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하게 생긴 돌들을 쌓아 올린 듯 기둥을 만들었는데 그나마도 복잡한 곡면의 형상으로 표면을 만들었다.
건축에 관심을 둬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가우디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 같다. 꼭 건축이 아니더라도 디자인이나 미술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는 몰라도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활동한 스페인의 건축가인 가우디는 건축사에 길이 남을 건축가임이 분명하다.
■글·사진 오동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활동한 스페인 건축가인 가우디
가우디의 건축은 한마디로 비선형(非線形)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의 면 에서도 곡선이 지배적이며 장식의 패턴은 불규칙적이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가우디가 생존하고 활동하던 시기에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형식이 건축으로 확장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특히 그의 후반기라 볼 수 있는 18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가우디 형식의 극치를 보인다.
▲단순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복잡한 형상이다. 천장에는 태양 문양의 장식이 되어 있다.
천재 혹은 광기, 가우디의 건축양식 가우디가 주로 활동하였던 바르셀로나는 그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건축학도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가우디의 작품들은 호오(好惡-호불호는 잘못된 표현)가 극명할 수 있는 극단적인 디자인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꼭 그를 천재라고 칭송하기만은 또 어렵다. 가우디의 작품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천재와 광기는 종이의 앞뒤와도 같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이니…. 그러나 다양성의 입장에서 디자인의 세계를 넓힌 그의 성과는 분명히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들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보자. 먼저 찾은 곳은 구엘 공원이다. 가우디의 경제적 후원자 구엘 백작을 위해 바르셀로나 교외 언덕에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설계된 곳이다.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했다. 구엘 백작과 가우디는 이곳에 60호 이상의 전원주택을 지어서 스페인의 부유층에게 분양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구엘 백작과 가우디의 계획은 당시로써는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지만 부동산 관리책으로 말하자면 실패한 계획이었다. 1900년부터 1914년까지 14년에 걸쳐서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자금난까지 겹치면서 몇 개의 건물과 광장, 유명한 벤치 등을 남긴 채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구엘 공원으로 가는 편한 길이라고 하여 책에 나온 대로 버스를 타고 가서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갔다. 그런데 필자의 징크스가 또다시 발동했다. 그렇게 올라간 곳은 바로 공원의 후문이었던 것. 또다시 거꾸로 입구까지 찾아가게 생겼다.
▲햇살이 강렬해 바깥에서는 계속해서 앉아있기가 어렵다. 햇볕을 피하기도 할 겸 가우디의 생가로 들어섰다.
철저한 계산하에 탄생된 디자인 공원은 마치 미로 같다. 중간마다 공원의 지도가 있어서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그걸 봐도 방향이 헷갈린다. 처음 만나는 가우디의 작품인데 초장부터 가우디 양식을 확실히 보여준다. 기둥 하나하나를 봐도 평범하게 만들어진 것이 없다. 불규칙하게 생긴 돌들을 쌓아 올린 듯 기둥을 만들었는데 그나마도 복잡한 곡면의 형상으로 표면을 만들었다. 어떤 기둥들은 아예 조각을 만들었다. 전혀 기하학적이지 않은 형상 같지만 모든 것이 철저한 계산으로부터 나온 디자인이라는 게 놀랍다. 그가 추구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평범하게 직선으로 벽면을, 천장을 만들지도 않고, 단일한 단면으로 기둥을 만들지도 않는다. 기둥하나를 만들려고 위치에 맞는 돌을 찾거나 깨어서 만들어 접착제로 붙여 넣어 만들어가야 할 텐데 작업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신전의 기둥을 보니 그제야 평범한(?) 세계로 돌아온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복잡한 형상이다. 이 기둥의 가공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천장에는 태양 문양의 장식이 되어 있다. 고개를 완전히 젖히고 찍다가 안되어서 그냥 카메라를 바닥에 누이고 찍었다. 가방과 함께 잃어버린 앵글파인더가 너무 아쉽다. 공원 내부를 돌아돌아 드디어 입구가 보이는 곳으로 왔다. 공원은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지만, 가우디의 박물관으로 꾸며놓은 생가는 입장료가 필요하다. 까사 바뜨요의 입장권과 함께 구매하면 할인 혜택이 있으니 참고하자. 가구의 디자인을 보면 아르누보 풍인 것이 보인다. 가구가 이렇게 화려한 모양인 것은 당연히 이해가 된다. 이것이 건축으로 확대되니 수용하기 약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욕실을 살짝 훔쳐보니 뜻밖에 평범한 모습이다. 생가는 가우디의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그가 건축에 응용한 곡면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에 사용되는 조각들은 약간은 기괴한 느낌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전면과 후면은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조각에 묘사된 사람의 형상도 전면과 달리 실제에 가깝게 묘사하고 전면은 매끈한 벽면이지만 후면은 거친 질감을 나타내고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완공을 꿈꾸며… 구엘 공원 다음은 바르셀로나의 상징과도 같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la Familia)이다. 가우디의 나이 서른 살 때인 1882년 3월 19일(성 요셉 축일) 공사를 시작해 1926년 6월 죽을 때까지 교회 일부만 완성하였다. 원래는 가우디의 스승이 건축을 맡았으나, 1883년부터 가우디가 맡으면서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체가 완성되면 성당의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60m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앙 돔의 높이는 170m 정도이다. 구조는 크게 3개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로 이루어져 있다. 가우디가 죽을 때까지 완성된 파사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탄생의 파사드뿐이다. 이 파사다드는 가우디가 직접 감독하여 완성한 것이고 나머지 두 개의 파사드는 수난과 영광의 파사드이다. 수난의 파사드는 1976년에 완성되었고,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되지 않았다. 3개의 파사드에는 각각 4개의 첨탑이 세워져 총 12개의 탑이 세워지는데, 각각의 탑은 12명의 사도(제자)를 상징하고 모두 100m가 넘는다. 또 중앙 돔 외에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140m의 첨탑도 세워진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을 조각했는데 건축에는 복잡한 곡면을 사용하면서 사람에는 직선을 사용한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가우디의 디자인 세계이다. 천장에는 별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한 장식이 뒤덮고 있으며 기둥은 마치 나뭇가지 처럼 뻗어 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한 번에 여러 개를 만들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하나하나를 깎아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설계의 건물이니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전면과 후면은 또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조각에 묘사된 사람의 형상도 전면과 달리 실제에 가깝게 묘사하고 전면은 매끈한 벽면이지만 후면은 거친 질감을 나타내고 있다.
▲내부 벽면은 커튼의 주름 마냥 흐르는 듯한 곡면으로 디자인되어 구불구불한 공간미를 강조했다. 마치 생명이 살아 숨을 쉬는 유기체 같아서 '인체의 집’ 이라는 의미로 카사 델스 오소스(Casa dels ossos)라고도 한다.
살아 숨쉬는 디자인 지하에는 성당의 설계와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전체의 스케치와 모델, 장식으로 들어갈 조각의 스케치, 기둥의 곡면을 형상화한 기하학 모델…. 무엇보다도 경악할만한 것은 바로 천장의 곡면을 만들어낸 모델이다. 이 정도 되면 광기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공사는 현재까지도 계속 작업 중에 있고, 성당 전체가 완성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앞으로도 200년은 더 걸릴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제발 이상한 헛소문은 확인이라도 해보고 퍼트리길 바란다. 건축에 필요한 자금을 입장료와 기부금만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진행이 더딘 것이지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120년도 넘게 지어온 것은 아니다. 주 재료가 석재였는데 자재가 부족하여 작업이 중단된 것 정도가 지연의 원인이고 그나마 현재는 인조 석재와 콘크리트로 대체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돈만 많으면 적어도 필자의 살아생전에는 완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좀 더 작은 작품을 살펴보겠다. 현재 사람이 살거나 이용하는 건물들이다. 바로 까사 밀라와 까사 바뜨요.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까사 바뜨요의 겉모양은 가우디의 작품치곤 비교적 평범한 디자인이다. 단 내부 벽면은 커튼의 주름 마냥 흐르는 듯한 곡면으로 디자인되어 구불구불한 공간미를 강조했다. 마치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유기체 같아서, 인체의 집’이라는 의미로 카사 델스 오소스 (Casa dels ossos)라고도 한다. 내부의 벽과 천장은 생선비늘과도 같은 불규칙한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다. 반면에 발코니의 장식, 벽난로, 가구 등에서 다소 일관된 디자인을 찾을 수 있다. 옥상의 굴뚝은 예의 가우디식 타일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은 전시공간과 같은 곳으로 앞에 보이는 스크린에는 홀로그램으로 영상이 비친다. 방의 내부 모습은 생선 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까사 밀라는 현재도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 집이 전시용으로 개방되어 있다.
복잡함이 매력이다 까사 바뜨요의 맞은편에는 까사 밀라가 있다. 카사밀라는 라 페드레라(La Pedrera)’ 라고도 하며 1910년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1895년 바르셀로나 신도시계획 당시에 세워진 연립주택이다. 까사 바뜨요의 외벽은 단순한 직선면이었던 것보다 까사 밀라는 본격적으로 물결 치는 듯 복잡한 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까사 밀라의 최상층도 가우디의 디자인 세계를 요약한 박물관이다. 이 방의 천장 모습은 앞서 본 까사 바뜨요의 생선 뼈 모양과 같다. 까사밀라의 최상층에 있는 가우디 디자인 박물관에는 가우디 디자인이 총망라 되어 있어 가우디의 팬이라면 꼭 들를 가치가 있다. 역시 오디오가이드가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전시물에 대한 다양한 부가 설명이 곁들여진다. 까사 밀라의 옥상에 있는 굴뚝은 투구모양을 연상시켜 유명하다. 까사 밀라는 현재도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 집이 전시용으로 개방되어 있다. 내부는 1 9세기 말의 스타일로 꾸며져 있는데 아마도 다른 집들은 현대식으로 고쳐서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디자인이란 과하면 촌스러워지는 법이다. 세련된 디자인들을 보면 단순함을 강조한 것이 많다. 하지만, 가우디의 디자인은 정 반대라 할 수 있겠다. 직선을 탈피하고 규칙적인 패턴을 배제함으로써 끊임없이 복잡함을 추구하는 디자인이다. 가우디의 면(面)은 얼핏 보기엔 아무렇게나 만든 무질서해 보이는 면이지만 철저히 계산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아무리 복잡해도 계산된 면은 결국 익숙해지면 패턴이 파악되는 법이다. 가우디는 이러한 복잡함을 통해 디자인을 예술의 경지로 올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