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불교&자료&관심사●/법륜스님·법문 外

남의 눈치를 보는 게 많이 힘들어요

보현화 2021. 6. 16. 01:27

 

“저는 타인에게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늘 상대에게 순응하고 맞추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의견이 없었고 제 감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어서 외향적으로 바꿔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특히 직장생활에서 남의 눈치를 보는 게 많이 힘듭니다. 지금 이 성격으로도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는데 어떻게 당당하게 살 수 있어요? 남의 눈치를 보면 그냥 주눅 들어서 살아야죠. 질문자가 말해놓고도 우습지 않아요?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데 어떻게 당당하게 살아져요? 남의 눈치를 보면 움츠러 들어서 살 수밖에 없죠.” (웃음)

“머릿속으로는 ‘눈치 보지 말아야지’ 하지만 워낙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살아온 습관이 있어서인지 제가 못났다는 생각에 갇히면 옴짝달싹 못하게 됩니다.”

“그건 자기가 실제로 못나서 그런 걸까요, 잘나고 싶어서 그런 걸까요?”

“잘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잘났어요, 못났어요?”

“잘나고 싶은 만큼 못난 것 같아요.” (웃음)

“못났으면 그냥 못났다는 소리를 들으면 되지, 못났으면서 잘났다는 소리를 듣고자 하면 그 바람이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져요.”

“그래서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내가 잘난 사람인지 스스로 살펴보세요. 살펴보니까 잘난 사람이 아니다 싶으면, 남한테 잘났다는 소리를 못 듣죠. 잘난 사람이 아닌데 잘났다는 소리를 듣겠다는 건 모순이잖아요. 잘나도 남이 잘 안 봐주는데, 못난 수준이면서 무슨 남한테 잘 봐달라고 그래요? 그러니 ‘나를 잘 봐주세요’ 하는 생각을 탁 버려야 해요. 또 그 인간들한테 잘 보여서 뭐하려고 해요?

‘내가 저 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뭐해?’

이렇게 관점을 딱 갖고 오히려 내가 저 사람들을 잘 봐주려고 해 보세요. 잘 보이려고 하면 내가 그 사람들의 노예가 되잖아요. 그 사람들의 시선에 끌려서 살게 됩니다. 내가 잘 봐주면 되지 왜 내가 잘 보이려고 해요?

내가 잘 봐주고 안 봐주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으니까 내가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하면 내가 그들의 시선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노예가 되는 겁니다. 남이 잘 봐줬으면 하는 것은 노예근성이에요. 잘 보이고 싶은 건 노예근성이고, 잘 봐주는 건 주인 근성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노예근성을 버리고 주인 근성을 가지면 됩니다.”

“예전에는 제 성격이 내향적인 것이 문제인 줄 알고 수행을 통해 외향적으로 변화시키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이 문제는 질문자가 갖고 있는 과대망상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잘나지도 못한 사람이 잘났다는 소리를 듣고 싶으니까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저는 수행할 때 ‘저는 이대로 괜찮은 사람입니다’ 하는 기도문으로 하거든요.”

“수행이라는 말도 붙일 필요가 없어요. 그냥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서 볼 때 질문자는 만에 한 명, 천에 한 명 나올 정도로 잘난 사람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닌 줄 알면 다 해결되잖아요. 이제부터는 남이 나를 잘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하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남이 나를 잘 봐줬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 거잖아요. ‘남이 나를 잘 봐줬으면’ 하고 기대하지만 내가 잘나야 그 사람들이 나를 잘 봐주지, 내가 잘나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들이 왜 나를 잘 봐주겠어요?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질문자가 ‘나를 잘 봐주세요’ 하는데 아무도 잘 봐주지 않으니까 괴롭죠. 여기서 내가 특별히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면 남이 나를 잘 봐줄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나를 잘 봐주든 안 봐주든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죠. 그렇게 되면 저절로 당당해집니다.”

“지금 들을 때는 알겠는데 막상 생활로 돌아가면 잘 안 될 것 같아요.”

“아직도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그리고 남한테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남한테 착하다는 소리 들어서 뭐해요?”

“남한테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아요.”

“노예로 살면 비난받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아무런 감정 표현 안 하고 뭐든지 ‘예’, ‘좋아요’, ‘잘 봐주세요’ 하면 다 칭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애완견을 좋아하는 거예요. 사람은 자꾸 저항을 하고, 뭐라고 하기에는 또 귀찮잖아요. 그런데 강아지는 밥만 주면 말을 잘 듣습니다. 그러니 잘 보이고 싶다는 건 상대방의 애완견이 되고 싶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저는 길거리에서 밥을 얻어먹고 살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질문자는 안 그래요?

집에서 강아지 키우는 것을 한번 보세요. 짖는다고 성대 절단도 하고, 꼬리도 자르고, 생식기도 자르고, 그런 다음에 털 깎아주고 옷 입히고 비싼 사료를 주잖아요. 그런 강아지가 좋아요? 비록 길거리에서 음식을 주워 먹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강아지가 좋아요?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질문자는 어느 쪽을 선택하겠어요?”

“...”

“질문자는 애완견을 선택할 것 같아요. 저는 야생 속에 사는 개를 선택합니다.”

“그렇게 사니까 저도 답답함을 느끼거든요.”

“그게 답답하면 거기서 빠져나와야죠. 대신 길거리에서 음식을 찾아먹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는데, 탁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직장생활에서 단번에 눈치를 안 보고 살 수 있을까요?”

“눈치를 보는 것도 모두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눈치를 보는 거예요. ‘잘 봐주세요’ 하는 것도 이익을 보기 위함이잖아요. 이익을 얻겠다는 생각이 없는데 눈치를 볼 이유가 뭐 있어요? 질문자는 지금 개밥을 얻어먹으려고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것과 같아요. 길거리에 나가서 아무거나 먹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죠. 어떻게 생각해요?”

“일대일 관계보다 직장에서 여러 사람의 시선이 느껴질 때 위축돼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습관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 습관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잘 보이고 싶어 하고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던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런 마음이 곧 애완용 동물이 되는 길입니다. 자기를 애완용 동물처럼 만들어서 자립도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버릴까 봐 덜덜 떨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제가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지금 애완용 동물처럼 살고 있으면서 ‘제가 어떻게 하면 야생 동물처럼 살 수 있을까요?’ 하고 질문을 하는 것인데, 그건 실제로 밖에 나가보면 알게 됩니다. 밖에 나가면 처음에는 힘들어요. 그렇지만 며칠 살다 보면 또 살만해져요. 그러니 방법은 간단합니다. 눈치를 안 보고 살아보는 거예요. 우선 연습을 해보세요. 회사에서 성질이 나면 성질도 내보고, 고함을 지르고 싶으면 고함도 질러 보세요. 그렇게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살아보세요. 옆 사람이 성질 더럽다고 하면 ‘네, 성질 더럽습니다’ 하고 인정하고, ‘요즘 왜 변했냐?’라고 하면 ‘네, 변했습니다’ 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누가 못됐다고 하면 ‘네, 제가 못됐습니다’ 하고 인정하면 돼요. 그렇게 해야 야생성을 갖출 수 있습니다.

질문자는 아직 잘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거기에 얽매여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어요. 마음대로 살라는 말이 남을 해치라는 뜻이 아니잖아요. 남을 때리라는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훔치라는 것도 아니고, 성추행하라는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치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가 당당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상사가 커피 한 잔 끓여달라고 할 때 안 끓여다 주면 나중에 승진하는데 영향이 있을까 겁나니까 속으로는 기분 나쁘면서도 겉으로는 고분고분하게 끓여다 주는 거잖아요. 그러지 말고 커피 끓여달라고 하면 ‘네’ 하고 갖다 주든지, 그러기 싫으면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제가 커피 끓이러 회사에 왔어요? 요즘 시대에 그런 요구는 안 맞습니다. 자기 커피는 자기가 타서 드세요’

그래도 끓여달라고 하면 ‘네’라고 대답한 다음 커피를 끓여서 가다가 넘어지면서 옷에 부어버리세요. 그러면 ‘저 인간한테 부탁하면 사고 친다’ 하면서 다시는 커피 끓여 달라는 이야기를 안 합니다. 그렇게 자기 위치를 정하면 돼요. (웃음)

지금 질문자는 집에서 애완견처럼 길들여진 상태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처음에는 많이 두렵습니다. 집에 있는 건 편안하지만 답답하고, 나가려니까 자유로울 것 같긴 한데 어떻게 살지 두려운 상태예요. 질문자는 지금 그런 상태이니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도 이 이야기를 듣고 다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성질 더러운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 성질을 더 내면 안 돼요. 질문자는 지금 많이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말로 자유롭게 사는 걸 원한다면 지금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탁 내려놓아야 해결이 됩니다. 조금 답답하지만 귀여움 받으면서 살겠다면 애완용 동물의 길을 확실하게 선택하면 됩니다. 그것도 괜찮아요. 나쁜 선택이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 애완용 동물로 살면서 자꾸 야생을 그리워하는 게 문제예요.”

“네, 밖으로 나가보겠습니다.”

“아직 수준이 안 되는 거 같은데요?” (웃음)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려면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탁 내려놓아야 합니다. 남이 나를 잘 봐주는 것보다는 내가 남을 잘 봐주겠다는 마음을 내야 해요. 자꾸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내가 잘 봐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게 힘들다는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이 문제로 항상 번뇌가 많았는데 스님께서 애완견에 비유해 주셔서 시원해졌습니다. 남이 ‘너 변했네’ 하면 ‘네 변했어요’ 하고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그럼 질문자는 야생으로 나가기로 했어요, 애완용 동물로 계속 살기로 했어요?”

“야생으로 나가서 겪어보겠습니다.”

“야생으로 나가서 너무 힘들면 다시 애완용 동물로 돌아와서 만족하고 살면 돼요. 야생을 너무 그리워하지 말고요. 알았죠?”

“일단 한번 나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