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입니까?" 말에 눈물이 주루룩
오마이뉴스 | 입력 2010.08.27 17:49 | 누가 봤을까? 10대 여성, 부산
[오마이뉴스 정동묵 기자]도마뱀 꼬리마냥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긴 장마와 사이사이의 살인적인 폭염. 기습적인 스콜과 습기 텁텁한 더위는 동남아의 날씨 그대로다. 하지만 계절과 절기 이길 자 그 누구인가. 처서가 지나자 하늘도 점차 노여움을 풀고 제자리 찾아가는 모양새다. 이렇게 가을이 오면 우리도 달떠 있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를 돌아보야 할 때다. 그리고 그러려면 지체 말고 백담사로 달려가 머무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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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지급해 준 개량 한복을 입고서야 템플 스테이를 자청한 사람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금요일 오후 다섯 시부터 일요일까지 점심 때까지 이어질 이번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참 나를 찾아 떠나는 행복 여행'. 전국 각지에서 갖가지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이들은 강원도 내설악에 자리한 구절양장의 백담사를 찾았을 거다. 속세에서는 찾을 길 없는 '참 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기대를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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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교육관에 모여 잠깐의 소개 동영상과 설명을 두 분의 프로그램 스태프인 함박님과 효문행님으로부터 들은 뒤 여섯 시에 열여섯 명의 세인들은 공양간으로 향한다. 절밥에 막연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스테이어들의 눈이 살짝 빛난다.
잠시 후, 그 눈들에 기대했던 만큼의 실망감이 역력하다. 학교 급식판과 다를 것 없는 스테인리스 식판에 밥, 국과 찬 세 가지를 먹을 만큼 뜨는데, 반찬도 김치와 절인 오이, 표고버섯볶음과 상추쌈 정도이고, 이마저도 양념이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아 보는 맛은 별로였으니 내심 그럴 밖에.
"천천히 꼭꼭 삼십 분간 말씀하지 마시고 드셔야 해요. 이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집니다. 절밥이 참 맛있으실 거예요."
탁자마다 모래시계를 뒤집어놓는 스태프가 미워 보인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허리는 곧추 펴고, 그릇 부딪히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이야기 나눠서도 안 되고, 그것도 삼십 분 간이나 먹으라니. 서로 간의 서먹함과 공양 예절의 엄숙함이 취기처럼 몰려들어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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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시부터 정식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주재자인 백거 스님은 말 없이 시 한 편 적힌 종이를 나눠 준다. 한용운 님의 '군말'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중략)/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후략)"
스님은 바로 화두를 던진다. "여러분도 님이 있으십니까? 있다면 그 님은 어떤 님이십니까?" 둥그렇게 둘러앉은 이들에게 음색 가냘픈 스님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저도 모든 인연을 일주문 들어설 때 다 내려놓은 것 같은데 문득문득 그 님이 가슴에서 올라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내치지 않습니다. 님과 이야기도 하고, 함께 자 보기도 합니다. 자세히 보면 그건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도 그 님에 너무 빠지지는 말되 지긋이 바라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만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님이 있으면 여기에서 툭툭 내려놓고 비우고 가십시오."
그러고는 앉은 이들을 두 팀으로 갈라 서로 마주보게 하더니 역할 분담을 시킨다. 한 명은 묻고 한 명은 대답만 한다. 질문은 한 가지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첫 질문에 머뭇머뭇하던 이가 사는 곳과 이름을 이야기한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또 물으며 답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 "남편과 뜻이 잘 안 맞는 아무개입니다." 또 묻는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남편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제게도 잘못이 있는 아무개입니다."
답을 하는 여덟 명의 목소리가 점차 떨리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저기 눈물이 흘러 내린다. 이야기를 돌아다니며 듣던 스님도, 등에 손을 얹고 다독여 주던 스태프들도, 취재하던 필자도 그들 사연과 깨우침에 함께 운다. 두 시간여, 짝을 바꾸며 '나는 누구인가'에 답한 이들이 서로의 등에 기대 쉬니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듯하다. 내면의 님을, 가슴 속의 자신을 조금 맛보았을 그들. 문밖을 나온 이들은 빗줄기 더 굵어져 억수 내리는 하늘을 한동안 망연히 바라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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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세 시에 일어난 일행은 도량석(대웅전을 돌며 예를 갖추는 일)부터 아침 예불의 정석을 체험한 후 삼조 주지스님으로부터 불가 예절의 기본인 백팔 배를 배운다. 절은 온몸으로 자신을 낮추면서 동시에 상대를 높여 주는 거룩한 행위다. 또한 유산소운동과 복식 호흡법, 요가 효과 등 육체의 건강은 물론 마음의 정화까지 할 수 있으니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일상화해 볼 만한 수행의 기본이랄 수 있다.
7단계로 이루어진 절의 기본법을 익힌 후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백팔 배를 하니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수행장인 무설전의 문을 여니 밤새 어지러웠던 백담 계곡의 물소리는 그대로인데 비 갠 하늘은 스테이어들의 마음처럼 청량하다. 일어나서 반나절쯤 지난 것 같은데 아직 새벽 여섯 시 반. 일곱 시에 시작하는 아침 공양 맛이 엊저녁의 그것과는 천양지차다. 조금은 친해진 이들끼리 소곤거리는 귀엣말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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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직녀 참사랑 템플 스테이, 한가위 템플 스테이, 테마가 있는 템플 스테이 등 그 종류가 무궁한데, 이는 백거 스님의 대중을 사랑하는 자비심과 뛰어난 기획력에 기인한 것이다. 이를 인정 받아 백담사는 조계종에서 내리 3년 간 최우수 템플 스테이 사찰로 지정된 바 있다.
"수행의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열심히 살고 싶어요. 지금은 개인과 기업에게만 문을 열어놓지만 내년부터는 외국인에게도 적극 개방할 생각입니다."
'먹고 마시는 관광'이 판치는 요즘, 내면을 성찰하며 돌아 보는 관광문화를 그는 절실히 꿈꾸고 있는 듯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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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명이 한 조가 돼 자신을 뺀 일곱 명에게 일 인 당 세 가지의 칭찬을 받아 보는 '님의 침묵'은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장점을 일깨우는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아빠 박인제씨, 오빠 박병준군과 함께 참여한 초등학생 박진아양은 "집에 돌아 가서도 여기서 배운 나 자신과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살아가겠다"고 당찬 소회를 밝힌다.
이제 절문을 나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막 수심교를 건너려는 때에 수줍게 서 있는 속살 뽀얀 시비가 눈에 그윽하게 들어 온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 < 그 꽃 > 전문)
세부 정보 |
Way 서울에서 백담사로 가는 길은 편해졌다. 88고속도로 미사리 부근에서 새로 난 춘천고속국도를 타고 계속 달려 동홍천IC에서 내린 다음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 넘어 용대 삼거리까지 가면 된다. 우회전해 입구에 주차한 다음 절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약 세 시간 소요. Eat 절 음식을 공양하는 것은 수행의 일종이다. 가급적 묵언(默言)하는 게 좋다.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고, 맵고 짠 것을 지양하므로 어쩌면 처음엔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으나 금세 적응된다. 외려 나중엔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는다. Stay 백담사의 템플 스테이는 참으로 다양한데, 크게는 휴식형과 체험형으로 나눌 수 있다. 휴식형은 절에서 던져 준 화두를 생각하며 스스로 릴랙스할 수 있고, 체험형은 스님의 주재 하에 여러 프로그램을 일정에 따라 소화하는 것이다. 휴식형은 하루 3만 원, 체험형은 1박2일 10만 원, 2박3일 15만 원. Enjoy 백담사 인근은 자연이 잘 보호되어 있어 설악산국립공원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풍광이 즐비하다. 계곡은 말할 것도 없고 숲에 들어가면 그 향조차 다른 곳과 다름을 금세 알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한다면 채비를 갖춰 템플 스테이가 끝난 후 영시암과 봉정암, 오세암으로 올라 보는 것도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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