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불교&자료&관심사●/불교이야기·불교뉴스

[스크랩] 열린불교 열린경영, 대구 영남불교대학 리포트/[불교와 문화]지에 실린 우리절 기사

보현화 2006. 5. 26. 13:54
격월간지 『불교와 문화』5, 6월 호에 무려 12쪽에 결친 지면을 통해 우리절 특집기사가 실렸다.
‘불교속의 문화, 문화 속의 불교와 만나는 친근한 문화잡지’라는 타이틀이 붙은 『불교와 문화』지는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 현대화를 지향하는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에서 격월로 발간하는 불교계 유일의 문화잡지이기도 하다.

화사한 금낭화로 장식된 표지를 넘기며 목차를 훑어보니 138쪽에 ‘열린불교 열린경영 ③ 대구 영남불교대학 리포트’ 라는 제목 하에 과연 우리절이 세세히 소개되어 있다.

수요일 화엄경 수업시간에 법사로 오신 최봉수교수님께서도 문제의 책자를 소개하시며 외부에서 본 우리절에 대한 이야기로 당신 수업시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해 주시기도 했다.
우리절의 창건 이념과 회주큰스님의 원력과 소신 등이 자세히 실려 있는 『불교와 문화』우리절 관련기사 본문 내용을 소개해 올린다.
====================================================================================================

신개념의 도심 총림(叢林), 불교타운 건립하는
도심사찰의 새 모델, 영남불교대학
진현종 불교 저술가


얼떨결에 시작한 도심포교당

불자라면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을 참배해 보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속설(?) 때문인지 공휴일이 되면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 역시 장사진(長蛇陣)을 이루어 곧잘 정체 현상을 보이곤 한다.
갓바위 부처님께서 수호불(守護佛)로 기키고 계시는 대구는 부산과 더불어 작금 대한민국에서 불교세가 가장 강한 도시로 손꼽힌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팔공산에는 크고 작은 천년고찰이 곳곳에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다 그곳을 오가는 불자들의 행렬이 그치는 날을 거의 볼 수 없다. 이러한 대구에 새로운 도심사찰 하나가 생기는 것은 소의 잔등에 터럭 하나가 새로 생겨나는 것 마냥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불교조계종 우리절 영남불교대학 ․ 대관음사의 등장은 이미 두 뿔이 나 있는 소에 새로운 뿔이 하나 더 생겨나는 기이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작금의 불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다. 조금만 시 외곽으로 나가면 커다란 천년고찰들이 즐비하므로 도심지 개척 포교당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대구에서 보증금 3천만 원, 월세 오십만 원에 얼떨결(?)에 시작한 포교당이 개원 이래 일취월장(日就月將)하더니 10년이 못되어 재적 신도 10만을 넘는 대형사찰로 거듭 난데다 이미 경산, 칠곡과 감포에 분원을 세우고 앞으로 국내외에 걸쳐 천수관음(千手觀音)을 상징하는 천개도량 건립 원력의 허브(Hub)로 그 기반을 더욱더 튼튼하게 다져 나가고 있으니 자못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불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우리 불교계에서 대중들의 환희심을 자아내는 또 하나의 성장신화를 보여주고 있는 영남불교대학의 등장은 좀 우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얼떨결에 시작했다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영남불교대학의 회주 우학 스님은 본래 통도사로 출가한 선승이셨다. 그렇기에 스님은 처음부터 서둘러 개척 포교당을 열 생각은 없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은 우연찮게 대구의 남구청 앞을 지나다가 앞서 말한 월세 건물에 들어있던 포교당이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어느 교회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1992년 5월에 서둘러 당신이 직접 인수해서 영남불교대학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불자들의 교육과 포교의 장을 마련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스님은 무슨무슨 포교원이나 선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영남불교대학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도전적인 일이었다. 왜냐 하면 그때까지는 수도권에서도 불교교양대학을 그것도 명실상부하게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찰이 드물었고, 불자 대중들의 정서 역시 교리학습보다는 개인적 차원의 기도에 치우쳐 있었으며, 이러한 현상이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님은 불자들의 교육과 신행 지도를 홀몸으로 떠맡는 강행군을 한 끝에 편견과 폄하를 극복하게 되었는데, 실상 이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 아니었다. 이는 개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영남불교대학을 찾는 불자들이 부쩍 늘어나 법당이 비좁아 지는 바람에 1996년 지금의 영대 사거리로 터전을 넓혀 이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점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불자 대중들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배워 보고자 하는 마음이 진작부터 잠재되어 있었는데, 다른 스님들은 불자들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탓에 방치하거나 아직 시기상조라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우학 스님은 도전정신을 견지한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소위 ‘블루 오션(Blue Ocean)’을 찾아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블루 오션’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경쟁자(?)가 늘어남으로써 ‘레드 오션(Red Ocean)’이 되어 버렸다. 이는 2000년 들어 불교교양대학의 학생수가 감소함으로써 운영에 곤란을 느끼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일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된 교수진과 체계적인 커리큘럼(Curiculum)을 준비하지 못한 채 졸속으로 설립해서 운영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학 스님은 ‘블루 오션’을 찾아낸 데 만족하고 방심하지 않고, 1994년 전국 최초로 불교 대학원 과정을 개설하고, 최장 무려 10년에 걸치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레드 오션’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그 결과 다른 불교교양 대학들인 이미 하강곡선을 타기 시작한 21세기 초반 이후 도리어 본격적으로 발전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영남불교대학의 본격적인 성장은 지금이 진짜 시작단계라고 할 수도 있으니 그 미래가 참으로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자주 가고 싶은 절의 분위기 만들기

우학 스님이 영남불교대학을 이끌어 가고 있는 3대 강령은 근본불교, 세계불교 그리고 첨단불교이다. 여기서 근본불교란 학술적인 차원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쉽게 말해서 부처님께서 사셨던 그대로 살아 보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남불교대학이 부지를 넓혀서 이전하면서도 도심에 남아 있기로 결정했던 것은 그 옛날 기원정사(祇園精舍) 등이 중생들이 찾아오기 쉽도록 도심이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둔 처사였다. 또한 우학 스님은 부처님의 삶대로 그 바쁜 와중에서도 반드시 일년에 한 번은 제방의 선원에서 안거에 들어간다. 스님은 이 안거 기간을 자기반성 및 수행의 증장을 위한 계기로 삼고 있는 것이다. 교세가 커져서 혹은 방송 출연 등으로 속칭 ‘스타덤’에 올랐다고 하는 적지 않은 스님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안거는 고사하고 대중들과 떨어져 토굴이라는 미명 하에 속가(俗家)에 거처하는 것과는 정말 대비되는 대목이다.

부처님께서 늘 수많은 제자 대중들과 함께 생활하셨듯이 우학 스님은 대중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상좌들도 많이 받아들이고 그들이 제대로 불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그 숫자는 현재 30여 명에 이르고 있다. 또한 우학 스님은 부처님 정신 그대로 승가(僧家) 안에서의 재가불자들의 역할과 지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최대한의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영남불교대학의 행정과 운영은 30여 명에 이르는 유급 종무원들과 3천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특히 유급 종무원들의 휴가와 같은 복지와 급여 수준은 일반 직장에 다니는 이들보다 더 나을 정도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열린 불교, 열린 경영> 연재물에서 누차 지적했듯이 잘 되는 사찰들의 공통사항이라 할 수 있다. 박봉에 느닷없는 신심만을 강조하는 사찰의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종무소 분위기야말로 수많은 불자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점을 이참에 통렬히 반성하는 사찰들이 늘었으면 한다.

또 우학 스님은 부처님의 무소유 정신에 따라 개인 통장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고 한다. 영남불교대학의 모든 재정은 삼보정재관리단에 의해 3차에 걸쳐 철저하고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도들은 자신들이 희사한 보시금이 어떤 곳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한 치의 의구심도 없이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눈먼 돈이 들어오는 일도 없고 신도들의 소중한 보시금 역시 엉뚱한 곳에 쓰일 여지가 없는 것이다.
재정 문제를 거론하다 보니 혹시 영남불교대학의 고속 성장 뒤에는 손 큰 신도들의 도움이 있지나 않았는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듣자 하니 대구의 지역경제가 쇠퇴한 지 오래라 그런 손 큰 신도들은 이미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영남불교대학 모든 불사의 원동력,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이루어진 백 억이 소요된 불사는 소위 '개미 불자‘들의 십시일반(十匙一飯) 외에는 따로 찾을 곳이 없다. 다시 말해 막대한 규모의 영남불교대학은 ’개미 불자‘들의 응집력으로 이루어졌고 유지되고 있으며 또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남불교대학의 발전 궤도는 상당히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손 큰 신도들의 도움에 의지하는 사찰들은 그 신도들의 이탈 여부에 따라 사운(寺運)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입김에 따라 궤도가 느닷없이 요동치다 못해 곤두박질치는 경우를 적잖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문제에 관해 하나 더 덧붙이자면 우학 스님은 여러 가지 수익사업을 벌여 신도들의 희사금 부담을 덜어 주고자 하신다. 예를 들어 영남불교대학 불자라면 모두 한 벌씩 갖추고 있는 교복은 내부의 개량한복공장에서 만들어 판매한 것이다. 이 교복은 보기에도 예쁘고 실용성도 높아 장차 많은 불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논스톱 시스템의 불교타운

다음으로 우학 스님이 말하는 세계불교는 좀 남다른 데가 있다. 이름뿐인 분원을 세계 각처에 내거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다짜고짜 외치는 소아병(小兒病)적인 태도와는 전혀 거리가 먼 원대한 비전(Vision)을 가지고 계신다. 또한 우학 스님은 언제부터인가 교계 일각에서 유행하고 있는 세계 유명 스님과의 줄대기 같은 일에도 관심이 없다. 세계 유명 스님들과 여러 장의 사진이나 찍고 느닷없고 맥락 없는 건당(建幢) 등으로 친분을 과시하는 일이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도 되는 것인 양 마냥 착각하고 있는 일부 스님들과는 달리 우학 스님은 다른 불교국가에서 볼 수 없는 신개념의 도심총림을 건설해서 다른 불교국가에 새로운 도심사찰의 모델을 제공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현재 진행 중이다.
그것은 현재 영남불교대학이 위치하고 있는 블록(Block)에 관혼상제(冠婚喪祭)를 비롯해서 불자들의 모든 신행생활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논스톱 시스템’으로 도와줄 수 있는 불교타운을 조성하는 일로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물론 그 완성은 결코 가깝지 않은 미래의 일이겠지만, 현재 영남불교대학 대웅전 건물의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불교서점, 불교용품 백화점, 우담바라꽃집, 인터넷실, 2층의 납골봉안용 극락당, 감로찻집, 참좋은 스튜디오, 우리옷 단향 매장, 5층의 내생체험관과 6층의 도서관 및 전통문화 체험장 그리고 옆 건물인 옥불보전 2층의 참좋은유치원, 3층의 신협과 방송 스튜디오, 5층의 출판사와 환경문화실, 6층의 삼보갤러리와 대중선방, 7층의 강원, 옥상의 유치원 생태공원 등을 보면 스님이 구상하고 있는 불교타운의 웅대한 청사진을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님의 이러한 구상은 외국의 사례를 무턱대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사고 끝에 나온 자생적인 것이라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자생적인 만큼 우리 불자들의 정서와 전통에도 어긋남이 없어 그만큼 더 적극적인 동참과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불교국가의 행사나 시스템을 다만 눈요기감으로 도입했다가 불자 대중들의 관심을 반짝 끌고는 기억의 저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지고 마는 일회용 행사 내지 시스템과 비교해보면 그 커다란 의의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대의 불사는 인간불사

마지막으로 첨단불교는 최신 기자재를 이용해서 불자들의 교육에 효율과 편리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멀리 사는 불자들은 반드시 본원에 오지 않더라도 가까운 분원에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동영상을 통해 스님의 강의를 접할 수 있다. 스님 역시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각 분원에 출강하는 시간을 수행에 돌릴 수 있으므로 금상첨화인 셈이다. 또한 이것은 신도들에게서 받은 교육비를 무엇보다 신도들의 교육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렇게 영남불교대학이 이름 그대로 불자교육에 가장 많은 노력과 비용을 쓰고 있는 것은 최대의 불사는 인간불사라는 우학스님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특히 젊은층의 포교에 커다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다. 현재 대구지역에 있는 1천개의 사찰 가운데 어린이법회를 열고 있는 곳은 9개 소, 청소년법회를 개설한 곳은 5개 소, 대학생불교회가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이다. 영남불교대학이 이 모든 법회를 개설하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또한 스님은 교리 중심의 교육을 통해 각 불자들이 엘리트가 되지 않는 한 한국불교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계발을 도모하고 계신다. 또한 스님은 교육받은 것은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공덕도 쌓을 수 없고 그 어떤 자기계발의 효과도 얻을 수 없으므로 불자들에게 1인 1봉사를 강조하신다. 그 결과 영남불교대학의 불자들이 손을 놓으면 대구의 거의 모든 봉사활동이 중지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또한 스님은 그저 말로만 봉사를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자들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창출하고 계시다. 앞으로 건립될 불교전문병원 역시 이들 자원봉사자의 이타행(利他行) 실천의 장이 될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스님은 이 병원이 완성되면 입원실의 3분의 1은 평생 동안 오로지 수행에 전념한 노스님들의 편안한 여생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우학 스님은 필자에게 재미있는 말씀을 한 마디 하셨다. 스님께서는 본래 이렇게 커다란 규모의 사찰을 세울 생각이 없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덩이를 굴려 뭉치려고 할 때 처음에는 잘 뭉쳐지지 않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삽시간에 커다란 덩어리가 되듯이 영남불교대학의 성장 역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시며 웃는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스님은 이제 ‘규모의 경제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규모가 작으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불교전문병원 건립 같은 불사가 그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규모만 크다고 해서 이러한 불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삼보정재로서의 사찰 자체는 넉넉해야 하지만 그 대중들은 검소하게” 살아갈 때 그런 대작불사를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불자들은 지금까지 “사찰은 가난하고 특정 소임자는 대형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넉넉하게” 사는 모습을 곧잘 보아 왔기 때문에 우학 스님의 말씀에 절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학 스님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 모든 커다란 구상과 계획을 누구와 더불어 세우는가 하는 것이었다. 스님 밑에는 상좌가 30여 명이나 있으므로 아마도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스님이 단정적으로 말씀 하시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스님 혼자 구생해 낸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독단적이지 않고 또 무모한 점이 없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스님이 반드시 안거를 통해 자기 점검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또한 스님이 그 많은 강의를 하고 또 그 많은 책을 직접 저술할 수 있는 힘도 바로 ‘안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특히 저잣거리에서 부처님의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불제자라면 우학 스님의 예를 모범으로 삼아 ‘안거의 힘(The power of retreat)’을 경시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어쩌면 ‘안거의 힘‘이야말로 영남불교대학 성장의 근본적인 원동력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우리절 관련 기사와 사진은 불교진흥원에서 발간한『불교와 문화』05,06월 호에서 옮깁니다-


-『불교와 문화』 05,06월 호에 실린 우리절 관련기사, 138쪽~149쪽-


-회주큰스님의 인터뷰 장면을 담은 사진-


-청소년 수련법회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설명글-


-우리절에서 이루어지는 동영상 수업 장면에 대한 사진과 설명글-


-우리절 옥불보전 소개 사진과 문화단체의 활동 모습을 설명한 사진-

출처 : 불교 인드라망
글쓴이 : namu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