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회 경산시민독서감상문대회 독후감/장영희 冊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살아갈 기적을 말하며 나와 같은 나이, 같은 암으로 기적처럼 살다간 장영희. 그녀가 남긴 글을 한 자 한 자 되새김하며 읽고 있을 때 지진이 났다. 한반도 이래 최강도의 지진. 저번 7월에 이어 두 번째다. 영화 엑소시스트처럼 침대와 집이 흔들리는 공포가 지나가자
온 몸에 힘이 풀린다.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에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계속 써야 하는지 일순 자문했다. 내일 시장에도
가야하고, 이번 추석에 볼 영화도 순서 매겨 놨는데..이런 사소한 일상들이 아무 소용없을지도 모를 위험천만 상황이다. 유방암 수술 후 나의 가장 큰 소원이 꿰맨 자리가 터지든 말든 옆으로 한번 돌아누워 봤으면 하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면, 지금은 지진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가장 큰 소원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크고 작고에 관계없이 발 등에 떨어진 불이 가장 큰 숙제이자 불행일지도? 다행히 집은 무너지지 않았고 일단 살았으니 두려움을 꾹 참고 독후감을 써야겠지..그래, 지금 내가 현재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다, 휴~. 숨을 고르고 다시 책장을 넘긴다. 내일 죽어도 사과나무 심는 기분이 이런 걸까?
세상에나! 그녀는 유방암뿐만 아니라 척추암, 간암에다 소아마비 장애까지 있었다. 내가 2002년(장영희 교수는 2001년..) 한 쪽 유방을 제거하고 나서 나를 위로한 게 ‘그래도 다리 저는 것보다는 낫다, 가슴은 옷으로 가리면 되지만 다리 저는 건 보이니까..’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다리장애는 물론 세 번의 암을 치렀다는 것이 아닌가!...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살면서
종내는, 나와 같은 나이에 마지막까지 ‘희망’을 말하면서 떠나갔구나... 참으로 안타깝고 아까운 여인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마크트웨인의 말처럼 ‘오늘이라는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자신을 추스른다. 생사가 오갈지도 모르는 지진이 조금 전에 예고 없이 닥쳤듯이 이 시간 이후를 우리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므로-.
그녀는 먼 타국에서 신체장애의 불편과 외로움을 견디면서 오랜 세월 완성한 논문을 도둑맞고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고 다시
시작하는 게 편하다고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남편이 집안을 돌보지 않고 글만 쓴다고 불평하던 아내가 남편 몰래 오랜 세월 써 온
귀한 자료를 불태웠는데, 이를 알고도 허허 웃으며 새로 시작했다던 어느 대학자의 일화와 같은 맥락일까? 결코 아무나 감내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님에도 그녀는 옷에 묻은 먼지 털 듯 툭툭 털고 일어났다.
책 서막에서 여러 가지 제목으로 고심했던 그녀. -「새벽 창가에서」 「살아온 날의 기적, 살아갈 날의 기적」 「나는 내게
동의한다」 「나, 비가 되고 싶다」 - 이 네 가지 모두 그녀가 동시에 표현하고 싶은 말(제목)이 아니었나는 생각이 든다.
투병 중에도 그녀는 제자들의 아픔과 고뇌에 귀 기울이고, 백일홍 꽃이 ‘빵’하고 터진 꽃폭죽이라는 조카의 표현에 잊고 있던 동심을 일깨운다. 언젠가 목욕탕에서 한쪽이 없는 내 가슴을 보며 어떤 여자아이가 “한참 있으면 찌찌가 또 자라서 올라 오겠네요~” 하던
말에 진짜 ‘빵’ 하고 웃음보가 터진 적이 있다. 목욕 후 한쪽브라에 뽕을 넣어 브라를 걸치던 나를 보며 “아줌마 젖모자”라고 해서 배를 잡은 적도 있다. 아~ 동심의 무한가능성~ 그 신선함이라니-.
민식이는 트럭사고로 사망한 친구와, 부상당했지만 살아있는 친구에게서 행복을 발견했다. 깨어나 화장실 가고 싶다는 친구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원이 곧 행복였던 것을 알게 된 것처럼, 그래서 그녀는 살아 있는 것이 행복인데 데이트하고 운동하고...
이런 모든 것은 보너스행복이라 말한다. 어떤 구족화가의 새해소망은 손가락만 움직이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는 영국속담에 그녀는 자기가 가진 축복을 세었다. 1.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2.좋은 사람들이 많다 3. 사랑하는 일이 있다 4. 남이 가르치면 남의 말 알아들을 두뇌와 남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그렇다, 참으로 그렇다. 별다른 병 없이 앞만 보고 살던 내가 유방암 수술을 하고 첫 소원이 옆으로 돌아누워 보는 것이었듯 행복은 ‘애걔~겨우 그거?’ 정도의 소소한 것이란 걸 알고는 픽 웃었지..
지금은 암이 감기처럼 흔하지만 14년 전의 암은 바로 저승사자이며 드라마 주인공이었다. 사는 게 힘들고 지쳐있던 때라 죽음이
반가웠던 나는 ‘내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며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러자 모든 게 달라졌다. 미래, 계획..모든 것을
중지하고 나에게 집중하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못 간 여행도 가고, 이것저것 배워 보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모아놓은 돈으로 베풀고 쓰고...행인지, 불행인지 죽음·미래와 바꾼 ‘포기’ 라는 거래 덕택에 오히려 건강이 좋아졌다. 포기는 합리적인 절망이자, 적당량의
희망이기도 했다.
절지 않는 내 발로 다녀 좋았고, 두 눈이 있어 이 아름다운 자연을 봐서 좋았고...늘 있었던 것들, 내가 가진 축복이 그렇게 많은 줄은 이전에 미처 몰랐는데 그게 바로 행복이었다. 그 행복의 조건은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였다. 더 나은 미래, 계획..등을 하향조정하고, 때로는 서머셋 모옴의 말처럼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는 ‘무위의 재능’으로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감에서 나를 편하게 해 주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하면 됐어’라고 나를 격려했다. 원래부터 누구하고 비교하거나
경쟁을 싫어하던(낙오될 수도 있는) 천성이 투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영희. 그녀가 떠나갔을 때의 나이. 그 나이의 나. 아직 살아 있는 나는 내 다리 성할 때까지만 살고 싶다. 성하지 않았음에도
치열하게 산 그녀처럼 살 자신은 없다. 장기려 박사에게 누가 유명한 의사라고 했더니 ‘좋은 의사’로 불리고 싶다 했던데,
장영희 그녀는 ‘참으로 좋은 학자이며, 작가’ 였다. 어느 엄마가 아이에게 ‘자랑스런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했던 말처럼
나도 마지막까지 행복한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가리켰던 행복과 희망처럼-.
*2016.9.18 '경산신문'에 응모/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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