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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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불교)와, 전도(교회)의 차이점/ 그러나 진리는 하나로 통하는.....

보현화 2006. 11. 6. 01:37
      

                                    
                                                                                        2005년 여름 영남대 삼천지/연꽃...

얼마전 시골길을 가다가 시골교회의 교회소식지를 엉겁결에 받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절에서도 포교 나가면 그 전단지 곧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걸 상기하고는,

저 아주머니도 그냥 거절하면 얼마나 무참할까? 싶어서 흔쾌히 받아들었지요.

또, 종교는 다르다 하여도 그 진리는 같을 것이기에.

그리고 분명 읽을거리, 얻을 것도 있을 것이기에...하는 마음으로요.


아니나 다를까 참 내용이 알차더군요.

많은 소재가 있었지만 다 전재할 수는 없고,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해서 그 중 하나만 올려 봅니다만-.*^^*

              *                                  *

위암에 걸려 죽어 가는 남자 집사님이 있었다. 그는 자기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내가 좀더 살아보겠다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며 치료받는 것이 부질없는 노릇인 것 같소.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 생명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전도를 해야겠소, 나를 좀 도와 주시오.”

그의 아내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아니, 그 모습으로 무슨 전도를 하겠다고 그러십니까? 당신의 모습을 보면, 예수를 믿으려고 하다가도 믿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차라리 전도하다 죽으면 그것도 순교 아니겠소?”

아내는 어쩔수  없어 그의 말대로 그를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는 그 병원에 있는 입원실로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했다.

여러분, 보시다시피 저는 위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이 고통을 얼마든지 참아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힘들 때에 누구를 의지하십니까? 부디 여러분도 제가 믿는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있는 환자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는 며칠 뒤에 또 그곳을 찾았다. 그는 쇠약한 몸으로 또 다시 복음을 전했다. 그때 어떤 환자가 일어나 앉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예수 믿으면 복을 받아 잘 산다는 말을 전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당신처럼 고통을 당하면서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전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렇게 정직하게 전하는 예수라면 내가 믿겠습니다. 그러니 그만 힘들게 외치세요"

그 말에 모든 환자들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                            *

도반님들.  어떠신지요?

저 역시 암환자라서 더 절감되었다는 그런 이유도 있지만,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는 ‘거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자 해서입니다.

 

주위에는 기도, 보시 열심히 하는데도 하는 일이 잘 안되어서,

집안에 우환이 점점 늘어서 절과, 부처님을 멀리 하는 사람들을 더러 보았습니다.

 

종교는 단순히 소원성취하여 나만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보시도 많이 하고...그런데도 내게 나쁜 일들만...하는 위험한 사고는 불자로서 가장 먼저 버려야할 하근기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실 터이고! 물론 우리절 신도들께선 공부가 무르익어 그런 폐단은 없으리라 짐작하지만, 멀리 전근으로 또는 직장관계...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도중에 공부를 접었던 도반들을 다시 정법도량으로 전도(기독교에서 쓰는 전도란 용어가 원래 불교용어였다지요? *^^*)해서 포교하는

‘리폼포교’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다 구원이 있다고 하여(종교다원주의), 같은 종파에서도 반대파가 많았던 의식있는 어느 목사님을 알고 있는데 그 분께서 말씀하시길

“종교의 종(宗)자가 마루(높다)라는 뜻이 있듯이 높은 곳을 가르킨다(가르친다)는 근본이 깔려 있어야 바른 종교다...”

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일제시대 일본 상지대학과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셨구요. ‘카운슬링의 이론과 실제’ 라는 책을 번역하시면서 상담자에 반대되는 개념의 상담하러 온 사람은 뭐로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시다가 ‘내담자(來談者)’라고 번역하신 후 카운슬링계의 일대 혁신적인 용어로 자리잡게 된 계기를 만드신 분이기도 하지요.


이야기가 옆으로 샌 감이 없지 않는데~~*^^*

대륜주지스님께서 툭하면 하시는 말씀중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절에 열심히 나가도 집에 우환은 더 생기니..마누라가 절에 미쳐 집안도 소홀하고...하며 불평하는 남편이 있으면 저는 그럽니다. 그나마도 절에 그만큼이라도 나가니까 우환도 그정도지요. 부인이 절에 미쳤다 하시는데 이왕이면 절에 미치는게 낫지 않습니까? 딴데 가서 엉뚱한짓 하는거 보다??”...라고 하신 명답처방을요.


좋은 종교, 좋은 절, 좋은 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그 사람의 개인역량입니다.

혼자서 수행해서 완벽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불과 얼마 되지 않으니 절이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불법을 공부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 아닐까...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서, 부처님을 믿으면 복이 들어온다는 말이 먹히는 사람이라면

복타령 자체도 한 방편이겠지만,

상거래같은 복타령(댓가)을 빌미로 하는 것보다 위의 교인처럼 현실에서 더 피부에 와 닿는솔직한 말로 포교를 하는게 더 어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적어 보았습니다,

그러는 저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의문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있듯이 위의 사례처럼 기독교 역시

대안은 합리적인 사고로 귀결되는 걸 보면 역시 표현방법은 달라도 진리는 한곳에서 만나는구나...싶은 생각이 듭니다. 냇물이 각자 흐르다가 한 바다에서 만나듯이...


하나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저는 말합니다.

“우리끼리 서로 서로 불교네, 기독교네 하고 서로 분별하고 그러지, 알고 보면 저 위 하늘에선 부처님과 하느님이 자기들끼리 사이좋게 고스톱 치고 있다니께요? ㅎㅎ 서로 ‘한 통속’이라니깡요!!”

하면서 웃기는데.... 모르겠습니다. 상대방은 얼마나 실감하런지...


요즘엔 한술 더 뜹니다.

말로 하면 교인들 못 따라가는 불자들이니 긴 설교에 대응하는 법문은 못하고

(주지스님 말씀 맞따나 어버버버...어리버리 하다보면 상황종료 되거등요.ㅎㅎ),

“그 멋진 하나님을 모르고도 저는 너무 행복하거든요. 딴 사이비 종교라 하더라도 거기에도 분명 선(善)의 에너지와 행복이 있을 거구요.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는지요?” 라고...


적절한 대응화법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도 짧고 그런 교인들 볼때마다 우리 주지스님 모시고 갈수도 없고...ㅎㅎ 공부만 3년차이지만 알고 있는게 없으니 부끄러울 따름이지만...어쨌든 좋은 글인 것 같아 추천해 보았습니다.

어떠한 나쁜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부처님을 부정하지 말고

절대 불법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어서입니다.


이 지중한 인연을 다함께 영원히 이어 나가는 도반들이 되자고

이 봄날에 이 연사 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