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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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하는 핵심 목표

보현화 2021. 1. 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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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하는 핵심 목표” - 스님의하루

2020.12.23 초심자 온라인 명상수련 1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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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괴로움은 욕망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욕망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욕망을 따라가게 되면 숨이 넘어갈 때까지도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마치 말머리 앞에 묶인 건초더미를 말이 쫓아가는 것처럼 가도 가도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상을 하는 핵심 목표

그래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해요. 명상의 핵심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첫째, 육체로부터 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4박 5일 동안 명상을 하다 보면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다리 아픈 것, 졸리는 것 등 온갖 욕망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각오하고 결심하지 말고, 이걸 당연히 일어나는 일로 보되, 욕망을 따라가지 마세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사람이 그 욕구를 당연히 인정하되 따라가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이번 명상의 핵심입니다. 명상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기술이 핵심이 아니에요. ‘얼마나 오래 앉아 있느냐’, ‘다리가 아프냐, 안 아프냐’ 이게 핵심이 아닙니다. 그건 정말 명상의 1퍼센트도 안 되는 부차적인 부분이에요. 욕망으로부터 한번 자유로워져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직접 경험해 봐야 합니다.

우선은 음식에 대한 욕망이 많이 일어납니다. 끼니때마다 음식을 다섯 숟가락 정도만 먹어보세요. 명상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적게 먹는 게 건강에도 좋아요. 그러나 그동안의 습관 때문에 음식을 계속해서 더 먹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날 겁니다. 그걸 한번 멈춰보세요. 음식은 적게 먹을수록 더 좋아요. 커피, 과일, 차, 이런 것도 5일 동안 일절 안 먹으면 건강에 더 좋습니다. 물과 하루 두 끼의 식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안 먹을수록 좋아요.

지금처럼 욕망에 눈이 어두운 상태에서는 안 먹으면 죽을 것 같고, 먹는 게 더 좋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5일이 지난 뒤에 돌아보면 어떨까요? 대부분이 ‘정해진 규칙대로 음식을 조금만 먹고 제대로 한번 해볼 걸’ 하고 후회합니다. 그러니 음식을 적게 먹는 연습을 한번 해보라는 겁니다.

또 명상을 하면 다리가 아프다고 야단입니다. 오래 앉아 있으니까 당연히 다리가 아프죠. 그런데 이런 자세로 앉아 있느라 다리가 저리고 아프다고 해서 다리에 고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자세가 바뀌면서 오는 통증과 저림이 좀 있긴 하지만, 이것도 5일 동안 점점 좋아져요. 처음에는 저리고 통증이 있어서 죽을 것 같지만 점점 좋아지고, 자세도 바르게 바뀌어 갑니다. 그러니 이런 통증이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해요.

졸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앉으면 눈이 감겨요. 방에 드러누워 버리고 싶은 욕구가 엄청나게 올라옵니다. 그럴 때 눕거나 자버리면 5일이 지났을 때 ‘그때 제대로 한 번 해볼 걸’ 하고 후회가 돼요. 그러나 졸면서도 꾸준히 앉아 있으면, 첫날인 오늘은 졸리더라도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졸음이 싹 없어집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해서 피우는 것으로 해결하면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요. 조금 있으면 또 피우고 싶고, 조금 있으면 또 피우고 싶고, 계속 연속됩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더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안 피워보면 처음에는 죽을 것 같이 괴로워요. 그래도 안 피워보면 조금씩 나아집니다. 담배 안 피운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안 피우면 결과적으로 건강에 더 좋죠. 첫 고비만 한 번 넘어가면 그다음 고비를 넘게 되고, 그다음 고비가 찾아와도 첫 고비보다는 갈수록 고비가 낮아지고 수월해져요. 첫 고비만 넘으면 다 해결된다는 뜻이 아니라, 첫 고비를 넘는 힘이 있으면 그다음 고비는 능히 이겨낼 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4박 5일 동안 여러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기가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이곳 문경 수련원에서 명상을 하게 되면 감독을 받는 분위기니까 눈치를 봐가면서 원칙을 지키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더 잘 지킨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욕구를 억제하는 거예요. 그래서 겉으로는 원칙을 잘 지키는 것 같아도, 끝나면 바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온라인으로 참여해서 혼자인 공간에서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자기가 자기를 제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제어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제어할 수만 한다면 눈치 보며 따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큽니다.

그래서 온라인 명상에서는 자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자기가 자기의 문제를 알아차리고 개선해 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온라인 명상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누구의 명령을 받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스스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면, 심리가 억압되지 않고 편안한 가운데 명상이 진행되기 때문에 훨씬 더 지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눈치를 보고 하면 명상수련이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번 5일 동안 제일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은 바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입니다.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첫째,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명상을 할 때 눈곱을 떼는 정도를 제외하면 씻고 바르는 것을 일절 하지 않도록 한 이유도 몸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입니다.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참거나 때가 막 일어나는데도 샤워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데 5일 앉아 있다고 무슨 때가 낄 일이 있겠어요? 오직 습관일 뿐입니다. 늘 해온 습관대로 하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져 봅시다.

눕고 싶은 욕망도 엄청나게 일어납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자는 시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중간에 안 눕는다고 죽기야 하겠어?’

실제로 안 죽어요. 오히려 끝나고 나면 아주 뿌듯합니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안 눕는 게 제일 낫고, 도저히 어려우면 두 번의 휴식시간을 이용하면 됩니다. 하루 두 번 식사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 식사한 뒤 조금 쉬는 걸 제외하면 일체 눕지 않습니다. 물론 그 시간에 책을 안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어요. 그러면 시간이 날 때 눕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화장실을 다녀오면 됩니다. 아주 천천히 걸으면 화장실 다녀오는 것만 해도 20분 정도 걸립니다.

이렇게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해보세요. 이것도 최소한의 규칙만 정해 놓은 거예요. 그걸 억압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요.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해서 내가 억지로 하면 억압이지만, 나 스스로 그렇게 하면 억압이 아닙니다. 명상의 규칙은 내가 자발적으로 행할 때 자유를 향한 길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요즘 외출하고 싶고 제주도로 여행도 가고 싶은데 정부에서 못 가게 하니까 울화통이 터지고 갑갑해집니다. 아파트에 갇혀 있다는 생각마저 들죠. 그럴 때에도 우리는 얼마든지 자유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다른 곳에 가고 싶다는 욕망을 탁 놓아버리고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집안에서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유를 경험할수록 어디를 가나 주어진 환경에서 만족하며 웃으며 살 수 있어요. 힘들 때마다 세상을 탓하거나 남을 탓하기가 쉬운데, 힘든 이유는 자기 욕망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해라’ 하고 시키면 그 말을 듣는다고 죽기 살기로 힘들게 애쓰고, 그러는 한편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걸 못 해서 괴로워하고 답답해 합니다. 그러니 이번 5일간은 욕망이 아무리 일어나도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함께 해봅시다.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불가능한 게 아니라 여러분이 결국 못 이겨낼 뿐입니다. 그러니 한 번 해보고, 이걸 이겨냈을 때 그게 괴로움이 되는지 그 반대인지 직접 경험해 보세요. 과정은 조금 힘이 들지만, 이겨내게 되면 여러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삶에 희망이 생기고, 자유로움을 얻게 됩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있기

둘째, 정신적으로는 미래나 과거가 아닌 현재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은 늘 생각을 합니다. 옛날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지금 못 먹는 것을 한탄하고, 옛날에 돈을 빌려줬다가 못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화를 내요. 이렇게 가만히 앉은 채로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화를 내고, 불안해하고, 괴로워합니다.

또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요. ‘죽으면 어디로 가지?’, ‘죽으면 어떡하지?’, ‘늙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느라 초조하고 불안해합니다. 정신이 현재 여기에 있지 않고 과거로 가서 괴로워하고, 미래로 가서 초조 불안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마음을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로 가져와서 딱 고정시켜야 해요.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현재 여러분이 이렇게 떡하니 앉아 있는데 괴로울 일이 뭐가 있겠어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괴롭다면 그건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갔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마음을 현재에, 여기 콧구멍 끝으로 딱 가져오세요. 마음을 여기로 가져온다는 것은 관심을 콧구멍 끝에만 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생각이 과거로 가면 탁 놓고 콧구멍 끝으로 관심을 두고, 생각이 미래로 가도 탁 놓고 콧구멍 끝으로 돌아오세요. 이렇게 콧구멍 끝에 딱 관심을 두면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오는 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실은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눈 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가 없어집니다. 아침인지 저녁 인지도 없어집니다. 시공을 초월해버리는 거예요.

편안하고 한가한 마음으로 해보기

셋째, 명상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이 한가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런 할 일이 없잖아요. 앉아야 할 일도 없고, 서야 할 일도 없고, 가야 할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고, 사람 만날 일도 없고, 전화할 일도 없고, 생각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을 편안히 가져야 해요. 일체의 긴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졸음이 찾아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망상을 피우다 보면 멍청해집니다. 그래서 마음을 콧구멍 끝에 딱 둬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려야 해요.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어떤 긴장도 하지 않습니다.
둘째, 콧구멍 끝에 딱 집중을 합니다.
셋째, 들숨과 날숨을 뚜렷이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 연습이 안 돼서 자꾸 놓치기 쉬워요. 놓치면 다시 합니다. 놓쳤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안 놓치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 또 긴장하게 돼요.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합니다. 놓치면 다시 하고, 놓치면 다시 할 뿐이에요. 애쓰면 안 됩니다. 이렇게만 하면 명상이 끝나고 나서 다리는 좀 아프지만 마음이 더없이 상쾌합니다.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

하기 싫다는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은 여러분이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에요. 애를 쓰느라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자꾸 눕고 싶다거나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이 평소에 늘 피곤하게 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졸립니다. 또 평소에 이렇게 앉아서 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리가 좀 아파요. 그런 통증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봅니다. 그걸 갖고 막 못 살겠다고 하면서 야단 피우지 말고요. 물론 처음에는 좀 힘들긴 힘들어요.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그냥 등산할 때 가파른 고개를 넘어온 것과 같아요. 넘어가는 당시에는 좀 힘들게 느껴지지만 넘고 나서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명상을 하면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거기에 의미 부여를 하면 안 됩니다. 딱 호흡만 알아차리세요. 놓치면 다시 알아차립니다. 그래도 놓치면요? 또 알아차립니다. 그렇다고 애쓰거나, 긴장하거나, 안 된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소가 풀을 뜯듯이 그냥 꾸준히 해나가면 돼요. 그렇게 한 번 해봅시다. 해나가면서 여러분께 또 그때그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입재 법문을 한 후 본격적으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30분씩 네 차례 명상을 연달아한 후 20분 휴식 시간을 갖고, 다시 30분씩 네 차례 명상을 연달아한 후 20분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사이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하루에 두 번 식사 시간에 자신의 상태를 적어서 보내야 합니다. 600여 개의 상태 보고를 스님은 하나씩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졸음이 쏟아져 호흡에 집중하기가 힘듭니다.”

“다리, 어깨, 허리 통증이 심하게 올라옵니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립니다.”

“내내 졸다 깨다를 반복했습니다. 다리 아픈 것은 참을만했습니다.”

“어깨와 등뼈가 너무 아프고 머쓱 거립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노력을 하다 보니 눈에 힘이 들어가고 이마 쪽이 아픕니다.”

“호흡에 관심을 두지만 아직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프니까 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다리 통증에 자꾸 집중하게 됩니다.”

법사단에서는 각각의 상태 보고와 질문에 대해 일대일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졸음과 망상, 다리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습니다. 저녁 8시가 되어 다시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스님의 첫마디에 참가자들은 큰 위로를 받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입재 법문 때 강조했던 명상의 목표를 다시 한번 강조하며 참가자들이 이 고비를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5일간 편안하게 휴가나 보낼 걸 괜히 명상수련을 신청해서 이 고생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집에서 명상을 하기 때문에 후회가 좀 덜해요. 문경 수련원에 와서 명상을 했다면 괜히 왔다며 후회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처음에 힘들 땐 더 그래요. 그런데 여러분이야 집에서 하니까 힘들면 벌렁 누워버리면 되잖아요. (웃음)

자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

실제로 지금 그러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은 집에서 혼자 명상할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혼자 온라인으로 명상을 하려면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이건 한번 해봐야 하겠다’ 이런 자발성에 기초해야 해요. 그래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습관의 노예입니다. 습관에 자동으로 반응합니다. 습관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엄청난 저항을 받습니다. 이 저항을 넘어가려면 좀 힘이 들어요. 그래서 이 길을 스스로 선택해야 저항을 넘어갈 수가 있지, 남의 권유로 시작했다면 중간에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권유한 사람을 원망까지 해요. 온라인 명상을 할지 말지 처음에 망설였던 이유는 이처럼 어려운 고비에 사람들이 그냥 포기해 버리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앉아서 호흡만 잘 지켜보는 게 명상이 아닙니다. 명상의 목표는 자유와 행복을 얻는 것이고, 자유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상태로부터 해방되어야 해요. 우리는 늘 자신의 욕망에 끄달려 삽니다. ‘밥 먹고 싶다’, ‘눕고 싶다’, ‘가고 싶다’, 이런 욕구를 쫓아서 삽니다. 욕망대로 안 되면 ‘속박을 받는다’, ‘구속을 받는다’, ‘자유가 억압됐다’, ‘고통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욕구가 일어나면 욕구를 쫓아 따라가든지, 이를 악물고 참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욕구를 따라가지도 않고, 참지도 않는, 새로운 길

지금 여러분이 다리 통증에 대해서 그러고 있습니다. 통증이 생기면 싫어하는 마음이 올라오니까 다리를 펴 버려요. 욕구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다리를 펴면 안 된다고 하니까 명상이 끝날 때까지 이를 악물고 참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욕구를 따르면 과보를 받고, 욕구를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두세 번 참다가 터뜨리고, 터뜨리면 손해가 생기니까 후회하고, 또 참고, 또 못 참아서 터뜨리고, 또 후회하고, 또 새로 결심하고, 이걸 반복하는 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에요.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관점에서 연습을 해야 해요. 다리의 통증은 통각이에요. 그 감각이 좀 강합니다. 통각은 명상하는 자세에 적응하느라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앉아 있는 자세에 맞게끔 세포가 재배치를 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통각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러니 다리 아픔을 감수해야 합니다. ‘다리를 펴자!’ 이렇게 따라가지도 말고, ‘참자!’ 이러지도 말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해요. 즉,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다리를 안 펴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다리를 안 편다는 것은 통각을 통각으로 안다는 거예요. 화가 일어나면 ‘화를 내야지’나 ‘화를 안 내야지’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화가 일어남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다만 알 뿐이지,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참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이러겠죠.

‘에이,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것은 외줄 타기와 같습니다. 이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저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균형을 잡아야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잖아요. 그것처럼 욕망을 따라가는 게 쾌락주의고, 참는 게 고행주의입니다. 참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고, 다만 알아차리는 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中道), 제3의 길이에요.

부처님도 젊을 때는 왕자로서 쾌락주의를 갔습니다. 그러다가 출가해서는 고행주의로 갔어요. 그러나 6년 동안이나 고행을 한 뒤 이 고행주의에 치우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3의 길, 중도를 걸으셨습니다.

실제로 해보면 이 둘 사이를 오가게 됩니다. 처음에 다리가 아프면 자꾸 다리를 펴는 쾌락주의로 가기 쉽죠. 조금 하다 보면 ‘그래도 참아야지’ 하면서 고행주의로 치우칩니다. 고행주의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점점 통각을 알아차리는 쪽으로 나아가요. 참는 게 아니라 알아차리는 겁니다.

다만 알아차릴 뿐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 참는 게 아니라 ‘아, 피우고 싶어 하는구나’ 이렇게 그저 알아차릴 뿐이에요. 바깥에서 보면 담배를 안 피우고 있으니까 참는 것 같이 보이지만, 참는 것과는 달라요. 참으면 욕구를 억압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알아차림은 스트레스가 안 쌓입니다. 우리는 지금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