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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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필- 장마

보현화 2007. 7. 16. 01:51
 

장마/ 장산


 내가 운영하는 장산서예원 앞을 흐르는 남천강은 물이 잠시 불었다 잠시 빠져버린다. 꼭 금방 웃다가 금방 울어버리는 어린 아이와 같다.

 

 5년 전 서예원을 이 강변으로 옮기고 난 뒤부터는 좀처럼 화를 내는 법이 없어졌다. 한 때는 제자들이 턱 아닌 시비를 걸어 올 땐 수강료를 돌려주며. 내좇은 적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요즘엔 장산사 주지스님 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내가 대머리인 까닭만은 아니니라. 어쩌다 화가 나면 창가로 나가 남천강을 내려다본다. 늘상 보는 강인데도 어제와 오늘의 모습은 달라져 있다. 풀이 좀 더 자란 것 같기도 하고 물이 좀 더 준 것 같기도 하고, 물이 맑아진 탓에 여러 종류의 물새도 날아와 아름다운 풍경화의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경치에 도취 되어 한참 창밖을 응시하다나면 어느새 청정심(淸淨心)이 되어 있다. 뒤를 돌아서면 제자들도 붓을 잡고 흰 백지에다 열심히 구도 중이다.

 

 지난 해, 폭풍에 이은 장마가 왔을 땐 참으로, 이 주지 스님(?)이 5계 중 불살생(不殺生) 계(戒)를 크게 범하고 말았으니 이 일을 참으로 어찌하랴  폭우가 밤새 쏟아지고 그날따라 새벽에 잠이 깬 나는 5시에 새벽 장대비를 가르며 백마라도 탄 듯 나의 코란도를 몰고 서실에 당도 했다. 강 전체가 황룡이 되어 굼실대는 그 장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경산교 지하차도엔 물이 넘치기 시작했고 경찰은 지하차도 양쪽 입구에 차단장치를 하며 그야말로 동분서주를 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는 침수 위기에 있는 차량을 견인하며, 연신 차번호를 부르며 차주를 찾아 경고방송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경찰이 오늘은 밥값을 하는구나!’ 생각 하며, 경찰이 그날따라 그렇게 자랑스럽게 보인 적은 내 인생 역사가 생긴 지 50여년 만에 처음 보는 일이었다.

 

 잠시 후 “저기 고기 잡고 있는 분 빨리 밖으로 나가세요! 위험합니다! 저기 고기 잡고 있는 분 빨리 밖으로 나가세요!” 그 때 나는 고기잡이 반도를 들고, 이 때다 싶어, 추리닝을 갈아입고 현장에 당도 하고 있었다. 참으로 경상도 말로 민구시러벘다. 미구라지 ,피라미, 버들치 모두 물 밖으로-아스팔트 위로 떠내려져 올라오고 있는데, 이런 걸 노다지라고 하는데……. 참으로 수염이 석 자가 아니라, 체면이 삼천장이라! 혹시 젊은 경찰이 나를 알아보고 “선생님 뭐하세요?” 하면 어쩌겠나?  반도까지 들고 있으면서 “어!, 물구경 해! 할 것인가?” 세상을 살면서 이성교제와 고기잡이는 물때를 놓치면 안되는데…….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서니 금세 이놈들(?) 경찰이 야속하기만 하다. 간사한 게 인간의 마음이라 했던가? 이 주지스님(?)이 고기잡이 욕심에 불심을 완전히 빼앗겨버린 탓일까? 길거리에서 무단 방뇨하려다 들킨 취객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골목 저 쪽으로 피하듯, 시치미를 떼고 돌아섰지만 이 아까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서실 입구에 서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자꾸만 넘쳐 아스팔트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사라지곤 하는데, 흡사 내 어장의 고기가 보를 넘어 도망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기분 이었다.

 

 이윽고 날이 차츰 더 밝아오자 고기잡이꾼들은 하나 둘 숫자가 늘기 시작 한다. 이제야 젊은 경찰들은 고기잡이 못하게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알았는지, 아니면 차들이 물에 휩싸임을 방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이쪽으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제야 허가 받은 어부 인양  물길로 내려서 어로 작업(?)을 시작 했다. 한 시간 만에 내가 가진 빨간 물통에 미꾸라지가 수북이 뒤엉켰다.

 그날 저녁 서실 전체에 추어탕 잔치가 벌여지고 막걸리잔이 돌아갔다. 노래방으로 터를 옮긴 일행들은, 젊음의 강을 따라 떠내려가버린 한 짝의 고무신을 찾아 나서듯 흘러간 가락에 마음껏 목청을 돋우었다. “꿈 -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경산수필문학회 숙제로 쓴 수필 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출처 : 불교 인드라망
글쓴이 : 장산(경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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