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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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신문 20주년 기념 초청특강/시골의사 박경철 ‘우리 시대의 희망찾기’

보현화 2012. 3. 31. 22:01

 

경산신문 20주년 기념 초청특강/시골의사 박경철 ‘우리 시대의 희망찾기’

 

일시 : 2012. 3. 7(수) 17:30~

장소 : 경산시민회관 대강당

 

1. 나만의 영웅이 필요하다

 

...언젠가 그리스 여행을 하였는데, IMF로 인해 국가부도 직전이라 데모 중이었다.

일본은 국가부채규모가 우리나라보다 6배 정도 많다. 그 빚을 다 갚으려면 2년 반 동안 10원도 안 쓰고 모아야 하며, 이자를 갚기 위해 국가예산의 28%나 쓰고 있다. 노령화, 복지가 중요한 문제로서, 일본은 한국보다 20년 앞서 문제를 끌고 가고 있는데, 노인이 부자라는 것이 문제이다. 곧, 나라를 잡아먹는다는 거죠.

돈->밀가루->공장->농부->공장->쇠->돈 코스처럼

즉, 우리가 짜장면을 안 사먹으면 포스코는 훅~ 가 버린다!

일본돈 4분의 3은 혈액순환이 안 되는 죽은 돈이다. 전체국민의 51%가 세금을 못 내는 상황이며, 어른들이 돈을 안 쓰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면 한국 경제는 왜 돌아가나? 어르신들이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주니까~(웃음)

1990년 경 공시지가가 200배 올랐는데, 이후 거품(Bubble)붕괴가 있었다.

예를 들어서 40대 가장인 김씨 아저씨가 3억짜리 아파트가 있었는데, 집 주위에 지하철이 생긴다는 말이 있어서 집값이 4억에서 5억으로 올랐을 때, 아내는

“우리 애들 시집 장가 갈 때까지 조금만 더 고생하자.”

고 했지만, 김씨는

“집값이 2억이나 올랐는데!”

하면서 한달 생활비로 100만원을 추가 지출하였다. 그러나 월급은 그대로이고, 머릿속 계산상만으로 부자였을뿐, 실제 현금은 그게 아닌 거죠? 그렇게 흥청망청 쓰다보니 신용카드 4개, 마이너스 통장 등으로 빚이 2천만원이나 되었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던 중 어느 날 아내가

“여보, 지하철 건설이 백지화 됐대.”

라는 말에 좌절과 동시에 100원도 쓰기가 힘든 상황이 되면서 급기야는 사채업자를 찾아가다가 쓰러지기도 했으니, 결국은 나 혼자 계산기 두드려서 난리 부르스를 친 꼴이 되고 말았다.

A가 집을 1억에 사고, 그 집을 B가 2억에 사고, 또 다른 C가 3억에 사고, ... , 200억에 사는 마지막 바보는 무너지고 마는 거죠?

한 때 일본 직장 여성들 사이에서 ‘하와이 계’가 열풍이었는데, 와이키키에 땅을 사서 별장을 지으려는 계였다. 그러던 일본에도 거품이 가라앉자 마이너스 통장을 쓰게 되면서 ‘절대 돈을 안 쓰겠다!’는 생각이 지배를 하게 되고 그 생각은 곧 근검 절약으로 나타나 장사까지 안 되었다.

“왜 자식들에게 돈을 안주십니까?”

하고 물으니, 당시 조기유학 열풍(미국, 캐나다)에다 자녀들에게 집, 가게를 사주는 등 헌신을 했지만 아이들이 아메리칸 피가 되어 버려 부모를 책임지지 않으려고 해서 고독사하는 독거노인까지 속출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일본에 100살 넘는 노인 인구가 많은데 그 이유는, 자식들이 노령연금을 타려고 사망신고를 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자식이 부모를 이용하고 뒤통수를 치니 재산을 줄 수가 없다는 게 현 일본 노인 부모들의 생각이다.

 

성실과 근면에는 인간적 존엄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나 일본처럼 될 수 있다.

 

 

2. 선한 영향력

 

오래 전 레지던트로 근무 중 환자 중에 위암은 분명한데 CT촬영 상 전이가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해서 개복을 하려는데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해서 환자분에게 물으니 남편은 죽었고, 시댁 식구도 끊어짐은 물론 친정 식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 보호자가 없다는 거였다. 배를 열어보니 작고 흰 암세포가 여기 저기 퍼져 있어 손도 못쓰고 배를 닫았다. 큰 암세포가 아니어서 CT에 촬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중환자실에 있지 않고 일반 병실에 왔으니, 나는 이제 죽는구나.’

라고 생각한 듯 그녀는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레지던트 시절에는 격무로 인해 식사가 부실하여 주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컵라면을 먹다가 그 아주머니의 애들이 생각나서 불러서 같이 먹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엄마 돌아가시면 너희들은 잘살아야 돼.”

이런 말을 해준 것 같다. 병실에 가보니 아이들 엄마가 곧 돌아가시게 생겼는데, 엄마가 애들 손을 잡고 있었다.

여러분들 보통 사람이 죽을 때 무슨 말을 할 것 같아요? 유언을 주로 하겠지만, 떠나기 전에 70%의 사람들이 “손”이라는 말을 한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며 마지막 길을 떠나고 싶은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다. 우리는 살면서 아끼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들을 버리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죽음에 이르러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심전도 기계의 수치가 점점 낮아지고 사망을 알리는 부저 소리가 들렸는데도, 애들이 울부짖지도 매달리지도 않기에 가보았더니 티셔츠의 반이 눈물로 젖어 있었다. 엄마를 꼭 끌어안고

“엄마, 사랑해요.”

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 말에는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잘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깃들어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 신부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접견실에서 본 그분은... ‘아우라’라고 할까...가끔 보면 사람에게서 빛이 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이 반죽이 되어서...‘나의 색깔’을 만든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자기는 10년 전 돌아가신 위암환자 분 아들이라고 하였다(동생은 교사가 되어 결혼). 그 말을 듣는 순간 의료사고였다고 따지러 온 것인가 하고 불안했는데 그게 아니었고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러 온 것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당시 저와 라면을 먹으면서

“나도 너보다 두 살 많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입장에선 슬프지만, 떠나가신 분 입장에서 보면 견딜만하다.”

제가 그런 말을 했답니다. 좋은 말 한 마디 한 것밖에 없는데, 그 말이 두 사람을 살아가게 했다고 한다. 그와 같이, 나는 비록 악의가 없지만 댓글 잘못 달아서 여배우가 보고 자살할 수도 있듯이, 영향력이란 중요한 것 같다.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선한 영향력’인가가 중요하다.

 

 

3. 의식 전환에서 혁명, 공감은 중요하다

 

공감은 empathy이고 동정심은 sympathy이다.

동정(sympathy)은 ‘내가 너보다 우위에 있다’, 즉 위에서 밑으로 가는 것을 뜻한다. 동정심은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많은 강연을 다니면서 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현장에서 즉답을 하긴 하지만, 집에 돌아가선 그 질문들을 다시 정리를 해보곤 하는데, 그 과정을 2~3년 계속하다보니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저는 학생들에게 동네 형님처럼 답변을 한다.

“기성세대로서 다음 세대에게 미안하다.”

질문을 하는 학생들은 ‘나의 아픔을 이해해 달라’,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위로를 원한다.

‘공감’은 위에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면서

‘내가 그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