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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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인사이드/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125분/개봉 2007.3.15

보현화 2013. 4. 14. 18:06

 

씨 인사이드 (2004) Mar adentro The Sea Inside

 

씨 인사이드 포토 보기  

 

 

요약정보

드라마 |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 125 분 | 개봉 2007-03-15 |
홈페이지
해외 www.theseainside.com
제작/배급
㈜스폰지이엔티(배급)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라몬 삼페드로 역), 벨렌 루에다 (훌리아 역), 롤라 두에냐스 (로사 역), 마벨 리베라 (마뉴엘라 삼페드로 역)  출연 더보기

 

 
“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

26년 전, 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전신마비자가 된 남자가 있다. 라몬 삼페드로, 무기력한 전신마비자이기 보단 의욕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찾고자 했던 그에게 바다는 단 1미터도 움직일 수 없는 인생을 안겨준 공간이자, 영원한 자유를 소망하는 꿈의 공간이다.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입으로 펜을 잡고 글을 써왔던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죽음의 자유가 있는 그곳, <씨 인사이드>
한편, 라몬을 찾아온 두 명의 여자가 있다.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수다스럽지만 순수한 여인 로사. 라몬이 스스로 생을 끊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턱대고 그를 찾아와 친구가 된 그녀는 라몬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자신을 위해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또한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변호사 훌리아. 라몬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안락사 소송을 도와주는 동안 그녀는 그에게 점점 사랑을 느끼지만, 그 감정조차도 그들에겐 너무나 버거울 뿐인데….

이영화의 키워드 : 장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About movie 】

“죽음은 나에게 있어 마지막 자유였다”
의무가 아닌 권리로서의 삶을 주장하는 라몬 삼페드로의 실화를 재조명한
스페인의 천재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씨 인사이드>

24세의 젊은 나이, 독특한 기법의 스릴러 영화 <떼시스>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스페인의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를 거쳐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의 찬사 속에 <씨 인사이드>로 돌아왔다. 제 77회 아카데미영화제, 62회 골든글로브영화제 외국어영화상 수상, 61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씨 인사이드>는 스페인의 전신마비자 라몬 삼페드로의 안락사 문제라는 뜨거운 논쟁을 조명한 작품. 이번 영화 역시 감독 스스로 자신의 ‘궁극의 테마’라고 주장하는 ‘죽음’을 다루고 있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판타지와 현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오는 신비롭고도 몽환적인 정서를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포착해내는 스타일리스트인 스페인의 천재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씨 인사이드>에서도 죽음의 자유를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색깔로 그려낸다. 마치 새가 훨훨 날아가는 시점으로 내려다 보이는 바다와 산,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의 수평의 모습과 어우러진 음악은 아메나바르 감독이 해석한 라몬의 억눌린 욕망의 판타지. 감독은 특별히 <씨 인사이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며 연출, 각본, 제작, 편집, 음악까지 1인 5역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영화에 혼을 불어넣었다. 또한 이번 영화로 베니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하비에르 바르뎀은 휠체어 조차 거부하고 30여년 동안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던 전신마비자의 고통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항상 밝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유머를 통해 주위 사람을 웃게 했던 한편,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직시했던 그의 굳건한 내면 연기는 ‘영화의 심장부’라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쉽게 결론짓기에는 너무나 깊이 얽혀있는 삶과 죽음, 그 권리와 의무에 관한 논쟁을 통해 관객에게 자유로운 삶의 의미와 인간의 존엄성을 조심스레 묻고 있는 <씨 인사이드>. 영화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벅찬 감동으로 관객에게 다가와 엔딩크레딧이 끝날 때까지도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뜨거운 여운을 남겨줄 것이다.


영원한 자유를 위한 숭고한 투쟁
뜨거운 논쟁과 감동 속에 라몬 삼페드로가 전하는 “지옥으로부터의 편지”

“죽음은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죽음도 결국은 삶의 한 부분입니다. 만약 재판을 하게 된다면 그들은 나에게 왜 장애를 극복할 방법을 찾지 않냐고 물을 겁니다. 휠체어를 받아 들이는 건, 희망의 부스러기들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거기 앉아있고 나와는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나에게는 당신에게 다가갈 수도, 당신을 만질 수도, 극복할 수 없는 거리입니다. 내겐 그저 환상일 뿐이죠.” - <씨 인사이드>, 라몬 삼페드로의 대사 中

라몬 삼페드로. 노르웨이 상선 수리공으로 일하며 전세계를 떠돌았던 그는 25세의 나이에 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목뼈를 다쳐 평생을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전신마비자로 살아가야 했다. 3시간에 한 번씩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 남의 손을 빌어 자신의 위치를 바꿔야 했으며, 하루종일 TV를 보거나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며 공상에 빠지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는 어머니가 바로 옆에서 쓰러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자신을 발견하던 날, 생애 최고로 무능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천주교 신자가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스페인에서 전신마비자로서 죽음에의 권리를 찾고자 했던 그는 끝내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 받지 못한 채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1998년 1월13일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후 자살했다. 그가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사후에 밝혀져 “삶에 대한 존중 의식이 상실되었다”는 뜨거운 비난과 “낙태를 결심하는 여성의 법적 권리는 인정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장애인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반론이 첨예하게 대립되며 스페인 전역을 뜨거운 논쟁으로 들끓게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적 이슈를 조명한 사람은 다름아닌 스페인 출신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그는 영화를 만들기 몇 년 전 우연히 읽게된 라몬의 저서 ‘지옥으로부터의 편지’에 완전히 매료 당했으며, 즉시 그의 주변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그 과정에서 그가 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가의 이유가 점점 명확해지기 시작했다고.

영화 속 대사처럼 ‘웃으면서 우는 법’을 알고 있다고 했던 라몬 삼페드로는 실제로도 항상 주변인들에게 끝없는 웃음을 선사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자유를 위하여 매우 냉철한 논리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한 종교 관계자와 인권관련 인사들에게 편지를 써 자신의 안락사 문제에 도움을 받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끝내 유럽 인권재판소에서도 그의 안락사 소송이 승소하지 못했고 그는 주변인의 도움을 통해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자유였던 ‘죽음’,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우정으로 빚어진 세상에서의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은 우리에게 좀처럼 잊혀질 수 없는 뜨거운 동요를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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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자료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ㅣ씨 인사이드 [1]

  • 스타맨 작성글 전체보기
  • 추천 0 | 조회 2865 | 2007.03.18

26년 전 사고로 인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침대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라몬. 그는 지금 나라를 상대로 투쟁 중이다. 자신이 스스로 죽는 것을 인정해 달라고. 그의 안락사를 돕기 위해 변호사 훌리아가 찾아오고, 라몬의 사연을 TV로 본 싱글마더인 노동자 로사는 그의 친구가 되기 위해 방문한다. 그러나 라몬의 마지막 소망은 기각되고, 그는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

 

라몬이 형에게 묻는 것처럼,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일 사고로 죽는다면?’ 주일마다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기도하면서도 이 상상만 하면 아득한 곳에서 밀려오는 답답함을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배신감(?)과 죽음 그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죽음과 결혼한 남자’ 라몬 삼페드로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 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죽게 되는 것이고,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은 가치가 없다며, 어차피 가야 할 길을 조금 일찍 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절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고.


오랫동안 라몬의 수발을 들은 형수 마누엘라의 말처럼 정답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전의 자유를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휠체어를 타는 것도 거부했던 라몬의 말대로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이며 신념에 따라 삶을 결정할 자유가 있는 건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온, 역시 사지가 마비된, 신부의 말처럼 삶은 팔을 움직이거나 볼을 차는 것 이상인 건지. 다만 실제로 1998년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 라몬의 이야기를 통해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생각할 틈을 준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 삶을 선택한 의무 혹은 권리를 행사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라몬처럼 나의 삶을 재단할 만큼 굳은 의지가 있는지.


“웃으면서 우는 법”을 알고 있다는 대사가 알려주듯, 처절하면서도 삼라만상을 모두 받아들인 듯 초연한 라몬. 그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는 어떤 칭찬을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하지만 나의 눈을 적신 것은 결연한 그보다는 우리처럼 약한 다른 이들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도와야만 하는 아버지, 손발이 되어주는 조카, 아들처럼 돌보는 형수, 그의 계획을 실행시켜 주려는 로사와 친구들, 결국 라몬이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훌리아. 멋진 연기와 음악,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라몬이 그리워한 푸른 심연으로 우리를 빠뜨려 버린다.


 

외부자료2

 

씨인사이드... http://v.daum.net/link/4515071

 


 

외부자료3

잘 죽고 싶은 욕망 <씨 인사이드>

무엇인가를 반대하는 행위는 그 행위에 대한 그 사람의 무의식적 끌림 또는 그 욕구에 대해 자기 스스로는 통제 불능이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지나친 ‘00포비아’는 자기 안에 있는 00적 경향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순진한 ‘호모포비아’들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것을 허용하면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이 만연하게 되리라는 것을 내세운다. 그런 논리는 동성애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며 정치적, 사회적 차별에 의해 자연스런 성욕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그렇게 말한 이의 내밀한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분명하다면, 타인의 성적 취향에 의해 그것이 흔들릴 공포를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처럼 사회적으로 ‘전염성이 강한 나쁜(?) 욕망’으로 거론되는 또 다른 것은 죽음에 대한 욕망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예인들이 연이어 자살을 선택한 뒤 떠도는, 어르신들의 가장 큰 우려는 사회를 부양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죽음을 모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흔히 ‘베르테르 효과’라고 알려진 것처럼 유명인의 자살은 강한 전염성을 갖는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씨 인사이드>는 자살을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다. 자기 손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 없는 자들에게 죽을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생명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안락사’ 문제를 다루며 그것이 야기하는 법적, 정서적 문제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숙고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라몬 삼페드로(하비에르 바르뎀)는 28년 전, 자신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낮은 수심으로 인해 바닷물의 포옹 대신 모래바닥의 충격을 받고 전신마비가 된다. 그는 이야기를 하거나 입으로 글을 쓰는 것 이외에 타인의 도움 없이는 1cm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다. 외국을 공짜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선박기술자를 택했던 그는 젊은 시절 전세계를 누볐지만, 이제 그것은 사진 속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오직 자신의 꿈과 환상 속에서만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라몬에게 하루하루는 무기력과 고통의 연장이며, 자신의 존엄성을 잃어가는 시간들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그를 돕기 위해 변호사 줄리아(벨렌 루에다)가 방문한다. 퇴행성 질환으로 매일매일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살아가야 하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라몬의 삶을 깊이 이해하게 되고, 공감은 점차 사랑으로 바뀐다. 캔 공장에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인 로사(롤라 두에냐스)는 어느 날 TV에서 라몬을 보고 무작정 그를 찾아온다. 그녀는 처음엔 라몬을 설득하려하지만, 만남이 지속될수록 그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삶의 의욕을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사랑’은 타인을 향한 자아의 이기적인 욕망의 발현인 경우가 많다. 라몬에게 사랑은 모든 형사상의 책임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라몬의 가족, 특히 그의 형에게 사랑은 끝까지 라몬을 책임지고 돌봐주는 것이다. 그는 라몬을 보살피기 위해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를 버리고 농장으로 왔으며, 자신의 집에서 동생이 자살하는 것을 결코 용인하지 못한다. 줄리아가 라몬을 사랑하는 방식은 그가 쓴 아름다운 글을 출판해서 그가 얼마나 죽음을 간절히 원하는지를 여론에 알리고 그것을 통해 사법부를 설득하는 것이다. 로사는 처음에는 라몬에 대한 사랑이 삶에 대한 의지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사랑을 실현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떼시스>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 등에서 흥미로운 상상력과 박진감 넘치는 연출력을 선보였던 아메나바르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좀더 사회적 파장이 크고,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주제에 도전했다. ‘안락사’를 다루는 그의 태도는 분명하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권리만큼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라몬의 심리치료사인 제네의 입을 통해 두려움에 의한 죽음과 자유에 의한 죽음을 구별하도록 한다. 줄리아는 라몬의 집을 방문했다가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다. 지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줄리아는 자신도 라몬처럼 죽음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네는 ‘자유는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를 결정하도록 하지만, 두려움은 선택의 여지를 앗아간다’고 말하며 그녀가 두려움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설득한다. 안락사가 죽음에 대한 공포나 절망으로 인한 순간적 선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숙고 끝에 도달해야 하는 결론임을 분명히 해주는 대목이다. 또한 감독은 사랑이 넘치는 라몬의 가족을 통해 ‘안락사’란 가족의 무관심이나 불행한 환경에 몰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 속에서 환자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반인의 그런 선입견이 환자의 가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또 그것이 가족이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데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를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에서 안락사를 위한 라몬의 투쟁은 사법적 논란뿐 아니라, 종교적인 논란까지 불러일으킨다. 라몬과 안락사를 반대하는 전신마비 사제가 벌이는 논쟁은 인간의 삶에 대한 법률적인 권리에 동반되는 윤리적, 종교적 문제들을 상기시킨다. 물론 아메나바르 감독은 의도적으로 사제를 편협한 종교적 아집과 권위를 내세우는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라몬의 통쾌한 판정승을 이끌어낸다.

바다는 라몬에게 세상을 보여준 곳이며, 한순간에 그 모든 것을 앗아간 곳이기도 하다. 라몬의 육체는 언제나 좁은 방 안에 있지만, 그의 정신은 언제나 바다를 꿈꾼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라몬이 자신의 백일몽 속에서 창밖으로 날아올라 바닷가에 있는 줄리아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다. 아메나바르의 손을 거친 환상적인 편집 덕에 이 시퀀스는 마치 그가 실제로 숲과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꿈속에서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돌아가야 하는 현실은 더더욱 절망스러울 뿐. 다른 이들에게 당연한 일상적 삶이 불가능한 라몬에게 삶을 연장한다는 것, 특히 그것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미래가 오직 과거의 기억들과 현재의 고통을 연장하는 것으로서밖에 의미를 갖지 못할 때 안락사는 삶의 포기가 아니라 더 나은 종말일 수 있음을 이 장면은 백 마디의 대사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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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글_김지미 ]  | 씨네21 | 2007.03.14 0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