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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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반복되는 나쁜 습관을 없애는 방법

보현화 2021. 1. 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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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나쁜 습관을 없애는 방법” - 스님의하루

2020.12.25 초심자 온라인 명상 3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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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일 힘든 것이 다리 통증일 것입니다. 아마 다리 통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극심해서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현상도 내일쯤이면 점차 괜찮아질 것입니다. 지금처럼 못 견딜 정도의 통증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견딜만한 수준으로 완화될 것이에요. 다리 통증은 오늘이 고비입니다.

 

계속 떠오르는 망상을 다루는 방법

하지만 점점 망상이 치성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어릴 적 기억부터 지금까지 떠오르지 않았던 온갖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회사 일과 관련된 아주 좋은 아이디어들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더라도 붙잡지 말고 호흡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모두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꾸 그걸 붙잡고 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시장통을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시장통 건너에 내가 가야 할 곳이 있어 시장통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수많은 가게들이 있습니다. 모든 가게들에서 호객꾼들이 나와 자기네 가게에 들러달라고 옷을 잡고 끌어당기지요. 호객 행위에 말려 이 가게, 저 가게 들어가서 물건 사다 보면 열 발자국 가기도 힘들게 됩니다.

그렇다고 붙잡지 말라며 싸우다가 시간을 보내면 이 역시 열 발자국 가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묵묵히 지나가야 합니다. 잡아끌어도 그냥 가야 해요. 호객꾼에 끌려가지도 말고, 맞서 싸우지도 말아야 합니다. 혹여 힘이 부쳐 가게 안까지 끌려갔다가도 그 사람이 놓으면 그냥 나오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가게들을 지나쳐갈 수 있습니다. 설령 가게 안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지나쳐가기만 해도 이 시장 안에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다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한두 가게에 들어가서 좀 놀아버리면 그곳에서 멈추기 때문에 이 시장에 무슨 가게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집에도 못 가게 됩니다. 그러니 호객꾼 들을 상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잡지 마라고 맞서 싸우지도 말고, 잡아당긴다고 끌려가지도 말고, 그냥 대응하지 않고 쭉 가면 돼요. 그러면 시장의 모든 가게들이 무엇을 파는지도 알 수 있어요. 앞으로 계속 가야 다음 가게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들도 명상을 할 때 온갖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 호흡에 딱 집중해야 합니다. 호흡에 집중하게 되면 여러분들을 막 잡아당기는 그런 생각들이 지나쳐가게 될 겁니다. 그러나 생각들은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호흡에 집중해도 생각 자체가 안 일어나는 경우는 없어요. 한 가게를 지나가면 다음 가게에서 또 붙잡고, 그다음 가게에서 또 붙잡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모든 가게에서 차례로 나와 붙잡으려 할 겁니다.

그처럼 생각은 계속 떠오르게 됩니다.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을 ‘상념(想念)’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 생각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게 되면 ‘망상(妄想)’이 됩니다. 그래서 상념이 계속 떠오르더라도 이야기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시장통을 지나가면서 모든 가게들에 들러 이건 얼마이고 저건 얼마인지,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인지 가게 주인들과 문답하면서 노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게 되면 입구에만 있기 때문에 시장 안에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처럼 자꾸 망상을 붙잡으면 나의 무의식에 어떤 것들이 쌓여있는지 내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계속 흘려보내야 합니다. 올라오면 흘려보내고, 또 올라오면 또 흘려보내야 해요.

명상을 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처음에는 조금 전에 일어난 일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것들이 다 흘러가면 과거의 상처들과 미래의 구상들이 떠오르고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붙잡고 있으면 거기서 멈추게 돼요.

오직 호흡에만 관심을 두기

그럴 때는 호흡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애를 쓰는 게 아니라 그냥 호흡에 관심만 두면 돼요. 앞에 있는 바위를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눈만 뜨면 그냥 보이듯이 호흡에 관심만 두면 호흡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떠오르는 생각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 됩니다. 아무리 옆으로 와서 떠들어도 관심을 주지 않으면 그 생각들은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과거의 상처가 떠올라도 관심을 두지 않고 흘려보내면 결국 사라지게 됩니다. 단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가 치유도 함께 됩니다. 또 미래의 일들을 떠나보내면 더 좋은 아이디어들이 다시 떠오를 뿐만 아니라 그 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 집착도 끊어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현재 수준에서는 거기에 관심이 가는 게 당연해요. 물론 관심을 빼앗긴 것도 나중에는 다 교훈이 됩니다. ‘내가 그런 일에 아직 상처를 간직하고 있구나’ 하고 나를 알아가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명상을 하면 명상을 하지 않는 것에 비해 뭐든지 다 도움이 됩니다. 명상을 해서 손해가 나는 일은 없습니다. 명상을 하는 중에 이런저런 현상이 일어나도 괜찮습니다. 명상에 대해 ‘잘 되었다’, ‘못 되었다’ 이런 평가를 할 필요가 없어요.

명상은 농구 연습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때는 공이 잘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안 들어가는 날도 있어요. 어제 많이 들어갔는데 오늘 안 들어간다고 오늘 내 실력이 퇴보한 게 아니에요. 오늘이 그런 날인 것뿐인 거죠. 명상의 목표에는 누구나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 함께 공양 게송을 하기 전 스님이 식사에 대해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하라고요? 천천히 편안한 마음으로 적게 먹습니다. 저도 이번 명상을 하면서 혼자서 밥을 해 먹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똑같이 방에 밥솥과 김치통을 갖다 놓고 스스로 밥을 짓고 김치 하나 먹으면서 명상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단식을 했으니 일체 이런 것이 필요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실무자들이 촬영 때 목소리가 좀 크게 나와야 한다고 단식을 하지 마라 해서 이렇게 밥을 해 먹으면서 하고 있어요.

부처님께서 명상하고 수행 정진하실 때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하신 게 아니잖아요. 제가 다른 일을 할 때는 대중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가만히 앉아서 하루 종일 명상을 하는데 도움받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여러분들도 지금 누가 해주는 밥 먹으며 명상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게 가능한지 저도 한번 해보는 중이에요. 저도 직접 밥을 해 먹어 보니까 아주 간단히 챙겨 먹는데도 밥하고 설거지까지 하니까 50분이 소요되고 있어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스님이 밥을 해 먹는 모습을 가까이에 가서 보았습니다.

“죽을 먹고 있어요.” (웃음)

거의 단식에 가까울 만큼 아주 적은 양을 먹고 있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오전 11시부터 다시 명상을 이어나갔습니다. 30분간 네 번의 명상을 연달아하고 오후 3시에 식사 시간을 가진 후 5시부터 다시 30분 간 네 번의 명상을 연달아했습니다.

그 사이 해가 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법문을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매일 저녁 시간에는 명상의 원리에 대한 설명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스님은 왜 명상을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지 그 원리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현재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제일 큰 과제는 괴로움입니다. 괴로움은 욕망으로 인해 생겨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자니 과체중이 될 것 같고, 안 먹자니 너무 먹고 싶고,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욕망이 현재 나에게 가장 큰 과제예요. 욕망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불교 교리에서는 12 연기(十二緣起)로 설명합니다.

사람마다 반응이 다른 이유

담배 피우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몸에도 니코틴 함량이 들어 있고, 정신적으로도 담배 피우는 습관이 마음에 배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식(識)’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느 날부터 시작해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두 대 피고, 세 대 피우고, 수도 없이 거듭해 오면서, 현재 담배 피우는 습관이 몸과 마음에 씨앗으로 내재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저기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그 냄새를 맡았습니다. 눈으로 봤다면 시각이고, 냄새를 맡았다면 후각이죠, 이것을 감각이라고 합니다. 이 감각이 일어나면 담배를 피우던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싹 좋아집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은 불쾌합니다. 상쾌한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이 탁 일어나요. 불쾌한 사람은 창문을 열려는 욕망이 일어납니다. 이때 좋고 싫은 감정은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식(識)에 따라서 자동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담배 냄새 자체에 역겹고 먹음직스러운 게 있는 게 아니에요. 담배 냄새는 냄새일 뿐입니다. 모양은 모양일 뿐이고, 소리는 소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식(識)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반응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겁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면서 일어나는 기분이 달라지고, 기분이 달라짐에 따라 좋고 싫고가 달라지고, 좋고 싫고가 달라지기 때문에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따라서 삶의 과보도 달라지는 겁니다.

담배를 피우는 식(識)이 있는 사람은 담배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고, 담배를 피우고 싶어 집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면 담배 피우는 식(識)이 또 축적됩니다. 이것이 유(有)입니다. 이렇게 축적이 되면 그게 또 다음 행동을 유발합니다. 이대로 두면 계속 같은 행동이 반복되는데, 그 결과가 나에게 해롭다면 어디에서부터 끊어야 할까요?

반복되는 나쁜 습관을 없애는 방법

우선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탁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 피우고 싶은데 안 피우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도 일단 행동을 멈춰야 해요. 여기서 멈추면 확대 생산은 안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담배 피우고 싶을 때 안 피우면 끝나느냐. 그건 아닙니다. 과거에 담배 피우던 식(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또 피우고 싶고, 조금 이따 또 피우고 싶고, 이렇게 계속 욕구가 일어납니다. 그때마다 행동을 멈추면 원래 있던 식(識)의 세력이 점점 약해집니다. 이것이 계율(戒律)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힘든 과정입니다. 그런데 담배를 더 피우고 싶은 원인인 기분 좋음을 탁 알아차리면 어떨까요? 대부분 우리는 이 기분 좋음을 못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곧바로 욕망으로 가버립니다. 만약 이 ‘수(느낌)’를 알아차릴 수 있으면 욕구를 제어하기가 굉장히 쉬워요.

가령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고 합시다. 확대 생산하지 않으려면 꽃이 펴서 수정하기 전에만 제거하면 됩니다. 그런데 잡초가 너무 무성하면 뽑기가 어렵습니다. 이게 바로 욕구를 참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싹이 터서 올라올 때 그때 호미로 삭삭 긁어버리면 제거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큰 잡초 한 포기 뽑는 것은 힘들지만, 싹이 났을 때 호미로 긁는 것은 스무 포기 백 포기도 금방 힘을 안 들이고 없앨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싹이 틀 때 딱 제거해버려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수’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기분 좋은 느낌이 탁 일어날 때 알아차려 버리면 곧바로 사라집니다. 그러면 ‘피우고 싶다’, ‘싫다’, ‘좋다’ 하는 욕망까지 확대되기 전에 소멸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싹이 작을 때는 곡식인지 풀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처럼, 이 느낌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참 자란 뒤에야 ‘잡초네’ 하고 알듯이, 이것이 욕망으로 변했을 때에야 겨우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느낌을 알아차리려면 굉장히 예리해야 됩니다. 느낌은 아주 미세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마음이 긴장되어 있거나 산만하면 못 알아차려요.

느낌을 알아차리려면, 첫째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되어야 해요. 둘째, 조그마한 것도 딱 체크할 만큼 예리하게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느낌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에 느낌을 알아차리고 놓아버리는 게 선정(禪定)이에요. 우리가 명상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호흡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이유

더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손을 물에 집어넣으면서 ‘아, 따뜻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따뜻한 것은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이에요. 따뜻하다는 말속에는 이미 정신적으로 ‘기분 좋다’가 그 속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따뜻한 것은 감각이고, 기분 좋은 것은 느낌입니다. 더 나아가 ‘손을 계속 좀 넣어놓고 싶다’, ‘목욕하고 싶다’ 하는 것이 욕망이에요. 그래서 손을 계속 담가놓거나 물속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는 게 ‘취(取)’입니다. 이렇게 행동까지 하게 되면, 따뜻한 데서 목욕하는 습관이 몸에 붙어요. 그래서 나중에 찬물에서는 목욕을 하기 싫어하게 됩니다.

그런데 손을 물에 집어넣으면서 기분 좋음을 알아차리고 '목욕하고 싶다' 이렇게 까지는 감정을 확대시키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수’를 알아차리는 거예요. 손을 집어넣을 때 ‘세수하고 싶다’ 이렇게까지 안 가는 겁니다. 시원하고 따뜻한 감각은 느끼는데 그때 일어나는 느낌을 바로 알아차려서 그다음 욕망으로 전이시키지 않고 차단하는 거예요. 이게 선정을 닦는 이유입니다.

감각으로 말미암아 ‘수’가 일어납니다. 수로 말미암아 ‘애’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감각을 잘 알아차릴 수 있으면 ‘수’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수’를 알아차리기는 매우 어려워요. 그러나 ‘수’를 알아차릴 수 있으면 욕망을 제어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수’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그 전 단계인 감각을 알아차려야 해요.

우리가 명상을 통해 호흡 알아차리기를 연습하는 것은 곧 감각 알아차리기를 연습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되듯이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 미세한 호흡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곧 미세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몸에 있는 다른 부위의 감각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럴 정도로 명상에 집중이 되면 여러분들은 일상에서 대화를 할 때도 누가 욕을 하면 그 순간에 바로 몸에 열기가 나거나 호흡이 가빠지거나 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어, 불쾌하구나’ 하고 딱 알아차리면 느낌도 곧바로 사라집니다.

그런데 감정으로 전환되어서 화가 일어나는 단계까지 가면 아무리 알아차려도 안 없어져요. 이미 감정이 흥분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흥분되어 있으면 한참 시간이 지나야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감정이 아직 흥분이 안 되어 있고, 미세한 떨림만 일어날 때 딱 감지가 되면,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