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펌자료방◀/펌·글&사진

해부학자 정민석을 만나다

보현화 2014. 8. 17. 04:28

http://media.daum.net/series/112824//newsview?seriesId=112824&newsid=20140816113010144

 

해부학자 정민석을 만나다

▶ '해부하다 생긴 일' 연재를 마치는 아주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정민석 교수를 만났습니다. 정 교수는 "지난번 칼럼이 야하지 않았냐?"고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습니다. 지면에서 다루기 어려운 내용들은 '자체 검열'로 빠졌지만, 정 교수는 해부학 지식과 실습실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달해왔습니다. 그의 마지막 칼럼과 못다 한 육성을 끝으로 '몸'면을 마칩니다. '몸'은 좀더 진화된 모습으로 9월에 독자 여러분을 찾을 예정입니다.

 

머리카락이 네 올일 줄 알고 만났는데 그보다는 훨씬 숱이 많다. 머리카락은 거의 없지만 귀여운 얼굴이라고 예상했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1년 넘게 <한겨레> 토요판에 '해부하다 생긴 일'을 고정 연재한 아주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정민석(53) 교수의 생김새 얘기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치는 정 교수를 지난 1일 경기도 수원시 원천동 아주대 교수실에서 만났다. 정 교수의 칼럼에 사진 대신 나오는 머리카락이 네 올밖에 없는 대머리 캐릭터(아래 칼럼 참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2000년부터 해부학 만화와 임상 만화를 그리는 괴짜 교수이기도 한데, 이제껏 그린 자신의 만화책을 기자에게 전해주며 "건전하지 않다"고 먼저 선수를 쳤다.

-해부학과 해부학을 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많이 있지요. 실제 해부학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뭘까요?

"해부학은 오래된 과목이라서 사람들이 좀 보수적인 것 같아요. 뭐 제가 좀 예외인 셈이죠. 장의사랑 비슷한 사람들이죠. 학생들 앞에서 무서운 척하고, 심각한 척하고. 쇼를 잘하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시신을 만나기 때문에 좀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나를 포함해서 우리끼리 이런 말을 해요. 산 사람 만나면 노는 것이고, 죽은 사람 만나면 일하는 것이라고. 죽은 사람 오래 만나면 철학자가 되고, 나쁘게 만나면 미친놈이 되죠."

-어떤 철학자가 되나요?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을 하죠. 사람은 몸 더하기 넋이에요. 몸이 없으면 귀신이고 넋이 없으면 주검이죠. 두 개를 다 갖춰야 인간이 되지요. 그렇다고 생각이 뭐 깊지는 않아요. 실습실이 생각이 깊게 나오는 공간은 아니니까요. 학생들은 해부하고 외우는 공간이고 저는 연구하는 공간이죠. 죽은 사람을 대할 때 깊은 생각에 빠진다든가 그런 일은 없어요. 하지만 해부할 주검이 아는 사람일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제가 조교로 있을 때 가르치는 학생이 죽어서 실습실에 들어온 적이 있어요. 착잡했지요. 오랫동안 (주검을) 만져야 하기 때문에 괴로워요, 그때는. 하루에 다섯 시간 만진다고 하면 한 달, 약 150시간 동안 주검 한 구를 만지거든요. 시신이 점점 해체되는 거죠."

수학과 만화 좋아했던 아이
물리학 하려다 의대 진학해
적응 못하고 술집 전전했다
1년 낙제하고 7년 만에 졸업
뒤늦게 해부학 매력에 빠져
마흔살부터 야한 농담과
해부학 지식이 버무려진
만화를 그리며 유명해져
학생 앞에서는 독한 교수
밤에는 만화 그리며 키득


길창덕 만화가에게 큰 영향 받아

-나쁘게 말하면 미친놈이 된다는 건 어떤 뜻인가요?

"죽은 사람을 만나면 편안하고, 산 사람을 만나면 불편할 때가 꽤 있어요. 죽은 사람은 날 해치지 않는데 산 사람은 날 해친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산 사람 만나는 게 대개 좋으면서도 죽은 사람과 견주게 되는 것 같아요. 죽은 사람은 날 괴롭히지 않는데, 이러면서. 난 그게 미친 거라고 생각해요. 죽은 사람 만나는 게 일하는 거고, 일을 해야 먹고살지요. 이 일을 즐긴다, 시신 만나는 것을 즐긴다,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해부학은 어떤 면에서 즐거운 학문인가요?

"사람 몸이 참 잘 만들어졌어요. 정말 기가 막혀요. 겉에서 봐도 예쁘지만 해부해서 보면 더 예뻐요. 예를 들어 간의 곡선이 그렇지요. 주변의 구조물, 위와 콩팥과 닿아 있어요. 위치가 과학적이고 예술적이에요. 몸 안에는 동맥, 정맥, 신경이 함께 지나가거든요. 세트예요. 어디든지 세 개가 가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해부할 때는 이런 것들을 구별해야 하는데 구별하면 또 예쁘게 보여요."

-산 사람을 보면서도 주검을 연상하나요?

"여자 수영복을 보면 수영복만 보게 되는 게 아니라 피부를 벗기거든요. 근육하고 뼈를 보는 거지요. 직업병이지요. 그렇게 보면 주검보다 산 사람이 훨씬 더 아름다워요. 해부할 때 아름답다 그랬는데 수술할 때도 아름다워요. 시신이 이만큼 예쁘다는 건 살아 있는 게 더 예쁘다는 뜻이지요."

-만화는 언제부터 그리신 거예요?

"어떤 직업이든지 마흔까진 여유가 없고 마흔이 되면 여유가 생겨요. 마흔살부터 그리기 시작했지요. 그전에는 재밌는 소재들을 모았죠. 특히 회식 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농담을 했어요. 누가 누가 더 웃기나 학술대회 수준이에요. 어릴 때부터 엉터리 만화를 그렸어요. 스토리가 있는 만화인데 그때 제 우상이 <순악질 여사> 그린 길창덕 만화가예요. 그분으로부터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죠."

-본인 캐릭터는 어떻게 창조했어요?

"웃긴 게, 제가 만화를 못 그려요. 낙서 수준이에요. 나는 그게 정말 열심히 그린 거였어요. 내 얼굴을 성의 있게 그렸는데 재주가 없다 보니 캐릭터가 됐어요. 한번 그리고 나니까 더 이상 고민하는 게 골치가 아파요. 머리에 머리카락 네 개를 그렸는데 변화를 주려니까 변화의 원인이 없잖아요."

-만화를 그리는 이유가 해부학 지식을 일반인한테도 쉽게 전하기 위해서인가요?

"공부하고 일하는 까닭은 딱 두 가지. 돈 벌려고, 뽐내려고. 기자님도 월급 받고 이름 좀 날리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이 부분에서 크게 저항하지 않고 수긍했다.) 저 같은 경우는 뽐내려고 그렸어요. 만화로 돈 벌기가 어렵다면 이걸 갖고 뽐낼 수 있느냐? 뽐낼 수 있어요. 특히 외국에서요. 소재의 차별성으로도 그렇죠. 외국 만화가들 어마어마하게 많죠. 해부학 만화를 그린 사람은 세계에 저밖에 없어요. 해부학 만화를 교육 관점에서 분석한 학술 논문이 과학인용확장지수(SCIE)급 국제 학술지인 <해부과학교육>(ASE)에도 실렸는데 세계 최초가 아니면 논문이 아니잖아요. 세계에서 처음이니까 학술지에 실린 거죠."

-'해부하다 생긴 일'은 학생들과 실습실에서 벌어진 일인데 학생들의 반응은 어때요?

"제 글이나 만화의 절반은 픽션이에요. 사실에 기본을 두고 있지만 에피소드를 재밌게 만들지요. 좋아하는 학생도, 싫어하는 학생도 있어요. 만화를 통해 농담을 하니까 해부학이 재미있다는 학생도 있고, 싫어하는 학생도 있어요. 제가 이중인격자라는 거예요. 제가 굉장히 엄격해요. 한 학생이 잘못하면 다른 학생들도 실습실에서 못 나가게 해요. 학생들 괴롭히는 방법에 대해 별의별 꾀를 다 내요. 의대는 꼴등으로 졸업해도 의사가 되잖아요. 의대는 일등이 아니라 꼴등을 잘하도록 끌어올리는 게 목표예요."


"전문가는 농담과 기록으로 지식 나누는 사람"


-학생들과는 농담을 안 한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나요?

"성희롱 때문이에요. 건전하지 않아요. 생식기를 다루기 때문에 야할 수밖에 없고요. 벗은 몸을 보잖아요. 남자도 벗고 여자도 벗고. 관련된 우스갯소리들이 야하죠. 하지만 주검의 명예를 더럽히는 농담은 안 하죠. 제 농담이 더러운 것부터 깨끗한 것까지 다 있는데 학생들 앞에서 할 수가 없지요. 해부학은 의과대학의 논산훈련소이고 가장 혹독하게 가르쳐야 해요. 해부학 선생님들이 무서워요. 저도 그 가운데 하나이고요."

-연재를 마치면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질문을 드리는데 교수님은 독창적으로 답해 주세요.

"어렵네요. 전문가들은 자기 분야에 관해 농담을 할 줄도 알고 기록으로 남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이야기는 나누어지고 흩어져야 산다고 생각해요. <한겨레>에 연재하면서 겁을 먹기도 했어요. 의대, 해부학 학회에서 흉볼 텐데, 욕할 텐데, 교수가 저런다고 꼴값 떤다고 할 텐데. 그런 걸 무릅쓰고서라도 튀려고 애를 썼어요. 젊은 사람들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해요. 미국에서도 유명한 의사가 되라고. <한겨레>에 낸 글을 영작하고 있어요. 외국 사람이 조금만 보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늘 농담을 입에 달고 사시면서도 야심가에 가까워 보이네요.

"나는 미국에서 유명해질 거예요. 한국에서 유명해지는 건 생각보다 쉬워요. 교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최고야, 수원시에서 해부학 내가 제일 잘 알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아무 뜻이 없죠."

정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잘 망가뜨려 주세요"라고 했다. 그가 했던 이야기 그대로 기사를 써 달라는 의미다. 이제껏 접한 교수실 가운데 가장 허름하고 지저분하며 공기 탁한 그의 교수실 벽에는 쪽지가 하나 붙어 있다. '정민석 쓸 논문'이라는 제목 아래 '발 PDF-썼음, 심장-썼음, 발목 관절-썼음, 발 깎아 보기-썼음, 위 깎아 보기-썼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쓰고 있는 논문 목록이다. 인터뷰 중간중간 짬이 날 때도 그는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만화나 사석에서 재밌고 웃기는 사람이겠지만 정 교수는 망가뜨리기엔 너무 치밀한 사람이다.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박유리 기자nopimuli@hani.co.kr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