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이 품어낸 세대 간의 조화..월간 전원속의 내집 취재 정사은 사진 변종석 입력 2015.10.30 14:34 수정 2015.10.30 16:32
가족이 함께 사는 즐거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불편할지라도, 매일의 희노애락을 나누며 그렇게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집. 한적한 동네 안에 자리 잡은 '고리집' 이야기다.
[House Plan]
서울과 과천의 경계에는 오래된 집들이 낮은 돌담을 마주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있다. 재개발 제한으로 오랫동안 묶여 있어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동네에, 산뜻한 흰색 외관에 중정을 품은 널찍한 주택이 들어섰다. 단층 고리집이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었던 건축주와 그의 누나는, 가족이 모두 한 집에 모여 사는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사촌지간인 아이들 사이도 친해 어릴 때 모여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차였다. 원래 살던 부모님의 집을 허물고 3층 집을 지어 각 층에 한 세대씩 들어가 사는 것을 생각했던 건축주와 누나는, 우연히 본 '중정이 있는 집' 사진에 감동해 마음을 바꿨다.
"어릴 때 뛰놀던 옛집의 기억을 느낄 수 있는 집을 짓기로 했어요. 시선이 머무는 지상 층에서 마당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중정을 만들고, 각 실을 배치하는 디자인이었죠."
잡지를 통해 만난 GIP와 이 계획을 구체화시켜 가며 집은 형태를 잡아갔다. 각 세대가 각자의 공간을 가진 채,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모이며 따로 또 같이 사는 구성, 가족의 생활 방식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디자인이 탄생했다.
노부모 세대
이 집은 세 가족이 같은 현관문을 쓴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좌우로 갈라진 갈림길에서 왼쪽은 건축주 부부 세대로 향하는 문이, 오른쪽은 노부모와 누나 세대로 향하는 문이 있다. 이때부터 미로탐험이 시작된다.
집은 같은 현관, 같은 중정을 공유하고 집끼리 통하는 문을 모두 열면 완벽하게 순환하는 하나의 연결 동선이 생긴다. 그래서 집의 이름도 연결된다는 뜻의 '고리집'이다. 양쪽 집은 다락에서 만나는데, 이곳 다락은 건축주 세대의 어린 세 자녀와 누나 세대 두 딸의 '만남의 장소'가 되곤 한다. 몇 번을 되물어도 '꼭 만들어 달라'고 한 아이들의 강력한 주장 덕분에 만들어진 통로다.
아무리 가족이지만,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사는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의 확보이다. 세 집의 중앙공간인 중정은 각자의 집에서 모두 보이지만, 창의 높이를 모두 달리해 마주 보일 염려가 없다. 가족이 모이거나 소통하는 공간인 거실과 주방은 중정 가까이 전면부에 배치하고, 안쪽 내밀한 공간에는 침실과 서재, 욕실 등을 두어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했다.
모든 거실에서 중정을 감상할 수 있고, 설계단계에서부터 태양 고도를 계산해 중정으로 쏟아지는 일사량을 최대한 확보했다. 덕분에 집 안 구석구석 볕이 잘 들어 늘 밝다.
건축주 세대
집은 미래에 대응하는 건축적인 해결책도 갖췄다. 가족 구성원 변화에 따라 10년 후, 두 세대만이 사는 모습도 불편함 없이 그렸고, 세입자를 받을 수도 있게끔 구성했다.
"가족이 나이 들어가고, 구성원이 변하면 집도 따라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30년을 고려해 설계한 집은, 가변형 평면을 구성해 상황에 따라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또 따로 떨어질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갖추도록 했어요."
설계를 맡은 GIP 이장욱 건축가는 건축주의 요구와 바람을 고민하여 어떻게 공간을 나누더라도 사용자가 불편하지 않은 집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했다.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3세대 간 영역은 세대원이 나이를 먹고 자녀들이 분가하면서 다양한 평면으로 변형할 수 있다. 일례로 다락 사이에 수납공간을 만들었는데, 이 공간은 나중에 집을 두 채로 분리할 때의 버퍼존(Buffer-Zone)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 북쪽에 현관 공간을 하나 더 확보해 나중에 세입자와의 동선을 분리할 수도 있게 했다. 설계부터 고민된 치밀한 가변형 평면 덕에 30년 후까지 대응할 수 있는 집이 탄생했다.
누나 세대
온 가족이 모여 산다고 할 때 들려오는 주변의 우려는 이 집에서는 남의 이야기다. 시시때때로 모이고 흩어지며 하루의 일상을 나누는, 모여 사는 즐거움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다락의 만화방과 미술 작업실 사이에 늘 열려있는 문은 가족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열려 있지만 또 필요하다면 문을 닫고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니, 이제 온 가족이 모여 사는 것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집이다.
▶ 과천주택 실내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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