상/연기와 중도

보현화 2020. 11. 20. 00:17

www.jungto.org/pomnyun/view/82935

 

뒷정리를 하고 배추를 씻고 양념을 치댈 준비를 하는 동안 스님은 다시 법복으로 갈아입고 저녁 6시에 다시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올해 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 시간입니다.

 

봄 불교대학 학생들은 지난주까지 근본불교 과목에 대한 수업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근본불교 수업을 들으면서 생긴 의문점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불교대학 공부 잘하고 있나요? 봄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서 수업을 온라인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온라인 수업으로 하게 되네요. 처음에는 임시로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는데, 같이 모여서 수업을 할 방법이 없다 보니 끝까지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600여 명이 온라인 수업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은 근본불교 과목에서 배우는 핵심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사람들에게 교리를 설명하며 불교를 가르쳤을까요? 부처님이 무슨 학자도 아니고 교리를 가르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부처님은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괴로움의 원인을 자각하도록 해서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해주신 분이에요.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강의식이 아니라 대화식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즉문즉설을 하듯이 부처님의 수많은 대화가 있는데, 후대에 그 대화를 모아서 연구해보면 대화 속에 흐르는 어떤 핵심사상, 핵심이론, 핵심논리가 있어요. 그것을 정리해서 체계화시킨 게 교리입니다.

부처님이 새로 발견해내고 창조한 언어

그렇다면 부처님 당시부터 사용했던 불교 용어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용어가 부처님 후대에 논리적 체계를 만들면서 사용한 용어인데, 부처님 당시에도 불교에서만 사용한 용어가 있었습니다. 열반, 붓다, 윤회, 이런 용어는 부처님 이전 인도에 원래 있었던 언어들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면 부처가 될 것이요. 세상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이런 말을 당시에 사용했다는 것은 붓다라는 용어가 부처님 이전에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도 인도 사람이니까 당시의 인도 사회에서 사용했던 언어를 썼을 것이고, 그때도 종교와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의 용어를 부처님도 사용했겠죠. 가령 머리 깎고 출가를 해서 사문이 된다는 건 부처님이 새로 만드신 거예요? 기존에 있던 풍속을 부처님도 따라 하신 거예요? 기존에 있던 풍속을 부처님도 따라 하신 겁니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 나무 밑에서 자고 걸식을 하는 것도 그 당시에 있던 풍속을 따라 하신 겁니다.

부처님이 당시에는 전혀 없던 용어였는데, 부처님이 새로 발견해내고 창조한 언어는 바로 ‘연기(緣起)’입니다.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걸 한마디로 말하면 ‘연기(緣起)’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어떤 편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참모습에 대한 존재론적인 진리가 바로 ‘연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연기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을까요? 존재론적인 진리가 연기법이라면 실천적인 진리는 ‘중도(中道)’입니다. 중도도 부처님이 처음 쓰신 말이에요. 당시에는 그런 용어가 없었어요.

불교 핵심 사상은 두 가지입니다. 존재론적인 실상의 진리는 연기법이고,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는 실천적인 진리는 중도예요. 이 두 가지는 부처님이 처음 발견하셨습니다. 누가 하는 것을 따라 배운 게 아니에요.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기 전에 스승님이 있어서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연기와 중도는 부처님이 스승님에게 배운 것이 아닙니다. 스승님에게 배워도 해결되지 않는 근본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한 끝에 실천적인 수행을 통해 발견한 게 중도예요. 중도의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고 알게 된 게 연기법입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도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목표를 향해서 어떤 치우침이 없이 나아가는 것이 중도입니다. 중도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한 것이 여덟 가지 바른 길인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란 연기적으로 사유해서 해탈과 열반을 향해 가장 바르게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연기적으로 사유를 했을 때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괴로움이에요. 이것이 고성제(苦聖諦·Dukkha)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괴로움이라는 과제에 대해 연구를 했어요. ‘괴로움을 없애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한 것이 아니었어요. 도대체 괴로움이 왜 생기는지 연구했습니다. 이것이 집성제(集聖諦·Samudaya)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하면 그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멸성제(滅聖諦·Nirodha)입니다.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실천적인 방법이 도성제(道聖諦·Marga-satya)입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이런 식으로 사유한 거예요.

마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똑같아요. 환자를 진단해보니 병이 났구나!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 그 원인을 치료하면 환자가 나을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치료할까? 이렇게 접근하는 거예요. 일반 종교와는 완전히 다르죠. 이게 바로 고집멸도를 뜻하는 사성제예요.

부처님이 사르나뜨에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 설법한 내용은 ‘중도’입니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먼저 얘기했습니다. 그다음에 사성제를 얘기했어요. 그다음에 구체적인 실천 방법인 팔정도를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교진여가 확 깨달았습니다. 눈을 가리고 있던 무명이 확 걷혀 버린 거예요. 부처님 입멸 후 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에는 이렇게 중도, 사성제, 팔정도가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왜 괴로울까?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집착할까? 좋은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원인의 원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이 12 연기입니다. 그 원인의 원인을 규명해나가 보면 결국 진실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진실이 무엇일까요. 연기입니다.

연기는 공간적 연기와 시간적 연기가 있습니다. 공간적 연기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그 실체가 없고 관계성을 가질 뿐이라는 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 · Anatta)’입니다. 시간적 연기는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 · Anicca)’입니다.

항상하는 것도 없고(무상), 실체도 없는 것(무아)이 존재의 참모습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연기’라고 하는 겁니다. 연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상과 무아입니다. 내가 어리석어서 무상과 무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하는 것이 있는 걸로 착각하고, 실체가 있는 걸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집착할 수밖에 없고, 집착하니까 괴로움이 발생하는 거예요. 이것이 ‘일체개고(一切皆苦 · Dukkha)’입니다. 만약 무상과 무아를 확연히 깨달으면 집착할 바가 없으므로 모든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열반적정(涅槃寂靜 · nibbana)'입니다. 이것을 체계화해놓은 것이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입니다.

이렇게 근본 교설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고, 하나의 용어 속에 다른 용어들이 다 포함되어 있어요. 여러분이 불교를 공부하고자 한다면 불교 교리를 많이는 몰라도 이런 기본적인 체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연기입니다. 그다음에 중도입니다. 그다음에 사성제입니다. 그다음에 팔정도입니다. 그다음에 12연기입니다. 그다음에 삼법인입니다. 이것을 근본 교설이라고 말합니다.

근본 교리를 배우고 나면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

그러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불교가 학문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과 교리가 나오게 됐죠. 특히 12연기 가운데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대해 설명한 것이 5온(五蘊) · 12처(十二處) · 18계(十八界)입니다. 5온, 12처, 18계는 우리의 몸과 마음의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느냐를 자세하게 설명한 겁니다. 괴로움이 왜 생기느냐를 설명할 때 필요로 하는 원리입니다.

이런 근본 교설은 그냥 머리로만 이해하면 안 되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체험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명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자세가 중도를 유지하는 거예요. 명상을 하게 되면 이런 근본 교설이 실천적 원리로 작용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실천을 안 하면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데, 실제로 실천을 하면 이 이론에 맞춰서 명상을 해나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