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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명진스님]나는 누구인가 물을 때 부처가 온다 -‘부처님 오신날’ 맞아 만난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

보현화 2008. 6. 11. 14:26

“나는 누구인가 물을 때 부처가 온다” [중앙일보]

‘부처님 오신날’ 맞아 만난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

1일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머리를 물 속에 처 박히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아무 생각도 안 든다. 그 마음으로 물어야 한다.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어미닭이 알을 품듯이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말했다. [사진=김형수 기자]
서울 봉은사(奉恩寺)는 ‘노른자위’에 있다. 도심, 그것도 강남의 한복판이다. 그래서 봉은사는 늘 ‘싸움터’였다. 주지 자리를 놓고 승려들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사찰 재정은 늘 ‘시비의 대상’이었다. 신도들은 맥이 빠지고, 봉은사에는 ‘사찰의 향기’가 잦아들었다. 그러던 봉은사가 부쩍 달라졌다. ‘도심 중의 도심’을 ‘산중의 산중’으로 만들어버린 이가 있어서다. 바로 봉은사 주지 명진(明盡·58) 스님이다.
 
 
2006년 11월에 주지가 된 명진 스님은 그해 12월5일부터 산문을 나선 적이 없다. “1000일 동안 산문 출입 없이 기도와 수행으로 정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도들도 믿지 않았다. “100일도 못 버틸 것”이라며 내기를 하는 스님들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17일이 500일째였다.
 
 
 
 
그날 봉은사 법당에선 법회가 열렸다. 거기서 명진 스님은 신도들을 향해 ‘삼배(三拜)’를 올렸다. 그는 “여러분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신도들은 너나없이 눈물을 터뜨렸다. 뿐만 아니다. 명진 스님은 주지를 맡은 뒤 봉은사 재정을 모두 공개했다. 또 불전함 관리는 신도회에 맡겼다.
 
 
 
이젠 봉은사 산문에 들어서면 ‘사찰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그래서 찾아갔다. ‘부처님 오신 날’(불기 2552년)을 맞아 1일 봉은사에서 명진 스님을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법당을 맑히고, 신도들을 맑히고, 봉은사를 맑힌 그 ‘모터’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의미는.

“2552년 전에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난 날을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과연 부처는 언제 올까. 우리는 그걸 물어야 한다.”

-부처는 언제 오나.

“우리가 물음을 던질 때 온다. ‘나는 누구인가’하고 자기 존재를 묻는 순간에 ‘부처’가 다가온다. 오직 그럴 때, 부처의 진여성(眞如性)이 다가온다. 그러니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왜 물어야 하나.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다. 아주 큰 믿음으로 아주 큰 구원을 얻는 것이다. 반면 불교는 물음의 종교다. 아주 큰 물음을 통해 아주 큰 깨달음을 얻는 종교다. 그래서 불교 수행자는 끝없이 묻고, 끝없이 의심한다.”

-가장 큰 의심은 뭔가.

“‘나는 누구인가’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禪)’을 말할 때 너무 힘을 준다. ‘확철대오’ ‘깨달음’ ‘중생제도’를 말하며 ‘꽈~악’ 힘을 준다. 나는 반대다. ‘힘을 빼라’고 말한다. ‘화두’니, ‘공안’이니 하며 힘을 주지 말라고 한다. ‘의심’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거창하지 않다면.

“가령 석가모니 부처님이 연꽃을 들 때를 보라. 그게 ‘염화미소 공안’이다. 의심은 ‘부처님이 왜 연꽃을 들었을까’를 묻는 거다. 반드시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마삼근(麻三斤)’이란 화두에만 의심이 있나. 비 온 뒤 지렁이가 기어가는 걸 보라. 지렁이가 어디로 기어가는지, 왜 기어가는지. 그건 의심이 안 되나. 꽃은 왜 피나, 하늘은 왜 푸른가. 그건 의심이 안 되나.”

-‘의심’을 해도 모르면.
이 물음에 명진 스님은 순간적으로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정면을 주시하며 답을 던졌다.
 
“그게 중요하다. 참으로 내가 모른다는 거다. 여기가 어딘가. 이 광활한 우주 공간, 그 속의 지구, 그 속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정작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는 거다. 오늘이 몇 일인가. 2008년 5월1일.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이 무한한 우주에서 지금이 언제인가. 그걸 모른다는 거다.”

-왜 모르는가.

“왜 모르겠는가. 이유는 하나다.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걸 해결하지 않고서 인간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어두고 간다. 그건 신의 영역이라고, 산중의 선승들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게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는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물음이다. 부처님은 ‘그게 너희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하셨다.”

-사람들도 해결코자 애는 쓴다.

“그러나 자꾸만 뭘 아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해답은 ‘아는 것’에 있지 않다. 그 반대다. 역대 조사들이 입을 모아 한 얘기가 있다. ‘아는가? 알지 못하는 줄을.’ 거기에 ‘길’이 있다. 그러니 ‘앎’을 향해 달려가선 곤란하다. 거꾸로 가야 한다. ‘모름’을 향해 가야 한다.”

-‘모름’을 향해선 어찌 가나.

“‘앎’을 내려놓으면 된다. 모든 앎을 내려놓으면 ‘오직 알 수 없음’만 뜬다. 거기에 ‘답’이 있다. 구름이 사라지면 달이 드러나는 이치와 똑같다.”

-그럼 ‘모름’의 자리에는 뭐가 있나.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 부자도 없고, 가난한 자도 없다. 높은 이도 없고, 낮은 이도 없다. 거긴 모든 차별성이 미끄러진 자리다. 이 자리에는 그런 일치감이 있다. 도가 깊고, 수승할수록 항상 이 ‘모름’의 자리에서 살게 된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선사들은 말한다. ‘오직 모를 뿐!’”

-그 자리에서 일상을 살면.

“참다운 ‘공(空)’은 ‘묘유(妙有)’다. 허공이 비었다고 하면, 그건 허공이 아니다. 비어서 비었다는 상(相)도 없기에 삼라만상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가 뜨고, 그래서 꽃이 피고, 그래서 눈이 내린다. 그러니 그 일상이 어떻겠는가.”

-현대인은 먹고 살기 바쁘다. 그래도 ‘선(禪)’을 할 수 있나.

“속세냐, 산중이냐는 중요치 않다. 깊은 산중에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도 닦는 척하는 머리 깎은 ‘속인’도 있고, 속세에서 하루에 소 열 마리, 염소 열 마리, 닭 백 마리씩 잡으며 술에 취해 있는 긴 머리의 ‘도인’도 있을 수 있다. 장소가 깨달음을 구하는 게 아니다. 산 속이든, 산 밖이든 깨달음을 좇는 건 오직 ‘구하는 마음’이다.”

명진 스님은 40안거를 지낸 선승(禪僧)이다. 40안거는 간단치 않다. 하안거와 동안거, 빠짐없이 선방을 찾아도 꼬박 20년이 걸리는 세월이다. 게다가 그는 송광사, 해인사, 봉암사, 용화사, 상원사 등의 선방을 돌며 수행을 했다. 그런데 왜 강남 봉은사의 주지를 맡았을까. 승가에서 사찰 살림은 주로 사판승의 소임이다.

“인연이 왔으니 따라서 흘렀을 뿐이다. ‘주지(主持)’가 뭔가. 주할 주(主)에, 지킬 지(持)자다. 단순히 절 지키는 승려가 주지가 아니다. 본래 성품을 지키는 승려가 바로 주지다. 그러니 봉은사 주지를 하면서도 늘 물을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 물음을 놓지 않는 것이 결국 주지를 잘하는 것이다.”

-그래서 1000일 기도를 하나.

“그렇다. 주지하려고 출가한 게 아니다. 수행하려고 출가했다. 그래서 수행도 잘하고, 사찰 운영도 잘하는 길을 찾았다. 그게 1000일 기도였다. 그래서 봉은사 산문도 나서지 않았다. 그 역시 수행의 한 방편이다.”

명진 스님은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새벽과 오전, 저녁으로 나누어 하루 1000배를 한다. 그걸 1000일 동안 하기로 했다. 지금은 함께하는 신도들도 적지 않다.

-도심 사찰이 ‘포교당’이 아니라 ‘수행처’가 돼야 한다고 했다. 왜 그런가.

“도심 사찰이 조직과 포교만 내세우다 보니 ‘알맹이’가 빠져 버렸다.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불교는 ‘구도전법(求道傳法)’이다. 간절하게 법을 구하면, 그게 이미 포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간절하게 사는 수행자 한 사람이 이미 포교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도심 포교당일수록 치열하게 묻고, 치열하게 기도하고, 치열하게 정진해야 한다.”

봉은사에서 재정은 오랫동안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런데 명진 스님은 지난해 말 100억원대 봉은사 재정을 모두 공개했다. 불전함도 신도회가 직접 관리토록 했다. 그건 쉽지 않은 ‘개혁’이었다.

“처음 왔을 때 신도들의 마음이 닫혀 있더라. 1000일 기도를 시작하자 그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신도분들이 그러더라. 재정 공개로 ‘마지막 빗장을 풀었다’고 말이다. 이젠 신도들이 책임감을 느끼는 게 보인다. ‘봉은사에서 내 역할은 뭔가’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하나’를 고민하는 게 보인다.”

명진 스님 방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거기에는 ‘단지불회(但知不會)’란 네 글자가 앉아 있다. 명진 스님은 “송담(松潭) 스님을 뵙고 받은 글씨”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 물었다.

“‘다만 아는가. 알지 못한 줄을.’ 원래는 그 뒤에 ‘시즉견성(是卽見性)’이란 구절이 있다. 그런데 그걸 뺐다. 거추장스러워서. 단지 모를 뿐이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오직 모를 뿐이다. 그 ‘모름’이 평상심이 되면 그게 바로 ‘도(道)’다.”

-선(禪)은 어떤 마음으로 하는 건가.

“절박해야 한다. 점잖게 앉아서 호흡이나 하면서 ‘이뭐꼬’하는 건 억지 주장이다. 지어낸 거다. 자식이 죽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 정말 제 자식이면 어떻겠나. 밥상에서 숟가락 들다가 눈물이 나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눈물이 난다. 정말 슬픈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슬픔이 찾아온다. 참선하는 마음도 그렇다. 진실한 울음이 필요하다. 속에서 복받쳐 오르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 있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봉은사 산문을 나설 때에야 알았다. ‘갇힌 건 그가 아니구나. 갇힌 건 산문 밖 세상이구나.’

글=백성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명진 스님=1950년 충남 당진 출생. 19살 때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다. 75년 순천 송광사에서 첫 안거를 나고, 해인사·봉암사·용화사·상원사 등의 선방에서 40안거를 났다. 87년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불교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94년 조계종 종단 개혁회의 상임위원, 2005년 봉은사 선원장을 역임했다. 명진 스님은 “6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덕분에 어릴 적부터 ‘왜 사는가’를 고민했다. 고(苦)가 다가옴을 두려워 마라. 고통 없이 진리를 향해 다가서기 어렵다”고 말한다.
 
 
*덧글
1.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40 안거라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명진스님은 그런 투철한 공부가 있었기에 세간에 나와서도 저렇듯 흔들림이 없나 봅니다.
 
2.오직 모를 뿐! 숭산큰스님이 즐겨 쓰셨던 이 말씀은, 공부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해 줍니다.
우리 카페에도 아는 마음 가득한 분들이 드물지 않게 오십니다.
그래서 이곳에 자꾸 아는 말씀을 하고 회원들을 가르치려 드시기도 합지요...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아는 마음엔 모르는 마음이 없고, 모르는 마음이 없는 순간, 공부는 거기서 바로 끝!이라는 것을...
 
아는 마음은 다하는 곳이 있지만, 모르는 마음은 다하는 곳이 없는 것을...
아는 곳에서는 아는 것만 나오지만, 모르는 곳에서는 천지만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3.신도를 향해 절을 하고 감사하시는 스님의 모습!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는 또 제가 언제나 강조드리는, 21 세기 불교의 모습입니다.
군림하는 자리에서 섬김의 자리로 오는 것!
그것이 부처님이 걸어가신 길입지요... 
 
 
4.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지만 불교는 물음의 종교다...이 말씀에는 제가 약간 이의를 답니다.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은 믿음과 의심은 둘이 아닙지요.
 
우리 카페에서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진정한 믿음은 '의심 속의 믿음'이요,
진정한 의심은 '믿음 속의 의심'입니다.
 
의심 없는 믿음은 반쪽 믿음이요,
믿음 없는 의심 또한 온전한 의심이 되지 못합니다.
화엄경이 왜 성불의 조건으로 '믿음'을 그렇게 강조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5.스님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두 눈이 약간 '짝눈'임을 알 수 있으시지요?
지혜와 자비가 함께 밝아가는 수행자는, 눈이 저렇게 '짝눈'이 됩니다.
서암,숭산, 월하, 청화, 광덕큰스님 등은 눈이 모두 짝눈이시지요.
명진스님이 존경하는 송담큰스님 눈도 보시면 짝눈이십니다.
 
그렇다고 짝눈이라고 무조건 지혜와 자비가 함께 밝은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기를...
'엉터리 짝눈'도 많습니다요...*^*^*_()_
 
 
 
 
 
출처 : 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글쓴이 : 普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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