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는데 세상은 왜 엉망일까’
금기시된 질문에 대한 답 풀어내
경산 성불사서 촬영한 ‘산상수훈’
모스크바국제영화제서 호평받아
“다음 작품은 불교에 관한 이야기”
|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산상수훈’의 한 장면. <대해사 국제선원 제공> |
|
경산 대해사 국제선원장 대해 스님. |
신학대생 8명이 어두컴컴한 동굴에 모여있다. 이들은 성경 책을 손에 들고 ‘산상수훈’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토론의 중심에 있는 산상수훈은 신약성서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산상(山上) 설교다. 최근에 이를 소재로 한 장편영화 ‘산상수훈’이 만들어졌다. 다음 달 말 개봉을 계획하고 있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놀랍게도 비구니다. 지난 21일 경산 대해사 국제선원에서 영화감독인 대해 스님을 만났다.
‘산상수훈’은 지난달 말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영화제 기간 상영되기도 했다. 관객과 영화 관계자의 반응을 이야기하는 대해 스님은 들떠 보였다. “‘지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라며 경쟁, 비경쟁과 같은 부문을 떠나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관객과의 대화도 1시간30분 동안 이어질 정도였어요.”
대해 스님은 2007년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시작으로 91편의 중·단편 영화를 만들어왔다. 스님에게 영화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쉽게 알려주기 위한 수단이다. 이번 영화 ‘산상수훈’은 성경이 갖고 있는 핵심 주제를 담아내려고 했다. 영화는 대해 스님의 ‘4대 성인(聖人) 영화 시리즈’의 2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주제는 ‘천국’ ‘선악과’ ‘예수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하나님’으로 나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있는데 왜 세상은 엉망진창인가’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내가 죄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스님은 “이 영화에서는 금기된 것처럼 되어버린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린다. 아무도 풀려고 하지 않고, 풀리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기독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스님이 왜 만들었을까. 대해 스님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성경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써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상수훈의 내용이 불교 교리와도 비슷하다고 했다. “비판하지 마라, 선과 악을 둘로 보지 말고 똑같이 보라는 이야기는 불교와 기독교 모두 똑같습니다. 산상수훈은 불교처럼 실천적인 방법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주로 배경이 되는 곳을 동굴로 설정한 것도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동굴이 내면 깊숙이 보이지 않는 본질을 건드리기에 적합한 공간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영화를 촬영한 동굴은 경산 성불사에서 법당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조용한 곳을 배경으로 하면 관객도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외에 모든 장소를 단순화한 것도 이야기에 집중해서 영화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본질을 알아낼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영화 제작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배우들에게 내용을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형체가 보이지 않는 본질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배우 백윤식의 아들 백서빈을 비롯해 출연 배우들이 기독교 신자이거나 부모가 기독교를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했다. 대해 스님은 “처음엔 부딪쳤는데, 내가 ‘세상은 넓고,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했더니 이해했다. 내 생각에는 내용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도 아니어서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해 스님은 다음 작품으로 불교에 대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 “혜능대사의 말씀을 현대에서 어떻게 잘 활용해서 살고 있나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과정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글·사진=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29일 폐막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대해 스님이었다. 영화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화려함이다. 레드카펫을 밟고 농염한 자세를 취하는 배우와 제작진을 보며 우리는 '스타(star)'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린다. 39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비상한 관심을 끄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일반인이 아닌 성직자, 스님이었다. 영화 ‘산상수훈’을 연출한 데 대해 스님(大海·58·속명 유영의)은 대한불교조계종 국제선원장이다.
<심사위원 등과 함께 사진을 촬영한 대해 스님(왼쪽 세번째) - 사진 출처 : 제39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제공(http://www.moscowfilmfestival.ru/)>
러시아 영화제와의 인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해 스님의 영화 <소크라테스의 유언>은 지난 2013년 11월 18~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성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수도원에서 열린 기독교영화제 ‘기도의 종소리’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바 있다. 첫 영화인 단편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유니카 세계 단편영화제에서 4위를 차지했다. 스님에 따르면 지금까지 중단편 등 90편을 제작했다. 스님은 최고의 불교 경전 가운데 하나인 <<화엄경>> 전권을 한글로 완역한 학승이기도 하다. 올해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특별섹션 ‘스펙트럼')에 초청됐을 뿐만 아니라 넷팩(NETPAC)상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모스크바를 찾은 대해 스님을 25일 윤제균 감독 특별전에서 만났다. 통신원은 인터뷰를 요청했고 스님의 바쁜 스케쥴 때문에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산상수훈>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수의 말을 <산상수훈>이라고 부른다. 마태복음 5~7장에 있는 구절로 그리스도교도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주기도문과 더불어 두 개의 기둥 중에 하나다고 하겠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깨끗이 닦아야 하며 이는 선악과의 때를 벗기는 작업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의 주요 장면들은 동굴에서 이뤄진다. 영화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바탕이다. 주인공들은 신학생들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인간의 죄가 사해지는 이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했으면서 왜 선악과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의응답이 계속 이어지면서 어떻게 선악과가 만들어지기 전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키릴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님은 <산상수훈>에 대해 ‘종교에 대한 굉장히 지적이고 철학적이며 종교학적인 논장(論藏)이며 영웅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산상수훈>의 비경쟁 부문(특별섹션 ‘스펙트럼') 초청과 넷팩(NETPAC)상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셨는데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본다 우리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제작한 영화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은 자체가 매우 뜻깊고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큰 영화제에는 세계의 많은 관계자가 참석하고 우리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자국에 알림으로써 세계인들이 감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스님이 제작한 영화고 특히 불교 수행자가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키릴 집행위원장님은 이 영화를 매우 극찬하셨다. 특히 <산상수훈>은 매우 철학적이며 종교적이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라고 하셨다. 이유는 다른 영화들의 경우 할리우드에서 촬영한 폭력성이 강한 영화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문화 교류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 2017) 공식포스터 - 사진 출처 :(사) 영화로 세상을 아름답게 제공>
이해가 쉽지 않은 영화다. 주제도 그렇다. 관객들의 반응은? 영화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진행됐다. 다른 작품들은 15분 정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산상수훈>의 경우 1시간 30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다음 영화 상영으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접는 것에 매우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관객들 가운데에는 우리의 영화와 관련한 질의를 하기 위해 다음 작품을 보고 기다리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상영된 미술관이 문을 닫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렇듯 관객들의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놀랐다고 했다. 스펙트럼 분야 기자회견은 감독들이 한곳에 모인 자리에서 진행됐는데 우리에게 특별한 시간을 할애해줬다. 러시아인들이 스님의 영화에 그렇듯 관심을 보인 이유는 어디 있다고 보는가? 러시아와의 영화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영화 ‘소크라테스의 유언’은 201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기독교 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적이 있다. 러시아인들에게 나의 영화가 많이 소개된 셈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문화적 소양이 높고 사유의 깊이가 있다. 그래서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좋아한다. 우리의 영화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나 의문 등에서 시작되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이야기하는 메타포 등을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영화 속에 담긴 난해한 핵심 키워드를 정확하게 읽어낸다. 실례로 한국에서 러시아인들과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그들에게 ‘108생명법’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들은 깊이 있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좋아했다. 영화가 대중적이지 않아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걱정하지는 않았나? 물론 걱정을 많이 했다. 심오한 영화라서 관객이 없을까 봐서다. 그런데 막상 큰 상영관이 배정됐고 상영관은 관객들로 꽉 찼다. 관객들과의 대화에서는 이런 영화를 제작해 준 스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기독교 영화제에 출품하면 ‘금상’ 감이라는 말도 들었다. 넷팩(NETPAC)상 심사위원으로 위촉됐기 때문에 경쟁부문에 <산상수훈> 작품을 출품할 수 없었다. 경쟁부문이었다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번 영화제에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면 한 수녀님은 영화를 감상하신 후 훌륭한 영화라며 나의 작품을 성당에서 많은 분과 공유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대사가 무척 마음에 들어 적기도 했다. 영화를 통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물음들, 예를 들면 ‘하나님은 계시는가?’, ‘신은 있는가?’, ‘천국은 과연 있는가’라는 기독교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게 돼 기쁘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
- 성명 : 최승현[러시아/모스크바]
- 약력 : 현재) 푸쉬킨 언어 대학교 석사 과정 재학중 전)러시아 국영방송사 러시아 시보드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