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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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9/운문사 특강/이 시대 수행자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요? 外

보현화 2020. 12. 13. 20:08

www.jungto.org/pomnyun/view/82978

2020.12.9(오후) 운문사 특강

 

"수행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2020.12.12.

 

안녕하세요. 오전에 수행법회를 마치고 스님은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산 아랫밭으로 갔습니다. 밭에는 겨울 반찬으로 쓰려고 남겨둔 배추가 있었습니다.

법사님들도 함께 가서 삽시간에 배추를 뽑았습니다.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배추 밑둥이 살짝 얼어있었습니다.

“엊그제 배추를 먹어보니 아주 고소하고 달았어요. 쌈배추로 먹기 좋을 거예요. 끝이 오그라든 것은 빼고 알이 잘 여문 것으로 골라주세요.”

두 상자를 수확해 가지런히 담았습니다.

 

배추를 싣고 12시에 운문사로 출발했습니다.

한 시간을 달려 운문사에 도착했습니다. 공양간 앞에 배추와 올해 농사지은 햅쌀을 놓았습니다.

“이번에 농사지은 쌀인데 밥맛이 아주 좋아요. 배추는 반찬으로 드세요.”

“고맙습니다. 가져오신 햅쌀로 내일 아침 마지 올리고 발우공양에 내겠습니다.”

오늘은 운문사 주지스님께서 4년간의 강원 생활을 마치고 졸업하는 스님들을 위해 강의를 요청해 법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졸업생 숫자에 맞춰 저서 ‘금강경 강의’를 준비해 강의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책마다 한 분 한 분 이름을 써서 직접 전해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곧 강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스님들과 전체 학인 스님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모였습니다.

“정토회 지도법사이자 평화재단 이사장이신 법륜 스님을 모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올해 10월 26일에 니와노 평화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이 상은 종교 간 협력을 기반으로 국제사회 평화에 공헌한 종교지도자들께 헌정하는 상으로서 아시아의 종교 노벨평화상으로도 불립니다. 그 상을 수상하신 이야기도 듣고 또 소중한 법문을 들을 자리를 마련하게 되어서 정말 기쁘기가 그지없습니다. 박수로 한번 표현해볼까요?” (모두 박수)

박수가 잦아들자 스님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거리가 좀 있으니 저는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끼고 계세요. 저도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각자 조심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웃음)

스님들의 청으로 니와노 평화상에 대한 설명을 짧게 하고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손을 드신 분은 수행자의 길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한 시간 동안 수행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이 시대 수행자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요

“이 시대의 수행자가 가져야 할 가치관과 방향 감각을 어느 곳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궁금합니다.”

“수행자의 갖추어야 할 표상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수행자는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우선적인 기준입니다. 수행자가 오후에 밥을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했느냐 안 했느냐, 얼마나 좋은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이런 건 수행자의 표상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삶이 번뇌가 없고 괴로움이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번뇌와 괴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잠시잠시 일어나는 것이어야지 그걸 붙들고 고뇌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볼 때 수행자는 이 점이 우선되어야 해요.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무엇을 하든 그건 하나의 방법론이고, 이런 관점을 갖고 나아가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얼굴이 밝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번뇌가 있어도 금방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얼굴이 밝아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의 얼굴은 지금 어때요? (모두 웃음)

둘째, 자기가 하는 일과 자신의 삶이 남에게 조금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사람이 있어요. 첫 번째는 없었으면 좋을 사람입니다. 즉 손해만 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있으나마나 한 사람입니다. 즉 손해도 안 끼치고 이익도 안 주는 사람이 있어요. 수행자가 되려면 우선은 손해를 안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세 번째, 남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이 세상에 꼭 있어야 될 사람이에요. 존재의 필요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수행자라면 남에게 도움을 조금이라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게 핵심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수행자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법은 그 사람이 하는 행동과 말이 자기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방금 저를 소개할 때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저는 제가 특별히 훌륭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이미 부처님이 몸으로 보여주셨잖아요. 부처님께서는 밥은 빌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아래에서 잤습니다. 이렇게 사는 기본을 딱 제시해 놓으셨습니다. 제가 지금 아무리 못 먹어도 빌어먹는 것보다는 잘 먹어요. 제가 지금 어떤 옷을 걸쳐도 분소의보다는 나아요. 제가 지금 어디에서 자더라도, 심지어 의자를 두어 개 붙여놓고 자더라도, 나무 밑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죠. 그런데 생활에 무슨 불만이 있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아이고, 스님.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하고 묻습니다. 세상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부처님과 비교해서 제 삶을 돌아보면 문제 될 게 전혀 없습니다. 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부처님의 삶에 비추어보면 지금 우리들의 삶에 무슨 불만이 있을 수 있겠으며 여기에 뭘 더하겠느냐는 거예요. 대중을 위해서 좀 더 효과적으로 일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괜찮지만, 수행자가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하면 맞지 않아요.

인도 성지순례는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이잖아요. 성지순례라면 우리가 걸어 다니면서 얻어먹어야 마땅한데, 차를 타고 다니면 이미 호사를 누리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면서 호텔에서 비싼 밥 먹고 비싼 방에서 자면 그게 무슨 성지순례예요. 그냥 관광하는 거죠. 성지순례라면 부처님의 삶을 흉내라도 내봐야 할 것 아니에요? 길거리에는 전부 구걸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데 그건 내버려 두고 호텔에서 자기 혼자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게 도대체 무슨 성지순례냐는 거예요.

그냥 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괜찮아요. 그러나 ‘성지순례’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는 수행자 흉내라도 조금 내야 할 것 아니냐는 겁니다. 저도 부처님을 많이 흉내 내고 살지 못해요. 몇 가지 최소한의 원칙을 두고 살 뿐입니다. 먹는 것은 스스로 해결합니다. 또 수행자의 짐은 절대로 남이 들어주면 안 돼요. 인도에는 호텔에 가면 포터(Porter)라고 짐 들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짐을 태산같이 들고 와서는 그런 일꾼을 시켜서 돈을 주고 짐을 들도록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성지순례를 저하고 같이 가려면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딱 원칙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 왕궁에서 시종을 엄청나게 많이 데리고 살다가 출가하고 나서 이런 생활을 딱 끊어버리고 평생 자신의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고 사셨어요. 나중에 나이 들고 나서야 수행자 중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지, 하인을 데리고 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신라·고려시대 때는 절에 하인이 다 있었습니다. 국가에서 절에 땅과 노비를 제공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밭에서 농사지어서 주는 걸 먹고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라·고려 시대의 승려는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이지 수행자라고는 생각 안 해요. 자기 삶이 독립이 안 되어 있잖아요.

사람들이 저보고 ‘스님이 굉장히 개방적인데 또 어떤 건 너무 고지식하고 답답하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런 원칙을 안 지키면 첫 번째로 내가 위험해요. 이 세속에서 살다 보면 ‘그 정도는 괜찮다’ 이러면서 살지만, 살다 보면 물이 들게 마련이에요. 사람들이 자꾸 ‘법륜 스님, 법륜 스님’ 하고 따르면서 맨날 좋은 걸 갖다 주면 저라고 물이 안 들 수가 없어요. 물이 들면 그게 일상이 돼버리는 거예요. 결국 저만 바보가 되는 겁니다. 출가까지 해서 승려가 됐으면서 그렇게 살면 무슨 존재의 의미가 있어요? 그럴 바에야 밖에 가서 그냥 돈 벌어서 사는 게 낫죠. 그러니 수행자는 우선 자기를 지켜내야 해요.

그래서 저는 필리핀이나 인도 같은 오지에 가서 산에서 자거나 나무 밑에서 자면서 답사를 다니는 활동을 늘 1년에 몇 차례씩 합니다. 물론 나를 지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어요. 한국에 있으면 정토회 회원들이 ‘스님, 스님’하고 불러주지만, 그런 오지에 가면 저를 대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한 번은 제가 인도 기차 안에서 표가 없어서 바닥에 신문지 깔고 누워서 가게 되었는데, ‘법륜 스님,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이러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 웃음)

주위 사람들의 칭찬에 속으면 안 돼요. 내 존재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경험을 함으로 해서 자기가 별거 아니라는 것을 늘 자각해서 자기를 지켜야 해요. ‘겸손하고 싶다’ 이런 얘기도 다 사치예요. 본래 별거 아닌데 겸손할 게 뭐가 있습니까.

셋째, 수행자는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어요. 행자들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본 대로 나중에 똑같이 따라 하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다 따라 하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중심이 되면 딱 보았던 그대로 본받아요. 그게 인간이에요. 결국 잠깐 동안의 생활의 편리 때문에 내가 이루고자 하는 상가(Sanga)를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격이 되는 겁니다. 제자라는 사람들이 전부 나중에 그런 식으로 살게 되면 제가 평소에 말했던 내용과 안 맞게 되잖아요. 그러면 한 세대도 못 가고 망하는 거예요.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교단 안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몇 백 년이 지나서야 부파(部派)가 생긴 것은 부처님이 워낙 이렇게 원칙적으로 사신 덕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막 궁하게 사신 게 아니고, 아주 편안하고 자유롭게 나무 밑에서 지내셨단 말이에요. 그러니 제자들이 그 가르침에 아무 의의가 없었고, 몇 대를 내려가서야 비로소 바뀐 겁니다. 아무리 원칙을 지키고 살아도 결국 바뀌긴 바뀌어요. 아무리 잘 살아도 바뀌고, 못 살아도 바뀝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까요. 다만 얼마나 오래 유지해 나갈 것이냐가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행자의 길을 갈 것인가 vs 종교인의 길을 갈 것인가

바깥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어떻게 갖느냐가 수행자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뭘 먹느냐 같은 소소한 것을 자꾸 따져요. 예컨대 ‘파를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 것처럼 음식의 종류를 갖고 따질 게 아니라 음식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어떠냐를 살펴야 합니다. 초기 경전에도 맛을 탐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 뭘 먹지 말라는 말은 없어요. 당시 수행자들은 걸식을 해서 먹었는데 어떻게 골라서 먹었겠어요. 주는 대로 먹어야죠.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여러분이 선택하셔야 해요. 하나는 종교인의 길이 있고, 하나는 수행자의 길이 있습니다. 종교인은 복을 빌어주고 그 대가를 받는 사람입니다. 만약 종교인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렇게 대가를 받아서 여유 있게 살아도 괜찮아요. 부처님 당시부터 브라만들은 그런 방식으로 다 잘 살았어요. 남의 복을 빌어주는데 자기도 복 받아야죠. 자기는 못 받고 남의 복만 빌어줘서 되겠어요?

그러나 수행자라고 할 때는 관점이 조금 다릅니다. ‘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이런 질문이었으면 비판할 것도 없이 얘기가 빨리 끝났을 텐데,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질문해서 답변이 길어졌네요. (모두 웃음)

그래서 살기 편한 쪽으로 가려면 종교인으로 가세요. 조금 고달프더라도 수행자로서 살려면 제가 말한 그 길을 가면 돼요. 그런데 사실 ‘고달프다’라는 표현도 말이 안 돼요.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 해탈의 길이잖아요. 욕구의 절제를 통해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가게 된다면 결국 이쪽이 더 편한 길입니다. 수행자는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얼마나 편해요? 뭘 하더라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되면 다행이고, 안 돼도 그만이에요.”

학인 스님들은 수첩에 깨알같이 필기를 하고, 틈틈이 탁해진 공기를 환기시키며 스님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이어서 손을 든 질문자는 ‘간절함’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간절한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요

“수행을 함에 있어서 간절함을 어떻게 낼 수 있을까요?”

“노력해서 간절함을 내고 싶어요? 아니면 간절함이 쉽게 저절로 일으켜지면 좋겠어요?”

“저절로 간절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럴려면 고난에 처하면 돼요. (모두 웃음) 고난에 처하면 저절로 간절해집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 갔는데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합시다. 어떡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물었더니 ‘매일 천 배를 하세요’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럼 질문자는 매일 천배를 할까요, 안 할까요?”

“합니다.”

“그렇지요. 간절하게 할 거예요. 만약 결혼한 사람이 남편이 죽을병에 걸려서 수술을 해야 할 때 기도를 시키면 3천 배라도 할까요, 안 할까요? 만약 아이가 많이 아프면 간절하게 기도를 할까요, 안 할까요?”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간절함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겁니다. 재앙이 일어나면 저절로 간절해지니까요. (모두 웃음)

재앙이 일어나면 누구나 간절해집니다. 산이나 어디 기도처에 가서 누가 봐도 간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 사연이 있습니다. 사연이 있기 때문에 간절한 거예요. 남편이 죽을병에 걸려 수술을 하게 되면, 아내는 좁은 병실에서 간호를 하면서도 하루에 3천 배를 합니다. 그런데 재앙이 딱 끝나고 그 문제가 풀리면 더 이상 안 해요. (모두 웃음)

간절함은 이렇게 재앙이 닥치면 저절로 일어납니다. 간절함은 힘이 엄청납니다. 상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간절하면 기적처럼 이루어내기도 하거든요. 어떤 일이든 이미 일어난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볼 때 불가능한 것이 이루어지면 기적이라고 하죠.

간절해지는 두 번째 방법은 자기 나름대로 원을 세우는 겁니다.

‘내가 다른 건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못 가는 아이는 한 사람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나라, 인종, 성별을 불문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초등학교 교육은 무조건 지원을 하겠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결핵 환자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지원을 하겠다’

이렇게 원을 세우고 그 원을 향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마음이 간절해지고 번뇌가 없어집니다. 그와 관련된 일들이 눈에 확 들어오고 다른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제가 인도에 갔을 때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학교를 지어야겠다’ 하고 원을 세웠지만, 그때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 짓는데 얼마 정도 돈이 드는지 알아보니까 그 정도 돈은 제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내가 인도 성지순례 안내를 잘해줄 수 있으니까 그 경비를 아껴서 남는 돈으로 학교를 지을 수 있겠다 생각하고 인도 성지순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호텔에서 안 자고 침낭 갖고 다니면서 숙박비를 아끼고, 음식을 사먹는 대신에 밥솥 들고 다니면서 식비를 아꼈어요. 그것이 계획대로 안 되면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목탁치고 기도해서 보시받아 학교를 짓자고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성지순례가 잘 돼서 학교 지을 돈을 마련했고, 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기도할 일은 없어졌어요. (웃음)

이렇게 하나의 원을 딱 세우고 거기에 집중하면 간절해집니다. 북한동포돕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압록강 강변에서 북한의 헐벗은 아이를 보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인도까지 가서 아이들을 돕는다고 해 놓고, 정작 바로 옆에 있는 내 동포 애가 저렇게 굶어 죽는 것을 외면했구나’

굶어죽는 아이들을 살리는 일에 무슨 이념이니 체제니 이런 것을 따지겠어요. 굶어죽는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딱 드니까 누가 반대한다, 이념이 어떻다, 체제가 어떻다, 그런 건 눈에 안 들어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당시에 강릉에 북한 잠수함이 침투하는 무장공비 사건이 나서 남북 관계가 급속하게 얼어붙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북한동포돕기를 하러 다니니까 남이 볼 때는 엄청 과격해 보였던 거예요.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일을 하게 됐냐’ 이런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해 봤어요.

‘나는 북한 아이들이 굶어 죽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는데, 강릉 잠수함 사건이 났다고 해서 북한 아이들이 굶어 죽는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가?’

이렇게 딱 생각을 해보니, 굶어 죽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됐어요. 굶어 죽는 문제는 식량이 들어가야 해결이 되지, 전쟁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는 굶어 죽는 아이를 살리려고 이 일을 시작했고, 이 일과 관계없는 일들은 나는 모르겠다’

이렇게 딱 마음에서 정리가 됐습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이 일을 계속 집중해서 할 수 있었습니다. 굶어 죽는 상황이 어떠한지 정보를 계속 수집했고, 그 과정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이 연결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했는데, 탐구하고 집중해서 연구하다 보니 정보의 양과 지식, 판단력, 분석력이 전문가보다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군사 외교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강의까지 하게 되었어요. 미국 국무성, 국방성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을 앞에 놓고 북한 문제를 어떻게 봐야 된다는 강의를 한 거예요. 물론 전문가들이 정보는 저보다 훨씬 더 많이 갖고 있죠. 그런데 그 정보는 살아 있는 정보가 아니고, 간절하게 탐구해서 얻어진 정보가 아니니까 직관이 없고 관념적인 것이 많았습니다. 직시해서 꿰뚫어 보는 것이 아니니까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을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한테 ‘이 문제는 어떻게 봐야 됩니까?’ 하고 물었죠.

저는 북한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관련 대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국정원 직원도 아닌데, 그런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바로 집중력입니다. 집중의 핵심은 간절함이에요. 압록강 강변에서 아이가 쓰러져서 굶어 죽어가는 것을 딱 보자마자 마음에서 저절로 간절함이 나온 거예요. 다른 문제는 눈에 뵈는 게 싹 없어져 버렸습니다. 대승보살은 약사유리광여래 12대원(藥師瑠璃光如來 十二大願)이나 법장비구 48대원(法藏比丘 四十八大願)처럼 원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원을 세우고 행하는 것이 반복되면 간절함이 증장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무상의 개념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시시각각 올라오는 욕망이 더 커져서 무상을 생각해도 자꾸 끄달립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시나요?
  • 신심은 어떻게 증장시킵니까?
  • 단식을 시작할 때와 끝낼 때 어떤 방법으로 식이조절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존재하고 싶지 않은 욕망은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사전에 13명이 질문을 신청했지만, 두 시간 동안 모두 질문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강의를 마쳤습니다.

“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공부 열심히 하세요. 내년에 또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가는 길에 주지 스님이 드릴 것이 있다며 스님을 붙잡았습니다.

“저희가 매주 금요일에 오후불식을 한 기금을 모아 JTS에 보내는데, 입승 스님이 오늘 스님께 직접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 학인들이 상을 좀 내고 싶었나 봅니다.”(웃음)

입승스님이 학인들이 모은 성금을 가져와 전달했습니다.

“잘 전달하겠습니다.”

운문사 스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산문을 나왔습니다.

“그럼 내년 봄 지나서 뵙겠습니다. 봄에는 백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법문이 있어요.”

“농사는 어떡하십니까.”

“행자들을 훈련시켜놓았으니까 잘할 거예요. 올해는 연습이었으니까요. 아무튼 내년에는 훨씬 더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드릴게요.” (모두 웃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