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화(普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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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불교신문/현대시 100주년기념 선정 불교시 7편

보현화 2008. 5. 24. 23:47

 

주간불교(http://www.bulgyonews.co.kr/)신문 2008.5.12일자 신문기사(제9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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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현대시 100주년 기념 본지 선정 불교시 7편

유응오 (발행일: 2008/05/09)



만해에 의해 근대문학 태동… 미당에 의해 불교시 만개

# 만해 한용운 스님의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이 당신이 아니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누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 이동하 평론가는 〈한국의 불교와 근대문학〉이라는 글에서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님의 침묵》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절대로 선가의 엘리트들이 도달하기를 소망하는 견성대오(見性大悟),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에서 읊어진 노래들이 아니다.
만해가 반항한 것은 대승적 보살정신과 선적 초월주의의 양자를 적절히 균형 잡힌 상태로 겸유하지 못하고 후자 하나만을 이상 비대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시대와 민족의 운명에 대해조차 무감각하게 돼 버린 한국불교의 병리에 대해서였다.
만해가 한시의 한계를 올바르게 이해했을 때 소요태능, 경허성우의 전통을 넘어서는 그의 한글본 시집 《님의 침묵》이 창조됐으며, 이 시집에 의해 불교와 근대문학과의 결합이라는 과제는 그 최초의 실현을 봤던 것이다.”
〈나룻배와 행인〉은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와 함께 가장 많이 사랑 받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로서 보살사상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하나의 경전이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당 서정주의 시 전집은 불교적 메타포로 가득 차 있다.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는 언뜻 읽으면 연시로 보이나 곰곰이 되새겨보면 니르바나를 염원하는 화자의 도저한 희구(希求)가 깃든 구도(求道) 시이다.
이별을 하더라도,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하겠다는 시인의 목소리는 차라리 ‘불교 구도자의 깨달음의 절규’에 가깝다.
〈국화 옆에서〉, 〈꽃밭의 독백〉과 더불어 이 시는 시인이 방황과 탐닉의 길 끝에서 거룩한 부처님을 알현하고 부른 지극하고도 곡진한 헌화가이다.


# 조지훈의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하늘 한 개 별치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뺨에 아롱질 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접어 뻗는손이/ 길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인양 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서 나빌레라

- 조지훈 시인은 혜화전문학교에서 수학했고, 월정사 강원에서 외전강사를 했다.
시인은《나의 시론》에서 〈승무〉를 쓰게 된 경위에 대해 19살 때 수원 용주사에서 승무를 봤고, 20살에 미술전람회에서 김은호의 〈승무도〉를 봤던 게 창작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시인은 이 작품을 쓰는데 구상 11개월, 집필 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시속에서 세사에 시달리며 고민하고 하는 일들이 어둠의 세계에서 얻어지는 귀한 빛으로 비유된다. 번뇌는 예지로 승화된다. 번뇌의 춤인 승무의 감기우고 뻗어 오르는 손은 분명 전신으로 드리는 합장이다

# 이형기의 〈낙화(洛花)〉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激情)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訣別)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자전적 요소가 강한 신경숙의 장편소설 《외딴 방》에는 산업체 학생인 주인공이 〈낙화〉를 필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디 《외딴 방》의 주인공뿐일까. 이형기의 〈낙화〉는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조병화의 〈공존의 이유〉와 더불어 문학소녀들이 가장 즐겨 읊었던 시이리라.
〈낙화〉가 문청에게 널리 읽히는 까닭은 청춘의 열정과 첫사랑이 깃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것만 있었다면 〈낙화〉가 이형기 시인의 대표작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꽃잎인 동시에 이별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시적 화자이다.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영혼의 슬픈 눈을 지닌 시인이기에 가능한 작품이니라.


# 고은의 〈문의마을에 가서〉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 이 시는 고은 시인이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을 조문하러 문의 마을에 갔다가 쓴 작품이다.
‘문의(文義)’라는 지명 자체가 매우 선적(禪的)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옳은 글’이나 ‘평등한 글’이 된다.
그러나 글이란 뜻 속에서는 이미 가르침이나 깨달음이란 의미도 내포돼 있으므로 ‘올곧은 깨달음’이나 ‘두루 원만한 깨달음’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올곧으면서’도 ‘두루 원만한’ 가르침은 무엇일까? 중도(中道)이다. 눈이 내린 문의마을은 생(生)과 사(死)도, 성(聖)과 속(俗)도 일여(一如)하다.
승려 출신의 시인이기에 가능한 초탈적 지경이다.

# 신경림의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라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신경림의 〈목계장터〉는 어조와 주제 면에서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와 상당히 닮았다. 그리고 조영암의 〈허(虛)〉와 나옹선사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靑山兮要 我以無語(청산은 날더러 말없이 살라 하네)’와도 유사하다.
다른 작품들이 주제 면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나 인생유전(人生流轉)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목계장터〉는 하화중생(下化衆生)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방물장수처럼, 떠돌이처럼 떠도는 시인의 발길은 이후 〈길〉로, 〈낙타〉로 이어진다.
시인의 여정이 아름다운 것은 ‘바람’처럼 세속을 초탈하려고만 하지 않고, ‘잔돌’처럼 가장 낮은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리라.

#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 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 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 이 시는 송수권 시인의 등단작이다. 당시 이 응모작은 원고지에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휴지통에 처박혔다가 이어령 주간에게 발견돼 당선이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 이 시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가을산 그림자에 죽은 누이의 눈썹이 떠돈다는 것은 무주고혼(無主孤魂)을 말한다. 이는 인간이 이승에서 못다 풀고 간 한(恨)이다. 〈중략〉 산문은 ‘Mt Gate’가 아니라 ‘Temple Gate’이다. 이승과 저승이 넘나드는 경계선의 문에 기대어 시인은 누이의 눈썹을 보고 있는 것이다.”
두 말 할 나위가 있겠는가. 월명사의 〈제망매가〉의 완벽한 현대판 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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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에 소개된 7편의 시는 《현대불교시선(민족사)》, 《불교서정시선(민족사)》, 《시와 불교의 만남 1~5(동국역경원)》,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창비시선 200)》에서 편집국 자체적으로 20편을 선정한 후 〈불교문예〉 편집위원에게 자문을 구해 다시 추린 것입니다.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