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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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붓끝에 정성 담아 숨소리도 죽이며…탱화 제작 박소현씨(우리절 불모님)`/매일신문[5/3字]

보현화 2009. 5. 3. 21:50

 

 

붓끝에 정성 담아 숨소리도 죽이며…탱화 제작 박소현 씨

 

   
 
 
부릅뜬 두 눈, 호랑이 눈썹, 코가 주먹만 한 얼굴의 나이 든 장정이 갑옷을 입고 칼을 든 그림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겠는가. 갑옷, 투구 등에는 붉은빛이 선연하다. 한 폭의 그림에 이런 인물이 십여명씩 담겨 있다.

 

사찰을 찾으면 쉽게 볼 수 있는 신장탱화의 한 장면. 오방색(흑색, 백색, 적색, 청색, 황색)을 주로 사용,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특히 악신을 물리친다는 신장(神將)의 위엄에는 조그만 죄마저도 엎드려 빌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흔히 탱화(幀畵)라 불리는 이 그림은 범어 'Tanka'(벽에 거는 그림이라는 뜻)를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교의 이치를 깨닫는 데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그려진 탱화는 전통적인 양식으로 치부되기 십상.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효율적이고 정감 있게 표현하려는 시도가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2003년 11월 한국불교대학(구 영남불교대학) 관음사 법당에 걸릴 탱화에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담아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박소현(54·여)씨. 그는 여전히 원색보다는 신세대 감각에 어울리는 파스텔톤 색조 사용에 주저함이 없었다.

20일 오후 대구 남구 영대병원네거리 한편에 있는 한국불교대학을 찾았다. 불교대학 부속 건물 3층에서 오는 석가탄신일에 쓰일 탱화 제작에 여념이 없는 박씨를 만났다.

 

 

 

?탱화를 그리는 건 수행

 

-탱화를 그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탱화 제작은 제게 수행입니다. 스님들께서 묵언수행, 염불수행을 하시듯이요. 무엇보다 탱화는 제가 그리는 게 아닙니다.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한 힘이 있어요. 거기에 이끌려 탱화를 그리게 돼요. 하루 13시간 이상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탱화를 그리려고 엎드려 지내야 하니 구도의 고행이나 마찬가지지요."

 

 

-2003년 제작하신 신중탱화로 유명해졌는데요.

 

"관음사 법당에 걸린 신중탱화는 포교를 위한 것이기에 친숙한 이미지가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탱화에도 진한 색깔을 중심으로 그리는 전통적 제작방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부대중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원칙만 고집해, 원색 중심인데다 무서운 표정이 많은 신중탱화를 걸어 놓으면 탱화를 보는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이 앞서겠지요. 친숙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한국불교대학 법당 내에는 배우는 학생도 많습니다. 유아들도 많고요. 그래서 시도한 것입니다. 계보나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현대적인 느낌의 탱화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전통양식이 깨졌다며 쓴소리하는 이들은 없던가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적어도 제 귀에 들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모든 물품은 기능과 문화에 맞게끔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을 예로 들면 한옥, 양옥, 아파트 등 여러 집이 있지만 안락한 보금자리라는 기능을 가지되 소유주의 개성에 따라 겉모습이 결정되지 않습니까. 탱화도 마찬가집니다. 탱화가 포교를 위한 것이고 친숙한 느낌을 필요로 한다면 파스텔톤의 색채를 쓰거나 그림 속 등장인물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린 탱화 중에는 이순신, 장보고 등 민족을 위기에서 지켜준 위인들이 신장으로 등장합니다. 탱화도 결국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큰 타박은 없었습니다."

 

 

-탱화가 개성 있고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례를 할 테니 그려 달라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거의 없었지만 있다 해도 사절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요청하는 경우 집안에 법당을 모신다는 얘기인데 사기성이 풍기기 때문에 거절합니다. 대부분은 사찰에서 요청합니다. 하지만 사찰에서는 전통적 방식을 선호하지요. 작게는 66㎡, 크게는 높이만 9m가 넘는 괘불을 그리게 되는데 제작 기간은 6개월 안팎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가는 붓으로 세세하게 표현해야 하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건 똑같습니다."

 

 

-본격적으로 탱화를 그린 게 1997년부터였다고 했는데 13년 동안 30여점의 작품을 낸 것은 지금껏 쉴 새 없이 그렸다는 얘기네요. 그린 만큼 경제적 대가도 따릅니까.

 

"어디까지나 수행의 한 방법으로 탱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물으신다면 이름난 분들의 경우 평당 150만원도 받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돈이 안 됩니다. 재료비가 꽤 들어가거든요. 탱화에 쓰이는 오방색 중 노란색에는 황금이 들어갑니다. 밝은 느낌을 주기 위해 즐겨 쓰는 색이기도 한데요. 진짜 황금과 황금빛이 나는 대체료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재료비가 적잖게 듭니다."

 

 

?탱화 그리는 '여자'

 

-탱화를 그리는 여자가 많습니까.

 

"많지 않습니다. 탱화는 친숙한 느낌을 줌과 동시에 신성한 신앙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스님이 아닌, 그것도 여자는 감히 그릴 엄두도 내지 못했지요. 대구에 탱화 그리는 부부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숫자는 적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대학에서도 3개월 전부터 불화반을 만들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한 신도는 거의 없지만 불화를 그리면서 수행하겠다는 마음만은 강합니다."

 

 

-어떻게 여자로서 탱화를 그리게 됐습니까.

 

"큰아버지와 고모가 출가했을 만큼 불교와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사찰을 자주 찾았고 탱화는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저 역시 비구니의 길을 갈 뻔했습니다. 하지만 고모가 입적하시는 바람에 저는 비구니가 되지 않고 속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일찍 한 것도 그런 이유이지요. 하지만 속가에서 사부대중의 감정과 고통을 체험하며 탱화를 그리니 이것 또한 좋다고 생각합니다. 필연이지요."

 

 

-주부로서의 역할에 불성실할 수도 있겠는데요. 집에서는 뭐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실상 탱화를 그리면 가정 생활이 제대로 안 됩니다. 오전 5시 30분에 나와서 오후 10시까지 탱화에만 매달립니다. 우리 부부는 좀 예외입니다. 사업상 남편이 서울에 있어 주말부부지요. 하지만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합의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결혼 전 약속하기를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면 탱화에 전념하겠노라'고 했거든요.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고요. 제가 불교미술대전에서 1986년에 입선을 하고도 1997년에 사실상 첫 탱화가 나온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탱화 달인

 

-자신만의 탱화 세계를 만들려면 다른 탱화도 많이 봐야 했을 텐데요.

 

"당연히 비교하려면 돌아다녀야 합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다녔지요. 각국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은 사무라이를 표상하듯 날카로운 느낌이 들어요. 스리랑카 쪽으로 가면 화려한 의상이 돋보이죠. 우리나라가 인물들의 표정이 가장 온화한 것 같더군요."

 

-'윌리를 찾아서'라는 그림을 아십니까.

 

"그게 뭔가요?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숨은 그림 찾기식 게임북이라는 설명이 이어지자) 그런 게 있었군요. 처음 들었습니다."

 

-불교신자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신중탱화에는 인물이 많아 숨은 그림 찾기 같기도 한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깊은 뜻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2003년에 그린 신중탱화에도 방독면, 노트북, 휴대전화, 미사일이 숨어 있지요. 방독면을 쓰게 될 상황, 미사일을 쓰게 될 상황, 전자기기를 쓰게 될 상황에서 대중을 벗어나게 해주십사 하는 마음이 담겼습니다. 탱화는 기본적으로 신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장치니까요. 복잡해 보여도 자세히 자주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직업병은 없습니까.

 

"기본 스케치 작업부터 색을 칠하기까지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작업에 매진합니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는 건 직업병이 아니고요. 온종일 웅크리고 있으니 온 몸이 쑤시지요. 목디스크가 특히 심해요. 허리도 아프고.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탱화를 그리려고 다시 웅크리면 괜찮아져요."

 

-탱화를 잘 그리는 기술 개발을 위한 방안이 있나요.

 

"탱화는 온몸으로 그립니다. 숨소리조차 죽이며 작은 붓끝에 정성을 담습니다. 수행일 수밖에 없지요. 기술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붓놀림이 다릅니다. 탱화는 다른 그림을 그릴 때보다 기교와 정성이 몇 갑절이나 더 들지만 특히 정성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에서 실력이 나오는 것이거든요. 기술이 우선이라면 탱화도 미술 전공자들의 전유물이 되어야 했지 않겠습니까."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박소현은?

1956년 경북 예천 출생

1974년 결혼

1978~1986년 광주 연진회 미술원에서 의제 허백련 선생에게 사사

1986년 서울불교미술대전 문수보살상

1997년 포항 황해사 신중탱화 제작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0여점의 탱화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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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05월 02일 -

 

 

 

 

출처 : 불교인드라망
글쓴이 : 자목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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